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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논문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와 관련된 논문을 추천해 드립니다.


1.

최혜린 ( Choi Hyerin )

이 글은 통사가 갖는 근대 프로젝트적, 계몽적 성격에 주목하여 각 시대 주요 통사들에 나타난 전근대 피지배층 저항 관련 서술을 개항기, 일제시기, 해방~6·25전쟁기, 1950~60년대, 1970~80년대의 5개 시기로 나누어 고찰했다. 이를 위해 현채의 『동국사략』(1906), 황의돈의 『신편 조선역사』(1923), 백남운의 『조선사회경제사』(1933), 『조선봉건사회경제사』(1937), 이청원의 『조선역사독본』(1937), 이병도의 『조선사대관』(1948), 전석담의 『조선사교정』(1948), 손진태의 『국사대요』(1949), 이기백의 『국사신론』(1961), 이기백의 『한국사신론』(1967, 1976), 한국민중사연구회의 『한국민중사』(1986)를 검토했다. 일제시기는 통사에서 전근대 피지배층 저항에 최초로 적극적 의미 부여가 이루어진 시기였다. 이 시기, 근대 국가 모색 과정에서 나타난 자유주의적 서술과 사회주의적 서술은 해방 이후 출간된 통사들에서도 계승되고 변용되며 피지배층 저항 서술의 주요한 양대 서술 경향으로 자리 잡았다. 6·25 전쟁 이후 공고화된 남북 역사학계의 분단으로 사회경제사학이 남한에서 자취를 감추며 피지배층 저항에 대한 공식적인 사회주의적 서술 또한 사라졌으나, 식민사관 극복으로 대표되는 민족주의적 문제의식 속에 사회경제사학의 요소들이 일정 부분 변용되어 영향력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분단 극복을 위한 ‘민중’ 중심 역사를 표방한 『한국민중사』에서 사회주의적 서술은 ‘민중’ 중심 역사 서술을 위해 재등장했으며, 이 과정에서 『한국민중사』의 피지배층 저항 서술은 한국사학사상 최대의 근대적 의미를 부여받았다.
2.

허수 ( Hur Soo )

이 글에서는 계량적이고 거시적 접근을 통하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역사인식을 살펴보았다. 역사인식을 나타내는 용어 16개를 선정하여 이 용어들의 빈도 양상과 이 용어가 중심이 된 연결망의 구조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전근대사 서술과 근현대사 서술 사이에는 사용되는 용어의 종류와 빈도의 분포 등에서 주목할 만한 차이가 있었다. 또한 연결망 구조를 볼 때 제5차와 제6차 교육과정에 해당하는 제3기에 이르러 ‘민족’, ‘독립’, ‘운동’, ‘전개’를 핵심으로 하는 연결망이 근대사회 운동의 맥락에서 ‘사회’ 및 ‘농민’과 접속하였다. 이렇게 형성된 연결 관계를 ‘내재적 발전’에 근거를 둔 역사인식의 핵심 구조로 판단 했다. 결국, 교과서에서 내재적 발전론의 역사인식은 제3차 교육과정에서 등장하여 제5차 교육과정에서 확고하게 정착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3.

박만규 ( Park Man-kyu )

1947년에 이광수가 쓴 『도산 안창호』는 해방 후 최초의 안창호 전기로서 안창호와 그의 사상에 대한 인식의 틀을 우리 사회에 최초로 제시한 책이었다. 발간된 지 이미 70년이 넘었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판을 거듭해 계속 보급되면서 안창호를 이해하는 데는 거의 원전이라 할 정도의 비중을 가지고 있다. 그 책이 갖고 있는 큰 영향력에 비추어 볼 때 지금이라도 본격적인 내용 검토가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서는 『도산 안창호』에 나타난 이광수의 안창호에 관한 인식의 문제점을 크게 세 가지로 보았다. 첫째는, 이광수가 독립운동 지도자 안창호의 폭넓은 활동을 도덕적 인격수양으로 한정한 점이다. 그 이유는 이광수 자신이 일제에게 투항한 다음 국내에서 전개한 비정치적인 수양운동을 합리화하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둘째는, 일제 식민지 시기 독립운동의 최고 지도자였던 안창호의 독립운동이 정작 『도산 안창호』를 통해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안창호가 한말의 신민회운동에서 강조했던 민주공화국가 건설이나 독립전쟁의 준비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다. 또 안창호가 3.1운동 후 임시정부를 이끌면서 제시했던 독립운동 구상에 대해서도 제대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 대신 임시정부가 심한 파벌싸움 끝에 약화되어 전혀 독립의 전망을 주지 못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을 뿐이다. 이 역시 그 자신이 임정을 배반하고 국내로 탈출한 사실 때문으로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문제되는 것은 1920년대 후반의 혁명적 독립운동이 완전히 누락되어 있는 사실이다. 대신 그는 안창호와 흥사단과 스스로를 일체화시킴으로써, 안창호를 대다수의 국내 대중들에게 자신과 같은 민족개량주의자 또는 자치운동자로 잘못 각인시켰다. 독립운동가 안창호에게는 너무도 치명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셋째는, 이광수는 안창호가 마치 한국 민족과 역사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것처럼 묘사하였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단지 이광수 자신이 갖고 있는 잘못된 민족관과 역사관일 뿐이었다. 안창호는 실제로는 우리 민족의 자질에 대해 기본적으로 신뢰하고 있었으며 우리 역사에 대해서도 비록 지금은 일시적으로 고난을 겪고 있다 하더라도 미래에 대해서까지 비관하지는 않았다. 어떤 인물에 대한 기록이건 상당한 정도로 작자의 주관이 개입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도산 안창호』의 경우는 그것이 너무 심한 사례로 생각된다. 안창호의 활동 전체에 비추어 보면 매우 중요한데도 누락된 부분이 많은 것은 저술 당시의 여건이 어려웠기 때문으로 이해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기술되어 있는 부분마저도 과장과 축소가 많고 왜곡이 심해서 어디까지가 안창호의 실상이고 어느 부분이 작자인 이광수 자신의 생각에 따라 만들어낸 허상인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읽는 이들의 한국근대 역사에 관한 폭넓은 배경 지식과 세밀한 주의가 요구되는 이유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도산 안창호』를 통해서는 안창호와 그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광수가 자신의 틀 내에서 이해하고 자신의 처지와 의도에 따라 만들어 낸 안창호를 보게 되는 위험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창호의 본 모습은 한국독립운동의 최고 지도자로서 사상과 운동의 양면에서 우리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데 있다. 하지만 이광수가 쓴 『도산 안창호』는 이런 그의 전모를 전해주기에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시대정신에 충실했던 독립운동가 안창호를 온전히 그리기에는 대표적 친일파로 지탄받는 이광수 자신의 생각과 삶이 너무 크게 굴절 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4.

조훈성 ( Cho Hun-seong )

우리는 노동극을 통하여 그것이 지향하는 ‘사회 재통합 단계’의 실현을 엿볼 수 있다. 한편 노동극은 시대에 따라 그 연극의 연행에 있어서 창작주체, 작품내용, 상연 장소, 수용 관객의 다양한 유형과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최근에 이르기까지 노동극은 꾸준히 제작되고 상연되어 왔다. 노동극은 무엇보다 당대의 노동현실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데, 이는 한국의 자본주의 경제발전 과정에서의 민주화 과정, 그리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사회체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창작주체나 수용대중, 공간, 그 내용에 이르기까지 주목할 만한 변화가 많다. 극단 걸판의 <그와 그녀의 옷장>이나, 창작집단 날의 <반도체 소녀>, 진동젤리의 <구일만 햄릿>, <법앞에서>. 극단 미인의 <공장>, 극단해인의 <노란봉투> 등은 동시대적인 노동문제를 담아 제작 상연한 작품이다. 특히 이들 작품에서 다루어지는 ‘비정규직 차별’과 노동쟁의에 있어서 ‘손해배상 가압류’ 등의 부각은 노동극 연구에 새로운 접근을 요청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완전 시장화 공세 속에서 현대자본주의는 독점자본과 국가권력이 융합된 국가독점자본주의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노동극 연구는 ‘사회공공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끊임없이 환기시킴으로써,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의 양극화 문제를 공공의 문제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노동극 연구를 통해 그 연극이 갖는 신자유주의 노동시장에서의 자정적 역할과 제어적 기능에 대한 긍정적 역할을 기대해 볼 수 있다.
5.

한성훈 ( Han Sung-hoon )

이 글은 역사 속으로 퇴장하고 있는 이산 1세대 월남민의 정체성을 분석한 글이다. 생애사의 관점에서 비교적 소상한 행적을 알 수 있는 네 사람을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 분단과 근대 이행에서 그들의 활동이 법치주의와 산업화, 민주주의 사회운동, 그리고 통일운동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출신 배경과 학업, 활동 무대, 삶의 지향이 다르지만 ‘지식인’의 범주로 묶을 수 있다. 개별성으로 볼 때 이런 설정에 편차는 존재한다. 그들은 월남민 전체를 대표하지 않으며 정체성 또한 자아의 형성과정에 초점을 두고 있다. 사람의 행위를 설명할 때 그들의 행동이 어떤 준거에 의해 이루어졌는지, 이 준거에서 그들은 자신과 주변의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재구성했는지가 중요하다. 구술자료와 자서전, 회고록, 언론 인터뷰를 중심으로 하는 에고도큐먼트(ego-documents)를 활용해 남북한의 체제 변동과 이산, 개인의 삶에 끼친 영향에 주목해서 그들의 정체성을 구성해본다. 정체성은 일제 강점기의 어린 시절과 이북의 교육, 사회주의 체제 이행, 남한 이주와 정착과정에서 영향을 받는다. 긍정의 방식과 부정의 방식으로 정체성을 강화하는 요인이 되는 것이 이북의 사회주의체제 이행에서 체험한 것과 그 이후의 북한 현실이다. 남한의 정치사회변동과 미국의 존재가 정체성 형성에 끼친 영향도 유사하다. 정체성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생애 시기마다 변하며 여러 사건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형성되는 변형적인 것이다. 인간은 객관적 조건에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주관적 인식과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정체성을 재구성한다.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정체성의 본질은 자기 결정성에 있다. 이것은 구조적 환경에 따른 행위의 결과로서 하나의 총체성을 이루는 지금의 것을 의미한다. 김태청의 법치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이상, 오동선의 경제발전과 공동체 성원으로서 의무, 유태영의 기독교 세계관과 통일운동, 김우종의 사회참여 문학과 휴머니즘은 한국 근대 지식인의 초상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들은 모두 사회와 인간에 대한 신뢰, 애정을 잃지 않았다. 김태청과 오동선은 자신들의 계급 성분 때문에 이북에서 원하는 방식대로 살 수 없었다. 장래에 대한 선택의 여지는 협소했고 꿈을 펼치기에 한계가 뚜렷한 사회에서 그들은 체제에 비판적일 수밖에 없었다. 생애에서 이런 관점은 그들이 이북을 떠나온 이후 줄곧 유사한 인식을 보여준다. 유태영과 김우종의 삶은 보편적이지 않다. 유태영 목사는 기독교 보수주의와 반공주의에서 벗어나 북한을 제대로 알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고 통일운동에 큰 역할을 한다. 그에게 정체성의 전환은 미국에 대한 입장과 신앙에 대한 태도에서 극적으로 이루어진다. 문학평론가 김우종의 일관된 친일 비판과 문학의 사회참여는 정체성을 강화하고 확장시키면서 진행된다. 서정주에 대한 비판과 윤동주에 대한 사랑은 휴머니즘의 실천이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 정체성의 확장을 가져오고 이런 관점에서 휴머니즘은 가장 강력하게 개인의 정체성을 강화시켜준다.
6.

이해진 ( Lee Hae-jin )

이 연구는 사회운동의 미시적 결과에 관한 연구로서 사회운동 참여자들의 참여행동(activism)이 어떻게 변화하고 정치화되는가를 2008년 촛불집회에 참여한 10대 청소년 참여자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2008년 촛불집회 참여자에 대한 현장조사 자료와 동일 응답자를 1년이 지난 후 추적조사한 3차례의 경험적 조사자료를 바탕으로 촛불집회가 10대 참여자에게 미친 결과들을 참여행동의 분화와 변동의 측면에서 분석하였다. 분화의 측면은 참여정도의 차이에 따라 단순참여층, 중간참여층, 적극참여층 3집단으로 구분하여 집단별 특성을 살펴보았고, 변동의 측면은 사회운동의 결과에 대한 이탈, 후퇴, 충성, 저항의 네 가지 대응 유형으로 나누어 검토하였다. 분석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참여집단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참여자들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비교적 동질적인 촛불세대 집단 정체성을 견지하고 있었다. 둘째, 참여집단별 참여행동의 특성이 상이하게 분화되어 나타났다. 사회운동 참여의 결과가 참여층에 따라 동질적이지 않은 것이다. 적극참여층은 촛불집회가 종료된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매우 강도 높은 정치의식과 참여행동성을 보여주었다. 중간참여층은 참여행동의 지속성을 유지하면서 이념적 진보성을 보여주었다. 단순참여층은 일회적 참여에도 불구하고 시민의식과 민주주의를 학습하며 참여행동 성향을 간직하고 있다. 셋째, 사회운동의 불만족스러운 성과에 대한 대응에 따라 참여집단별 서로 다른 정치화 과정이 관찰되었다. 적극참여층은 높은 촛불세대 정체성과 행동성을 지닌 저항의 유형에 해당하며 실천적 행동가로서의 정치화를 보여주었다. 중간참여 층은 이념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계속된 지지를 보내는 충성 유형으로서 정체성의 정치화를 드러냈다. 단순참여층은 충성과 후퇴의 긴장 속에서 시티즌십의 정치화를 지속하고 있었다. 이처럼 사회운동 참여의 결과로서 2008년 촛불집회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참여층에 따라 다양하고 상이한 방식으로 정치화되었다.
7.

이주환 , 이병훈 , 오건호 , 김준영 , 황우찬

8.

허수 ( Hur Soo )

이 글에서는 계량적이고 거시적 접근을 통하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역사인식을 살펴보았다. 역사인식을 나타내는 용어 16개를 선정하여 이 용어들의 빈도 양상과 이 용어가 중심이 된 연결망의 구조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전근대사 서술과 근현대사 서술 사이에는 사용되는 용어의 종류와 빈도의 분포 등에서 주목할 만한 차이가 있었다. 또한 연결망 구조를 볼 때 제5차와 제6차 교육과정에 해당하는 제3기에 이르러 ‘민족’, ‘독립’, ‘운동’, ‘전개’를 핵심으로 하는 연결망이 근대사회 운동의 맥락에서 ‘사회’ 및 ‘농민’과 접속하였다. 이렇게 형성된 연결 관계를 ‘내재적 발전’에 근거를 둔 역사인식의 핵심 구조로 판단 했다. 결국, 교과서에서 내재적 발전론의 역사인식은 제3차 교육과정에서 등장하여 제5차 교육과정에서 확고하게 정착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9.

이병훈 ( Lee Byoung-hoon ) , 김진두 ( Kim Jindu )

노동의 위기와 노동운동의 위기를 맞아 연대운동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작금의 상황에서 희망버스가 돋보이는 연대운동의 성과를 이뤘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 연구에서는 그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핵심조건으로서 연대네트워킹에 초점 맞춰 분석하였다. 희망버스 연대네트워킹의 성공적인 작동조건에 대해 크게 촉발-형성-실행의 3개 측면으로 나눠 살펴본다. 희망버스 연대운동의 촉발조건으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의 부당성과 이에 맞선 김진숙 지도위원의 목숨건 고공농성, 그리고 그 농성장(85호 크레인)의 비극적 상징성 등이 주되게 작용 하였다. 형성 조건으로는 초동주체들의 운동적 신뢰관계와 (희망버스 기획에의) 의기투합, 다양한 사회운동 네트워크의 활용과 확산, 그리고 SNS의 대중적 파급력 등이 이바지하였다. 그리고, 주요 실행조건으로는 기획단의 개방적이며 수평/탈위계적 운영방식과 참가단위의 자발적 연대활동 그리고 참가자들에 대한 연대적 감수성의 체험적 기회 제공 등이 역할하였다. 이같이, 희망버스의 연대네트워킹은 촉발ㆍ형성ㆍ실행의 세가지 조건들이 선순환으로 연계되어 사회운동단위들의 결집과 다중적 동참 그리고 유의미한 운동 성과를 이뤄냈던 것이다.
10.

조성대 ( Cho Sungdai ) , 최상명 ( Choi Sang Myung )

이 글은 86세대의 세대효과와 관련하여 세대효과가 세대단위에 국한된 현상일지 모르며 실제세대는 생애주기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이의 검증을 위해 2017년 5월 대선의 유권자 정치의식조사와 과거 전대협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한 정치의식조사 자료를 활용하여 실제세대와 세대단위를 구분하고 세대효과를 정당, 이념 및 정책, 정치참여 변수들을 통해 경험적으로 분석한다. 분석 결과는 첫째, 86세대의 세대효과는 연령효과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변수의 종류와 성격에 따라 조건적으로 표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17년의 대선의 경우 진보적 쟁점이 활성화된 상태에서 진보정당에 대한 호감도와 정책에 대한 평가에서 86세대의 세대효과는 상대적으로 두드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세대인 86세대의 정치 정체성은 연령에 따른 보수화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둘째, 전대협활동가로 정의된 86세대의 세대단위는 여전히 가장 높은 수준의 정치의식과 진보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었고 세대효과는 실제세대보다는 세대단위에서 유지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