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버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논문검색은 역시 페이퍼서치

> 반교어문학회 > 반교어문연구 > 28권 0호

고전문학 : 조선후기 예학과 실학, 그리고 시악(詩樂) -문체반정과 악풍반정-

Poetry and Music of Orthodox Neo-Confucianism(朱子學) and practical science(實學) in the Latter term Joseon Dynasty(朝鮮)

허남춘 ( Nam Choon Heo )

- 발행기관 : 반교어문학회

- 발행년도 : 2010

- 간행물 : 반교어문연구, 28권 0호

- 페이지 : pp.181-221 ( 총 41 페이지 )


학술발표대회집, 워크숍 자료집 중 1,2 페이지 논문은 ‘요약’만 제공되는 경우가 있으니,

구매 전에 간행물명, 페이지 수 확인 부탁 드립니다.

11,600
논문제목
초록(한국어)
우리의 근대는 숨 가빴다. 서구가 2, 300년에 걸쳐 구축한 근대를 불과 100년 이내에 압축적으로 수용하여 체화하다보니 부작용이 많았다. 우리의 근대는 서구적 근대라고 해 왔다. 그러나 남이 준 것만이 아니라 스스로 마련한 것도 있다고 하며 자생적 근대를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지목한 것이 `실학`이다. 17, 18세기 실학의 등장을 근대성의 출발로 부각시키면서 희생양이 필요했다. 주자학을 중세 봉건의 중심 사상이라 여기고 이를 극복 대상으로 삼았고, 반대로 실학의 가치를 부풀리기에 나섰다. 실학의 주변은 선(善)이고, 주자학의 주변은 악(惡)인 것처럼 이분법적인 사고를 착근시켰다. 너무 심하게 실학을 띄우고도 도덕적으로 반성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 여겼던 근대성이 파탄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파탄의 시발점에 서구적 근대뿐만 아니라 우리의 실학도 작용하고 있다니, 심한 혼란에 빠져 버렸다. 이제 실학의 실체를 차분히 들여다봐야 하고, 더불어 중세 주자학의 긍정적·부정적 가치도 재론해야 할 때가 왔다. 아니, 근대성이 파탄난 상황에서 탈근대의 새로운 방식을 찾기 위해서는 중세 학문을 변증법적으로 계승해야 한다. 마치 근대를 마련하기 위해 고대적 가치를 비판적으로 수용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선 예(禮)를 들여다 보았다. `예`는 이미 검증을 거친 사회 관습과 관행의 역사적 테두리이니, 혼란과 파탄을 거듭하는 우리 사회 속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덕목이어야 한다. 예치(禮治)는 무력으로 다스리는 무치(武治)에 대비되는 문치(文治)의 전통이고 평화를 구축하는 방식이니 이 또한 문명권끼리 각축하는 현실에서 유효하다. 조선시대의 예치는 단순히 당파 싸움의 근원이 아니라, 붕당 정치의 전개 과정이었다. 그것은 왕권 견제와 왕권 강화의 이념적 긴장 관계였다. 조선후기 영·정조대는 문예 부흥의 시대였다. 영조와 정조는 예(禮)뿐만 아니라 악(樂)을 강조했다. 예와 악이 보완 관계임을 잘 알았던 왕들이다. 특히 정조는 악을 중시하면서 당대의 촉급한 음악을 비판하고 고악(古樂)으로 회귀를 주장하는 악풍반정(樂風反正)을 시도했다. 잘 알다시피 패사소품의 유행을 차단하기 위해 연암류의 문체를 비판하고 문체반정(文體反正)을 시도했다. 이것들은 한편 청(淸)과의 관계 속에서 본다면 `청을 비판하는 문체를 버리는 친청정책(親淸政策)`이었고, 속악을 멀리하고 아악을 중시하는 친중국적(親中國的) 태도였다. 다른 한편으로 이는 문학과 음악에서 변풍(變風)을 극복하려는 정책으로 그 방법을 원시 유학과 예악에 두었던 태도였다. `예악형정`은 통치 방식이었다. 유교 국가에서는 형정보다 예악을 중시했다. 조선후기 예악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전통을 강건하게 하여 흔들리는 국가 기강을 바로 세우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세월은 흘러 근대를 맞이하고, 근대는 예악보다는 형정으로 나라를 다스린다. 형정 즉 법치에 치우치는 법치 국가로 흘러왔다. 이제 예악을 다시 중시할 때이다. 예악과 형정은 상호보완적 관계다. 조선후기 예악을 중시했던 문풍을 중시해야 할 때다.
초록(외국어)
I say that a government idea of a Joseon Dynasty was Confucianism. There was manner, music, punishment, politics in the center of the idea. Manner had the function which puts the difference in the hierarchies and makes them maintain an order and Music integrated the hierarchy. Penalty and politics were auxiliary. These are complementing. Manner and Music(禮樂) was emphasized by a Korean dynasty, on the other hand, the modern period is the reason which emphasizes more penalty and politics(刑政). Manner and Music are also the system with which a relation between a sovereign and people is made for a complementing related one. It was said that the relation between Manner and Music maintained `appropriate distance` each other. How is practical science in the Yeongjo(英祖) and Jeongjo(正祖) age? When practical science(實學) is put on the symmetrical point with the tradition of orthodox Neo-Confucianism(朱子學), and most scholars have spoken like common sense. Did the word do really that? There was discussion about that the practical science is the one which is a reforming reason or a system of maintenance reason? But I sneak from the dichotomy attitude, and you make itself the subject of a study. Korea chose a civil administration principle(文治主義) at the end of a war with samurai`s national Japan and nomadic China(淸). And it was the society which emphasizes courtesy further. There was no power of the Korea in a knife, and it matched a brush. There is a peaceful beginning we have to choose in a civil administration principle between fascistizing Japan and China where the power principle is strengthened. This situation is also same now even before. We`d have to estimate highly to the choice by which Korea emphasized courtesy. It`s worth reporting in Korea that Buddhism and Confucianism and christianity was ultraism and a fundamentalism every time when they came into this land. But there are an affirmative side and a negative side. The evil of Confucianism was very intense in the Joseon Dynasty last years. But their confrontations were political confrontation between the power which checked the royal authority and the power which strengthens the royal authority. A political thought in the Joseon Dynasty last years also put the accent on Manner and Music by practical science and even orthodox Neo-Confucianism tried to prepare a new breakthrough. This was an aspiration to the civil administration. I have to pay attention to a government system in the Korean morning when `ruled by virture`(德治) was emphasized more than constitutional government(法治) and a military system(兵制). Manner and music(禮樂) have to go back certainly to prepare a government system in our time.

논문정보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발행기관 : 반교어문학회
  • - 간행물 : 반교어문연구, 28권 0호
  • - 발행년도 : 2010
  • - 페이지 : pp.181-221 ( 총 41 페이지 )
  • - UCI(KEPA) : I410-ECN-0102-2012-710-000912323
저널정보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2734
  • - 수록범위 : 1988–2020
  • - 수록 논문수 : 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