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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 등재
왕양명의 주륙관 연구
王陽明的朱陸觀 硏究 -以「朱子晩年定論」爲中心
임홍태
동방학 23권 239-273(35pages)
UCI I410-ECN-0102-2013-810-002030289

주륙논쟁문제는 주자와 육상산 간에 진행된 변론 또는 논쟁 가운데 핵심문제이다. 이 문제는 송명이학을 다루는 학자나 주자와 육상산의 학문을 연구하는 이들은 모두 다루는 화제이다. 역사적으로 진행된 주륙 간의 논변 및 주륙이동에 관한 토론이나 연구의 대부분은 주자나 육상산을 종주로 하는 학파입장을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이로 인해 학술 연구에 있어서 요구되는 객관성을 확보할 수 없었다. 원대에서 명초에 거친 주륙화회 사조의 영향으로 왕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주이학과의 동일시 과정이 필요하였으니, 이는 당시의 학술 분위기상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이러한 때에 양명은 당시 학자들이 다만 주자 중년의 완성되지 않은 학설만을 따르고 다시는 만년의 정론을 구하지 않음을 보고 주자만년정론을 지어 조이만동설을 제시하게 되니, 이는 양명과 주자의 학설이 다르지 않음을 표시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자만년정론을 지은 기본 취지이다. 주륙이동은 아호에서의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명대에 이르러 가장 먼저 조이만동설을 제시한 학자는 조방이고, 정민정은 이를 이어 도일편을 짓게 되니, 조이만동설이 이에서 완성된다. 왕양명은 정민정의 도일편을 이어 조이만동설을 기반으로 주자만년정론을 편집하기에 이른다. 양명의 주자만년정론은 적지 않은 학자에게 비판을 당하게 되니, 당시 주자만년정론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 학자로는 나흠순과 진건 등을 들 수 있다.

朱陸爭論的問題, 是指朱子與象山在辯論或爭論中所圍繞的核心問題. 這個問題, 也就成了?乎每一位治宋明理學或論朱說陸者都不免要涉及的問題. 歷史上關于朱陸之辯及朱陸異同的討論和硏究, 大多擺脫不了宗朱宗陸的學派立場, 而難于達到學術硏究中所要求的客觀化. 在元代以?明初和會朱陸思潮的影響下, 王學的興起, 須借助于對程朱理學的認同, 是?自然的事. 陽明感慨于世之學者徒守朱子中年未定之說, 而不復知求其晩歲旣悟之論, 乃作朱子晩年定論, 提出早異晩同之論, 以表明王門心學與程朱理學同出一源. 此卽此書創作之本旨. 朱陸異同, 始于鵝湖之會. 明代, 最早提出早異晩同之說的是趙滂, 程敏政因之作道一編, 早異晩同之說于是乎成, 王陽明則在此基礎上, 繼承前說, 提出朱子晩年定論之說. 然而陽明此編問世, 卽受到學術界的批評. 當時, 羅欽順卽作書爲辯, 指出他晩年之說, 不斷以何年爲定之誤. 陳建爲作學?通辨, 批評陽明專取朱子議論與象山合者入編, 且論爲顚倒早晩以彌縫陸學, 矯誣朱子而?誤後學.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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