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여성 작가와 사회 개혁가로 알려진 앨리스 워커의 작품 세계 속에는 소외되고 고통받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녀의 소설 중 가장 많이 알려진 「보라 빛」 (1982)에서는 실리라는 흑인여성을 통해 흑인 사회, 가정내의 억압적 관계는 백인 사회 속에 내재한 인종 문제와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 전반에서 주인공 실리는 강간당하고, 구타당하고, 인간성을 짓밝힌 채 살아간다. 이러한 실리의 삶에 셔그라는 흑인 여성 가수가 등장하면서, 실리는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할 뿐 아니라, 자신의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해 바지를 만드는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실리가 자신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셔그의 역할과 그녀와 셔그와의 관계이다. 물론 실리가 친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상속하게 되어 가게를 열게 되지만, 그녀의 경제적 자립은 그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휘한 대가이다. 즉 워커가 그려내는 대안적 관계는 결코 결혼이나 이성(heterosexuality),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성공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미국의 대표적인 헐리우드 감독으로 알려진 스티블 스필버그가 각색한 영화 「보라 빛」 (1985)은 워커의 소설과는 매우 다르다. 셔그라는 인물은 결코 자립적이거나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고, 그녀의 삶을 마땅해 하지 않는 엄격한 목사 아버지와의 화해에 급급한 “딸”로 그려진다. 실리의 묘사에 있어서도, 어느 날 셔그와 같이 떠난 후 돌아온 뒤에 보여지는 장면에서 보여지듯, 중산층 여성으로 변한 모습이 이상화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실리와 셔그라는 두 흑인 여성이 워커의 소설과 스필버그 영화에서 어떻게 다르게 그려지는가를 살펴 보고자한다. 스탐(Stam)과 맥팔레인(MacFarlane)과 같은 영화이론가들과 비평가들은 영화각색을 하나의 “읽기(reading)”나 “번역(translation)”으로 보며, 영화가 소설과 다른 경우 “예술적 오역(creative mistranslation)”으로 보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각색이 소설의 핵심이 되고 있는 주제를 변형시킬 경우 영화를 “읽기” 또는 “번역”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지나치게 다른 각색은 단순히 “충실성(fidelity)”의 문제가 아니라 억압적 관계의 재구성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