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5.217.228
3.135.217.228
close menu
KCI 후보
시인의 길과 "국민"의 길 -미당의 친일시에 대하여-
The Road Taken - Road to be a "National Poet"
오성호 ( O Seong Ho )
배달말 32권 107-135(29pages)
UCI I410-ECN-0102-2009-710-003145321

미당 서정주의 친일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그의 시와 삶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일본 제국의 신민(臣民)이 됨으로써 존재 박탈과 시적 창조력 고갈의 위기로부터 탈출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개인의 윤리 문제로만 이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의 친일은, 일본의 식민지가 됨으로써 좌절되었던 제국주의적 근대화의 열망-개화기의 지식인들이 내세웠던 부국강병론에 입각한 근대화론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일본 제국의 신민이 됨으로써 식민지 타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주체로 상승하려는 은밀한 욕망이 미당을 포함한 식민지 지식인의 친일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내선일체론이나 대동아공영권 논의는 이런 욕망을 정당화하고 부추긴 이데올로기적 기반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미당의 친일시는 한마디로 제국의 신민을 창출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의 대표적인 친일시들이 보여주는 것은 국가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헌신하는 개인의 모습이었다. 다시 말해 미당은 자신의 시를 통해 제국의 신민을 창출하는 데, 그리고 제국의 이름으로 자행된 전쟁 동원에 호응할 수 있는 정서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이바지했던 것이다. 이런 미당의 입장은 해방된 뒤에도 변하지 않았다. 해방 직후 그는 김동리와 함께 반공을 국시로 한 강압적인 대한민국 국민의 창출 과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였고, 6.25 후에는 이른바 `전통의 창조`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을 창출하는 데 기여했다. 6.25 후 그의 시적 상상력의 기반이 되었던 신라는 내선일체론을 증명하기 위해 일제가 발견해 낸 신라의 연상선상에 놓인 것으로, 미당은 신라와 화랑을 중심으로 한 전통의 창조를 통해 국민(민족)의 상상을 재생산하는 데 이바지했던 것이다. 미당의 친일시에 대한 비판이 단순히 윤리적인 비난으로 귀결되어서 안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미당의 친일 활동은 한편으로 개화기 이래 지식인이 꿈꾸었던 제국주의적 근대의 꿈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의 절대화와 개인의 도구화를 전제한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미당을 포함한 지식인들의 친일문제는, 단순한 윤리적 문제가 아니라 근대 기획에 내재된 폭력성의 왜곡된 발현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결국 국가를 절대화함으로써 개인을 말살하는 결과를 낳았거니와, 이처럼 국가를 절대화하고 개인을 단순한 동원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논리는 해방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식민지 잔재의 극복은, 단순히 윤리적 단죄와 인적 청산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해방 후에도 은밀하게 재생산되고 있는 식민지 무의식과 그것에 기반해서 자행된 국가주의적 폭력을 비판적으로 극복하는 데까지 이어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Pro-Japanism" in Midang Seo Jeong-ju`s poetry resulted from his adoption of Japanese nationalism during the Japanese ruling era in Korea. He tried to escape from the "crisis of individuality" in the vortex of the World War Ⅱ by returning to the value of "the nation". From early 1940s` he focused on the oriental tradition by reducing individualism in his poem and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national poems, by which he was cooperating with Japanese empire on its total war system by mobilizing the whole Korean society. His devotion to Shilla dynasty in early 1950s` also can be understood in the same context. Midang`s Shilla is the `found and created tradition` by the Japanese empire. In his poem, he justified the national mobilization by providing the emotional basis and tried to lead people to respond to it voluntarily. From 1940s` to 1950s`, Midang wrote poems to mobilize people for the war and to unify them to nation. In that sense, Midang`s poems during this period may be called `national poems` - poems devoted to formation of the national consciousness. How it was created, however, made this `national consciousness` be a barrier for the growth of the ethical individual reflecting self-consciousness. And it was the very reason why Midang is being criticized on his pro-Japanese poem and activities.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