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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중문학회 > 중국문학연구 > 45권 0호

안녹산(安祿山)의 난(亂) 중 왕유(王維) 실절(失節)의 실체(實體) 천석(淺析)

박삼수

- 발행기관 : 한국중문학회

- 발행년도 : 2011

- 간행물 : 중국문학연구, 45권 0호

- 페이지 : pp.27-44 ( 총 18 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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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외국어)
安史之亂中, 王維失節, 卽陷賊而迫受僞職是他一生最大的恥辱和痛苦。這汚點使他死後都避免不了後世議論紛紛。如宋·朱熹最早批評王維「陷賊中,不能死,」故「欺人旣不足言, 詞雖淸雅, 亦萎弱少氣骨。」(《楚辭後語》) 元初劉因也斥責王維「陷賊而不死, 苟免而不恥。」 明·顧炎武又指責說:「古來以文辭欺人者, 莫若謝靈運, 次則王維。」 我國朝鮮王朝李수光已在顧炎武之前, 也借著王維《金屑泉》一詩, 批評王維在輞川日飮了金屑泉, 而不能有千歲之命, 只不過在失節後論罪時免一死而已。(詳見《芝峰類說》)王維《韋公碑》一文中提到過他在叛亂中的遭遇,卽其被부被監押的過程。而《舊唐書》本傳雲: 「玄宗出幸, 維扈從不及, 爲賊所得。」 這似是把其咎歸於王維, 但據史傳和《韋公碑》等, 其應爲當時「上之發長安也, 群臣多不知」(《通鑒》)的情況所致。本傳又雲: 「祿山素憐之, 遣人迎置洛陽, ……迫以僞署。」 這似是說: 王維的失節出於安祿山的重愛。但據《韋公碑》雲: 「刀環築口, 戟枝叉頸,縛送賊庭。」 這肯定幷不是事實。王維陷賊後, 則以「僞疾將遁, 以猜見囚, 勺飮不入者一旬, 穢溺不離者十月,」(《韋公碑》) 堅持了較長時間的抵抗。不只如此, 他還作《凝碧池》一詩抒發了自己對唐朝的懷念及被叛賊拘縛的亡國之痛。該詩卽刻「聞於行在, 肅宗嘉之。」(本傳) 賊平而論罪時, 王維因而得到肅宗的特赦, 這無疑爲由於王維忠君愛國的赤心充分激動了``龍心``。綜上, 王維的失節決不是後世一些人所指責的變節及不忠的表現。故杜甫《奉贈王中允維》詩中說: 「共傳收庾信, 不比得陳琳。一病緣明主, 三年獨此心。」晩唐儲嗣宗在《過王右丞書堂》詩中還把王維比之於漢代忠臣蘇武。不過, 宋代以後的人士們都拘於「餓死事極小, 失節事極大」(宋·程이之語)的成見, 只知吐出惡毒저毁, 而未能考慮王維失節的眞相和實體, 這實在令人感到遺憾。

논문정보
  • - 주제 : 어문학분야 > 중어중문학
  • - 발행기관 : 한국중문학회
  • - 간행물 : 중국문학연구, 45권 0호
  • - 발행년도 : 2011
  • - 페이지 : pp.27-44 ( 총 18 페이지 )
  • - UCI(KEPA) : I410-ECN-0102-2012-820-002992204
저널정보
  • - 주제 : 어문학분야 > 중어중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6698
  • - 수록범위 : 1983–2020
  • - 수록 논문수 : 10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