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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 등재
남한산성 호종신(扈從臣)의 병자호란 기억
The Memory of Injo`s Entourage on The Manchu War of 1636(丙子胡亂)
장경남 ( Kyung Nam Jang )
민족문학사연구 51권 230-256(27pages)
UCI I410-ECN-0102-2014-800-001486969

병자호란 후의 정국은 인조와 친청파들이 반청 척화세력을 제거하고 정권을 다지게 된다. 자연스럽게 역사 기록은 인조를 중심으로 정국의 주도를 잡은 주화파에 집중된다. 그러나 역사라는 공적인 영역에서 억압되거나 무시되어왔던 사적인 기억들은 새롭게 조명 받게 되었다. 이 대항기억으로서의 기록이 바로 실기이다. 金尙憲(1570∼1652)의 『南漢紀略』, 南급(1592∼1671)의 『丙子日錄(南漢日記)』이 그것이다. 『남한기략』은 고위 관료인 예조판서 김상헌의 기록으로, 조정의 논의에 직접 참여한 사람이 보고 들은 내용을 적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작자는 이 일기를 통해 척화에 대한 굳은 신념과 이를 고수하려 했던 자신의 의지와 노력을 기록했고, 목전의 講和에 급급한 주화론자 특히 최명길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개전 초기에는 척화의 입장에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화론자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인 인조에 대한 기억이 눈길을 끈다. 일기의 내용은 주화론자의 행위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자신의 척화 주장에 따른 행동의 기록으로 점철된다. 『병자일록(남한일 기)』은 사옹원 봉사로서 산성의 최전선에서 방어 임무를 맡았던 하급관리의 실기이다. 작 자는 직접 성을 지키는 임무를 띠고 있었기에 자신의 주변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적의 압박이 강해지면서 굶주림과 추위와 싸워야 했던 군사들의 일상이 적나라하게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이다. 척화론자나 주화론자를 막론한 위정자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자연스럽게 드러났고, 전란 중에 고통 받는 민중들의 고난상은 사실적으로 기록되었다. 두 扈從臣의 병자호란 체험 실기는 남한산성이라는 공통의 공간에서 겪은 사적인 기억에 의존하고 있다. 이들의 기억은 역사의 전면에 부각되지 않은 지극히 사적인 기억일 수도 있지만, 실기를 통해 세상에 알려짐으로써 병자호란의 실상을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했다. 대표적인 척화론자였던 김상헌은 척화파와 주화파의 대립을 중심으로 기억하면서 남한산성에서의 병자호란 체험을 알렸고, 산성 방어의 최전선에 있었던 남급은 위정자들의 싸움에 의해 무고한 민중들이 겪었던 고통을 잊을 수 없었기에 그 기억을 살려 병자호란의 실상을 전한 것이다. 이들 호종신의 실기는 역사의 전면에 부각되지 않은 사적 체험의 기록이면서 대항기억으로서의 의의를 지닌다.

Namhangiriak(南漢紀略) and Byungjailrok(丙子日錄) delivering experience at the moment of the Manchu war in 1636(丙子胡亂) are all prepared in different perspectives on thewar. Namhangiriak is the record prepared by one of the high-ranking officials, the Ministerof Culture and Education, named Sanghun Kim(金尙憲, 1570∼1652) delivering special implicationin the history for being directly prepared by a person that had participated in thediscussion of government. This diary is regarded as a criticism towards advocates of thepeace and also as a particular behavior followed by rejection of the peace at the sametime. Byungjailrok is a record prepared by Geub Nam(南급, 1592∼1671), a low-ranking position in charge of national defense at the frontline of Namhansanseong. Author was able to observe all the surroundings for being in charge of defense of the castle. Therefore, it delivers detailed situations as to how solders suffered from hunger and coldness. Hereupon, politicians were seen in a negative light followed by practically described situationof citizen suffering from the war. Aforementioned two documents not only convey an implication as an experience-based record at Namhansanseong at the moment of the Manchu war in 1636 and also representation of the perspective from those that had rejected the peace at that time.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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