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스트로스는 프랑스대혁명이 일종의 `신화`로 작동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혁명이 단순히 과거에 발생한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 프랑스 사회의 미래 전망을 둘러싸고 정치사회적 구조를 해석하는 하나의 틀로 작동하는 한에 있어서는 `신화`라는 것이다 (「신화의 구조」(1955)). 사실 대혁명은 19세기 내내 그리고 이후에도 프랑스 정치에 있어 지고의 준거점이었다. 그것은 급변하는 19세기 프랑스 정치 체제를 반영하는 거울이었을 뿐 아니라, 각자의 정치적 신념과 비전이 근거하는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좌표였다. 플로베르가 대혁명에 대해 본격적으로 의견을 표명한 것은 『감정교육』 3부를 쓰기 시작한 1868년부터 보불전쟁이 발발하고 그 후속 국면이 전개된 1870-1871년 사이에 집중되어 있다. 그의 서한집에서 대혁명에 할애된 페이지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혁명에 대한 플로베르의 관점은 당대의 정치·사회적 사건에 대한 그의 입장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며, 더 나아가 자기 시대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비판가였던 플로베르 역시 19세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본 연구는 우선 1866년을 기점으로 대혁명에 대한 플로베르의 관점이 변화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그는 왜 대혁명을 미래에 대한 약속으로 간주하길 그치고 과거의 화석으로 생각하게 되었는가 ? 이어 연구는 보불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그의 편지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프랑스 대혁명의 종말`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표현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또한 파리코뮌에 대한 그의 단언들로부터 자신을 `뼛속들이 혁명주의자`라 간주했던 플로베르가 기실 `지금, 여기서` 진행되고 있는 혁명에 대해서 느꼈던 불편함에 대해 살펴본다. 더불어, 보불전쟁 시기에 그가 주장한 `망다렝 정부`에 대한 언술을 통해 정치와 과학에 대한 그의 생각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연구는 1870년대 공화정이 확립되는 과정에서 플로베르가 가졌던 대혁명과 공화정에 대한 입장을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