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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혼인 습속에 대한 고찰 -친영례 및 “친영적 의식” 중심으로-

Study on custums of marriage in the 19th century -focus on Chinyong and sense of Chinyong-

김기림 ( Gi Rim Kim )

- 발행기관 : 한국고전여성문학회

- 발행년도 : 2013

- 간행물 :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26권 0호

- 페이지 : pp.97-123 ( 총 27 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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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제목
초록(한국어)
조선은 건국초부터 유교 가부장적 질서 수립을 위해 노력했다. 그 방안의 하나로 『가례』에 제시된 ‘친영제’를 도입하여 당시의 혼속이었던 ‘서류부가혼’ 관행을 바꾸려고 했다. 친영제는 ‘男先於女’, ‘女從男’ 원리를 바탕으로 하였는데 신랑이 신부 맞이하기, 신랑집에서 혼례 거행하기, 혼례 다음 날 시부모 뵙기 등의 절차가 포함되었다. 조선 사대부들은 이 절차대로 혼례를 거행함으로써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를 확립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신부집에서 혼례를 거행하는 관행은 여전하였고 그와 동시에 며느리로서 인정 받는 ‘현구고례’도 제대로 실시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친영제는 종래의 혼속을 일정 부분만 변화시켰다. 이런 변화는 대체로 17세기부터 시작하여 조선말까지 한편 친영에 관한 논의가 꾸준히 진행되면서 친영과 관련한 여러 가지 의미들이 생겨났다. 조선시대 친영은 신랑집에서 혼례 거행하기, 부가(夫家) 중심주의, 결혼한 즉시 시가에서 살기, 시가에 대한 연대의식 내지 귀속의식 갖기 등 매우 다양한 의미들을 환기하는 용어였다. 이는 친영과 관련하여 사람들의 사고 속에 존재했던 내용으로 ‘친영적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친영적 의식’은 혼례에 관한 한 인식 내용으로서 19세기로 오면서 강화되었고, 결혼한 여성들의 삶에 영향을 끼쳤다. 17세기 이후 가부장적 질서를 바탕으로 사회 전반이 변화를 겪기 시작했지만 여성들은 결혼 후에도 친정과의 연대의식 및 귀속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었다. 그러나 18세기를 거쳐 19세기에 와서는 친정과의 거리가 더 멀어지고 대신 시가와 밀착해가는 현상을 보인다. 남성들은 제사, 재산분배, 묘역 조성, 족보 작성 등의 관행에서 여성들을 배제함으로써 ‘딸’의 정체성을 약화시켰고, 집안으로 들어온 여성을 ‘며느리’로 받아들이는 데에 적극적이었다. 여성들도 자발적으로 친정과 거리를 두거나 친정과 시가 중에서 시가 중심적인 행태를 보임으로써 ‘딸’보다는 ‘며느리’로서의 정체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추세는 ‘친영적 의식’의 영향인 것이다. ‘친영적 의식’은 여성을 ‘딸’보다는 ‘며느리’로서 살기를 강조함으로써 남성 중심, 부가(夫家)중시적 생활 방식을 확산하고 강화하는 데에 밑바탕이 되었다. 이는 19세기에 ‘효열부’에 관한 기록들이 증가하는 현상과도 상관관계가 있다. 기존에는 주로 열행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19세기부터는 서서히 효행도 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열행보다 효행을 더 부각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그리하여 여성들은 아내보다 며느리로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해졌고, 남편이 죽었어도 시부모를 봉양하는 효행 책무를 떠안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19세기 사회가 이전 시기에 비해 여성들에게 시가 중심의 삶을 더 강하게 기대하고 요구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남편을 위한 열행뿐 아니라 남편의 존속(尊屬)을 위한 효행을 요구하는 현실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부가 중심적 삶을 강조하는 일은 20세기에도 여전하여 여성들에게 친가보다는 시가를 중시 하도록 요구하는 현실이 지속되어 온 것이다. 이로써 본다면 조선시대 형성된 ‘친영적 의식’은 여전히 더 강하게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초록(외국어)
The administrators of the Choson dynasty tried to build up a patriachal system. For that goal, they proposed which is Chinese marriage form. But the trial of Chinyong implementation wasn`t realized. Above all the bride`s greeting her parents-in-law which is important ceremony wasn`t enforced. On the other side, Chinyong gave rise to a variety of meaning. The meanings were like this: performing wedding at groom`s house, a general rule which marriaged women must live in her husband`s home, etc. The principles of Chinyong were that a man takes precedence over a woman and a woman should follow her husband. These meanings can be called` sense of Chinyong`. The` sense of Chinyong` were on the increase in the 19th century. So this sense affected married women`s life. Married women were exclusived from a genealogical tree, performing ancestor worship, distributing property, as it were, her position as a daughter has been diminished. While, women`s position was enforced as a daughter-in-law. In the 19th century, enforcing as a daughter-in-law was related to increase in number of life story on daughter-in-law who was dutiful and chaste. This meaned that marride women should support her parents-in-law continuously in spite of death of her husband. It more emphasize women`s role as a daughter-in-law and layed stress on an androcentric idea. There were ``sense of Chinyong`` in this tendency and ``sense of Chinyong`` was powerful in 20th century as ever.

논문정보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발행기관 : 한국고전여성문학회
  • - 간행물 :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26권 0호
  • - 발행년도 : 2013
  • - 페이지 : pp.97-123 ( 총 27 페이지 )
  • - UCI(KEPA) : I410-ECN-0102-2014-800-002067871
저널정보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9316
  • - 수록범위 : 2000–2014
  • - 수록 논문수 :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