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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언어문화학회(구 한양어문학회) > 한국언어문화 > 62권 0호

오조건(吳兆騫)과 영고탑(寧古塔), 그리고 조선

Zhaoqian Wu, Ningguta and Joseon.

이승수 ( Lee Seang Su )

- 발행기관 : 한국언어문화학회(구 한양어문학회)

- 발행년도 : 2017

- 간행물 : 한국언어문화, 62권 0호

- 페이지 : pp.87-118 ( 총 32 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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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제목
초록(한국어)
중국 黑龍江省 牧丹江市 일대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의 중요한 지리공간이다. 하지만 발해의 멸망 이후 오랫동안 이 지역은 역사의 기록에 오르지 않았다. 이후 이 일대는 청나라 초기 유배객들이 영고탑에 유배되면서 역사적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하였다. 본고는 1659년부터 22년 동안 영고탑에서 유배 객으로 생활했던 吳兆騫의 문집과 관련 기록을 통해, 당시 이 지역의 여러 지리적 정황을 고찰한 것이다. 논의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오조건은 전형적인 蘇州 문사로 집안과 재주가 뛰어나 젊어서부터 교만하다는 평을 받았다. 둘째, 오조건은 1657년 科場案에 연루되어 1년 여 북경에서 구금 생활을 했으며, 1658년 영고탑에 유배되었다. 유배 노정 중 北京-瀋陽 구간은 조선후기 연행로와 일치하며, 瀋陽-寧古塔 구간은 아직 역로가 개설되기 전이었다. 셋째, 당시 영고탑은 최악의 유배지였는데, 청나라 정세가 점차 안정되는 1676년경부터는 점차 도회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넷째, 오조건은 지금의 遼寧省 이북 일대를 조선의 옛 지역으로 간주했고, 발해 상경성 터를 찾아 그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남겼으며, 당시 조선과의 인적 물적 교류 상황을 시문 속에 그려놓았다. 우리는 이를 통해 당 시 조선과 영고탑의 교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다섯째, 오조건의 귀환에는 그가 지은 <長白山賦> 및 顧貞觀과의 우정이 계기가 되었다. 전자는 당시 長白山과 松花江을 성역화려는 청조의 崇祖 의식과 맞물려 있다.
초록(외국어)
The area around Mudanjiang city in Heilongjiang province, China has been the important geological space in the history of Korea from the ancient times up to now. However, since the collapse of Balhae, the area was not mentioned in the historical records. Since then, the area started to be reviewed in its historic significance as the exiles were sent to Ningguta in early Qing period. This paper investigated a variety of geographical situations in this area at that time through the collection of works of Zhaoqian Wu who lived there as the exile for 22 years from 1659 and relevant records. The analysis results are summarized below. First, Zhaoqian Wu was the literary man of Suzhou. He received the comments that he was arrogant from his earliest years because of his renowned family and talents. Zhaoqian Wu was confined in Beijing for about 1 year as being involved in the scandal of the Jiangnan provincial examination in 1657 and exiled to Ningguta in 1658. The section between Beijing and Shenyang in his route of exile was the same as the route of diplomatic envoy in late Joseon period and the section between Shenyang and Ningguta was not opened at that time. Third, Ningguta was the worst place for exiles at that time, but was gradually changed to a downtown from about 1676 when the circumstances of Qing dynasty became stabilized. Next, Zhaoqing Wu considered the present northern area of Liaoning as the region of Joseon and found and recorded the details on the site of Shangjingcheng of Balhae. He described the human and material exchanges with Joseon at that time in his literary works. We can understand the exchange activity between Joseon and Ningguta at that time with the records Zhaoqing Wu left. Lastly, Zhaoqing Wu could go back home by friendship with Zhenguan Gu and his works “Changbaishan Prose-Poetry”. His works “Changbaishan Prose-Poetry” was connected to the ancestral spirit of Qing dynasty aiming to make Changbaishan and Songhua river as the sanctuary.

논문정보
  • - 주제 : 어문학분야 > 언어학
  • - 발행기관 : 한국언어문화학회(구 한양어문학회)
  • - 간행물 : 한국언어문화, 62권 0호
  • - 발행년도 : 2017
  • - 페이지 : pp.87-118 ( 총 32 페이지 )
  • - ECN : I410-ECN-0102-2018-700-000369593
  • - UCI : I410-ECN-0102-2018-700-000369593
저널정보
  • - 주제 : 어문학분야 > 언어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1576
  • - 수록범위 : 1974–2018
  • - 수록 논문수 : 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