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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한문고전학회(구 성신한문학회) > 한문고전연구 > 34권 0호

조선 후기 명(明) 유민(遺民)에 대한 기록 양상 ― 구의사(九義士)를 중심으로 ―

Aspects of record on displaced people in the Ming dynasty in the late Joseon Dynasty - Focused on the works of `Guuisa(九義士)`

사경화 ( Sa Kyung-hwa )

- 발행기관 : 한국한문고전학회(구 성신한문학회)

- 발행년도 : 2017

- 간행물 : 한문고전연구, 34권 0호

- 페이지 : pp.231-263 ( 총 33 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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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제목
초록(한국어)
병자호란이 끝난 후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간 봉림대군은 역시 청나라의 포로로 끌려온 9명의 명나라 선비들과 심양에서 만나게 된다. 그는 이들 선비들이 품은 反淸復明 의지에 깊이 공감하고 이후 함께 조선으로 들어온다. 이 9명의 명나라 선비들을 `九義士`라고 부른다. 九義士들은 봉림대군의 보살핌 아래 조선에 정착하였고 봉림대군이 즉위한 후에도 지속적인 교류를 하면서 북벌을 준비한다. 하지만 즉위 10년 만에 효종이 승하하면서 북벌론은 그 결실을 맺지 못하고 실체를 상실하게 된다. 이로 인해 九義士의 존재 또한 묻히게 된다. 한편, 숙종, 영조, 정조대를 거치며 北伐論의 자리를 尊周論이 대신하게 되는 과정 속에서 명나라 역사와 인물들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게 된다. 명나라의 역사서를 조선의 손으로 편찬하는가 하면, 명나라 인물들에 대한 다양한 기록 작업들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九義士의 존재가 다시금 주목받게 되었고, 여러 문인들의 손에 의해 작품으로 탄생한다. 가장 먼저 李德懋의 「磊磊落落書」에서 이들의 존재가 다시 세상에 드러난 다. 그리고 연이어 成海應의 「皇明遺民傳」, 「八姓傳」, 국가차원에서 편찬된 『尊周彙編』에서도 九義士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이들 기록들은 조선이 중화문명을 계승했음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들로서 九義士들에 대한 내용 또한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九義士의 후손인 王德九는 『皇朝遺民錄』을 통해 조상에 대한 구체적 기록을 남겨 이를 통해 조선사회에서 九義士가 가지는 의미를 밝히고 하였다. 그리고 화서학파의 대표적 학자인 金平默은 위정척사의 입장에서 이들에 대한 傳을 지어 대명의리론을 강조하고 九義士들의 삶을 통해 당시 흔들리던 조선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자 하였다.
초록(외국어)
After Byeongja Horan(丙子胡亂) ended, Bonglimdaegun(鳳林大君), who was taken hostage to the Qing Dynasty, was staying in Shenyang(瀋陽). And he meets with the nine Ming Dynasty scholars who were brought here as prisoners of the Qing Dynasty. All of them had a mind of "BanCheongBogMyeong(反淸復明)" and then came to Korea with Bonglimdaegun(鳳林大君) to realize their goal. These are called "Guuisa(九義士)". The Guuisa(九義士) were prepared for the Bugbeol(北伐) in earnest when Bonglimdaegun(鳳林大君) came to the throne. However, Bugbeol fails because Hyojong(孝宗) dies in the throne after 10 years. And the presence of Guuisa also becomes blurred. The presence of the Guuisa was again revealed in conjunction with the strengthening of the Jonjulon(尊周論), and various records of these began to emerge during the Jeongjo(正祖) period. At first, "NoeLoeNagLagSeo(「磊磊落落書」)" compiled by Lee Duk-moo(李德懋); "HwangMyeongYuMinJeon(「皇明遺民傳」)" and "PalSungJeon(「八姓傳」)" compiled by Sung Hae-eung(成海應); "Jonjuhwipyeon(『尊周彙編』)" compiled in the country showed that Chosun inherited the Ming by recording the loyal servants and saints of Ming Dynasty. Next, Wang deog-gu(王德九), a descendant of Guuisa, wrote < HwangJoYuMinLog(皇朝遺民錄) >. He recorded the activities of his ancestors in detail and revealed that the purpose of Guuisa`s entry into Joseon was "BanCheongBogMyeong". And that the existence of Guuisa itself shows that Joseon inherited the Ming Dynasty. Finally, Kim Pyung-mook(金平默) described < GuUiSaJeon(九義士傳) > from the standpoint of Wijeongcheogsa(衛正斥邪). He strengthened the Daemyeonguililon(對明義理論) and hoped that Guuisa`s life would become a lesson in the chaotic Joseon society at the time. Through these records, we were able to look at the ideological backgrounds of 18th - 19th century intellectuals of Joseon and various artists` rituals. In addition, the fact that interest in Ming Dynasty people was born as a literary work contributed to diversification and enrichment of the character records in the late Joseon Dynasty.

논문정보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발행기관 : 한국한문고전학회(구 성신한문학회)
  • - 간행물 : 한문고전연구, 34권 0호
  • - 발행년도 : 2017
  • - 페이지 : pp.231-263 ( 총 33 페이지 )
  • - UCI(KEPA) : I410-ECN-0102-2018-800-000582571
저널정보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975-521x
  • - 수록범위 : 1988–2019
  • - 수록 논문수 : 4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