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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주자학과 양명학의 논쟁 - 정제두와 박세채 윤증 민이승 박심 최석정의 논쟁을 중심으로 -
A Dedate Between Chu-hsi Learning and Yang-ming Learning in Late Yi Dynasty
김교빈(Kim Kyo Bin)
시대와 철학 10권 2호 199-228(30pages)
UCI I410-ECN-0102-2009-150-007471137

이 논쟁은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걸쳐 한국 양명학이 성립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논쟁으로서 당시 주자학이 점차 교조화되어 가던 상황에서 과감하게 양명학을 표방하고 나온 정제두와 그를 아끼는 학인들 사이에서 전개되었다. 이 논쟁은 관련된 사람들 모두가 서인이면서도 집권 세력인 노론에서 떨어져 나온 소론 계열이며 동시에 牛溪 成澤의 학맥에 속한다는 점이 매우 특이하다 이 논문은 본론에서 논쟁의 핵심 주제를 몇 가지로 나누어 다루었다. 첫째는, 양 진영이 각기 양명학을 어떻게 이해하였는지를 살피고, 이를 바탕으로 「古本大學」을 인정하는 정제두와 주희의 「大學章句」를 인정하는 나머지 논쟁 주체의 입장을 분석하였다. 둘째는, 格物致知와 致良知를 내세우는 두 주장에 어떤 차이가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양지 자체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다른지를 학문 방법의 입장에서 분석하였다. 셋째는 知行의 관계에 대한 이해에서 先知後行과 知行合一의 차이를 밝히고 이러한 입장이 사회적 실천을 이해하는데 어떻게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는지를 살폈다. 그리고 결론에서는 이러한 논쟁이 한국 양명학의 성립에 크게 기여하였다는 관점에서 논쟁이 갖는 사상사적 의미를 서술하였다.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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