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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 등재
18~9세기의 조선조 『도덕경』 주석 고찰
考察18~9世紀朝鮮朝 『道德經』 註釋
김학목
동방학 26권 199-218(20pages)
UCI I410-ECN-0102-2014-800-001545363

성리학을 국시로 하는 조선은 개국초기부터 불교와 함께 도교도 부정했다. 그런데 성리학이 절정에 오르는 16세기에 『도덕경』 주석이 대학자 율곡 이이(1536~1584)에서 비롯되니 그것이 『순언』이다. 이이는 관료들이 절정에 오른 성리학을 바탕으로 서로 政爭을 벌이는 것을 완화시키기 위해 『도덕경』에서 마음 비움과 절제에 관련된 구절들을 발췌하여 『순언』을 편집?주석했다. 이어지는 서계 박세당(1629~1703)의 『신주도덕경』은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1637)이라는 큰 국난을 당하고도 민생과 국익을 돌보지 않고 명분론에 빠진 조정을 질타하기 위해 원시유학의 문질빈빈을 기준으로 박을 강조하는 『도덕경』을 주석했다. 성리학의 단점을 보완 또는 비판하기 위해 시작된 『도덕경』 주석은 박세당 이후에 세 가지 다른 형태로 나타나지만 여전히 성리학을 부정하니, 이것이 본고에서 다룰 주된 내용이다. 보만재 서명응(1716~1787)의 『도덕지귀』는 가치론 위주의 의리학을 벗어나 상수학?선천학 등의 관점에서 주석되었다는 점에서 주자성리학과 결별을 고한다. 강화학파 초원 이충익(1744~1816)의 『초원담노』는 노자의 무위를 기준으로 주석되었다는 점에서 성리학은 물론 원시유학까지 벗어난다. 연천 홍석주(1774~1842)의 『정노』는 주자성리학에서 성리학을 제거하여 주자학을 원시유학으로 복귀시킨다는 점에서 성리학을 이탈한다.

以性理學爲國是的朝鮮朝, 一開國就不肯認了佛敎與道敎. 可是進入16世紀, 性理學到了顚峯時, 栗谷 李珥(1536~1584)却註釋『道德經 』, 而稱爲『醇言 』. 李珥緩和當時官僚們以性理學爲根據展開的政爭爲目的, 從『道德經 』拔萃有關‘虛心’與‘節制’的章句, 編輯?註釋來著作了『醇言 』. 接着, 西溪 朴世堂(1629~1703), 叱責蒙受壬辰倭亂(1592-1598)與丙子胡亂(1636~1637)的恥辱還不顧民生與國益, 陷入名分論的朝廷爲目的, 以原始儒學追求的文質彬彬的精神爲基, 註釋强調‘樸’的『道德經 』. 爲了批判或補充性理學的缺點開始的朝鮮朝對 『道德經 』的註釋, 從朴世堂以後顯示三種不同形態, 還是都不肯認 『道德經 』. 保晩齋 徐命膺(1716~1787)在『道德指歸 』, 脫離價値論爲主的義理學, 從象數學?先天學觀點註釋了『道德經 』, 告別了朱子性理學. 江華學派 椒園 李忠翊(1744~1816)在『椒園談老 』, 以老子無爲思想爲據註釋『道德經 』, 脫離了性理學及原始儒學. 淵泉 洪奭周(1774~1842)著『訂老 』, 在朱子性理學, 除去性理學, 把性理學復歸於原始儒學, 而最終脫離了性理學.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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