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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 등재 SCOPUS
한국 지역사회간호의 선구자 이금전에 관한 역사적 고찰
Historical Review of Lee Keumjeon, a Pioneer in Community Health Nursing in Korea
이꽃메 ( Ggod Me Yi )
UCI I410-ECN-0102-2014-500-001953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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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에 태어난 이금전이 이후 평생을 보건사업에 헌신하게 된 계기는 미비한 예방의료의 후유증을 본인이 겪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종두규칙``과 ``종두의양성소규칙``에 입각해서 조선정부가 우두법을 전국적으로 시행하고 있었다(Shin, 2004). 이금전은 서울에서 개화하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부모 슬하에서 자랐으므로 우두접종을 받고 두창에 대한 인공능동면역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금전의 친척 중 한 명이 불행하게도 우두접종의 부작용으로 사망하여 이금전은 우두접종을 받지 않았다. 그 결과 3세에 두 창에 걸렸고 다행히 회복했지만 그 후유증으로 얼굴에 ``마마자국``이 남게 되었다.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이금전은 보건의료가 개인의 삶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절실히 느끼고 이 분야에 종사하기로 결심하였다. 이금전의 교육적 배경은 개종한 집안에서 태어나 종교 집단에서 세운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 사회 봉사의 정신 아래 전문가로 성장하게 된 우리나라 근현대 여성 전문직 진출 과정 첫 세대(Cho, 1988)의 전형을 보여준다. 즉, 열 살에 이화학당에 입학하여 보통과, 고등과, 대학 예과를 연속으로 마치는 과정을 통하여 한글, 한문, 일어, 영어 등 4가지 문자를 익히고 동서양과 인문·사회·자연과학을 아우르는 폭넓은 교육을 받았다. 당시 우리나라는 여성이 정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인식도, 여성 교육기관도 드물어서 1930년에도 문맹률이 90.05%에 달할 정도였으므로(Kim, 1999) 이러한 이금전의 교육적 배경은 여성 지도자가 될 수 있는 훌륭한 발판이었다. 이금전은 중국으로 유학을 가서 의사가 되기를 꿈꾸었지만 연경대학 문리과 수료 후 건강이 좋지 않아 귀국하였고, 이때 20대 중반이었음에도 결혼하지 않고 계속해서 보건의료 전문가, 여성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자 노력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학사 준비과정이었던 이화여자전문학교 문리과를(Ehwa Womans University, 1994) 제1회로 졸업하였고, 이무렵 이금의 장래 희망은 간호계의 지도자로 구체화되었다. 이금전은 세브란스 산파간호부양성소를 졸업한 후 대다수의 졸업생처럼 선교계 병원에서 일하지 않고 태화여자관에서 보건간호사업을 담당하는 것으로 실무의 첫발을 내디뎠다. 여기에는 공중보건에 종사하겠다는 어린시절부터의 다짐, 재학 중에 태화여자관에서 모자보건 실습을 했던 것(Yonsei University College of Nursing, 2008), 태화여자관 측에서 능력 있는 이금전을 필요로 했던 것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금전은 1929년 캐나다에서 열린 국제간호협의회에 참석하고 토론토대학 공중위생학과에서 공부하여 지역사회간호사로써의 전문성과 깊이를 세계적 수준으로 갖추었다. 이금전은 캐나다 유학에서 돌아온 후 태화여자관, 경성연합아동보건회, 경성 탁아소 등을 기반으로 10여년을 보건간호 실무에 종사하면서 사업을 이끌었다. 20세기 초 서구 사회가 인구의 질적 측면과 양적 측면을 매우 중시하면서 모자보건에 치중하였으므로(Porter, 1999) 서구의 선교본부에서 기반을 제공하고 선교간호사를 파견하여 시행되던 우리나라의 선교계 지역사회간호사업은 모자보건사업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었고, 이금전 역시 이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하였다. 당시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아니면 신여성조차 직업인으로써의 수명이 길지 않았고, 산파 면허 소지자는 대부분 자신의 조산원을 운영하며 생활의 안정을 꾀하였던 점(Yi, 2003), 이금전이 35세에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던 점, 그리고 현대에도 교육 보급률에 비하여 고등 교육 받은 여성의 취업률이 높지 않다는 점(Cho, 1988) 등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이금전의 전문직과 전문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헌신은 특별한 것이었다. 또한, 같은 시대의 인물로 정종명이나 한신광이 일제 압박에 항거하는 가족에서 태어나 조국 광복을 위한 일꾼으로 성장하여(Cho, 1988) 이금전과 유사한 교육 및 직업 경력에도 독립운동, 여성운동 등 사회운동에 헌신했던 것(Yi, 2006; Yi, 2012-b)과도 차이가 있었다. 이금전은 지역사회간호사업, 간호서적 출판, 후배 교육 등 자신의 전문성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영역에서 일하면서 소명을 다하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일제의 식민정책이 간호정책과 사업을 좌우지하던 상황에서 이금전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는 선교계 민간 사업에 머물렀고, 정부 조직에서 리더로써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으며, 일제의 전쟁 확대로 선교사업이 극도로 위축된 일제 말에는 그 기반조차 없어지고 말았다. 해방 후 이금전은 정치적 격변과 한국전쟁이라는 시대적 상황에 의하여 자신의 일을 계속해야 했을 뿐 아니라(Cho, 1988) 일제시대 민간과 선교계의 영역을 넘어서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해방 후 일본인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인력이 태부족했던 상태에서 남한에 진출한 미군정은 서구 유학경험이 있는 전문가를 속속 기용하였다(Kim et al., 2008). 이금전에게는 보건후생국의 보건사업과장으로 우리나라 보건간호행정을 주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금전은 간호사를 재교육시켜 전국 보건간호행정직에 배치함으로써 국가적 보건간호체계를 수립할 수 있도록 시도하였으나 대한민국정부 수립 이후 정부 조직의 축소로 결실을 맺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금전이 다른 정부 간호지도자들과 함께 창설하고 운영에 참여한 간호전문직 단체는 성공적으로 설립되고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KNA, 1997). 한국전쟁이라는 엄청난 위기 상황에서 세브란스 고등간호학교장이던 이금전은 세브란스병원 간호원장까지 겸직하면서 교육과 실무 양자에서 지도자로써의 위기관리능력과 역량을 발휘하였다. 특히, 세브란스 고등간호학교 학생 뿐 아니라 여타 학교의 간호학생까지 포함하여 교육시키고 수료증을 부여함으로써 간호인력이 절실한 전시 상황에서 간호교육이 지속되고 그 학력이 인정받 을 수 있도록 하였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사회 전체가 전쟁의 폐허와 혼란을 딛고 일어서고자 노력하는 시기에 지도자로써 이금전의 역할은 정점에 달하였다. 중앙간호연구원의 원장이 되어 간호사를 재교육하여 전문성을 강화시킴으로써 이들이 전국의 간호현장에서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하였다. 또한, 대한간호협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협회의 물적, 제도적 기반 마련에 힘을 쏟았다. 이렇게 해방 이후 혼란과 한국전쟁 및 그 복구기를 통하여 간호 교육, 행정, 조직을 아울러 발휘된 이금전의 헌신과 지도력은 대외적으로도 인정받아 1953년 보건사회부장관 표창, 1955년 서울시 표창, 1957년 보건사회부장 관상 수상이 이어졌고, 1959년에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나이팅게일 기장을 수상하였다. 이금전의 나이팅게일 기장 수상은 30년에 걸친 헌신을 인정받은 것이었을 뿐 아니라, 한국 간호계의 성장과 공헌을 국내외에 인정받고 간호직의 명예를 드높인 경사였다. 이금전은 1960년 모든 공직에서 은퇴하고 1965년 미국으로 이주했지만 지속적으로 간호학 발전을 위하여 노력을 기울였다. 간호사 교육에 참여하고, 논문을 냈으며, 1967년에는 단독 저서 “보건간호학”을 출판하였다. 간호 분야 중에서 특히, 지역사회간호는 각 나라의 역사, 정치, 경제, 문화 등을 반영하며 고유성을 띄기 때문에 외국 책을 그대로 사용하기가 특히, 어려운 분야이고, 이금전의 “보건간호학”은 우리나라 현실에 적합한 간호학 교재 편찬이라는 목표를 분명히 하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1920년대부터 간호 실무, 조직, 행정, 교육에 참여하며 역량을 발휘해 온 이금전으로써는 자신의 책을 낸 시기가 늦었다고도 할 수도 있지만, 일제시대부터 간호학 교재 출판에 지속적으로 참여해왔고 현직에 있을 때는 다방면에서 일을 하며 저술에 전념하기가 어려웠고 1950년대까지는 국내 학계에서 개인의 저술활동이 드물었던 점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간호계의 초창기 지도자로써 다방면에서 역할을 해야만 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공적인 학문적 결과물이 많지는 않았다. 이러한 이금전의 일생은 여성의 교육 기회가 많지 않고 교육 수준이 높지 않았던 식민지 조선에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은 여성으로써 이후 평생에 걸쳐 사회적 책임을 다한 뛰어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00년에 태어나 간호계에 일생을 바친 이금전의 삶은 우리나라 근대화 이후 전문직 진출 상황에 따른 구분에서 첫째 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직업활동이란 사회 계몽 및 봉사라는 차원에서의 사명 또는 소명 의식과 연결되어 있으며, 사람된 도리로써 소명 의식에 찬 헌신적 세대``라는 특징(Cho, 1988)에 부합되는 것이었다. 이금전의 활동이 1920년대 민간 지역사회간호사업에서 출발하여 국가 간호행정으로 나아가고 1960년대 학문적 업적까지 이루는 모습은 그 시기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며 민간의 간호사업, 국가적 체계 수립, 학문적 성장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지역사회간호의 발전을 보여준다. 또한, 이금전이 실무 현장에서 출발하여 조직, 교육, 학문, 행정으로 영역을 넓히며 지도자로써 역량을 발휘한 모습은 후배 간호사들이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일로써 자아실현과 사회 기여를 이룰 수 있는지 역할 모델이 되어 준다.

Purpose: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show the development of community health nursing in Korea in light of the life of Lee Keumjeon (1900∼1990), who devoted her life to community health nursing. Methods: Primary and secondary sources were collected and analyzed. Results: Lee could get high level education up to college courses, which was very exceptional at that time in Korea. She got nursing and midwifery education in Severance Hospital (1929) and majored in public health nursing at Toronto University (1930). Then, she worked in mother-and-child health practice for more than 10 years. She helped the Korean Nurses` Association to publish Public Health Nursing (1933) and other nursing books.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she became a governmental official in the public health nursing field and tried to establish the national public health nursing system. During the Korean War, she devoted herself to nursing education and practice at nursing schools and hospitals. After the war, she worked as president of the Korean Nurses` Association. In 1959, Lee was given the Nightingale award. Although she retired in 1960, she continued to devote herself to the development of nursing, and published her book Public Health Nursing (1967). Conclusion: Lee worked from 1920s to 1960s for the development of nursing in Korea and during the period Korean nursing showed great development to national system and professional status.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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