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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 등재
남극관(南克寬)의 「사시자(謝施子)」에 나타난 문학의식(文學意識)
A Study on the Literary Thoughts of Nam, Keug-Kwan`s 『Sasija』
박수천 ( Soo Cheon Park )
한국한시연구 21권 153-183(31pages)
UCI I410-ECN-0102-2014-800-002064476

남극관은 오랜 질병으로 인해 26세의 이른 나이로 생을 마감한 인물이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일찍부터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았고, 20세 때에는 生員試에 2등으로 급제해 장래가 촉망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병으로 인해 立身의 꿈을 접고 집안에서 칩거하며 괴롭고 힘든 투병 생활을 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많은 독서를 하면서 자신의 문학의식을 다듬어 나갔고, 그것을 잡록의 형식으로 기록해 놓은 것이 「謝施子」이다. 「謝施子」는 제명의 뜻처럼 쓸모없는 시시한 이야기가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학문세계를 드러낸 저작이었다. 남극관은 성품이 곧고 깨끗해 별다른 욕심을 갖지 않았으나, 침식을 잊어 버릴 정도로 책읽기만 극히 좋아했다고 한다. 여러 잡기적 기술을 모은 「謝施子」에는 문학 분야 외에도 천문, 역법, 지리, 역사, 서법, 금석학, 언어, 문자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견해를 두루 담고 있어 그의 평소 독서가 아주 광범위했음을 증명해 보여준다. 「謝施子」에는 중국 문단에 대한 관심과 문학 비평의 기사가 비교적 많은 편이다. 그 당시 조선 문단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던 公安派와 竟陵派의 문학론에 대한 전체적 평가를 내리고, 그 중 竟陵派를 주도한 鍾惺의 논의가 더 우월하다고 말했다. 남극관은 문장이란 세상의 治亂을 따라 그 盛衰를 같이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나라의 흥망에 따라 그 문장의 성쇠가 나타나니 明나라 말기의 문학이 그렇게 낮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였다. 문학과 時運의 관계를 그가 처음 거론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견해가 남극관의 문학에 대한 기본 인식이었던 점은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남극관의 문학적 관점은 公安派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측면이 있다. 남극관은 袁宏道의 논의를 수용하면서 일단 적극적인 찬동의 뜻을 표하였다. 문학이 개인의 정감과 얽매이지 않는 개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데에 생각을 같이하고, 각 시대의 변화를 따라 문학도 변화하고 발전한다는 견해에도 동감을 했다. 그러나 남극관은 袁宏道의 시작품이 복고론자들이 썼던 일상의 恒語를 애써 기피하느라, 도리어 辭語의 편폭이 좁아져 진실한 개성의 표현에 어려움이 많았음을 지적하면서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 公安派와 竟陵派가 제시한 문학론을 남극관이 긍정적으로 수용하면서도 또한 그들의 미흡한 측면을 간과하지 않았던 것이다. 남극관은 金昌協의 문학과 문학론을 거론하면서도 그의 비판적 견해를 제시하였다. 남극관의 집안은 소론의 명문가라 노론계 인사들과는 政論이나 문학론에서 의견을 같이 하기 어려워 그의 논의에서 黨論의 감정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겠지만, 일단은 남극관이 자신의 문학론적 견지에서 비판론을 개진한 것이라 하겠다. 金昌協이 주안점을 둔 것은 작품에 표현된 意趣였는데 비해, 남극관이 작품 평가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氣格이었다. 남극관은 문장의 경우 體裁가 갖추어져야 한다고 말했고, 시에서는 우선 氣格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남극관은 金昌協 시론의 성취를 일부 인정하면서도, 鄭斗卿 평가의 경우 그의 氣格이 가장 뛰어난데 단지 思致만으로 그를 낮추어 말한 것은 작품의 한 측면만을 본 편협한 처사였다고 비판했다. 작품의 평가는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또한 그 작품에서 가장 높은 성취를 이룬 측면에 중점을 두어야 올바른 비평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남극관의 생각이었다. 남극관의 문학의식은 前後七子의 의고적 문학론을 기반으로 公安派와 竟陵派가 주장한 개성 발현 중시의 문학론을 함께 수용하고 있다. 公安派와 竟陵派는 의고론을 강력히 부정했지만, 남극관은 그들 이론의 장점을 아울러 자신의 문학론으로 발전시키고자 하였다. 작품의 氣格을 중시하면서 그것의 전범으로 盛唐을 존숭하였고, 지나친 擬古에 빠져 개성과 독창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을 경계했다. 그러나 「謝施子」에서 남극관은 그의 문학적 지향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도 않았고, 또한 자신의 문학의식을 체계적으로 이론화하지도 않아, 그의 문학론은 실제 미완의 단계에 머무르고 말았다 하겠다. 그가 일찍 요절하지 않고 在世의 기간이 좀 더 길었다면 더욱 심도 있고 독창적인 문학론을 형성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Nam, Keug-Kwan(南克寬) died at the age of 26 from his disease. He was recognized his literary talents from the people around him. But he stayed indoors to overcome his disease almost everyday. During these days he had many times for reading books, and he made his own literary thoughts. He wrote his several thoughts as a form of miscellaneous notes, named 『Sasija(謝施子)』. 『Sasija(謝施子)』 was a kind of book which showed his high level study. He wrote several subject besides literature such as astronomy, calender, geography, history, calligraphy, language. In the book 『Sasija(謝施子)』, there are many articles about literary critique and Chinese literary circles. Nam, Keug-Kwan(南克寬) thought that the trend of literature followed the flourish of the society. As his view of literature, he accepted the theory of Kong-An group(公安派) critically. He had same opinion that literary works expressed individuality without any restricting. Besides he accepted the theory of Kong-An group(公安派), he didn`t passing over their weak points. Nam, Keug-Kwan(南克寬) criticized the works and literary theory of Kim, Chang-Hyub(金昌協). Kim, Chang-Hyub(金昌協). estimated the intention of writres(意趣), but Nam, Keug-Kwan(南克寬) showed the energetic spirit(氣格) of writers as his critique standard. To evaluating literary works, it needs diversified investigation. And it must focus on the excellent side of the works. That was Nam, Keug-Kwan(南克寬)`s literary thoughts. He estimated the best T`ang Style(盛唐) highly, and he insisted the originality(獨創性) of literature.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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