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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팔양의 만주체험과 작가의식 변화

Manchuria Experience of Park Pal-yang and Change of His Writer Consciousness

조현서 ( Cho Hyeon-seo )

- 발행기관 : 국제어문학회 ( 구 국제어문학연구회 )

- 발행년도 : 2017

- 간행물 : 국제어문, 75권 0호

- 페이지 : pp.235-258 ( 총 24 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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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여수 박팔양이 만주에서 활동하던 시기, 그의 의식변화를 분석하였다. 박팔양은 그동안 월북문인이라는 굴레에 갇혀, 그의 문학적 성과와 관계없이 온전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더구나 박팔양이 일제치하의 만주에서 활동한 것 때문에 그의 명망은 더욱 평가 절하되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작가는 일제의 어용지인 『만선일보』의 편집자로 활동하고 『만주시인집』이라는 조선어 시인집을 발간하는 등 당시 만주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그를 쉽게 친일 이력을 가진 월북작가로 규정하고는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작품을 면밀히 검토해보면, 표면에 나타나는 일제 친화적인 양상은 검열의 망을 피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박팔양은 절필의 의지를 보이며 저항하고자 하였고, 필요에 의해 글을 써야 할 때는 일제가 ‘오족협화’라는 환상으로 그렸던 만주를 허상이 가득한 공간으로 표현하였다. 또한 만주에서 활동한 이력들도 그의 이러한 우회적 저항의지를 잘 드러내준다. 박팔양은 만주에서 『만선일보』의 편집자로 활동하였는데, 이 신문은 비록 일제의 어용지였으나 당대 유일하게 조선어의 사용이 허용되었던 문학장이었다. 많은 문인들이 자국어를 사용한 작품을 신문의 ‘문예란’을 통해 게재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민족문학을 유지·계승하였다는 측면도 있다. 『만선일보』가 표면적으로는 국책적 견지의 지도기관이었으나 실린 내용을 살펴보면 재만조선인의 민족지 구실을 하기도 한 것이다. 한편 재만 일본인 작가들과의 좌담회에서 그들이 조선인 작가들에게 작품을 일본어로 창작할 것을 종용하였으나 박팔양은 이들의 논리가 타당하지 못한 것을 지적하고 있다. 오히려 자신이 조선의 문인이라는 정체성 및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결국 박팔양은 일제가 만주를 자신들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해 ‘독립국’으로 설정해놓은 것을 활용해 우회적으로 저항을 펼쳤다. 그렇지만 이런 여러 근거들에도 불구하고 그를 둘러싼 정치적·이념적 프레임으로 인해 박팔양은 그의 문학적 성과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온전하지 못했던 문학사 정립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지금, 박팔양 문학은 그 매음새 역할을 하기에 적합하다. 게다가 저항과 협력이라는 대립적 논리로만 설명하던 만주시기를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준다.
This thesis has analyzed the change of Park Pal-yang at the time of his activities in Manchuria. Park Pal-yang has been entrapped into the frame of writer defected to North Korea that he has never been assessed fully and completely regardless of his literature accomplishment. Furthermore, it is true that the reputation of Park Pal-yang has been undervalued even more because of his activities in Manchuria under the Japanese Imperial Ruling. The writer was active as the editor-in chief of the pro-government newspaper during the Japanese ruling, 『Manseon llbo』, and published the collection of poems written in Joseon language in 『Manchuria Poetry Collection』 as indicating his activities as an intellectual that represented Manchuria of the time. Due to the foregoing reason, he has been easily considered as the writer defected to North Korea with pro-Japan history. However, when closely reviewing the works of the writer, the pro-=Japan tendency shown on the surface was a way of avoiding the censorship. Rather, Park Pal-yang demonstrated his willingness for giving up writing as a way of resistance, and when he had to write for necessity, he expressed Manchuria that was drawn to be the utopia by the Imperial Japan as the space full of fallacies. In addition, his records of activities in Manchuria demonstrate well of his indirect resistance willingness well. Park Pal-yangwas the editor-in chief of 『Manseon Ilbo』 in Manchuria and this newspaper was under the jurisdiction of the Imperial Japan, but it was the media permitted to use the Joseon language as the only one at the time. Many Arthurs were able to present their works by using the native language through ‘art and literature column’ of the newspaper and it has the aspect of maintaining and succeeding the national literature because of through such effort. Superficially, 『Manseon Ilbo』 was a national agency but, looking into the contents on it, it also had the role to showing the nationalistic consciousness of Joseon people. In the meantime, in the roundtable meeting with the Japanese writers residing in Manchuria, they coerced those Joseon writers to write the works in Japanese language, but Park Pal-yang pointed out that their logic was not reasonable. The writer maintained the identity of the Joseon literary sector while committed to demonstrate that maintaining horizontal and equal relationship with the Japanese writers would be desirable exchange style. He displayed in open that he has the identity and sense of pride as one of the Joseon writers. Consequently, Park Pal-yang facilitated that the imperial Japan set Manchuria as an ‘independent state’ to publicize their own justification to resist in indirect ways. However, notwithstanding such facts, Park Pal-yang has not been acknowledged even for his literary accomplishment due to the political and ideological frame surrounding him. At a time when there are active discussions on establishing the literary history yet to be complete due to the ideologies of South and North, the Park Pal-yang literature would be appropriate to undertake the role of the knot. Furthermore, it renders a possibility to have more flexible view on writers and their works under the Manchuria period that has been perceived only with the logic of both extreme ends in resistance and cooperation.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발행기관 : 국제어문학회 ( 구 국제어문학연구회 )
  • - 간행물 : 국제어문, 75권 0호
  • - 발행년도 : 2017
  • - 페이지 : pp.235-258 ( 총 24 페이지 )
  • - UCI(KEPA) : I410-ECN-0102-2018-800-003755787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5-1216
  • - 수록범위 : 1979–2020
  • - 수록 논문수 : 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