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에서의 성문법전 제정의 필요성은 지역적 시간적 특성을 담고 누적되어 온 관습법적 불합리를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공통의 합리적 원리에 의해 해소시킴으로써 사회적 통합을 유도하려는 의도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 왕조의 법 제도는 필요한 만큼 원칙을 지키면서 필요한 만큼 현실을 수용하는 균형 잡힌 입법 태도를 견지하려 노력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조선조 초에 완성된 경국대전의 조항은 개정되지 않은 채 수백 년을 유효한 규정으로 기능 해 왔다. 그럼에도 한편에서는 구체적 사례에 내재된 정당성의 지표를 확인하려는 규범 태도를 견지해 온 것은 시대적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탄력적인 법 운용을 동시에 추구해 왔다는 특징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공간 구조와 시간적 영역은 분리해서 사고할 수 없는 동일한 사태의 양면이라는 것은 법적 사고의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조선 왕조의 법 제도는 인간을 결코 고립된 개별적 단독자로 설정하고 있지 않으며, 심지어 조상과 후손에까지 이어져 가는 시간적 연속선상에서의 존재로 이해하고 있다. 조선조 법 제도는 한 인간을 개별적 단독자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혈연에서 혈연으로 이어지는 무한한 시간적 영원성을 타고 흘러가는 매개적 주체로, 그것도 그러한 주체들 간의 복잡하고 무수한 새로운 배열을 창출하는 공간 구조상의 동태적인 존재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공동의 존재 구조 속에서 허용 가능한 자유 역량의 한계를 설정해주는 일이 법 제도가 할 일인 것이다. 조선 왕조의 입법 원칙과 판결 원칙을 살펴보면, 우리 선조들은 이러한 총체적 고찰에 있어서 혜안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균형점을 찾아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포기할 수만도 없는 우리의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