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버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논문검색은 역시 페이퍼서치

> 한국시가학회 > 한국시가연구 > 39권 0호

17세기 전반 시가사 이해를 위한 예비적 고찰 -17세기 전반 정치, 사회 변동과 시가사(1)-

A Preliminary investigation to understanding the trend of Siga in first half of 17th century -The Political-Social spectrum in first half of 17th century and the trend of Siga(1)-

최재남 ( Jae Nam Choi )

- 발행기관 : 한국시가학회

- 발행년도 : 2015

- 간행물 : 한국시가연구, 39권 0호

- 페이지 : pp.5-35 ( 총 31 페이지 )


학술발표대회집, 워크숍 자료집 중 1,2 페이지 논문은 ‘요약’만 제공되는 경우가 있으니,

구매 전에 간행물명, 페이지 수 확인 부탁 드립니다.

7,100
논문제목
초록(한국어)
이 논문은 17세기 전반 정치·사회 변동과 관련하여 시가사의 추이를 살피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시기 시가사의 추이는 매우 다양한 양상을 보이며, 17세기 후반 이후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17세기 전반 시가사를 첫째 17세기 이전의 태평시대의 문화를 지속시키고자 하는 노력과 그러한 노력의 과정에 대한 이해, 둘째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는 방향, 셋째 변화와 관련한 시가사의 과제 등 세 축으로 살피되 본고에서는 첫째 축에 중점을 두고 진행하며, 둘째와 셋째 축은 별고로 다루고자 한다. 17세기 이전 문화의 지속을 위한 노력과 그 과정을 다시, 감찰계회의 지속과 <상대별곡>의 풍류, 전승 노래의 수습과 속편.대응편의 마련, 중앙 권력 세력의 연회 전통과 그 의미 등으로 나누어 살핀다. <상대별곡>은 사헌부의 위상과 사정(司正)을 맡고 있다는 자부심이 배인 노래로, 사헌부에 근무한 사람들은 상대계(霜臺契), 감찰계(監察契), 총마계(총馬契) 등의 이름으로 계회를 조직하여 공무 이외에도 그들 모임에서 <상대별곡>을 부르면서 집단적 결속을 이어갔다. 그런데 17세기 전반에 서울에 기반을 둔 이들 사대부들은 현실의 변화로 사헌부의 위상이 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헌부에 근무한 경력을 내세우면서 그들의 집단적인 결속을 강화하고 <상대별곡>이 지닌 풍류의 내면을 이으려고 하였다. 이들 중앙 기반의 관리들은 사헌부가 권력의 중추를 차지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상대별곡>의 함의를 포함하여 그들의 집단적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17세기 전반에 전승하는 노래를 ‘번가(飜歌)’, ‘번사(飜辭)’, ‘언가(諺歌)’ 등으로 수습하거나 한역하였는데, 이는 노래의 민멸을 아쉬워하는 마음이 일차적이지만 개별 작품의 경우 “사군(思君)”, “사미인(思美人)”, “연군(戀君)” 등의 상황이나 내용과 관련된 맥락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서, 님이나 대상에 대한 화자의 내면을 토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한편 앞 시기에 창작된 기존의 작품을 전범으로 인식하고 속편(續篇) 또는 대응편에 해당하는 새로운 작품을 마련한 사실도 주목할 수 있다. 서울 근처에서 부원군이나 부마의 위치에 오른 사람들이 서호나 동호를 비롯한 한강 주변에 별서를 마련하여 연회를 즐기는 전통이 16세기 이후 이어졌는데, 정치의 중심에 섰던 대부들도 동참하였다. 그런 가운데 16세기 초반의 상림춘(上林春), 16세기 중엽의 석개(石介) 등의 가기를 보호하고 풍류의 자리를 이어가게 한 후원자의 역할을 주목할 수 있다. 17세기 전반에는 칠이(七伊), 옥아(玉娥) 등의 가기가 이러한 자리의 중심을 차지하였고, 김제남이 국구가 된 뒤에 집안에서 가기(歌妓) 등을 동원하여 연회와 잔치를 베풀었던 사례에서 보듯 정치적 변화로 주도층은 바뀌지만 17세기 이후에도 서울의 중요한 문화 현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연회 자리에서 부른 노래의 레퍼토리를 주목할 수 있다. 이상의 세 장에서 검토한 내용은 17세기 전반 시가사의 추이를 이해하는 데에 긴요한 지남이 될 수 있으며 나아가 17세기 후반 이후 시가사의 추이를 살피는 데 참조의 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초록(외국어)
The aim of this article is to survey the trend of Siga in first half of 17th century. In connection with the Political-Social spectrum in first half of 17th century. The trend of Siga is very multifarious and meaningful. And we are able to expect the trend of Siga in second half of 17th century. I am going to explain the duration of the previous culture system in first half of 17th century as following. First, the duration of inspection union and romantic pursuits of , Second, gathering of handed down songs and preparing sequel work and correspondence one, And the third, the tradition of banquet and its meaning. First, the officials in service at Saheonbu(司憲府) organized inspection union and sang . In spite of the political-social change first half of 17th century. They banded together and connected inner romantic pursuits. This attitude is very interesting to understand the trend of Siga in second half of 17th century. Second, several learned men gathered handed down songs and prepared sequel work and correspondence one. The songs translated Chinese poetry are expressed as “remember Mr.(思君)”, “remember a beauty(思美人)”, “yearn Mr.(戀君)”, and sequel work and correspondence one is prepared to the canon of previous work. And the third, the royal family and the men of power opened banquet and patronized the female singer. In this banquet, we are able to imagine the various repertoire. The tradition of banquet is connected to second half of 17th century continually.

논문정보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발행기관 : 한국시가학회
  • - 간행물 : 한국시가연구, 39권 0호
  • - 발행년도 : 2015
  • - 페이지 : pp.5-35 ( 총 31 페이지 )
  • - UCI(KEPA) : I410-ECN-0102-2016-810-000193030
저널정보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5578
  • - 수록범위 : 1997–2020
  • - 수록 논문수 : 5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