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9.107.241
3.139.107.241
close menu
KCI 등재
병적인 모더니즘 -벤야민과 게오르게 작품의 모티프에 대한 단초-
Gastvortrage : Die Morbide Moderne -Ein Ansatz Zur Motivik Benjamin Und George-
요시히코히라노 ( Yoshihiko Hirano )
독어독문학 110권 30-47(18pages)
UCI I410-ECN-0102-2012-320-000249067

"Moderne 모더니즘"이라는 말은 부가어인 "모던 modern"에서 파생된 신조어다. 그래도 "모던"과 "모더니즘"은 주관적으로 사용될 경우에, 그 단어들 사이에는 몇 가지 일치하지 않는 지점이 있다. 예를 들면 하버마스는 아도르노가 "모더니티"와 "모더니즘" 사이의 차이를 거부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주관적인 경향에서" 객관적 모더니즘의 가능성을 인정하려는 태도를 보였다고 말한다. 그에 반해 발터 벤야민은 유겐트슈틸을 "생산적인 오해"로서 지적하였다. 즉 유겐트슈틸에서 "새로운 것"과 "모더니즘"이 혼동되었다는 것이다. 가끔 "미학적 모더니즘"의 선구자인 보들레르는 "유겐트슈틸의 선구자"로 얘기되어지는데, 바로 그와 같은 경우이다. 이런 역설적인 상황은 벤야민과 슈테판 게오르게와의 논쟁에서도 다시 유겐트슈틸이 언급되면서 증명될 수 있다. 벤야민은 게오르게가 "데카당스의 완성자로서" 결국 "보들레르에서 시작한 정신 운동의 종착지에" 있다고 평가한다. 그럼으로써 "모더니즘의 시작" 이 아닌 "그 끝이" 암시되고 있는 것이다. 벤야민은 처음으로 게오르게의 작품을 유겐트슈틸로 구분했을 뿐만 아니라 당대의 정신적 입장이 유겐트슈틸의 강한 영향 아래에 있다고 말한다. 본래 뮌헨의 잡지명인 "유겐트(청춘)"에 어원을 두고 있는 "유겐트슈틸"은 벤야민이 젊은 시절에 참여했던 유겐트운동의 서정시와 본성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벤야민 스스로도 단어 "유겐트"를 잘못 사용했다고 말년에 인정했던 점은 학교개혁에 대한 당시의 논문에서 쉽게 증명될 수 있다. 게오르게와 그 동료들이 "합법화"하고자 하면서 "논쟁하면서 사랑했던" 게오르게의 시들은 본래 내향적인 체념과 후기의식으로 채워졌다. 유겐트슈틸의 건축학적인 실내장식과 부합하는 내면성이 활기를 띠는 반면, 외적인 것은 "도시 베를린"을 사회적 모더니즘의 환유로서 묘사하였다. 벤야민에게 잠시나마 의미를 가졌던 그런 문제의식은 1930년대에 파리를 "21세기의 수도"로 이해하게 하였다. 벤야민은 "게오르게의 가장 순수하면서도 가장 완벽한 시들이 성(性)으로 망명한 것"은 "죽음으로 예정되었다"고 쓰고 있다. "유겐트"와 이른 죽음 사이의 관계는 벤야민에게 분리될 수 없는 콤플렉스를 형성한다. 벤야민은 게오르게의 작품에서 데카당스적인 죽음의 충동을 밝혀낸다. 이 "충동"은 데카당스 자체를 "억압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충동은 처음부터 데카당스에 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통해서 비로소 퇴행적인 내면성과 중요한 요구로 특징되는 게오르게의 양면성이 드러난다. 그 퇴행적인 내면성과 중요한 요구는 두 가지 현상으로 증명된다. 즉 세기말에 데카당스적 죽음의 충동은 프로이트와 관련하여 "공격-" 혹은 "파괴충동"으로서 처음에는 내부로, 그 뒤 외부로 향하면서 그 두 가지 현상을 증명한다. 이런 것은 명백히 "미학적 모더니즘"에서 발견되는 것과 일치한다.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