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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 등재
원사료에 대한 유르스나르의 취향
Le Gout des sources de Marguerite Yourcenar
박선아 ( Sun Ah Park )
불어불문학연구 57권 99-124(26pages)
UCI I410-ECN-0102-2009-760-002390684

유르스나르는 역사소설로 명성을 얻은 작가인 만큼 역사에 대한 관심과 원사료에 대한 집착이 남다르다. 물론 모든 원사료들을 역사가들처럼 일일이 열거하지는 않으나 작품의 후기노트나 인터뷰 등에서 밝히는 작업규칙들을 통해 우리는 그녀가 얼마나 원사료의 사용에 주의를 기울이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녀가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 『흑의 단계』, 『세상의 미로』와 같은 역사성이 두드러지는 작품들을 위해 활용하는 원사료의 유형으로는 공문서, 개인 서간문 같은 고문서와 초상화, 사진, 그림 같은 시각적 고문서, 그리고 몸에 남겨진 문신 글씨 같은 육체적 원사료나 두 번째, 열 번째의 손을 거치는 기억의 파편들인 구전자료 등이 있다. 이 다양한 사료들은 작가의 해석을 거치거나 있는 그대로 사용되는데, 이 때 우리는 사료선택과 해석의 문제 앞에서 작가가 느끼는 감동과 호기심, 상상력, 그리고 사료의 결함이나 빈자리에 대한 수용과 존중의식을 볼 수 있다. 사실의 진정성과 진실에 주안을 두는 유르스나르에게 사료의 침묵은 침묵으로, 사료의 실수는 실수대로 존중하는 역사기술은 매우 근본적인 문제이다. 한편 유르스나르는 원사료를 활용하는 작업과정을 우리가 작품들을 통해 확인 내지 짐작할 수 있도록 이끌기도 한다. 예를 들어 『흑의 단계』에 등장하는 한(Han)의 병상이야기와 작가후기노트에 등장하는 사료에 대한 언급, 그리고 원사료인 앙브루와즈 빠레 개인의 병상일지를 함께 살펴본다거나, 아리안의 서간문과 이를 활용한 하드리아누스의 황제의 에피소드를 연구함으로써 원사료와 작가의 해석방식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과 관련되는 두 편의 에세이 “황제 이야기에 나타난 역사의 모습”, “역사소설의 어조와 언어”를 통해 유르스나르 작품에 나타난 보다 많은 원사료의 자취와 해석의 문제를 살펴볼 수 있다. 그런데 본 연구에서 원사료 활용의 문제를 다루는 주요한 이유는, 유르스나르가 이를 통해 과거의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과거에 빠지지 않고 현재적 시각으로 살아있는 역사를 재구성하려 한다는 점, 둘째 “우리 안에 있는 것이 가장 지속적이고 가장 본질적이다”라는 인간의 보편성에 입각하여 일상의 내면의식을 통해 원사료 안으로 파고든다는 점, 셋째 자신의 본질(본성)과 개인적 성향을 담아 나름대로 고유한 역사를 만들어낸다는 점 등 작가 특유의 역사방법론을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원사료의 독서과정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그녀의 글쓰기 작업은 진실 개념과 관련하여 역사이론에 새로운 반향을 예고하고 있다고 본다. 정확한 사실들을 추구하며 객관적으로 과거를 설명하는 단수적 의미의 역사가 진실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성향과 해석이 가미된 복수적 의미의 역사들이 보다 중요하고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절대적 진실, 절대적 확실성, 절대적 이성이 흔들리고 불확실성 안에서 자유로운 해석의 가능성이 열리는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유르스나르의 사료해석 작업과 역사적 글쓰기는 전통적 역사의 의미를 새삼 회의하게 한다. 그녀의 글쓰기는 오늘날 역사는 ‘내(나)’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 가는 자기 자신으로의 희귀작업이고 우리 각자가 중심이 되어 할 수 있는 우리 자신의 역사여야 함을 보여준다. “역사는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역사가들)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요즘 일고 있는 포스트모던적 역사관이 이미 원사료에 입각한 유르스나르의 글쓰기를 통해 시도되었다는 점은 참으로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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