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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핵심 키워드

한국의 여성운동 60년 -분단과 근대성 사이에서-

정현백 ( Hyunback Chung )
한국여성사학회|여성과 역사  4권 0호, 2006 pp. 1-42 (총 42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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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the year 1945, the liberation of Korea from Japanese colonization, the korean women`s movement has developed splendidly. Especially after the second half of 1980`s, under the influence of the second wave of feminist movement in western world, korean women`s movement has experienced great success which has improved the status of korean women and also protected the human rights more actively. Until now most academic work in korea has concentrated on the women`s movement after the late 1980`s. But this article tries to overview the streams of women`s movement since the new beginning of < Republic of Korea >. And in relation to the historiography of the women`s movement from 1945 to the first half of 1980`s this article tries to overcome the former insistence that the women`s movement was only the object of political mobilization by men`s politics. In this period the women`s movement, most of which were conservative, did not raise any criticisms against military dictatorship and mobilized their members for anti-communist propaganda. But also they made efforts to improve the women`s status, especially political empowerment of women, which braught not so much success. They also dedicated to pull women into the modernization process of Korea through the family planning campaign, conciousness-raising works and job training etc. Since the second half of 1980`s with the appearance of progressive women`s organizations, the agents of which mostly came from the korean democratic movement after establishing democracy 1987, korean women`s movement have had big success. Last 20 years it made laws against sexual violence, domestic violence, job discrimination and prostitution, and contributed to women`s political empowerment. Besides this group and the above mentioned conservate, by state supported women`s organizations, we can add the third group which consists of the feminist artists, young students and feminist scholars. This group has been interested much more in identity politics and contributed to spread the feminist discourse in the public opinion. < Beijing World Women`s Conference > has also stimulated the korean women`s movement to carry gender-mainstreaming politics and take part in international solidarity works more actively. During last 60 years two umbrella organizations, KWAU and KNCW, worked sometimes together, and some times in competition, and with this united strategies the korean women`s movement developed more successfully. Also women`s movement profited from the strategy of `together and seperately` which contained sometimes cooperative work with the civil and labour movements. In this way last 20 years the korean women`s movement experienced great success, showing the strategical flexibilities and the appropriate balance between using state power and raising criticism.

근대 여성 운동·교육 및 사회적 진출과 여성상

정연경 ( Youn Kyoung Cheung )
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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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미술사에서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로 다수의 여성인물화 제작을 들 수 있는데 근대기 사회변혁과 여성운동, 그리고 교육과 여성의 사회진출에 의해 여성에 대한 전통적 사회통념과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면서 바느질이나 육아로 대표되는 전통 여성상과 함께 새로운 형식인 여성누드화와 개량한복과 양장을 입은 신여성에 이어 후반기로 갈수록 근대적인 풍물이나 소재와 관련된 근대적인 여성상이 등장한다. 즉 1920년대부터 등장하는 침선이나 육아에 관련된 여성상은 그 이후까지도 꾸준하게 제작되지만 1930년대 중반부터 여성교육의 결과로 교양과 미를 겸비하며 독서와 음악 감상, 스포츠를 즐기는 여성상이 증가하고 지적 능력을 갖춘 전문직 인텔리 여성상이 출현한다. 또한 여성상은 당시 빠른 속도로 이행되어가던 근대화 양상을 잘 보여주는 장르로서 재봉틀이나 축음기 등의 다양한 첨단 제품들을 통해 경제와 문화예술의 단면을 재현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근대사회의 여성관과 여성들의 자기인식의 변화, 여성교육과 여성운동의 영향에 의한 한국근대여성상의 성격과 특징 그리고 후반기로 갈수록 여성상의 변화를 통해 근대여성교육 및 여성운동과 긴밀한 상관관계와 발달 양상을 연구, 분석할 수 있다.

1980년대 여성운동의 새로운 여성 주체 기획과 주부운동론

김영선 ( Kim Young-sun )
한국여성사학회|여성과 역사  28권 0호, 2018 pp. 241-266 (총 26pages)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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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80년대 학술운동 및 문화운동인 「여성사연구회」와 「또하나의문화」를 중심으로 일어난 한국 주부운동론과 궤적을 현재의 담론 지형과 연결해 검토하려고 한다. 특히 무크지 발행 등, 출간작업을 통해 여성 주체를 형성하려했던 동인들이 구성한 ‘주부조직론’과 ‘사회주부’ 담론의 주요 내용과 특성을 살펴볼 것이다. 1980년대 한국에는 진보적 변혁이론이 확산되었고, 전국/지역 단위의 여성단체들이 조직되었다. 이러한 복합적 토양에서 새로운 여성주체로서 주부가 어떻게 기획되고 재발견되었는지 이론적, 운동론적인 입장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당시 여성운동의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갔던 지식생산의 주체들은 민주화의 열망 속에 있었던 학생, 노동자, 지식인들 그리고 여러 시민단체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교차하고 길항하면서 당대의 모순적 구조를 진단했고,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식을 고민하면서 자신의 운동위치와 전략을 다각도로 모색했다. 이 과정에서 기층 민중과 대중이라는 이항 대립적 범주가 만들어졌다. 다른 한편, 여성운동의 조직화 과정 속에서 주체 구성의 우선순위와 대중화 방식을 둘러싼 방법론적 긴장이 전개되기도 했다. 현재 시점에서 바라볼 때, 1980년대는 한국 여성운동의 주체 생산과 운동 방향을 설정해나가는 데 있어 중요한 전환의 기점이며 기억, 현재 운동의 자원이 되었다. 그 당시 여성운동 담론의 장에 등장한 주제는 주부의 사회적 위치, 가사노동의 가치화 그리고 주부운동의 사회적 영향력 등 이었다. 특히 이 연구는 주부운동 조직이 노동과 계급 그리고 지역과 국가와 연결고리 속에서 열었던 지평과 전망을 분석하였고, 또한 어느 매체를 중심으로 논의되었는지 살펴보았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한국 여성운동 안에서, ‘여성’ 범주의 획정과 재구성이라는 정치적, 실천적 논제를 둘러싼 논쟁이 깊어지고 있다. 이 연구가 여성운동, 풀뿌리/지역운동 그리고 주부운동의 상호관계성 및 조직화 방식 이라는 과제로 고민해왔던 여성운동이 차후 문제를 해결하는데 단서가 되길 기대한다.

4월 혁명과 여성들의 참여 양상 - 여성신생활운동과 장면정권과의 갈등을 중심으로 -

윤정란 ( Yoon Jeong-ran )
한국여성사학회|여성과 역사  12권 0호, 2010 pp. 69-110 (총 42pages)
8,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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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당시 많은 여성들이 4월혁명 이후 어떤 방식으로 이 혁명을 계승하고, 무엇을 지향했는가 등을 살펴보기 위한 것에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부터 여성운동을 이끌던 세력들이 4월혁명 이후 어떤 방향으로 여성 운동을 결정하고 나아가는지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지금까지 연구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4월혁명 이후 여학생들과 여성들은 신생활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신생활운동은 이승만 사임 직후 학생들에 의해 전국적으로 전개된 국민계몽운동의 일환이었다. 여학생들은 서울대 여학생회를 중심으로, 일반 여성들은 겨자씨회를 중심으로 이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신생활운동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다. 단지 국산품 애용운동을 하자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구호였다. 여성단체에서는 이와 달리 신생활운동을 정치운동으로 확대시켰다. 7.29 총선을 앞두고 전국의 여성단체들이 YWCA회관에 모여서 `축첩문제` 해결에 주안점을 두고 국민운동을 전개시키고자 하였다. 축첩문제는 개화기 이후부터 여성문제와 관련해서 제기되어 온 문제였다. 1945년 이후 축첩문제는 공창제와 더불어 국가건설을 위해서는 사회적인 악으로 규정되었다. 이러한 여성들의 활동 결과 1953년에는 간통쌍벌주의가 법제화되면서 축첩은 범죄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들은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4월 혁명 직후 여성들은 4월 혁명 계승을 위해서 축첩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축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들은 선거 참여를 강조하였다. 여성을 대변할 수 있는 많은 여성들과 남성들을 선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이 실패로 끝나자 여성단체에서는 여성 관료 기용에 중점을 두었으나 이 요구는 수용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장면정권과 여성계에서는 갈등 관계에 놓이게 된다. 장면정권에서 이러한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던 것은 대한부인회를 비롯한 여성단체의 행보에 대한 불신, 여성의 허영과 사치로 인해 국가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분위기의 확산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이에 여성들은 장면정권에 대해 큰 실망을 하고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자 적극적인 지지에 나섰다. 그러나 여성계에 돌아온 것은 여성단체의 해산이었다. 군사정권은 가정에서 여성의 역할을 더욱 중요시하며 여권을 후퇴시켰다. 예를 들어 서구근대교육을 받고 여권을 강조했던 프란체스카나 박마리아가 아닌 현모양처의 이상형으로서 육영수를 이미지화하면서 박정희는 대중들의 지지를 획득해 냈다. 과거 일제강점기 때 지식인 여성들이 전쟁협력을 선택하면서 동원과 종속의 길을 걸었던 것처럼 군사정권의 협력이 또 다른 여성의 동원과 종속의 길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여성계는 그 세계로 나아갔다.

국가와 여성평화운동 -김대중·노무현정부의 평화정치를 중심으로

정현백 ( Hyun Back Chung )
한국여성사학회|여성과 역사  20권 0호, 2014 pp. 217-254 (총 38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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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만들기와 관련하여 국가의 역할 그리고 역사적 맥락에 따라 그 특성이 다르다. 이 글은 두 민주정부-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의 집권기에 의해 수행된 평화정치의 젠더화를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김대중정부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을 통해서 화해포용정책을, 노무현정부는 제2차 정상회담과 10.4공동선언을 통해서 평화번영정책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두 민주정부의 평화정치에 대해 (진보적인) 여성운동은 환영하고 거버넌스를 통해 그 과정에 동참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제1차 정상회담에서는 여성의 대표성은 낮았다. 2차 정상회담에서는 여성의 대표성이 높아졌고, 여성분과에서 남북여성의 대표자들이 의제를 선정하여 토론할 수 있었다. 평화정치와 관련된 페미니스트의 개입은 만족할 만한 정도는 아니지만, 민주정부의 기간 동안 높아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페미니스트가 추구하는 보다 근원적인 평화주의 정치는 때로는 정부의 정책과 충돌하였다. 이라크 파병 반대나 군축운동에서 페미니스트는 민주정부와의 괴리를 드러내었다. 분단국가에서 겪는 현실정치의 제한을 여성평화운동은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여성운동에 의한 보다 평화주의적인 실천은 담론의 확산을 통해 그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또한 유엔 안보리 1325조항을 국가행동계획으로 현실화하거나 국제연대를 통해 동북아 평화를 모색할 것을 압박하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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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1990년대 말에 창립된 한국여성평화운동단체인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이하 평화여성회)’의 인지적 실천에 초점을 맞추어, 인지적 실천을 통해 생산된 생각, 논리, 담론 등의 정치적 성격과 그 딜렘마를 고찰한 것이다. 연구결과, ‘평화여성회’는 한국여성운동의 이념적 지형에서 ‘진보’로 명명되는 여성단체로 한국의 여성평화문제를 한반도적 맥락에 철저하며 동아시아의 글로컬 맥락에서 사유하는 인지적 실천을 구성하였다. 이러한 ‘평화여성회’의 인지적 실천에는 ‘현실과 운동담론’의 ‘불가통념’으로 경험된 딜렘마가 있었다. 그것은 ‘평화여성회’의 인지적 실천이 국가안보, 군사안보에 기초한 반평화적 역설적 한국 현실에서 굴절된 경험이었다. 또한 인간안보, 적극적 평화 개념 등에 기초하여 구성된 ‘평화여성회’의 인지적 실천이 반평화적이고 역설적인 한국 현실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서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재구성하는 탈식민주의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비전을 담보하지 못하는 근본적 한계를 발견하면서 갖게 된 경험이었다. 1990년대 탈냉전과 지구화에 의해 글로벌/초국적 여성운동 공간이 열리면서 서구여성평화운동의 의제와 개념, 논리, 담론의 영향에 의해 지역여성운동이 탈지역화, 식민화되는 위험이 항존하는 가운데 ‘평화여성회’가 인지적 실천과정에서 운동담론과 현실의 ‘불가통념’을 발견적으로 경험한 것은 ‘평화여성회’의 인지적 실천이 동아시아 탈식민여성주의 정치학의 단초를 갖기 때문이다.

광복 60년, 여성입법운동의 전개와 성과

김엘림 ( Kim Elim )
한국여성사학회|여성과 역사  4권 0호, 2006 pp. 119-148 (총 30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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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women have propelled very positively and diversely legislation movement to enact or revise laws for 60 years since national liberation This movement has aimed to abolish discriminative tradition against women and to enhance women`s human rights and to promote women`s social participation. Thus, there has been a great deal of change in the status of korean women and in korean society`s confucian patriarch. It can be said that this movement has developed through the following leading actors: International Instruments for gender equality, globalizationㆍdemocratizationㆍindustralization of korean society, enlarging influential of women as the electorate voter and human resources, the cooperative actives women`s organizations and feminist law experts etc. In spite of this change, this movement has problems as such a great gap between law and reality, low recognition and enforcing degree about laws for gender equality, deficient feminist law experts etc. Therefore in order to develop this movement, enlargement of feminist law experts and legal education about laws for gender equality are needed.

한국여성의 정치참여와 여성복지정책 변화 -남녀고용평등법의 제,개정을 중심으로-

김영란 ( Kim Yeong Lan )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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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이후 우리나라 여성운동은 민주화운동과 함께 전통적 여성단체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성차별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 및 해결을 추구하는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한 진보적 여성운동으로 질적 전환을 하게 되었다. 여성운동은 다양한 여성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부상시키고 문제에 대한 정치적 해결을 요구하며 나아가 이를 정치적 논점으로 이슈화함으로써 정책형성 및 입법화에 이르도록 하였다. 이 과정에서 여성과 여성문제에 대한 정치적 가시성은 점차 높아졌으며 정책의제는 여성주의적 사고와 활동에 의해 정치화된 쟁점을 분명하게 거론하며 여성분야의 정책을 수행하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정책형성 및 결정은 특정욕구에 대한 요구(demends) 및 이슈화 그리고 정치적 의제, 결정 등의 일련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여기서 여성복지문제나 이슈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힘이 약한 사람들의 문제로 가부장적 세력의 저항을 받게 되기에 법제정이 어렵게 되거나 된다고 해도 한계점을 지니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 민주화와 함께 여성운동세력이 정책과정에 어느 정도 개입할 수 있게 되었으며 유권자로서 여성의 정치참여 증가는 각 정당으로 하여금 여성관련 정책을 공약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책결정자로서의 여성 국회의원은 소수이지만 여성정책의 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여성유권자의 역할, 정책결정자로서의 여성의원의 역할, 그리고 여성문제를 이슈화하고 쟁점화 하는 여성단체 그리고 이들간의 상호관계는 여성복지정책의 향방에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본 연구는 여성의 정치참여가 여성복지정책의 형성 및 결정과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에 연구목적을 두고 위로부터의 정책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요구에 기반을 두고 진행된 여성복지정책을 분석하였다. 분석대상은 여성복지정책중 1987년 제정된 이래 2001년 현재 4차례에 걸쳐 제ㆍ개정과정을 중심으로 여성의 정치참여와 가부장적 세력의 대응, 국내외 상황 및 법의 성격변화 등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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