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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로학에 대한 오해와 진실 - 황로학 제자리 찾기 (1)
김갑수
시대와 철학 10권 1호 241-263(23pages)
UCI I410-ECN-0102-2008-150-001737841

현재 중국 고대철학 분야에서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황로학`관련 주제이다 이러한 논의의 가장중요한 계기로 1973년 마왕퇴 한묘 백서(帛書)의 발견을 들 수 있다. 『노자을본』앞부분에 수록된 4편의 고일서(古佚書)가 『황제사경』이라는 주장이 당란(唐蘭)에 의해 제기된 후 황로학의 성격이 운명처럼 결정되어 버렸다. 즉 황로학은 이 말의 최초의 사용자인 사마천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법가적 잡가적 성향을 띤 학술 조류로 정의되었다. 그러나 전국 중기 이후의 사상적 조류를 분석하는 데 절대적 틀로 군림한 황로학이라는 말은 그 용어의 최초의 출전인 『사기』와는 다른 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즉 사마천이 당시 사람들의 학맥이나 선진의 학술적 경향을 설명할 때 사용한 이 용어는 법가나 잡가적 색깔을 띤 사상 체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노장등 초기 도가를 중심으로 신선술의 일정 부분을 받아들인 양생론 위주의 사상과 실천적 지침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리고 한초의 황로 학에서 중시한 청정과 무위는 군주의 신하에 대한 통제술이 아니라 피치자인 민(民)에 대한 불간섭주의를 이르는 말이었다.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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