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말선초의 사대부인 이규보, 성간, 성현은 권태를 주제로 삼아 상호텍스트적 대화를 나누면서 권태를 그려내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였다. 이들은 세세한 일상의 국면에서 지긋지긋한 권태를 경험하였으며, 그 심각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권태를 부끄럽게 여기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긍심조차 갖고 있었다. 현대인의 권태를 성찰하는 데 <용풍>, <용부전>, <조용>이 어떤 시사점이 있는지를 중심으로 각 작품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용풍>은 우리에게 권태는 마음으로 만들어낸 것임을 가르쳐준다. 기욕에 휘둘려 주색의 향연장으로 서둘러 가려는 주인은 권태롭지 않았다. 그러나 특정한 대상에 미혹될 때 잠시 권태를 잊을 수 있을지라도 그것이 몸과 심성을 상하게 한다면 경계해야 할 것이다. <용부전>에서는 권태로운 용부의 모습을 `나무로 깎아 놓은 허수아비(木偶人)`로 비유하였다. 자신이 누군가의 조종을 받아 움직이는 목각 인형처럼 여겨질 때, 즉 나의 열정과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때 우리는 권태를 절감하며, 자조(自嘲)하듯 자기를 게으름뱅이[?夫]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권태로워하는 우리 내면에는 지배적인 삶의 방식과 가치를 강요하는 이에게 지인(至人)처럼 창을 겨누고 싶은 열망이 숨어 있다. <조용>은 귀신의 말을 통해 권태가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일러주고 있다. 게으름 귀신은 `근로(勤勞)는 화패(禍敗)의 장본이요, 태일(怠逸)은 복을 받는 근원`이라 주장하며, 게으름으로 덕분에 오히려 수를 다하며 정신을 기를 수 있다 했다. 그런데 게으름 귀신이 하는 말은 근로와 태일, 세속과 탈속 등 의미론적 대립을 이룬다. 이런 방식으로 권태는 문명적 가치를 그 반대편에서 성찰하는 입지가 될 수 있다.
The `ennui` is an emotional state experienced when an individual is not interested in their surroundings or available activities. Ennui is a general problem of life, and we can get some advice from texts which are reflecting on the ennui. In this article, I analyzed three writings about the ennui; < Yong-puong > by Lee kyu-bo, < Yong-Bu-Geon > by Seong Gan, < Cho-Yong > by Seong hyen. < Yong-puong > teaches us that the ennui is made by one`s mind. Sometimes, we forget the ennui when we seduced by something. But, some kinds of seduction are harmful to our body and soul. < Yong-Bu-Geon > likened the lazybone to a wooden doll. As a string puppets controlled by others, someone could realize the ennui when he has nothing to do by own enthusiasm and willing. < Cho-Yong > tells us through the ghost that the ennui has values for keeping oneself in this busy and crowded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