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畵鷹の系譜: 東アジアの視点から
From the viewpoint of the genealogy: East Asia of the image hawk
이타쿠라마사키 ( Masaaki Itakura )
다문화와 평화 4권 2호 198-223(26pages)
UCI I410-ECN-0102-2012-330-001855649

동아시아에서 매사냥은 오랜 전통이 있으며, 매는 권력의 상징으로서 군림하였고, 매에 관한 지식도 각각 나름대로 축척 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고려, 조선의 매는 중국과 일본에서도 유명 브랜드로서 정착해 있다. 중국의 매 그림 전통은 오래되었으며 당나라 시기에 한 화면에 한 마리의 매를 그린 架鷹圖와 매가 먹이 감을 좇는 ?鳥圖패턴이 이미 정착되어 있었음을 문헌이나 正倉院유품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이후 끊임없이 그려졌지만, 북송시대 휘종 황제의 이름이 있는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고, 사실, 길상적인 의미를 가진 백매와 휘종과의 관계는 일찍부터 인지되어, 특히 명나라 이후부터, 휘종의 전칭작이 그려진 것은 모본 등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 매는 권위의 상징임과 동시에 武의 상징이기도 하며, 여러 차례 이민족의 표상과도 결부시키고 있다. 명나라 시대의 매 그림은 풍부한 바리에이션이 평가되어, 동아시아 전 지역에 널리 영향을 미치게 되는 정형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도, 고려시대에는 이미 전술한 두 가지 패턴이 보여지고 있지만, 조선 전기 세종 제위기에 궁중화원에 의해 그려진 「架鷹圖」가 대량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조선시대「架鷹圖」중 많은 작품이 왕실화가인 이암의 전칭작이지만, 그의 작품의 전거는 역시 명황제 휘종에 근거하며, 직접적으로는 15세기 중국회화에 의거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일본의 상황은 이보다 상당히 복잡하며, 양국의 전개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 그 중에서 휘종의「鷹圖」가 일본에서도 정착되었다는 것은 무로마치 시대부터 전국시대에 활동한 土岐賴芸의「鷹圖」로서, 그의 작품을 전제 하에 휘종의 그림이 있었다는 점이 화면 상단의 찬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러한 전개를 거쳐 휘종 자신이 제작한「鷹圖」진작의 현존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16세기 이후 동아시아에서 이러한 속성은 정착되었고, 휘종의「鷹圖」라는 환상의 명화가 계속해서 군림해 온 것이다.

東アジアにおいて鷹狩の傳統は古く、鷹は權威の象徵として君臨し、鷹に關する知識もそれぞれ蓄積されていた。中でも高麗·朝鮮鷹は中國·日本でも名高いブランドとして定著していた。中國の畵鷹の傳統は古く、唐時代の段階で一畵面に一羽の鷹を描いた架鷹圖と鷹が獲物を追う지鳥圖のパタ―ンが定著していたことは文獻や正倉院の遺品から確認できる。以降連綿と描き繼がれたが、北宋時代の徽宗皇帝(在位1100~1125)の名を冠したものが壓倒的に多い、事實、吉祥的な意味を持つ白鷹と徽宗との關わりは早くから認められ、特に明時代以降、傳徽宗畵が描かれてきたことは模本等によって理解できる。鷹は權威の象徵であると共に武の象徵でもあり、異民族の表象ともしばしば結び付いている。明時代の畵鷹はそうした豊かなヴァリエ―ションが認められ、東アジア全域に廣がる定型を提供している。韓國でも高麗時代には旣に先の2パタ―ンが認められるが、朝鮮王朝·世宗の時代には宮廷畵員によって描かれた「架鷹圖」が大量に制作されたことが分かっている。現存する朝鮮王朝の「架鷹圖」はその多くが宗室畵家の李岩(1499~1546以降)の傳稱を持つが、その典據はやはり徽宗に遡り、直接は15世紀の中國繪畵に依據していたと考えられる。日本の狀況はさらに複雜で、この兩國の展開を受けたものである。その中で徽宗「鷹圖」が日本でも定著していたことを示すのが室町~戰國時代に活躍した土岐賴芸「鷹圖」(春雨寺)で、本圖の前提として徽宗畵があったことが畵面上方の贊から知られる。こうした展開を經て、徽宗自身による「鷹圖」の眞作は現存が確認されていないにも關わらず、16世紀以後の東アジアにおいてこのアトリビュ―ションは定著し、徽宗「鷹圖」という幻の名畵が君臨し續けてきたのである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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