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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아동문화의 태동기 일본인 활동에 관한 연구 - 쇼쿄쿠사이 덴카쓰 이치자의 조선 아동연극공연을 중심으로 -
朝鮮兒童文化の胎動期における日本人の活動に對する硏究 ―松旭齋天勝一座による朝鮮お伽芝居公演を中心に一
김성연
UCI I410-ECN-0102-2018-800-003755898

한국에서 최초로 한글로 활자화 된 아동극의 대본은 『어린이』 창간호(1923년 3월20일)에 소개된 「동화국 노래주머니」이다. 한국의 아동문학, 아동문화의 본격적인 출발은 천도교 소년회를 주도하던 방정환이 중심이 되어 1923년에 설립된 색동회의 활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어린이』가 창간되기 무려 10여 년 전부터 경성일보사가 주최한 구연동화회가 빈번하게 열리고 있었으며, 일본에서 이와야 사자나미(巖谷小波)나 구루시마 다케히코(久留島武?)와 같은 아동문학가들이 초빙되어 조선 각지를 순회하며 구연동화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또한 1916년부터 경성일보에는 어린이를 위한 칼럼이 만들어져서 동화가 연재되었다. 한국 아동문학, 아동문화의 성립 배경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일본인들의 활동에 관한 연구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에서 행해진 일본인들에 의한 아동문학이나 아동문화에 관한 선행연구는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오타케 기요미(大竹聖美, 2002)에 의해 몇몇 아동문학가들의 조선 방문이 소개된 후, 김성연(金成?, 2008)에 의해 일본인들의 조선 구연동화 활동 연표가 작성되는 등 구연동화 활동의 전체적인 흐름은 밝혀 졌지만, 구연동화 이외의 아동문화 활동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찾아 불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구연동화에 초점을 맞춰서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행해진 일본인 문학가들의 활동에 대해 연구해 왔지만, 최근 경성일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일본 최초의 여자맘술사인 쇼쿄쿠사이 덴카쓰(松旭?天勝)가 경성에서 아동연극공연을 한 자료를 발견하였다. 1901년부터 5년간 미국 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일본에 돌아와 최초로 미국식마술 쇼를 상연하여 큰 인기를 끈 덴카쓰는 메이지 시대의 국민적인 마돈나였다. 1915년 9월부터 51일간 경복궁에서는 일본의 조선 통치 5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조선 물산 공진회가 개최되었는데 같은 기간 경성일보사는 가정박람회를 열어 관객몰이에 주력했다. 덴카쓰의 공연도, 가정박람회에 보다 많은 관람객을 유치하기 위해 경성일보사가 기획한 것이었다. 연일 무대 공연뿐만 아니라 유니크한 이벤트에 덴카쓰를 등장시켜 끊임없이 화제몰이를 하였다. 10월 10일부터 19일까지 예정됐던 덴카쓰의 공연은 매일 관객들로 가득 찼고 인기에 힘업어 매번 연장되더니 결국 11월 6일까지 공연을 했다. 순종의 만찬회에도 불려가 공연을 하고 많은 하사품을 받기까지 했다. 명실상부 당대 최고의 마술사 덴카쓰가 경성에서의 마지막 공연에 올린 작품이 이와야 사자나미 원작의 아동연극이었다. 본고에서는 구연동화와 아동연극으로 대표되는 근대 일본 아동문화의 흐름을 살펴보고 그 속에서 만나지는 덴카쓰의 조선 공연의 전체 내용을 소개하는 동시에 이 자료를 앞으로의 연구의 초석으로 삼고자 한다.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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