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정체성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의 문제는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근/현대화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였다. 중국은 19세기말 20세기 초,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로 국가 존망의 위기에 직면하여 문화정체성 문제가 구국 방안의 하나로 제출되었다. 량치차오는 중국에서 가장 이른 시기 이 문제에 주목하고, 그에 관한 전면적이고도 철저한 논의를 전개한 사람이다. 량치차오의 문화정체성 논의는 그 당시는 물론,20세기 전반에 걸쳐 중국 지식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그의 사상은 조선의 개화파지식인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본 논문은 량치차오의 문화정체성 인식과 그것이 내포하는 포용성, 혼종성, 개방성, 다원성의 특징을 분석하고, 그러한 특징이 형성된 원인을 탐색하였다. 또한 량치차오의 탈경계 문화 경험의 분석을 통해 그의 문화정체성 인식과 탈경계 문화 경험 사이에 관계를 고찰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문화정체성, 모더니티, 글로컬리티와 관련된 문제들에 있어 량치차오와 같은 동양의 지식인들이 이미 이른 시기 상당히 성숙되고 시대를 앞선 논술을 하였음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문제들을 논할 때 서양 이론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량치차오와 같은 근/현대 동양 지식인들이 남긴 지적 자원에 대해서는 충분히 활용 하지 못했던 사실이다. 앞으로 이러한 지적 자원을 중시하고 충분히 발굴하여 이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