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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udes de Langue et Litterature Francaises


  • - 주제 : 어문학분야 > 불어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4350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53권 0호 (2003)

쌩뜨뵈브와 Port-Royal -인간정신에 관한 자연적 계보 연구 방법-

차영애 ( Young Ai Cha )
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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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e-Beuve가 적용한 인간 정신에 관한 장녀적 계보 연구 방법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덕이 Port-Royal이다. Sainte-Beuve는 Port-Royal이 전개되는 이야기 흐름 속에는 지속되는 하나의 특질, 즉 통일된 정신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는 Port-Royal에 문학적 초상화의 기법을 적용하는데, 마치 독특한 한 개인의 전기를 쓰는 것처럼 Port-Royal을 묘사해 나간다. 그것은 개인들 초상화의 희랑인 동시에 한 그룹의 일반적 초상화이다. 이러한 초상화들을 그리면서 정신들의 움직임, 다시 말하자면, 공통된 본성을 발견하려 한다. Sainte-Beuve에 따르면, Port-Royal의 은둔자들은 무엇보다도 적어도 3개의 가계를 형성하고 있는데 그것은 la famille Amanuld, la faille de saint-Cyran, 그리고 la faille de Saint Francois de Sales 이다. La faille d`Amauld는 혈연가계인 une famille naturelle이며, La famille de Saint-Cyran은 혈연상의 부모들처럼 하나의 가계를 이루는 정신적 부모들인 une famille spirituelle를 나타내고, 마지막으로, la famille de Saint Francois de Sales는 자연적, 정신적 가계의 통합적 전체 속에서 une famillelitte´raire를 나타내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또 하나의 사실은 이러한 집단들은 각각의 우수한 주도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La famille naturelle에서는 le grand Arnauld가, la famille spirituelle et chre´tienne에서는 la Me´re Ange´lique가, une famille litte´raire에서는 Pascal이 그의 천재성을 가지고 이끌어 나간다. Sainte-Beuve는 이러한 가계 연구를 통해서 16세기, 17세기, 18세기, 19세기를 잇고 있는 인간 정신의 지속되어져오는 고리를 드러내고자 했다. 특히 Sainte-Beuve의 눈에는 Montaigne와 Pascal의 대화가 Port-Royal의 중심이라고 보는데, <자연인>와 <신앙인>이라는 두 개념의 갈등을 구현한 것으로 본다. 기독교 개념과 자연인으로서의 개념이 나타내는 이 이원성은, Saint-Beuve에게 있어서 그 자신이 오랫동안 갈등을 겪어온 문제이기도 했다. 신에 의해 선택된 사람인 Pascal과 기독교의 눈에는 신에게서 버림받은 Montaigne, 이 두 영혼은 <인간 정신사>의 긴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 기본적임과 동시에 서로 상반되는 생의 두 큰 측면으로 Saint-Beuve 에게는 보여지는 것이다. Port-Royal속에서 그는 신학을 내적으로 이해하면서 현대적 정신에 가까운 용어들로 개 건축하고자 했으며, Montaigne에 끌리는 자신의 경향을 숨길 수 없었지만 시적 태도와 종교적 태도사이의 공평한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Saint-Beuve는 Port-Royal속의 Pascal 과 Montaigne에 관한 이야기에서, 지속되어져 왔고 앞으로도 지속될, 또한 자신의 내부에서도 지속되는, 신에 의해 지배되는 인간과 자연인의 긴 투쟁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Port-royal은 프랑스 문학 역사에서, 더 나아가 인간 정신이 지속되오 있는 역사 속에서 중요한 하나의 위치를 차지한다.

뮈세와 음악

김미성 ( Mi Sung Kim )
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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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연구는 뮈세에게 있어서 언어의 문제에 대한 고찰로부터 시작한다. 추론과 이성의 산물인 인간의 언어는 "심장의 울림"을 표현하기에는 부적절하다. 눈빛이나 입맞춤으로 대변도리 수 잇는 인간의 육체언어도 잠시 동안의 쾌락 후에 맛보는 환멸의 느낌처럼 일시적인 환상만을 가져다 줄 뿐 그 한계를 드러낸다. 뮈세의 많은 주인공들은 음악에서 절대의 순간을 발견한 그들의 창조자 뮈세처럼 음악을 듣는 무언의 순간 두 영혼의 교감을 느낀다. 또한 이를 통해 인간 언어의 한계를 초월해 보다 우월한, 본질적이고 절대적인 언어 -음악 - 의 존재를 확신한다. 낭만주의 시대의 문학은 음악과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시대의 작가들은 낭만주의 새로운 음악에 열광하였고, 로시니를 비롯하여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등의 음악은 작가들에게 있어서 음악은 인간의 언어로는 전달하지 못하는 섬세한 인간의 내면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예술적 언어로 간주되었는데 이는 뮈세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음악, 특히 인간의 목소리를 멜로디에 담아내는 오페라를 사랑했던 뮈세는 3편의 음악 평론을 쓸 정도로 음악에 깊은 조예가 있었다. 이러한 음악에의 기호는 단순한 전기적 사실에 그치지 않고 작품의 핵심적 요소를 이루는데, 인간 언어와 음악의 통합을 이루는 것이 뮈세 문학의 궁극적 애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 산분, 희곡을 포함하는 위세의 전 작품을 지배하는 음악은 단지 장식적 요소를 뛰어넘어 작품의 전개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그에게 있어 "시는 본질적으로 음악"이었으며 사상은 "선율을 가진 것" 이었다. 영혼의 떨림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에 대한 목마름을 간직하고 있었던 뮈세는 그 해답의 실마리를 음악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불테르의 철학 꽁트에 나타난 관념과 형식의 조화

이효숙 ( Hyo Sook Lee )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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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테르는 자신의 철학동화 `하얀황소`에서 호라티우스의 「서간문」의 한 문장을 인용한다 : `사물의 조화는 부조화들로 이루어진다`. 이 인용문에서 암시하듯 볼테르의 이른바 `철학동화들`은 상반된 요소들간의 결합을 보이고 있다. 우선, 논리 정연한 시스템을 전제로 하는 철학과 무한한 상상의 자유에 대해 가장 관용적인 장르, 동화의 결합이 그러하다. 게다가 `철학동화`라는 명칭은 볼테르 자신이 붙인 것도 아니며, 18세기에서의 `철학`, `철학자`의 개념은 오늘날의 것과 다르다. 세상과 인간사를 잘 관찰할 줄 아는 것이 철학자의 본령이라고 여겨지던 시대에 볼테르는 철학자였으며, 그의 철학동화는 `동화`라는 장르가 가진 환상적인 틀에다 이성으로 판단한 인간의 진실들을 담으려 했다. 보통 환상적인 요소와 이성은 양립할 수 없다고 믿어지고 있는데, 볼테르는 그 둘의 결합에서 보이는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이 조합에서 자신이 원했던 것들을 얻어낸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사회적 또는 종교적 제도들과 편견들을 희화화함으로써 부조리한 인간 조건들을 고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 유행하던 동화나 소설 장르들이 독자들에게 주는 환상들과 허구성을 비판하면서, 이런 메시지들이 독자들에게서 설득력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한편, 볼테르의 철학동화들이 같은 테마, 같은 디테일 등을 반복해서 취하긴 하지만, 볼테르 자신이 그때그때 저한 상황들과 문학적 유행의 변화에 따라 각 동화는 조금씩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그래서 볼테르의 철학동화들은 작가의 삶, 시대, 문학 경향 등을 반영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자디그」·「캉디드」·「자유인 L`Inge´nu」은 특히 작가의 모습과 운명을 많이 반영한 듯이 보이며, 각각이 당시 유행하던 문학 장르의 특징적인 점들을 이용하면서, 그에 대한 비판들을 내포하고 있다. 이 세 작품들은 볼테르의 인간 조건에 대한 사유의 변천을 일별할 수 있게 해줌과 아울러, 볼테르 자신이 경시하던 장르들과 철학적 사유들의 효과적인 변조를 보여준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극 텍스트를 통하여 본 주관적 지문의 기능

유효숙 ( Hyo Sook Liu )
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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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그리트 뒤라스는 다양한 희곡을 발표하였고, 자신의 작품을 직접 연축하면서 희곡의 무대화에 참여하게도 하였다. 뒤라스의 희곡들은 대부분 극 행위가 정제된 체 등장 인물들의 대사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많은 현대 연극이 다양한 이미지의 변화를 추구하는데 반해 뒤라스의 연극은 보여지는 연극보다는 듣는 연극, 대사와 언어가 중요시되는 연극을 추구한다. 뒤라스의 연극에서는 무대 위에서의 극적 행위보다 대사가 극을 이끌며, 지문은 단순한 무대지시문의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지문은 등장 인물들의 행위를 지시하기 위해 설명적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등장 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반영하기 위한 등장 인물의 내면 표현, 무대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도 사용된다. 갈로팡시아는 작가 자신이 개인적으로 개입하는 비 객관적 지문을 자칭하기 위해 `주관적 지문` 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지문의 일반적 특성은 설명적이고 객관적인 데에 반해 뒤라스의 극 텍스트에서 지문은 극작가의 개인적 견해가 투영된 주관적 지문의 예가 자주 발견된다. 뒤라스의 초기 희곡에서 주관적 지문은 내적 지문 속에 사용된 다양한 형용사로 나타나며 지문에서의 조건법, 의문문의 사용, 지문과 대사의 불일치 등의 기법을 통해 작가의 주관적 견해가 드러난다. 극 텍스트에서 작가는 `일반적으로 나`라는 주어를 사용하여 말하지 않는다. 지문의 경우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정보를 텍스트를 읽을 독자나 텍스트를 무대에 형상화하는데 참여하는 연출, 배우, 스텝들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뒤라스의 희곡에서는 이러한 원칙이 무시된다. 「에덴 시네마」, 「사바나 만」, 「두 번째 뮤지카」 등의 후기 작품 속에서 작가는 지문, 혹은 지문에 붙인 각주를 통해 등장인물들이나 극적 상황에 대한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자신의 견해를 투영한다. 극작가가 주관적 지문은 통해 주관적 견해를 표명하는 것은 자신의 작품을 무대에 형상화할 연출가, 배우, 스텝 등에게 자신의 견해를 관철시키기 위한 요구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희곡을 읽는 독자나 작품의 형상화에 참여하는 이들에 대한 친밀감과 공모의식의 표현일 수 있다는 것을 뒤라스의 희곡들은 보여주고 있다. 등장 인물들의 대사로 언급되니 않으며, 무대에서 보여지지 않지만 지문을 통해 작가가 이야기하거나 암시하는 부분은 독자와 관객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될 부분이다.

플르베르의 "비개인성" 소설미학

오영주 ( Young Ju Oh )
한국불어불문학회|불어불문학연구  53권 0호, 2003 pp. 95-120 ( 총 26 pages)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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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플로베르의 소설 미학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비개인성`의 미학이 과거의 어떠한 글쓰기의 형태에 대한 거부이며, 어떻게 동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으며, 어느 지점에서 미래를 향해 열려있는지 살펴본다. `너 자신을 그리지 말라`는 비개인성의 미학은 낭만주의 작가들의 작품에의 감정적, 철학적, 도덕적 개입에 대한 거부에서 비롯되었다. 아름답과 섬세한 영혼과 훌륭한 글 사이에 등식을 놓으면서 낭만주의는 문학을 정념의 분출구로 만들었다. 낭만주의의 안이한 글쓰기에 대한 반성인 비개인성의 미학은 과학이 자연을 연구하듯 공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로 문학이 인간을 탐구해야 한다는 19세기 사실주의자들의 요구와 동일한 시대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플로베르의 비개인성 미학이 과학을 끊임없이 원용하는 것은 과학의 실험적이고 논증적인 면보다는 사회적 도덕적 편견에 독립되어 있는 과학적 시선과 관계된다. 반면 문학과 과학의 방법은 동일할 수 없다. 과학과 달리 소설은 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 외부의 세계를 정확히 재현해내기 위해서 작가는 자신을 세계에 투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 그 세계를 살아야 한다. 혹은 작가는 세계가 온전히 자신을 통해 투영될 수 있는, 외부의 진실을 확대하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소설가의 능력은 많이 느끼는 데 잇기 보다는, 자신에게 세계를 느끼도록 할 수 있는 데 있다. 즉, `객관적인 것의 내면화`를 통해서 소설가는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요소가 배제된 그 자체로서의 사물, 인간, 사계를 재현해 낼 수 있게 된다. 소리지르지 않고 절규하지 않고 오로지 인내심 깊은 오랜 성찰의 눈길, 즉 비개인성의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 그것은 언어로 하여금-주제가 아니라-관찰 대상의 진실을 표현하려고 하는 노력이다. 소설을 그 무엇보다 예술작품으로 간주했다는 점에, 문학의 존재이유를 외부에서가 아니라, 형식과 내용의 완벽한 일치, 즉 문체에서 찾았다는 점에 플로베르의 현대성이 놓여있다. 서설은 현실의 완벽한 재현, 풍속의 교정, 도덕적 교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美가 예술작품의 궁극 목적이며, 진실과 감동은 그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그 무엇에 의해 지탱 받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우주를 모델로 삼고 있는 `그 무엇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는 책`은 자율적 문학이라는 문학에 대한 현대적 인식의 문을 연다. 비 개인성의 미학이 지시하고 있는 길 위에 `작가와 독립된 작품`, `문학성`이라는 현대 비평의 문제의식이 놓여 있음은 뜻밖의 일이 아니다. 비개인성의 미학이 작가에게 요구하는 자세가 창조물에 대한 조물주의 태도-도처에 존재하되 결코 보이지 않는 -이듯, `그 무엇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는 책`의 기도는 신없는 세계, 절대적 가치가 사라진 세계에 직면한 작가의 신적인 企圓의 일종이다. 플로베르의 비개인성은 도덕주의에 대한 그의 불신과도 관계된다. `공식적 도덕`의 `비도덕성`에 대한 비판의 화살을 늦추지 않았던 플로베르는 그러나 도덕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다만 이 공식적 도덕이 만들어 낸 사회를 문체의 힘에 의해 그 가장 적절한 비율 속에서 `보여주`고자 한다. 그 다음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리라
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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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그리뜨 유르스나르는『세상의 미로』를 쓰게 된 동기가 자아탐색이라는 자전적 요인보다 가족(가문)사, 인간사를 펼쳐 보이려는 역사적 의도에 있었다고 밝힌다. 일반적으로 이 작품은 자서전 쟝르로서의 가능성은 없는지 자못 궁금하다. 따라서 이 연구는 유르스나르에게 있어 역사의 의미는 무엇이며 실제로 역사에 어느 정도 근접해있으며 작품의 쟝르적 성격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잇는지 살펴보는데 있다. 우선 유르스나르는 작품 속에서 영웅들이나 지배층에 의해 이루어지는 드러난 역사가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나 무수한 인간 군중집단으로 이루어지는 감추어진 역사를 의미 있게 부각시키는 작업을 통해 자신의 역사성을 드러낸다. "마르크스주의자처럼 역사를 우상으로 삼는"이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그녀는 개개인의 역사를 소중히 생각하기에 자기 조상들의 작은 삶들을 큰 역사의 흐름 속에 조화롭게 배치시킨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관은 19세기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주류를 이루어왔던 과학적 객관성을 추구하는 실증주의 역사와 대치된다. 유르스나르가 작품 안에서 담아내는 역사의 의미는 순수한 사건과 사실에 집착하여 객관적인 과거를 복원하는 엄격한 의미의 역사와는 다르다. 그것은 오히려 20세기 중반 이후 실증주의적 역사관에 맞서서 아날학파가 주창해온 문화사 운동인 "새로운 역사"와 흡사하다. 본고에서는 "새로운 역사"의 전반적인 특성에 따라 『세상의 미로』와의 유사성을 밝혀내고 이 작품이 지니는 역사적 가치를 드러내고자 한다. 첫 번째 유사점은 추상적 인간(단수개념)이 아닌 구체적 인간들(복수개념)을 역사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두 번째, 역사란 과거에 묻혀있는 과거사실의 재구성이 아니라 현재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과거이므로 결국 과거의 "현재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브로델의 "장기지속적"시간개념도 중시한다. 세 번째 유사점은 땅, 지리, 지방이라는 공간의 역사에 관심을 갖으며, 땅과 함께 하는 인간들의 삶과 문화를 재구성하여 전체사에 이르러야 한다고 본다는 점이다. 네 번째는 다양한 사료의 활용에 있다. 인간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면 모두 역사의 자료로 타당하다고 여기며 사료를 폭넓게 선택한다는 점이다. 다섯 번째 유사점은 "히스토르"라는 비교적 열린 역사적 화자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이다. 다음은 감정의 표현이나 정보의 부족으로 인한 솔직한 고백을 역사적 진실을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유로이 드러낸다는 사실이다. 마지막 유사점은 빈틈이 나기 일쑤인 사료들의 숨겨진 의미를 해석하는데 상상력을 첨가한다는 점이다. 이는 허구로 보일 수도 있지만 역사적으로 가장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가설에서 끌어오는 역사적 상상력이다. 이러한 몇 가지 유사점들은 『세상의 미로』가 오늘날의 역사와 얼마나 근접해있는지 보여준다. 그렇다고 쟝르의 규칙이라는 오랜 관습을 깨고, 이 작품을 문학의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난 별개의 역사라고 보기도 어렵다, 여러 가지 논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는 이 작품을 역사가 역사이기를 그치고 문학이 문학이기를 그치는 어느 합류점에 놓아 보고자 한다. 그 합류점에서 "히스토그라피"라는 새로운 혼합 쟝르의 탄생이 예고된다.

선행사 없는 관계대명사와 의문대명사 : QUI를 중심으로

전경준 ( Kyung Jun Jeon )
한국불어불문학회|불어불문학연구  53권 0호, 2003 pp. 145-165 ( 총 21 pages)
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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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법에서는 이들 도입요소들에 대해 관계절의 경우는 `관계대명사 (pronom relatif)`라 부르고 의문절의 경우는 `의문대명사(pronom interrogative)`라고 구분하여 부른다. 예를 들면, Grevisse (1980)는 "관계대명사는 자신이 대신하는 명사 혹은 대명사에 종속절을 결부시키고 관계짓는데 사용되어, 그 명사나 대명사를 설명하거나 한정하며, 의문대명사는 자신이 표현하거나 상기시키는 혹은 그것에 대한 생각을 예고하는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질문하는데 사용된다"고 정의하고 있다. 관계사와 의문사에 대한 다소 의미적인 이러한 구분은 당연히 자료체의 동일한 형태인QUI에도 적용되는데, 유일한 차이는 자료체의 관계사 QUI는 관계짓거나 결부시킬 명사나 대명사가 없는, 다시 말해 선행사가 없는 관계사라는 점이다. 보다 최근에 생성문법 (la grammaire ge´ne´rative)에서는 이러한 요소를 `qu-단에 (mot qu-)`라는 용어로 부르는데, 이는 관계대명사나 의문대명사가 일반적으로 `qu-`로 시작하는 단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qu-단어`라는 이러한 지칭은 단순한 명칭의 변경만이 아니다. 이와 같은 공통된 명칭의 부여는 관계대명사와 의문대명사 사이의 형태적 유사성 및 동사적 유사성을 내포한다. 실제로 전통문법에서 관계사와 의문사는 형태적으로 동일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관계사와 의문사의 문장 내에서의 위치를 보면 이들은 항상 문두에 위치하는데, 담당하고 있는 통사적 기능이 정상적으로는 문두에 올 수 없는 경우에도 의문사와 관계사는 항상 문두에 위치한다. 이와 같은 점은 또한 관계사와 위문사가 자신이 속해 있는 정 속에서 명사구들이 담당하고 있는 기능을 맡고 있다는 것을 내포한다. 그리고 관계절과 간접의문(les propositions interrogatives indirectes)에서 관계사와 의문사는 종속사 (subordonmant)라는 동일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와 같은 일반적인 관찰에 의거하여 상시의 자료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해 볼 수 있다 " 상기 자료체에서 선행사 없는 관계대명사 QUI와 의문대명사 QUI사이의 유사점은 보다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이들 사이에 (통사적, 의미적 등의) 차이점이 있는가? 그리고 관계사 QUI와 의문사 QUI는 어떻게 구문하는가? 마지막 두 질문은 `qu-단어` 각 QUI이고 선행사가 없는 경우 관계절과 의문절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모아질 수 있다. 본고에서는 먼저 선행사 없는 관계사 QUI와 의문사 QUI의 유사성을 살펴보았다. 이들 두 요소가 문두에 위치하여 이끌고 있는 절의 내부에서는 이 두 요소 사이에 차이점은 없고 유사성만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화 같은 점은 관계사와 의문사 사이의 전통적 구분이 실제로는 이들 요소의 교유한 성질인 범주적인 특성이나 어휘적인 특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들 두 요소를 전통문법에서처럼 서로 다른 요소로 구분하기 보다는 동일한 하나의 범주로 통합하여 다루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는 또한 과학적 학문의 목표 가운데 하나인 일반성(ge´ne´ralite´)을 획득할 수 있게 해준다. 이처럼 본 논문에서는 선행사 없는 관계사 QUI와 의문사 QUI의 구분은 이들 요소의 고유한 성질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통사적 환경, 다시 말해 서로 다른 분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화 같은 분포적 차이가 동일한 요소 QUI에 서로 다른 해석을 부여하여 관계사나 의문사로 해석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선행사 없는 관계대명사 QUI와 의문사 QUI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QUI자신의 분포가 아니라 이들 요소가 속해 있는 절 전체의 분포를 고려하여야 한다. 선행사 없는 관계절과 의문절 사이의 구분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항에 따라 이루어진다. 즉, 독립절에 관련하여 나타나는 분호적 차이와 주어 및 전치사 보어라는 통사적 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가능성의 차이, 그리고 종속절의 경우 상위절 동사의 통사적 결합 가능성의 차이가 그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관계절과 의문절을 보어로 하는 상위절 동사가 명사구 보어 및 보어절의 두 가지 구성을 모두 허용할 때는 의문절과 관계절 두 가지 해석이 모두 가능하여 중의성이 나타난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부정의 DE의 용법에 관한 고찰

김명순 ( Myong Soon Kim )
한국불어불문학회|불어불문학연구  53권 0호, 2003 pp. 167-184 ( 총 18 pages)
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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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적인 관점에서 de 는 전치된 부가 형용사 앞에서, 부정문에서, 그리고 수량의 표시사와 함께 사용된다. 본 논문에서는 특히 Il ne mange pas de pain, II n`y a pas de places 같은 구문에서의 이른바 부정의 de룰 대상으로 하여 그 통사 의미적인 제약들을, 비록 종종 통시적인 접근이 요구되기도 하지만, 공시적인 관점에서 기술하고자 하였다. 우선 부정의 de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부정을 나타내는 낱말과의 필수적인 결합이다. 이 결합(NEG de N)을 유효한 원칙으로 삼고서 부정의 de의 여러 제약들을 살펴보았다. 먼저 de의 출현은 목적보어 기능과 비인칭 구문에서의 이른바 "진주어(sujet re´el)"의 기능이라는 두 개의 통사적 기능에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부정이 문장의 다른 요소가 아니라 바로 이 목적어를 대상으로 하되, 그 위치는 부정의 영역 안에 포함되기 위해서 동사 뒤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de N은 동사 왼쪽의 모든 위치에서 배제된다는 것이다. 이 제약은 부정문에서 주어기능의 de N에도 적용될 수 있고 (*D`ouvtiers ne sont pas venus/Il n`est pas venu d`ouvriers), 수동 부정문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D`ouvriers n`ont pas e´te´ vus/ Il n`a vu d`ouvris)의 경우처럼 부정에서 떨어져 있을 때에는 du 등이 나타날 수 있다. De의 출현을 제한하는 의미적인 제약은 "NEG de N"의 N이 어떠한 지시대상 (re´fe´rent)도 설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시대상의 부재를 나타낸다. 이 제약은 특히 de와 du 등, 둘 모두 가능한 경우, 이를테면 Jen e mange pas de / dug a^teau. 에서의 의미해석이 차이를 설명해줄 뿐만 아니라 속사명사 앞에서의 de의 부재도 설명해준다. 아울러 e´viter, empe^cher, exclure, 등과 같은 동사들이 부정문에서 de를 동반하지 않는 이유도 역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통사의미적인 조건들에 의해서도, 이를테면 Je n`ai pas faim/*Je n`ai de faim 에서처럼 관사가 없는 동사구의 명사 앞에서의 de의 부재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이러한 모든 조건들이 필수적이기는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DELF 분석 : 불어 읽기/쓰기 교수의 관점에서

이남성 ( Nam Seong Lee )
한국불어불문학회|불어불문학연구  53권 0호, 2003 pp. 185-202 ( 총 18 pages)
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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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F는 프랑스 교육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유일한 불어능력 평가제도이다. 이 제도는 외국어로서 불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실제로 불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한다. 공인된 불어능력 평가인 DELF에서 읽기와 쓰기 평가에 할애된 부분만을 부석의 대상으로 삼아서, 읽기와 쓰기에서 무엇이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를 통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 했다. 이 연구는 한국 대학에서의 읽기/쓰기교수가 이러한 현실적인 요구를 감안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의도에서 비롯 되었다. 읽기와 쓰기가 텍스트를 대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텍스트의 정의에 나타난 네 가지 속성에 근거하여, DELF가 읽기와 쓰기 평가에서 텍스트의 속성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 어떤 장르가 읽기와 쓰기에서 사용되고 있는가?, 어떤 텍스트 유형이 사용되었나?, 어떤 언화행위가 평가되는가? 위의 네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읽기와 쓰기 교수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한 몇 가지 제안을 할 수 있었다 : - 장르는 읽기와 쓰기 교수/학습의 대상 및 통합적 교수단위가 된다 : DELF에서 읽기와 쓰기를 위해 제시되고 있는 거의 모든 텍스트는 의사소통 상황이 명시된 하나의 장르에 속한다. 특히 쓰기 평가에 있어서는 상황이 뚜렷하게 명시된 장르(예, 광고, 짧은이야기, 직업적인 편지, 영화비평, 서평, 신문독자투고, 등)를 언화행위의 다양한 실현에 결부시켜 작문하도록 하는 유형이 지배적이다. 또한 읽기에서는 텍스트 장르의 인식여부를 평가하거나 그와 연관되어 있는 의사소통 의도를 파악하게 한다. 말하자면, 텍스트장르는 읽어할 대상인 동시에 작문의 대상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장르가 읽기와 쓰기의 통합적 교수단위로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읽기와 쓰기를 위한 텍스트는 맥락이 제거된, 장르가 명시되어 있지 않은 발췌문을 피해야 한다. 모든 텍스트는 하나의 장르에 속하게 되고 그 장르 고유의 텍스트 유형(일반적으로 한 가지 이상의)을 가지게 되므로,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맥락이 제거된 텍스트는 실제 의사소통 상황을 배제하게 되어 학습자로 하여금 텍스트를 추상적인 언어표현으로 보게 할 위험이 있다. 실제로 사용된 사실자료를 언어교수에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읽기 및 쓰기의 교수단위로서 장르개념이 활용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직도 학계에서는 간과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텍스트의 유형(묘사형, 이야기형, 논증형, 등)도 읽기와 쓰기 교수에서 고려해야 할 필수적인 요인임이 드러났다 : 특히 쓰기에서는 텍스트의 전반적인 구조와 그것의 언어적 표현사이의 연결을 알고 한 장르를 작문할 수 있는 지를 평가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읽기와 쓰기를 위한 텍스트를 장르와 텍스트 유형에 근거하여 제시한다면 체계적이고 단계적인 교수/학습에 유용할 것이다. 예를 들어, 초보자를 위한 교수는 모사나 이야기 유형을 시작으로 하여 정보적 유형 등으로 확대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장르를 순서를 정하여 단계적으로 교수하면 체계적인 교수계획을 수립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학습자들에게 다양한 텍스트에 접하게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 따라서, 읽기와 쓰기는 문법적인 접근보다는 텍스트의 속성에 바탕을 둔 접근법이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서로 분리되어 교수되는 것보다는 본 연구에서 고려된 네 가지 텍스트의 속성에 바탕을 두고 상호 연관되어 교수/학습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진행과 점진

임정혜 ( Jung Hae Lim )
한국불어불문학회|불어불문학연구  53권 0호, 2003 pp. 203-224 ( 총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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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의 progression이라는 용어는 국어에서는 두 가지 의미에 대응된다. 그 하나는 시간상의 진행 (progression temporelle)을 뜻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점진(progression graduelle)을 의미할 수 있는데, 이 둘은 서로 다른 어휘들을 통해서 표현된다. 전자에는 au fil de N, petit, peu a` petit, peu a` peu 등이 있고, 후자를 표현하는 어휘들에는 de plus en plus, de moins en moins 등이 있다. 이 둘간의 차이를 잘 드러내주는 것은 바로 상태를 그리는 술어들이다. (pre´dicats d`e´tat). 상태는 정적이고 항구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에 개념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시간상의 진행과는 양립이 불가능하다(*Petit a` petit, il e´tait malade). 하지만, 언어에는 이 상태와 진행을 양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어휘요소들이 있다. 점진을 나타내는 부사구 de plus en plus (ll avait de plus en plus faim au fil de la re´union), qlryrmq(lls se connaissent mieux au fil des anne´es), 상태의 변화를 나타내는 조동상 devenir (ll devenait triste au fil du voyage), 시작상 (aspect inchoative)의 가치를 갖는 동사 tomber(Petit a` petit, il tombait malade)등이 그것들이다. 이외에도 상태를 그리는 명사술어들 substantives pre´dicatifs과 결합하는 기능 동사들 가운데서 e´prouver, ressentir는 avoir와는 달리, 시간상의 진행을 표현할 수 있다. 상태를 나타내는 술어들이 정적이고 항구적인 이유에서 시간상의 진행과 양립이 가능하지 않다면, 행위나 사건을 그리는 술어들 가운데서 점상(aspect ponctuel)의 가치를 갖는 술어들은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하나의 점으로 표현될 만큼 짧은 시간 안에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상의 진행과 양립할 수 없다. (*Au fil des heures, un e´tudiant est sorti de la sale). 따라서 점상 가치의 술어와 시간상의 진행을 나타내는 어휘 요소가 같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반복을 나타내는 표지의 사용이 필수적이라 하겠다.(Au fil des heures, de nombreux e´tudiants sont sortis de la sale). 한편, 점진의 경우에는 다음의 세 가지 요소에 적용될 수 있는데, 그 요소들은 정도 (degree´), 양(quantite´) 그리고 행위의 출현횟수 (nombre d`occurrences)이다. 상태를 나타내는 술어의 경우, 점진의 어휘요소와 결합해서 정도의 강약이 표현되고 (Il est de plus en plus heureurx ; Il est de moins heureux), 행위나 사건의 술어와 결합해서는 문맥에 딸라 양의 증감이 표현된다. (Au fil des heures, il pleut de plus en plus a、 Brest). 특히 점진의 어휘요소가 명사술어와 같이 사용될 경우, 행위의 반복은 명사술어의 복수 어미-s에 의해 표현되고, 점진의 어휘요소는 반복의 증감을 나타낸다 (Au fil des mois, il fait de plus en plus de be´tises). 본 고에서는 이처럼 진행과 점진은 서로 받는 언어적 제약이 다르다는 사실과, 이러한 차이는 술어의 상적 가치와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으며 또한, 술어의 의미적 성격에 따라 점진은 정도의 강약, 양의 증감 또는 반복의 증감을 표현할 수 잇다는 것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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