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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 등재
레리스의 "잘린 목" 환상 -"목 자르기"에서 "다시 붙이기"로
Le fantasme du cou coupe chez Leiris -de La decollation a La re-collation
유호식 ( Ho Shik Yu )
불어불문학연구 77권 59-78(20pages)
UCI I410-ECN-0102-2012-510-000261665

레리스에게 있어 육체는 주체와 대상을 연결하는 매개물이며, 죽음과 글쓰기에 대한 사유가 전개되고 정체성의 위기가 경험되는 공간이다. 죽음의 드라마가 형상화되는 데에 있어, `잘린 목` 환상은 그의 글쓰기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나타나는 주제로서 이 주제를 중심으로 레리스는 삶의 신화적 차원, 언어적 차원, 행위의 차원을 검토하고 있다. 우리는 이 환상을 통해 글쓰기의 기원의 문제, 글쓰기를 정당화하는 방식을 고찰할 수 있다. 레리스의 첫 자서전 『성년』은 뤼크레스와 쥐디트, 그리고 홀로페른이라는 세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레리스는 뤼크레스와 쥐디트 두 인물을 그린 크라나크의 그림을 발견하면서 자기 삶의 구조를 이해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에, 자서전적인 성찰의 글쓰기의 기원에 이들이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그림을 발견하게 된 데에는 또 다른 계기가 있었다. 그는 목이 잘린 세례 요한의 사진을 찾으려다가 그 그림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례 요한의 `잘린 목`은 레리스가 청소년기에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마르그리트의 목에 있는 붉은 색 리본을 보고 싶었지만 연극에서는 한 번도 그 죽음의 흔적을 보지 못했다는 또 다른 기원과 연결된다. 붉은 색 리본은 마르그리트의 목이 잘렸다는 표지인데, 그 표지를 볼 수 없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죽음의 경험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잘린 목`의 환상을 통해 레리스는 크라나크의 그림(뤼크레스와 쥐디트)에서 출발하여 세례 요한의 잘린 목 사진으로, 그리고 『파우스트』의 부재하는 죽음의 장면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으로 미끄러지는 과정으로 기원의 탐색 과정을 형상화하고 있다. 레리스는 가장 구체적인 것에서 출발해서 부재하는 기원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와 같은 기원의 탐색 결과 우리는 그의 정체성의 탐색이 `잘린 목`이라고 하는 불가능한 죽음의 환상, 부재에 대한 의식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년』이 `잘린 목` 환상을 독서체험이나 연극체험과 같은 문화적 체험, 간단히 말해 신화적 차원에서 탐색하고 있다면, Biffures는 부재하는 죽음의 환상을 육체적인 차원이 아니라 언어의 차원에서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는 신화적 인물을 통한 우회적인 탐색 대신 언어를 시적으로 다루는, 글쓰기라고 하는 대체 행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이때 언어, 특히 단어의 시니피앙 차원이 중요하게 부각되며 단어를 연금술적으로 사용하는 시적 탐색이 정체성 탐색의 일환으로 간주되기에 이른다. 단어 자체가 내적인 탐색 공간이 되는 것이다. Biffures의 첫 장인 "...Reusement"은 목 자르기 체험이 어떻게 단어 차원의 체험으로 변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장난감이 떨어질 때, 레리스가 "...Reusement"이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어른이 "Heureusement"이라고 말해야한다고 지적한 이 에피소드는 성년의 세계로 진입하는 과정이 자기 상실의 체험임을 보여주고 있다. "...Reusement"은 단어의 형태에서 이미, 머리에 해당하는 `Heu`가 어른에 의해 거세된 상태를 의미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 단어의 앞에 있는 말줄임표가 잘린 목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Heu`를 대신하는 말줄임표는 결핍을 나타내는 동시에 레리스의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는 유연성을 지니고 있다. 레리스는 이 단어를 통해 어떻게 유년시절의 언어를 회복할 수 있는가, 더 나아가 어떻게 유년시절을 회복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언어차원에서 잘린 목의 환상을 다시 발견한 후, 레리스에게 남은 문제는 삶의 차원에서 `잘린 목`의 등가물을 다시 경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잘린 목`을 신화적 차원과 언어적 차원으로 형상화했다고 해서, 그것을 실제로 자신의 육체로 경험하고자 하는 욕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죽음 이후에 벌어지는 사건을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의 문제는 레리스로 하여금 더욱 죽음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자살 시도를 통해 다루고 있는 작품이 Fibrilles이다. 레리스는 자살을 시도한 후 목 절개수술을 받게 되는데, 그는 이 수술은 `잘린 목` 체험으로 이해한다. 수술 후 남게 된 흉터를 그는 "다리 여섯 달린 벌레"에 비유한다. 이 비유를 통해 죽음은 하나의 사건으로 형상화되기에 이른다. 그 벌레는 또한 "두 입술이 결합"한 이미지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레리스는 이를 통해 자서전을 끝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본다. 자신의 육체가 마침내 하나의 입으로 형상화됨으로써 그는 육체를 통해 죽음을 경험하고 그 경험을 입, 즉 글쓰기로 형상화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자살시도로 생긴 상처는 그에게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는 알리바이를 부과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글쓰기의 재료를 부여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자살 시도가 자살 체험을 서술할 수 있는가 하는 글쓰기의 가능성과 관련하여 제기됨으로써, 잘린 목을 어떻게 `다시 붙일 것인가` 하는 문제, 즉 글쓰기의 문제로 `잘린 목` 환상은 그 의미가 변화하게 된다. 이처럼 레리스의 `잘린 목` 체험은 육체와 죽음에 대한 사유에 한정되지 않고 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환상으로 확장된다. 문학은 실패한 자살 시도를 되풀이함으로써 죽음을 다시 경험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실패와 반복이 레리스 글쓰기의 주요 구성 요소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순간이다.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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