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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핵심 키워드

미얀마 2020: NLD 총선 승리의 시사점과 평화-민주주의-발전의 위기

홍문숙 ( Hong Moon Suk )
한국동남아학회|동남아시아연구  31권 1호, 2021 pp. 113-153 (총 41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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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팬데믹으로 멈춘 미얀마 사회의 표면적인 모습과 달리 뜨겁게 끓어올랐던 2020년 미얀마 정치사회의 동학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였다. 이를 위해 아웅산수찌와 NLD 개혁의 핵심과제인 헌법 개정, 평화협상, 경제발전의 성과와 한계를 소개하고, 2020년 총선의 배경, 예측, 결과 및 시사점을 차례로 분석하고자 한다. 특히 총선 이후 군부 및 소수민족 정당들의 총선 무효 주장이 등장한 NLD 집권 2기의 불안한 집권 2기의 과제를 재조명하고자 하였다. 현실적으로 2020년 상반기 NLD 정부의 성적표는 초라하였다. 2017년 이후 로힝자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거세짐에 따라 외국인직접투자가 감소해왔고 경제성장률도 매해 감소한데 이어, 2020년 하반기에는 팬데믹 확산으로 2010년 이후 최악의 경제상황을 맞이하였다. 아웅산수찌와 NLD의 국가 개혁의 핵심과제인 헌법 개정을 성공하지 못했으며, 소수민족 정당과의 평화 과정의 최종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러나 국제성장의 둔화, 헌법 개정의 실패, 진전없는 평화협상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11월 8일 미얀마는 아웅산수찌와 NLD에게 총선의 압승을 내주었다. 아웅산수찌의 대중적 인지도, 성공적인 온라인 선거 전략과 청년세대의 참여, 군부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과 공포와 같은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하여 NLD는 총 920석(상원 138석, 하원 258석, 지방 524석)을 확보하는 압승을 거두었다. 한편 헌법 개정, 평화협성 과정 중에 군부 내의 NLD에 대한 불만을 수년간 축적되었다. 총선에서 71개의 의석만 확보하는데 그친 USDP도 부정선거를 주장하고 재선거를 요구하며 아웅산수찌와 NLD의 리더십에 타격을 주고자 하였다. NLD의 총선 승리의 축제로 마무리된 격동의 2020년은 지고, 2021년 민흘라잉 총사령관을 중심으로 하는 군부의 조직적인 쿠데타로 새해를 맞게 되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시민불복종을 외치며 길거리로 나온 미얀마 시민들에게 어떠한 대안을 제시 할 수 있는지, 아웅산수찌와 NLD 지도부는 다시 엄중한 정치시험대에 올랐고, 국제사회는 실효성있는 연대와 협력이라는 큰 외교적 도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선거부정과 투표편의 ― 1960년대 부재자투표제도 도입과 변화

崔善雄 ( Choi¸ Sun-wo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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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10 총선거가 치러지면서 처음으로 한국에도 근대적 선거가 시행되었다. 한국 역사상 최초의 보통선거였다. 그러나 당시 군인들은 투표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았다. 군인들은 1950년 5월 30일 제2대 총선에서 처음 투표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군인들은 부대가 위치한 선거구의 선거인이 되어 일반투표소에 가 민간인들과 함께 투표하였다. 당시 상명하복의 군대 특성을 이용해 여당인 자유당 후보자들에게 투표하도록 조직적인 선거부정이 만연했다는 증언이나 주장을 찾기는 어렵지 않는데, 이런 결탁은 정치권과 군대의 부정부패 ‘카르텔’ 형성으로 이어졌다. 3·15 부정선거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후 허정과도정부 아래 1960년 선거법 개정을 논의하면서 부재자투표제도가 도입되었다. 부재자투표 방식으로는 우편투표가 채택되었다. 부재자투표제도를 도입한 취지는 투표편의나 투표율 제고를 위해서가 아니라 군대 내 선거부정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5·16 이후 대통령선거가 직선제로 부활했음에도 부재자투표는 대통령선거에 적용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베트남 파병장병들의 투표권 보장 문제가 제기되면서 해외 부재자투표가 1967년 제6대 대선부터 1971년 제8대 총선까지 일시적으로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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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의 민주화운동 비교 분석: 1960년 3·15의거와 1979년 10·18부마항쟁

정주신 ( Chung Joo-shin )
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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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3·15의거가 4·19혁명을 가져왔으며, 10·18항쟁이 박정희 정권 타도의 도화선을 제공해 10·26사건을 가져왔다는 점에 착안하여 마산의 민주화운동을 비교분석하고자 하는데 있다. 왜냐하면 마산은 독재자 타도와 불의를 참지 못하는 시민들의 투쟁정신을 상징하는 도시로 각인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3·15의거와 10·18항쟁에 대한 민주화운동으로서 비교분석의 연구가 미흡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마산의 3·15의거와 10·18항쟁을 상호 비교분석에 있어 생각할 점은 마산이 민주화의 성지임을 강조해왔을 뿐, 민주화 정신의 메카로서의 정체성이 정립되어 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산에서 반독재운동이 발생하면 독재자가 타도되는 결정적 단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마산은 민주정신의 상징성을 지닌다. 연구방법으로는 ‘권력의 부메랑 효과’를 사용하고자 한다. 이 부메랑 효과는 권력자가 영구집권을 위해서 일삼은 부정선거, 반체제운동의 탄압이 오히려 권력자의 파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생들이 교내시위나 학생과 일부 재야세력이 주도한 기존의 민주화운동과는 다른 방법론적 함의를 의미한다. 3·15의거와 10·18항쟁이 미완의 민주화운동이지만 4·19혁명과 10·26이란 거대한 정치적 변혁을 이뤄낸 데 기폭제 역할을 해낼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독재자의 오만한 체제유지가 부메랑으로 돌아와 대통령이 하야하거나 피살되어 대통령직을 잃게 된 것이다. 이런 민주화운동이 직접적인 정권타도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을 붕괴시킬 수 있었던 견인차 역할론은 한국현대사의 쾌거라 아니할 수 없다. 의식 있는 학생과 민중들이 적극적인 참여로 전개된 민주화운동이 권위주의 정권에 영향을 미쳐 독재자가 자승자박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놓은 것이었다. 따라서 독재자들이 정권 붕괴를 자초하게끔 스스로 권력의 부메랑 효과라는 덫을 놓고 집요하게 부정선거 획책이나 민중항쟁에 대한 강경론을 펼치며 스스로 정권을 옭아맨 어리석음이 정권의 붕괴를 자초했다고 볼 수 있다.

4월 혁명 이후의 공백과 탈공백

박대현 ( Park Dae-hy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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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는 두 개의 혁명이 존재한다. 4월혁명과 5ㆍ16군사 쿠데타가 그것이다. 5ㆍ16군사정권은 4월혁명 이후의 공백을 점유함으로써 탄생한다. 4ㆍ19와 5ㆍ16의 본질은 바로 공백과 탈공백에 있으며, 이는 혁명주체의 부정성(negativity)과 실정성(positivity)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박태순이 응시한 것은 바로 혁명의 공백과 부정성이며, 바로 그것이 5ㆍ16군사정권이 들어선 근본적인 원인이다. 5ㆍ16군사정권은 4월혁명 이후의 공백을 반공이념과 근대화론을 통해 채워나갔으며, 이는 혁명의 공백을 탈공백화하는 것이자 혁명의 부정성을 실정성으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반면에 비판적 지식인들은 공백과 부정성의 측면에서 혁명을 사유했으며, 이는 4월혁명을 추상적 관념으로 받아들인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혁명담론의 분열은 4월혁명에 관한 1960년대 문학이 혁명 당시의 현실을 재현하거나 그 열광에 도취된 문학작품을 제외하고는 대개 혁명의 공백과 부정성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암시하며, 4월혁명의 문학적 형상화가 쉽지 않았던 근본 원인을 드러낸다.

4.19혁명의 투시도법 - 1950년대 법감정과 숨은 주체 -

정영진 ( Jeong¸ Young-j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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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50년대 말 신문매체에 나타난 당대 법감정과 함께 소설들을 겹쳐 읽어봄으로써, 4.19혁명을 가능하게 했던 법감정과 혁명기 주체의 정립 양상을 규명하고자 한다. 1950년대 사법 권력의 폭력은 권력만능, 권력숭배의 풍조의 원인이자 결과였다. 법질서에 대한 불신과 공포의 감정은 지식인, 일반 대중 모두가 느끼는 것이었다. 특히 법률로 보장된 초법적 지위를 갖고 있던 헌병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가리지 않고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였다. 이들의 무소불위의 권력은 계엄법과 국가보안법에 의해 강화된 것으로, 해방 이후 분단이 고착화되는 과정에서 절대화 되었다. 법으로부터의 폭력과 소외의 경험은 불안과 분노를 넘어, 공포와 수치, 모욕의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다. 1950년대 상당수의 문인-지식인들은 이러한 현실을 정치적인 차원이 아닌 윤리적 차원에서 사고했다. 4.19혁명은 1950년대의 한계를 뚫고 정치적 행위 주체로 나선 다양한 혁명 주체들에 의해 성취되었다. 이와 함께 우리는 정치적 문제를 윤리적으로 사고하며, 자신을 포함하여 현재까지의 시간을 전후시대라는 하나의 과거 시간으로 묶어서 뒤로 물렸던, 혁명기 숨은 주체들이 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사유는 정치적인 것으로 나아가지 못했기에 현실에서 혁명주체로 나설 수 없었지만, 혁명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추인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이들은 혁명 주체들을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소실점으로 응시하고 내면화함으로써, 자기 몫의 시대적 역할을 감당하고자 했다. 아울러 4.19혁명 이후 5.16 군사 쿠데타의 성공도 현실을 정치적으로 사유하기보다 윤리적 차원에서 사유했던 지식인들의 태도(관점)에 의해 뒷받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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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20여년 동안 민주화운동 사료를 수집, 관리하고 관련 아카이브를 운영해 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의 사료수집 현황과 앞으로의 과제를 살펴보았다. 한국 현대사의 큰 축인 민주주의의 발전상을 균형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주체의 기록,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의 기록이 필요하다. 민주화운동이 발생했던 당시에는 관련 기록을 생산하거나 소장, 배포하는 행위가 모두 불법이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은 이러한 사료들을 발굴, 수집해 왔으며 과학적 보존시스템으로 관리하고 디지털 아카이브를 통해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지 기록에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그럼으로써 민주화운동 사료의 중요성을 널리 알렸을 뿐만 아니라 균형잡힌 역사인식이 가능할 수 있도록 기여해 왔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대표적인 민주화운동 아카이브로서 민주화운동 연구와 민주주의 문화 콘텐츠의 구심점 역할을 해 나가야 한다. 그것을 위해 첫째 오픈아카이브에 최대한 많은 사료를 공개해야 하며, 둘째, 구술기록의 서비스를 확대해 나가야 하며, 셋째, 오픈아카이브를 이용자 친화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탄압의 증거와 투쟁의 기록이 함께 고증될 때만이 균형잡힌 역사 인식을 가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민주화운동 사료서비스 확대를 통해 역사의 개념적 균형성을 위한 공적 기여를 해 나갈 것이다.

2020년 미얀마 총선 분석과 정치지형의 변화 : 여당의 승리와 군부의 견제

장준영 ( Jang Jun Young )
한국동남아학회|동남아시아연구  31권 1호, 2021 pp. 201-240 (총 40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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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2020년 11월 8일 실시된 미얀마 총선을 분석함으로써 현 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와 정치지형의 현황을 중점적으로 파악하고, 차기 정부에서 기대되는 정치발전을 비롯한 정치질서의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다. 이번 총선은 여카잉주와 샨주 일부 지역의 치안 불안, 전례에 없던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환경적 제약이 따랐다. 대도시에서 이동제한(lockdown)이 실시되면서 원활한 선거유세가 불가능했으므로 유권자들은 각 당의 정강정책이나 주요 공약을 확인할 수 없었다. 2010년 총선부터 샨주 일부 지역에서 총선이 실시되지 않던 관례는 이번 총선에서 여카잉주로 확대됨에 따라 정부의 국정 수행 역량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군부가 총선 일주일 전 연방선거위원회(UEC)의 업무 추진 방식과 독립성을 엄중 경고하자 유권자는 NLD를 적극 지지했다. 그 결과 NLD는 전체 의석(1,117석)의 82.4%를 획득하는 한편, 친군부 정당인 USDP는 71석을 획득하는데 그쳤다. NLD는 지난 총선에 이어 샨주와 여카잉주 등 소수종족 지역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에서 1당이 되지 못함에 따라 당 차원의 소수종족 정책에 대한 쇄신이 필요하다. 지난 5년간 정부의 업적은 국민의 지지를 받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으나 국가 제도로서 국가고문과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높아진 것과 정당 지지도를 근거로 할 때 미얀마의 정당정치는 여전히 인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총선 이후에도 아웅산수찌 국가고문 중심으로 차기 내각 인선이 추진되고 있으므로 차기 정부에서도 정치 질서는 그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이 마땅하다.

미국의 민권정치: 1964년 민권체제를 중심으로

변영학 ( Byun Younghark )
한국민족연구원|민족연구  77권 0호, 2021 pp. 4-26 (총 23pages)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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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64년 민권체제(Civil Rights System of 1964)를 중심으로 미국 민주주의가 인종, 성/젠더, 이민자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집단 간 갈등과 차별을 어떻게 해소 혹은 봉합해왔는지 분석한다. 특히 민권법(1964), 투표권법(1965), 적극적 평등실현조치(Affirmative Action), 민권위원회, 평등고용기회위원회 등에 주목하며, 차별 갈등이 다양한 행위자들(연방/주, 의회, 사법부, 정당, 민권운동 등) 간 연방제적 정치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발전해온 궤적을 추적/분석하였다.
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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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한국 정부가 드러낸 위기관리 실패의 원인과 과정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민주화와 국가 능력 사이의 관계를 규명한다. 기존 연구는 세계화된 국제 환경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발전국가의 문제 또는 정부에 의한 무분별한 자유화 정책을 국가의 위기관리 능력 부재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해 왔다. 반면, 본 논문은 한국 관료제 조직의 내부적 특성과 정치-관료 관계를 검토하여 민주화와 함께 국가 내부에서 나타나는 정치와 관료조직 상의 변화가 국가의 위기관리 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주장한다. 정치-관료 사이 협력의 약화와 관료제 내부의 응집성 파괴 그리고 정부의 체제 감시 능력의 부재는 국가가 지닌 위기관리 능력의 약화를 초래하였고, 이는 한국이 아시아 금융위기에 직면할 당시 발전국가는 이미 심각한 내부적 파괴 상황에 놓여 있었음을 말해준다. 한국 관료제의 내부적 파괴와 이에 따른 정부의 위기관리 실패 사례는 대내외적 위기들을 성공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유능한 관료조직의 창출과 확보가 민주주의 전환 과정에서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이 직면하는 중요한 과제임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