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초기 진문화(秦文化)의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특히 전국진 (戰國秦)의 국가형성과 군현제(郡縣制)의 전개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전 국진에서의 상앙변법(商?變法) 실시는 진의 군현제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는데, 그 전개를 보여주는 자료가 (1) 사천성 청수현 진묘(四川省 靑 川縣 秦墓)에서 출토된 목독(木牘)과 (2) 감숙성 천수방마탄 진묘(甘? 省 天水放馬灘 秦墓) 출토 목판지도이다. (1) 청수현 진묘(靑川縣 秦墓) 의 목독은 무왕(武王)시대에 내사(內史)-현제(縣制)가 성립했는지는 명 확하게 알 수 없지만, 중앙에서 작성한 명령을 서방의 현(縣)에 전달하여 규정을 실시하였던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군현제의 전개와 관련이 있다. (2) 천수방마탄 진묘(天水放馬灘 秦墓)의 목판지도는 전국말에서 진왕 정(秦王政) 8년(기원전 239년)이라는 설이 있고 지도의 범위는 서한수 (西漢水) 유역 혹은 화묘하(花廟河) 유역이라는 설로 나뉘고 있다. 이것 은 당시 주요 교통노선이었던 서한수 유역과 교통지선으로서 화묘하 유 역을 반영하고 있다. 전국말에서는 이러한 교통노선과 관소(關所), 식생 (植生)을 지도로 만들어, 영역 내를 통치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전국말의 통치방식이 동방의 점령지에서도 적용되었을 것이고, 그것을 보여주는 자료가 호남성 용산현 이야진(湖南省 龍山縣 里耶鎭)에서 출토된 이야진간(里耶秦簡)이다. 전국말에서 진제국(秦帝國)까지의 역사는 『사기(史記)』 「진본기(秦本紀)」,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외에 이러한 출토자료와 현지조사에 의해서 더욱 깊이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