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즈의 시행착오적인 시도를 통해서 우리는 합리성을 규범적으로 내용이 충분하고 유일한 전제로 사용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칸트에게서 나타나는 것처럼 자아-동일성을 지니고 추상적인 선의지를 갖춘 형이상학적인 인격 개념에서 도덕성을 확보할 수 없음도 알게 되었다. 단단한 모든 것의 기반이 사라져버린 시대에 도덕적 빈 공간만이 남게 된다. 롤즈나 하버마스 같은 윤리적 칸트주의자들은 구성적 절차가 그 빈 공간을 채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성적 절차를 제외하고서는 도덕적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절차주의적 윤리학은 특정한 사회 개념과 인격 개념을 전제하고 있는 보편주의적 윤리학이다. 문제는 특정한 사회와 인격 개념을 전제하고서 어떻게 보편주의를 주장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들의 성과로는 단단한 모든 것이 사라진 시대에서 `합당한 다원주의의 사실`에 직면하여 상호주관적인 차원에서 서구 사회가 성취한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실현하는 구성적 절차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절차는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당위적 이어서 현실적인 힘을 지니기 어렵다. 또한 그 절차가 전제하는 사회와 인격 개념 이 지나치게 서구적 이어서 서구와 다른 상황에 처해 있는 사회에서는 현실성과 설득력을 가지기 어렵다. 절차의 형식주의는 좋음의 개념의 형식화를 낳는다 이는 절차주의적 윤리학이 베타윤리학의 추상성을 답습했기 때문이다. 또한 절차주의적 윤리학이 상호주관성을 전제하지만 개인들의 합의를 도덕적 기반으로 여기는 사회계약론의 전통에 서 있으므로 `시장의 모델` 에 입각하고 있다. 시장의 모델은 홉스나 로크에게서처럼 합법성의 차원으로, 또는 루소나 칸트의 도덕성의 차원으로 전개될 수 있다. 하지만 이 합법성과 도덕성은 서로 이원론을 이루면서 법과 도덕의 분리를 낳는다. 도덕성은 국가의 도덕성으로 시민 사회를 흡수함으로써 경험적 개인을 추상화한다 이러한 합리성과 도덕성의 분리와 한계는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사회계약론을 모델로 한 절차주의적 윤리학은 대답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