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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 등재
한국 소년SF영화와 냉전 서사의 두 방식 -<대괴수 용가리>와 <우주괴인 왕마귀>의 개작 과정 연구
Korean Boy SF Films and Two Way Discourses on Cold War - Adaptation Process on Two Giant Monster Films in the 1967
송효정 ( Hyo-joung Song )
어문논집 73권 95-129(35pages)
UCI I410-ECN-0102-2015-700-001765962

한국 SF영화는 그 특성이나 장르적 발전단계에서 독자적인 장르형성에 실패했다고 평가받아왔다. 하지만 B급 영화들까지 한국영화사의 자료로 참고하는 동시에 그동안 주변 장르들(호러영화, 괴수영화)로 분류되던 영화들의 소재 특성을 감안할 때 한국적 SF영화로 분류 가능한 일련의 영화들을 선별해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주목할 만한 시기는 1960년대이다. <투명인의 최후>(이창근, 1960) 이래1960년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과학적 상상력’이 영화의 주된 소재로 등장하는 일련의 SF영화들이 등장했다. 그 첫 번째 하위 장르는 한국형 고딕SF영화이고 두번째 경향은 이 글에서 다루는 소년 SF영화다. 두 편에 그치기 때문에 하위 장르로서의 대표성이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소년SF영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영화의 주인공으로 ‘소년’이 등장한다는 한국형 소년 모험의 서사적 전통을 잇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냉전시대의 불안과 갈등, 평화에 대한 열망이 착종적인 방식으로 영화 내에 반영되었는데, 이는 대한민국의 수도의 상징공간의 지리적 상상력과 결합되어 있다. 셋째, 미소 우주경쟁시대에 제작된 만큼 우주적 상상력이 군사적 상상력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넷째, 동시대‘고딕SF’와 상반되게 과학에 대한 유토피아적 열망과 기대가 담겨 있다. 영화는 좋은 과학(국방 과학)과 나쁜 과학(핵 과학)을 나누고, 결국에는 좋은 과학의 이데올로기적 승리를 옹호하였다. 영화 <우주괴인 왕마귀>와 <대괴수 용가리>는 한국 SF영화사에서 특이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들은 가족영화, 오락영화, 괴수영화의 틀을 넘어서 냉전기국제질서가 응축된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특이성을 증후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우주경쟁과 핵무기 견제를 통해 과열되던 냉전의 논리는 두 편의 영화 속에 주된 갈등의 축으로 등장한다. ‘과학’은 미래의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각 진영의 주요한 가치였다. 두 작품이 만들어진 1967년도는 박정희 정권의 과학의 현대화 과정이 진행되는 동시에 ‘과학적 애국주의’가 유포되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두 편의 소년SF 영화는 실제 오리지널 시나리오에 비해 상당 부분 개작이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1967년은 전해 개정된 2차 <영화법>이 시행되던 시기였다. 2차 <영화법>의 핵심은 검열의 법정화에 있었으며, 이로 인해 2중 3중의 감열 관행이 이후 지속되게 되었다. 두 편의 작품은 시나리오 단계에서 기획될 때는 대중적인 오락영화로서의 고려와 함께 냉전기 국제질서와 평화, 전쟁을 바라보는 입장을 대조적으로 반영하고 있었다. UN으로 대변되는 국제질서 하에서 전 인류의 공조와 보편적 평화주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던 <우주괴인 왕마귀>는 시나리오 각색의 과정을 거쳐 주제의 범위가 외계에서 온 괴물에 대한 반응으로 축소되었다. 한편 냉전기 동서진영의 갈등과 첩보전, 이념대립을 노골적으로 그려낸 <대괴수 용가리>의 오리지널시나리오는 국제적 양식의 오락영화로 각색되면서 스토리에 내재되었던 악의와 갈등의 소지가 완화되고 오히려 괴물에 대한 양가적이고도 모호한 감정을 개입시켜 내러티브에 일종의 균열을 일으키기도 했다. 두 영화는 ‘괴수’라는 환상적 존재에 대한 사회적 공포를 영화의 주된 효과로 활용하면서 냉전시대의 공포에 대한 자기반영적 비판의 여지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문제적이었다.

In general, it is difficult to see that Korean SF films has been forming its own genre. But obviously there were a series of films classified as SF in Korea film history. In this regard it is worth noting the time in the 1960s. From 1960 until the early 1970s, scientific imagination was the main driver of certain films. The first is the Korean “Gothic SF” films, and the second trend is the “Boy SF” films. The special shooting Giant monster appeared in Boy SF films. Among them the only two “Boy SF films” were as follow; , in 1967. Particularly scientific developments meant self-reliant national defense capability in these films. Because of censorship, both films have undergone a significant change in the scenario steps. This study concerned about the differences between the original scenario and the film. Just because the two works, it is asking too much that they were the typical Boy SF films in Korea. Nevertheless, they had a historical, geopolitical, semantic meanings. First, the film``s protagonist was resourceful boy. This is a traditional feature of Korean boy adventure story since 『Adventures of a Ddolddoli』(1936). The boys confronted the Giant Monsters and at the same time felt sympathy for them. Second, there was anxiety of the Cold War intertwined with desire for World peace under UN System. DMZ and the capital of the Republic of Korea(Seoul) were destroyed by the Giant Monsters. Thirdly, these works reflected nuclear terror and the space race of the Cold War era. Finally, they shared the Good Science(science on national defense) and Bad Science(nuclear science) and finally advocated the victory of Good Science.

1. 소년, 우주, 미래
2. 냉전시대 SF와 소년의 모험
3. 냉전기 국제질서를 반영한 두 서사와 그 변용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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