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04.99.254
34.204.99.254
close menu
KCI 등재
불문학 ; 마음과 글쓰기 -『파이드로스』의 신화로부터
Le coeur et l`ecriture -A partir du mythe du Phedre
이규현 ( Kyou Hyeon Lee )
불어불문학연구 97권 267-288(22pages)
UCI I410-ECN-0102-2015-800-000588320

글쓰기는 마음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마음과 글쓰기 사이의 공간은 무엇일까? 반드시 글을 써야만 할까? 올바른 글쓰기란 무엇일까? 이 물음들에 대한 설득력 있는 대답을 플라톤의 『파이드로스』, 데리다의 「플라톤 약국」(『산종』의 전반부), 리쾨르의 『기억, 역사, 망각』에 대한 독서를 통해 구하고자 한 것이 바로 이 논문이다. 출발점의 가설은 올바른 글쓰기라면 우리 자신에 대한 인식, 자기완성, 마음의 평화에 도움이 되리라는 데 있다. 그러므로 전반적인 내용은 이를 위한 가능 조건의 탐색으로 채워질 것이다. 세 단계로 구성될 이 탐색 과정의 끝에 이르면 글쓰기의 정당성을 일정부분 확정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세 철학자의 각 텍스트는 문자 또는 글쓰기가 약이냐 독이냐 하는 ‘파르마콘’의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플라톤은 문자-파르마콘이 기억에 오히려 독이 된다는 입장에서 고대 아테네의 젊은 엘리트를 이를테면 신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릴 ‘반시대적’ 교육론, 즉 대화에 의거한 ‘영혼 인도의 기술’을 제안한다. 데리다는 플라톤 대화편들에 감춰져 있는 논리를 들추어냄으로써 이 입장을 그 감춰진 논리 자체에 의해 해체되게 할 뿐만 아니라, ‘대체물’과 ‘차연’ 그리고 ‘나머지’와 ‘남음’ 등의 개념 도구에 의거하여 글쓰기의 공간이 ‘므네메’와 ‘이포므네시스’ 사이의 필연적인 차이에서 비롯되고 글쓰기의 에너지원이 이 차이에 있다는 것을 정교하게 입증해내기에 이른다. 리쾨르는 문자-파르마콘의 문제를 역사-글쓰기에 적용함으로써, 데리다에 의해 확립되는 글쓰기의 불가피성을 넘어, 올바른 기억에 이바지할 역사, 즉 기억의 과잉이나 망각의 과잉을 앓고 있는 사회에 약이 될 역사의 조건을 ‘대리’, ‘재현’, ‘대표’ 그리고 ‘매장’과 ‘재인’ 등의 방법론적 개념에 기대어 제시한다. 무엇이 글쓰기의 정당성을 보장할 수 있을까? 달리 말해 글쓰기란 무엇이 어야 할까? 세 철학자의 텍스트에 대한 순차적인 검토에 힘입어 우리는 글쓰기란 기억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가장 인간적인 고뇌의 작업으로서, 정신분석에 기원이 있는 두 가지 작업, 즉 ‘기억 작업’과 ‘애도 작업’을 구현할 때에야 비로소 정당화된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무릇 글쓰기란 무엇인가에 관한 생각도 어느 정도 확정되었는데, 그것은 마음의 극장에서, 달리 말해서 인상과 표현 사이의 심연을 가로질러, 과거의 유령들인 타자와 함께 연출하는 기억 및 애도 작업의 드라마, 데리다 식으로 말하자면 기억 및 애도 작업의 ‘스펙트라클’이 바로 글쓰기라는 명제로 요약된다. 그러나 기억 매체들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의 문명에서 문자-파르마콘 또는 글쓰기가 약이냐 독이냐 하는 플라톤적인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또한 올바른 글쓰기란 동시에 지속 가능한 글쓰기일 것이 분명한데, 이 지속가능성은 글쓰기 자체의 자기 부정에 의해 마련되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 여기에 글쓰기의 역설, 아포리아, 허영이 놓여 있다. 요컨대, 올바른 글쓰기를 구성하는 세 가지 특성, 즉 시련을 통해서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의식, 비싼 대가를 (나중의 성과를 기대해서가 아니라 과정 자체가 치유일 수 있기 때문에) 치르면서 인상과 표현 사이의 심연을 가로지르는 기억 작업과 애도작업, 침묵에 의해 뒷받침되는 지속 가능성을 절대적으로 긍정하면서 글쓰기 작업을 수행할 때, 애초에 설정된 글쓰기의 세 가지 가설적인 목적, 즉 우리자신에 대한 인식, 자기완성, 마음의 평화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Ⅰ. Introduction
Ⅱ. Developpement
Ⅲ. Conclusion
Bibliographie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