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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 후보
괴테-마차를 타고 가며
Goethe-unterwegs in der Kutsche
전영애 ( Jeon Yeong Ae )
괴테연구 15권 311-318(8pages)
UCI I410-ECN-0102-2009-850-003117340

한자문화권의 관용어 주마간산(走馬看山)은 예나 지금이나 피상적인 인지(認知)를 나타내는 말인데, 달리는 마차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괴테의 시선은 오히려 집중적인 인지를 보여준다. 새로운 시각으로 포착되는 자연은 자주 새로운 작품의 촉발점이 된다. 시적인 “코페르니쿠스적” 시선 - 마차에서 쓴 시점이 두드러지며, 시「Pha¨nomon」과 더불어 서동시집의 시발이 되는 시 「Artgen Ha¨uschen [=Kutsche] klein」의 또다른 제목이 「Der neue Kopernikus」이기도 하다 - 이 한 순간 자연에 부여하는 놀라운 뒤집음이나 낯선 역동성에 독자는 즐거움을 느낀다. 변화된 인지의 조건 속에서 새롭게 여행자의 의식속에 자리잡게 되는 생각들 역시 그렇다. 그러나 마차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대륙을 오가고, 독일/로마 정도는 (괴테가 꼼꼼히 기록해둔, 군중과 마차들로 운집된 로마의 카니발을, 나아가 『파우스트』 2부의 가장행렬 장면을 구체적으로 떠올리기 위해 코르소가를 한 번 꼭 보아야겠다는 사람이라면) 하루에도 다녀올 수 있는 오늘날, 옛 여행이 과연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지 묻게 된다. 괴테의 여행이 “바이마르”에 대한 반작용이 아니었는가 하는 물음에서 우회적으로 하나의 대답을 찾아볼 수 있겠다. 시간을 넘어 누구에게든 자신의 “바이마르”, 즉 갑갑한 삶의 조건이 있고, 누구에게든 자신의 “이탈리아”, 즉 때로 걷잡을 수 없는 먼 곳에의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여행중에 착상·구상·집필된 작품들이다. 『이탈리아 여행』의 한 중심은 풍광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처음부터 시인의 마차를 함께 타고 “아름다운 따뜻한 나라”로 가는 “동반녀” 이피게니에, 시인이 많은 애정을 가지고 곳곳에서 그 자취를 찾는 불운했던 옛 궁정 시인 타소, 한 걸음 한 걸음 꿋꿋하게 나아가는 『에그몬트』가 이루어져 가는 과정이다. 『에그몬트』에서 그려진 마차의 내달림은 『시와 진실』, 『이탈리아 여행』에서 되풀이되면서 예술가의 존재, 인간존재의 선명한 은유로 부각된다. 작은 착상들 역시 새로운 인지와 맞물려 차츰 윤곽이 선명해지며 예술관으로 정착되기도 한다. 그렇게 이루어진 작품들, 싯구 하나의 힘이 오늘날도 예컨대 에어푸르트를 지나면 어디선가 마차가 나타날 듯한 착각을 주기도 한다. 그 지점에서부터 쓰이기 시작한 『서·동시집』이 열어주는 광활한 시세계를 다시 떠올리는 것이다. 마차는 보일 리 없지만, 모든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는 보이지 않는 불변의 끈이 있다. 그것은 물론 작품의 문학성, 마차시대마저도 오늘의 세계와 이어주는 시적 체험의 유효함이다.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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