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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 등재
19세기 전반 베트남에서의 ‘고려인삼’
Korean Ginseng (nhan sam Cao Ly) in Vietnam during the First Half of the 19th century
최병욱 ( Byung Wook Choi )
UCI I410-ECN-0102-2013-910-002086815

본 연구에서는 19세기 전반 특히 민망-티에우찌 시기 (1820-1847) 베트남으로의 고려 인삼 유입 경로를 파악하고 인삼이 베트남 내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했는가를 밝히고 있다. 인삼의 이동로로 육로와 해로가 있었다. 조선에서 출발한 인삼은 사행단을 따라 북경으로 이동했다. 공품 고려인삼은 청조의 예부를 통해 황제의 하사품으로 베트남에 주어졌으며 베트남 사절은 북경에서 고려 인삼을 약포나 상인으로부터 구입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입수된 인삼은 사신의 행로를 따라 육로를 통해 베트남으로 전해졌다. 해로 이동의 경우 대부분은 불법 무역을 통한 유출이었다. 황해 해상을 통해 조선 인삼은 중국 밀무역 업자들에게 넘겨지고 바다를 건너간 인삼은 다시 연안 해로를 따라 광동으로까지 이동했다. 북경에서 거래된 합법적 인삼이 해로를 통해 광동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물론 있었다. 당시 중국의 유일한 대외무역항이었던 광주로는 매년 베트남에서 채매단이 파견되었고 이곳에서 고려인삼이 구입되었음을 이 연구는 논구하고 있다. 응우옌 왕조 초기 유명한 남북 학자 찐화이득 (Trinh Hoai Duc)과 팜딘호 (Pham einh Ho)를 시작으로 중앙 및 지방의 고위직 관료들에게 병 치료, 노부모에게의 선물 등 목적으로 고려인삼이 지급되었다. 인삼은 충과 효를 이끌어내고 진작시키는 재료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효의 최종적 목표는 충인 것이니 문신 관료에의 인삼 하사의 효과는 충의 진작으로 귀일되는 것으로서 19세기 국가 이념의 강화에 인삼이 사용되었던 것이라 해석될 수 있겠다. 더군다나 인삼은 베트남의 시각으로 볼 때 ‘문헌지방’ 조선에서 온 것이어서 인삼은 인삼 그 자체로서의 약효와 유교적 이념의 구현체라는 두 가지 요소가 한데 모인 주술성을 갖기도 했다. 국가체제를 위협하는 남북의 제 반란은 물론이려니와 타이 군대와의 전투, 캄보디아 정복전 등에 파견된 장군 및 병사들에게도 인삼은 부지런히 지급되었다. 프랑스의 침입이 시작되었을 때도 전장에 고려인삼이 갔다. 남북의 제 반란은 중앙집권화, 소수민족 동화정책 등 민망-티에우찌 시기에 야심 차게 추진된 제 정책의 결과물이었다. 타이 및 캄보디아 군과의 충돌은 1830년대 중반의 캄보디아 병합 과정에서 야기된 것이었다. 베트남의 장군, 병사들은 인삼의 힘을 통해 유교적 이념이 지배하는 국가 체제를 수호하고 확장하는 첨병으로 기능할 것이 기대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논문은 인삼구매를 가능하게 한 베트남 조정의 능동성을 강조하고 있다. 북경을 통한 인삼 취득은 극히 적은 수량이었을 뿐이다. 대부분의 인삼은 ‘여동공무 (如東公務)’를 통해 광동에서 구매되었던 것으로 인식되는데 광동 방문은 하주공무 (下洲公務)와 짝하여 민망-티에우찌 시기에 적극 추진되던 해외 정세 탐지 및 선진 물자 구매의 일환이었다.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에서 맴돌던 인삼 유통의 지도가 19세기에 들어서 베트남까지 확대된 것이니 이는 민망-티에우찌 시기 적극적으로 추진되던 대외접촉의 결과였다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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