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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 등재
보한재(保閑齋) 신숙주(申叔舟)의 교유와 한시
A Study on the companionship of Bohanjae(保閑齋) Sin-Sukju(申叔舟) and his poetic literature
김은정 ( Eun Jeong Kim )
한국한시연구 23권 5-37(33pages)
UCI I410-ECN-0102-2016-810-000168319

保閑齋 申叔舟(1417~1475, 본관 高靈, 자 泛翁)는 15세기 문학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런데 당대에 勳業과 文學을 모두 이루었다고 칭송받은 그였지만, 癸酉靖難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는 정치적인 행보로 인하여 후대에는 온당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문학적 성과에 대한 고찰이 부족한 편이다. 본고는 신숙주의 문학적 면모 가운데 교유의 양상을 드러내는 시작품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극적인 그의 인생에서 교유의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서이다. 신숙주의 초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賜暇讀書를 함께 한 문인들이다. 集賢殿에서 한글 창제와 杜詩 纂註에 함께 참여하였던 인물들은 단순한 벗이 아닌 동료들이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신숙주는 成三問과 많은 시를 주고받았는데, 이들 대부분은 1445년에 요양을 세 차례 방문하면서 제작한 것이었다. 특히 그 여정이 韻書를 질문하기 위한 것이었음과, 수창시에 다량의 두보 차운시가 포함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두 사람이 세종의 문자와 문학 정책을 가장 잘 이해한 실무자였음을 알 수 있다. 즉 신숙주는 세종조의 어문정책 실무자로서 성삼문과 깊은 교유를 하였다 하겠다. 계유정난 이후 신숙주는 그 주역인 韓明澮 등과 친밀히 지내어서, 그들과 주고받은 교유시가 많다. 그 중에서도 權擥과 가장 가깝게 지냈다. 신숙주가 자신이 물려받은 官學의 정통임을 상징하는 犀帶詩卷을 권람에게 전해준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즉 서대시권의 전승은 座主-門生 관계로서 권람을 인정한 것이다. 이는 권람이 시학과 역사에 남다른 식견을 가지고 있었던바, 신숙주는 그를 관료문인으로서뿐만 아니라 학술적으로도 깊이 인정하였다고 하겠다. 그들이 주고받은 시편에서 서로를 허여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詩僧 一菴은 생애의 전기와 후기로 나뉘는 신숙주의 교유에서 공통되게 등장한다. 신숙주는 말년에 초년의 교유를 기억하게 하는 일암과 수많은 시를 주고받았다. 처음 일암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 그가 詩律에 밝았기 때문이었는데, 같은 이유로 일암과 교유한 문인들이 많았다. 그래서 신숙주는 일암을 통해 말년에 姜希顔 형제, 徐居正 등과 시문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즉 일암을 매개로 시율을 즐기는 교유가 있었다고 하겠다.

Bohanjae(保閑齋) Sin-Sukju(申叔舟, 1417~1475) achieved at academics, and literature in Josun(朝鮮) of 15th century. But his political moves disturbed his fair assessment. This paper researched his companionship and poetic literatures of social intercourse. Sin-Sukju played important roles with Sung-Sammun(成三問, 1418~1456) in making hangul and compiling Chanjubunryudusi(纂註分類杜詩) which was book of adding and categorization annotation about Dufu(杜甫) poetry. They were the brains of language and literature planning in the age of Sejong. And they composed many poetic literatures of social intercourse. However, Sin-Sukju associated with Kwon-Ram(權擥, 1416~1465) after Kaeyujungnan(癸酉靖難, 1453) by which King Sejo seized power. He thought himself as the main line of national school, and considered Kwon-Ram as successor, so passed on water buffalo belt and scroll of main line of national school. Like this, the companionship of Sin-Sukju was divided into the first and second half. Meanwhile, he associated with Ilam(一菴) through all the time, who was buddhist monk having profound knowledge of metrics. And Sin-Sukju keep company with many literary men by Ilam.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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