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죽음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데서 성립하고, 죽음은 삶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데서 성립한다. 이렇듯 삶은 죽음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죽음을 영원히 거부하고 싶은 정신의 욕망에서 비롯된다. 나의 삶(또는 생명)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인간의 심적 혹은 실천적 활동은 남의 삶(또는 생명)을 죽음으로 내몰거나 변형시킴으로써 가능하다. 나는 타인을 초월하고자 하고, 그래서 타인은 나에 대해 지옥이고, 나는 타인에 대해 지옥이다. 인간 생명은 인간이외의 생명을 초월하려 하고 자신에게서 일구어내는 바 무한한 포식 활동인 인식과 기술적 실천으로써 뭇 존재자를 죽음의 범주에 가둔다. 이 같은 삶과 죽음의 이분법에 입각한 생명의 불멸에 대한 맹목적인 욕망은 기실 영혼 불멸을 꿈꾸는 정신(또는 영혼)의 욕망과 그에 따른 활동에 기인한다. 그러나 불멸에 대한 정신의 욕망은 정신이 몸의 파생적인 존재인 까닭에 단속적으로 늘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음을 반증할 뿐이다. 삶과 죽음은 정신의 이런 운명을 반영하는 반성적인 범주일 뿐이다. 몸은 존재론적으로 삶과 죽음의 이분법적인 범주를 넘어선다. 몸 자체에서 삶과 죽음을 따로 떼 내어 구분할 길은 없다. 예술은 삶과 죽음을 이미 넘어서 있는 몸에서 이관된 것이고, 그래서 예술 역시 삶과 죽음을 넘어서 있다. 전 우주는 삶과 죽음의 이분법을 넘어서 있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정신이 요구하는 시작과 끝의 구분과 한계의 구분을 넘어서면서 늘 열려 있고 늘 생성하는 것으로서 정신의 인식 한계를 넘어선다. 그래서 우주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