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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 등재
랭보의 1871년의 편지들 (1) -"타자"의 시-
Les lettres de 1871 de Rimbaud (1) -la poesie d`"un autre"-
한대균 ( Dae Kyun Han )
불어불문학연구 57권 71-98(28pages)
UCI I410-ECN-0102-2009-760-002390699

“타자”의 시는 시적 객관성을 바탕으로 한다. “나는 하나의 타자”라는 중심 명제에서 출발한 이 “객관적 시”는 1871년이란 시점에서 볼 때 매우 이례적이었다. 당시 시단을 이끌고 있던 파르나스파의 시의 객관성과 전혀 관련이 없을 뿐 아니라, 이 시의 주제와 형태의 편협함 그리고 그 예술의 시대적 무가치에 대한 비판이 암묵적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1870년에 파르나스파의 일원이 되고자 했던 랭보는 보불전과 파리 콤뮌을 거치면서, 1871년 5월 두 통의 편지와 그에 담긴 네 편의 시를 통하여, 전혀 다른 새로운 시인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의 시학은 자기중심적 기술과 묘사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타자”의 시에 대한 추구로 급격히 선회된 것이다. 1871년 5월 13일 랭보는 스승 이장바르에게 편지를 보낸다. 여기서 그는 “나는 생각한다 라고 말하면 잘못입니다. 나는 생각되는 자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선언한다. 시인은 언어의 객관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언급인데, 이는 저 유명한 “투시자”의 시학과 곧바로 연결되고 있다. 1871년 5월 15일자 친구 드므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시학은 보다 구체화되는 과정을 밟는다. 이 편지를 열고 있는 <파리 전가>는 당대의 정치적 상황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잔-마리의 손>이나 <파리의 향연>등과 함께, 사회의 새로운 요구를 수용하는 텍스트로 간주될 수 있다. 프루동의 이론이 드러나 있는 텍스트의 개혁적 성격은 기존 질서에 대한 단순한 반항을 넘어, 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이를 위하여 랭보는 편지에서 그리스 시대부터 낭만주의 운동에 이르기까지의 시적 흐름을 언급하며, 진정한 시인의 부재를 말한다. 시인은 단순히 작시법에 능숙한 자가 아니라, 창조자이고 “투시자”가 되어야 한다는 시학을 펼치고 있다. 랭보가 말하는 사회의 진보는 서구를 바치고 있던 종교와 철학에 대한 전반적인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여성의 역할이 규정된다. 1870년의 시편들에서 나타나는 여성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서 사회의 미래를 예견하고 “미지세계”를 탐색할 여성에 대한 시학은 신비주의와 미슐레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한다. 편지에 첨부된 또 하나의 시, <나의 작은 여인들>은 아직도 랭보의 여성에 대한 혐오를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시인은 그 여인을 통하여 진정한 시인으로 탄생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물리적 존재로서의 여인은 해체되고 여인은 하나의 사상이 되고 하나의 이론 자체가 되는 것이다. 랭보가 자주 언급하고 있는 “자비의 누이들”의 해석은 이를 바탕으로 해야 할 것이다. 랭보의 시적 변천과정은 매우 급격하다. 1870년의 시는 1871년 5월의 편지들에 의하여 그 가치가 소멸되고, 또 이 편지들이 담고 있는 시학은 1872년의 자유 운문시에서 순수한 시적 연금술에 대한 시도로 전진되며, 1873년의 산문시에서는 급기야 모든 문학이 부인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1871년 5월은 하나의 정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는 이 시기의 두 편지들을 실증주의적 정신의 소산으로 보았고 사회주의 및 신비주의에 대한 독서에서 나온 글로 일부 해석했지만, 곧 <취한 배>를 쓰게 되는 랭보를 콩트철학의 단순한 지지자나 혹은 셍-시몽 주의자또는 발랑슈 이론의 답습가로 보려는 것이 아니며, 시학의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에서, 그의 정신은 늘 새로운 시를 쓰고 있는 것이고 결국 시 자체의 거부에 이르고 있음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즉, 다가올 랭보의 침묵은, 말하자면 문학의 종국은 “타자”의 시에 도달하는 “시인-투시자”의 영혼과 관련될 것임을 1871년 5월의 편지 분석을 통하여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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