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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 등재
『젊은 빠르끄』에 나타나는 분열의 풍경
Le paysage du clivage dans La Jeune Parque
김시원 ( Si Won Kim )
UCI I410-ECN-0102-2012-510-000149464

본고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풍경`이란 바로 "영혼의 상태"를 반영하며, "객관적인 만큼 주관적이고, 외적인 현실인 만큼 내적인 현실"로서의 작품 속 풍경이다. 작가에게서 집요하게 반복되어 나타나는 공간적 메타포어들은 그가 작품 속에 은밀히 숨겨놓은 가장 은밀한 감정, 혹은 세계와 존재에 대한 가장 내밀한 사고를 감추고 있기 때문에 풍경에 대한 연구는 한 작가의 작품세계 연구에 중요한 관점을 제공할 수 있다. 자신의 내면에서 《지성과 감수성의 대립이 극단적》이며 《사고는 아주 남성적이며, 감수성은 여성적인 것》이라고 느끼는 발레리의 시적 묘사에 있어서 대조적 이미지들은 그의 이러한 정신세계를 반영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다양한 이분대립 쌍들의 체계를 중심으로 그의 시 속 풍경을 분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한 미간행 시에서 《태양은 나의 아버지, 바다는 나의 어머니》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처럼 그의 시 속 공간은 하늘-태양과 대지-바다의 대립에 의해 수직으로 분할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성-지성. 정신과 여성-감수성·육체라는 성을 중심축으로 한 대립관계들에 의해서 역시 이분되고 있다. 발레리의 『주문 Charmes』시집의 시들은 한편으로는 수직 상승의 표지들인 태양, 창공과 긴밀히 연결된 공간, 비상의 꿈과 남성성에 결부된 앙젤리즘 angelisme의 풍경을, 다른 한편으로는 대지의 어두움이나 육체의 풍요로움, 수유의 풍경 등 `대지에서의 휴식에 대한 꿈`과 여성성에 대한 환타지를 암시하는 풍경을 표현하고 있다. 한편 「나르시스 단장들 Fragments du Narcisse」의 풍경은 이처럼 창공과 대지, 남성과 여성의 대립쌍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풍경의 메커니즘에 대해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처음 이 시는 남성적 순수정신과 여성적 육체, 비상의 야심과 대지의 꿈 사이의 투쟁으로 특징지어지지만 나르시스가 `보는 자아`와 `보이는 자아`, 그의 《순수한 육체》와 《달콤한 육체》의 결합을 위한, 연못에의 입맞춤을 시도하는 순간, 연못은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이승 하늘》이라는 유토피아적 공간이 된다. 본고가 또 다른 나르시스, 즉 이 사색적 인물의 여성적 표현형이라 할 수 있는 젊은 빠르크의 내적 여정이 그리는 풍경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단지 이원성으로 가득 찬 또 다른 균열의 공간을 찾아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로부터 오랫동안 유리되어 왔던 남성적 지성과 여성적 감성이 소통하는 화해의 공간에 이르기 위해서이다. 여주인공의 세 번의 잠과 깨어남으로 구성되어 있는 시 『젊은 빠르끄 La Jeune Parque』의 공간은 그녀의 되풀이되는 방황에 의해 복잡하게 얽히고, 상반적인 욕망들에 의해 양분되며, 그 풍경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낙원의 공간과 지옥의 공간, 정신성만이 지배하는 공간과 실존의 공간, 창공의 풍경과 대지의 풍경 등 상반적인 메타포어들이다. 에덴의 풍경은 자연과 인간의 태초의 합일상태를 표현하고 있지만 빠르끄는 그 눈부신 태양 아래에 감추어진 그림자를 발견하게 되며, 오로지 `육체인 상태`로 정의되던 존재의 순수성을 버리고 정신성의 운명을 찾아 에덴을 떠난 그녀가 정작 정신의 여정에서 보게 되는 것은 지옥의 풍경이다. 그것은 또한 뒤얽힌 수수께끼와 역설적 의미들로 어지러운 미궁의 풍경이기도 하다. 그녀의 계시자인 `뱀`의 역설적인 상징성이 암시하듯, 한편으로 정신의 초월성과 다른 한편으로 관능적 삶에 이끌리면서 빠르끄의 내적 모험은 때로는 천상을 향한 상승으로 때로는 대지로의 하강으로 묘사되고, 풍경은 차례로 빛과 어두움에 관련된다. 이 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 할 수 있는 봄의 풍경 속에서는 대지에서 누리는 행복에 대한 유쾌한 판타지가 펼쳐지지만 곧 지옥의 풍경에 의해 침범당하고 만다. 하지만 풍경 속에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 이러한 주저와 동요는 새로운 균형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이 시의 마지막 장면이 그리고 있는 바닷가의 풍경 속에서 우리는 지옥과 같은 내면의 미궁에서 마침내 벗어나 삶의 충만함에 취한 《피끓는 처녀》를 보게 되지만 그 삶은 정신에 의해 승화된 삶을 의미한다. 그동안 서로 배척해왔던 정신과 육체의 조화로운 합일은 대자연인, 바다와 태양이 결합하는 풍경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인식과 존재, 천상과 대지의 구분이 없어지는 궁극적 공간에 대한 비젼을 보여주며, `천상의 정신에 의해 승화된 대지`라는 `종합적인 synthetique` 유토피아의 개념을 암시한다. 그것은 발레리가 아직은 이르지 못했지만 훗날 그의 시극 『앙피옹 Amphion』에 의해 마침내 도달하게 되는 그의 유토피아의 궁극적 형태인 것이다.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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