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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 후보
도로시아 브룩과 성장소설
Dorothea Brooke and the Story of Bildung
오정화(Jung Hwa Oh)
UCI I410-ECN-0102-2009-840-006447098

변화와 발전에 대한 믿음과 계몽주의에 대한 신념이 강했던 19세기에 한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다루는 장르인 성장소설은 대단히 매력적인 장르였기에, 많은 19세기 소설가들이 이 장르를 사용하였다. 여성의 삶의 발전과 변화를 갈망했던 여성작가들도 이 장르를 매력적인 장르로 보고 그들의 소설에 사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개인의 자아와 사회 속에서의 위치를 추구하는 이 장르는 남성적 이데올로기에 기초해 있었으므로,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도록 요구받는 19세기 여성의 삶을 기술하는 도구로 사용되기에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많았다. 『미들마치』는 흔히 도로시아 브룩의 내적 성숙에 관한 이야기, 즉 이기심을 극복하고 타인의 삶의 의미를 깨닫고 이를 통해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해 가는 이야기를 다룬 여성성장소설로 쉽게 읽힌다. 그러나 이것은 성장소설의 두 핵심 요소인 사고와 행동의 발달에 있어서 전자의 발달을 여성의 삶에 있어서 가능한 유일한 발달로 제한시키는 것이다. 이는 두 요소 중 하나일 뿐 아니라, 더욱이 영국성장소설에서는 그 둘 중에서 더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었던 행동면에 있어서의 발달에 대한 엘리엇의 진지한 고민을 무시한 해석이며, 조지 엘리엇이 성장소설이라는 장르와 얼마나 심각하게 씨름하고 있는지를 간과한 해석이다. 괴테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엘리엇이 『빌헬름 마이스터의 도제생활』을 출발점으로 하는 성장소설이라는 장르를 사용하여 여주인공 도로시아 브룩의 삶을 기술하려 하였을 때 직면한 것은 바로 성장소설이라는 장르와 여성이라는 젠더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과 마찰이었다. 그러나 엘리엇은 성장소설이라는 장르를 회피하지 않고 그것을 사용하되 그것과 여성의 삶 사이에 존재하는 골 깊은 간격을 드러내는 전략을 사용함으로써 당시 사회와 문화로부터의 여성의 부재를 드러내고 있다. 즉 엘리엇은 도로시아의 내적 성숙을 주담론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이 주담론에 대치되는 혹은 거기에 저항하는 역담론을 작품 곳곳에 산재시킴으로써 장르와 젠더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을 드러내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도로시아는 처음부터 사고를 통해 자아를 추구하고 행동을 통해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으려는 열망에 불타있는 인물로 등장하여 그녀의 이야기는 성장소설의 주제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는 성장소설로 발전해 가기보다는 고딕소설로 발전되는 적이 더 많으며 결국은 "가정 서사시"로 끝나고 만다. 도로시아의 내적 성숙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인생 여정은 내적성숙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로자먼드의 그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도로시아의 내적 성숙이라는 것 자체도 이중적이거나 다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자신의 이기심을 극복하는 "깨달음"을 얻을 때마다 그 깨달음은 서로 모순되는 복합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발전의 도달점인 윌과의 결혼을 묘사하는 서술자의 어조는 기쁨이 아닌 애석함을 가득 담은 어조이며, 그녀에 관한 마지막 묘사는 그녀의 삶에 대한 축가라기보다는 애가에 가깝다. 화자가 도로시아의 삶을 그려내는 작가로서의 자신의 무능력을 인정하는 부분도 조지 엘리엇이 성장이라는 이데올로기와 자기부정에 기초한 여성성에 관한 이데올로기 사이의 갈등을 노출시키는 한 예이다. 이와 같은 역담론들을 통해 엘리엇은 젠더와 장르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을 드러냄으로써 도로시아의 성장이야기라는 주담론을 해체하고, 이를 통해 남성중심적 문화가 내포하는 가치들에 대한 강한 회의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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