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제국주의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또 설령 제국주의로 전락하지 않더라도 국가의 배타적 이익 추구를 전제로 하는 서구 근대 국민국가의 모순과 한계를 지적하고 그 대안적 국가상을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1792~1868)의 국가 사상에서 발견하고자 한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항로는 서구 문화의 유입에 따른 충격과 내부적 모순이 극대화된 19세기, 주자학의 재확립을 통해 사회 질서의 재구축을 도모하였던 위정척사파의 중심 인물이다. ‘근대’가 사상사 연구의 한 기축을 이루면서 한때 봉건 질서의 옹호자로 배척받기도 했던 그의 사상은, 60년대부터 자주적 민족주의가 강조되면서, 이후 그의 제자들에 의해 주도된 의병항쟁과 더불어 자주적 민족주의의 선구로 재평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분명 전통적 질서의 옹호자였지만 당시의 부패한 조선을 옹호한 것은 아니었으며, 서구 세력에 대항하며 그들의 전통을 수호하고자 하였지만 우리가 말하는 민족주의자는 아니었다. 실제로 그들의 ‘국가’는 근대 국민국가 개념으로는 정의될 수 없는 그들만의 ‘국가’였던 것이다. 그에 대한 이처럼 상반된 평가는 그 평가의 기준이 ‘근대’와 ‘민족주의’라고 하는, 일견 상이한 것 같으면서도 ‘근대’라고 하는 동일한 뿌리에서 파생된 오늘날의 우리의 잣대로 그들을 보고자 한 것에 기인할 것이다.
따라서 본고는 근대 국민국가와는 정면으로 대치되는, 또 근대 국민국가의 틀 안에서는 설명될 수 없는 이항로의 국가 사상을 통해 유가적 국가 사상의 의의를 재조명하는 한편, 그의 국가 사상을 기초로 탈근대적 국가상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먼저 유가적 국가 사상의 근간이 되는 『대학』과 『춘추』를 중심으로 이항로의 전체적인 국가 사상을 개괄적으로 소묘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19세기 조선이라고 하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서양에 대한 대항적 언설로 구성된 그의 국가 사상의 특징과 의의를 규명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