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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화된 음성적 전통과 언문일치라는 물음 -『만세보』의 부속 국문 표기를 중심으로

Articles : The Visualization of Voices and the Unification of the Written and Spoken Language with Chinese Characters in the Newspaper Manse-bo

송민호 ( Min Ho Song )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 발행년도 : 2016

- 간행물 : 인문논총, 73권 1호

- 페이지 : pp.135-164 ( 총 30 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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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제목
초록(한국어)
본 연구는 1906년에 창간된 『만세보』가 채택했던 ‘부속 국문 표기’에 관한 것이다. 당시 천도교의 교주였던 손병희는 신문을 창간하면서 일본의 루비와 유사한 활자를 들여와 한자 옆에 한글로 주석을 달 수있도록 하였다. 이 국한문 병용 표기는 조선 이래로 한국의 어문 환경에 존재하고 있던 국문과 한문의 관계에 대한 양상을 시각화하여 보여주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한문을 읽어내는 음성적 전통과 뜻을 새기는 번역적 전통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표기를 통해 한자에 맞는 주석음을 달아주더라도 결국 한문을 모르는 사람은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따라서 당시 『만세보』에는 주로 서구의 근대적 개념어에 대해서는 주석음을 다는 방식을 사용하였고, 국문독자구락부 같은 란을 통해 행위나 형용을 표현하는 어휘를 중심으로 한자에 한글로 주석음을 다는 방식이 아니라 주석뜻을 대응시키는 언어 표기적 실험을 하였다. 다만, 이러한 언어 표기적 실험은 일본의 훈독체의 영향을 받아재구성한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순국문체로 가는 과도기적인 것이었다. 여기에는 조선에서부터 확립되어 있던 음성적 전통과 언해적 전통이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또한 이러한 『만세보』의 표기 상의 문제는 이전 시대 『독립신문』의 주역들이 제기했던 한문과 국문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상기하도록 한다. 당시 서재필과 주시경은 각각 한자어를 음차하는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뜻을 피력했던 것이다. 이 논의의 핵심은 한자어에 대한 음차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 하는 것에 있었다. 서재필과 주시경은 공통적으로 음차된 한자어의 개념이 당시 인민의 언어 생활에 얼마나 들어와 있는가 하는 것을 문제 삼았고, 이를 통해 서구의 근대적 개념에 대한 계몽의 필요성을 역설했던 것이다. 『만세보』가 도입한 부속 국문 표기는 바로 이 시대에 제기되었던 국문 담론과 계몽의 문제를 다시금 환기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나아가 한문훈독의 전통이 존재하지 않았던 한국에서 결국 순국문체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제반의 조건을 상기시켰던것이다.
초록(외국어)
This study examines the attached Korean transcription style adopted by the newspaper Manse-bo, which was published in 1906. At that time, Son Byong-hi (孫秉熙, 1861-1922), a religious sect leader of Cheondogyo annotated Hangul (Korean alphabet) beside Chinese characters when he founded the newspaper, and brought in a type called ``Ruby`` in Japan. The Korean and Chinese characters used in combination showed through visualization the relationship of Korean and Chinese characters as they co-existed in the language environment of Korea in the Joseon Dynasty. However, in Korea, the vocal tradition that reads Chinese characters and the translation tradition that inscribes the meaning are thoroughly separated. Although each Chinese character had a correct annotation through this orthography, people who did not know Chinese characters could not have any chance to understand their meaning. Therefore, the newspaper Manse-bo at the time mostly used a method that annotated voice on modern concept words borrowed from the west. It also attempted an experiment in language through columns such as Gungmundokjagurakbu (國文讀者俱樂部), in which Chinese characters were matched to Hangul not through annotation voice, but by matching the meaning of annotation focusing on the words expressing action or description. It should be noted that this language marking experiment was part of a transitional process which resulted, in the end, in a complete Korean style, and not a reconstitution that was influenced by the Japanese way of reading Chinese classics. The phonetic and descriptive (or analytic) tradition established from the Joseon period had made an impact. In addition, the way of writing adopted in the newspaper Manse-bo brings to mind the relationship between Chinese characters and Korean letters that was brought up by the driving forces of Dongnipsinmun (『독립신문』) in the previous period. At the time, Seo Jae-pil (徐載弼, 1864-1951) and Ju Si-gyeong (周時經, 1876-1914) had expressed their opinions about the matter of transliterating from Chinese. The major focus of this discussion was how far it would be possible to transliterate from Chinese letters. Seo Jae-pil and Ju Si-gyeong both considered how deeply the concept of transliterated Chinese was imbedded within the everyday language of the people. In conjunction with this, they emphasized the need for enlightenment of modern western ideas. The attached Korean transcription style introduced by Manse-bo contributed to provoking, once again, attention on the discourse on the Korean language and the matter of enlightenment, which had been brought forth in this period. Furthermore, it recalled the conditions that eventually resulted in the establishment of the complete Korean style, since the tradition of reading the meaning of Chinese characters had not existed in Korea.

논문정보
  • - 주제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 - 간행물 : 인문논총, 73권 1호
  • - 발행년도 : 2016
  • - 페이지 : pp.135-164 ( 총 30 페이지 )
  • - UCI(KEPA) : I410-ECN-0102-2016-000-000778439
저널정보
  • - 주제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3021
  • - 수록범위 : 1976–2019
  • - 수록 논문수 : 8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