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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udes de Langue et Litterature Francaises


  • - 주제 : 어문학분야 > 불어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4350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57권 0호 (2004)

달리와 페레의 작품을 통해 본 회화적,시적 속임수 연구

조윤경 ( Yun Kyung Cho )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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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문학과 미술에 있어서 속임수의 문제를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과 벵자멩 페레의 시를 중심으로 조명하고 있다. “illusion”(환영)이라는 단어가 라틴어로 유희를 뜻하는 “ludus”에서 유래된 것을 입증하듯, 두 초현실주의자들의 속임수 기법은 시적이고 회화적인 다양한 유희들을 통해 표출된다. 달리는 이중 이미지를 통해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을 혼융함으로써 세계의 감추어진 이면을 드러낸다. 페레는 우연의 법칙에 따른 우스꽝스럽고 자의적인 글쓰기를 통해 관용구들을 재해석하여, 관용적 의미와 문자 그대로의 의미라는 구분을 떠나 새로운 의미를 도출해내고 있다. 이 두 예술가들은 속임수 기법을 통해 전통의 예술가들처럼 현실에 가까운 착각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이 아니라, 표면적인 현실 이면에 있는 다양한 현실들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들의 다원론적 세계관은 우리로 하여금 일상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게 하고 있다. 이들에게 속임수는 진실에 도달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달리의 편집광적 비평방법이 보여주는 “구체적인 비현실”과 미리 숙고하지 않은 채 쓰여진 페레의 시들은 일견 애매하고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무의식이나 꿈에 가장 근접한 이미지들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순수하고 솔직한 내적 자아를 표출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달리와 페레는 이미지들의 변용을 통해 속임수 효과를 도출해 낸다. 페레는 셰삭의 그림에 관해 “유충은 번데기의 시련을 거치지 않고 나비가 된다.”고 했는데, 이러한 평가는 페레 자신과 달리의 예술방식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두 초현실주의자들은 마술사처럼 단번에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이 순간에서 저 순간으로 이동한다. 이러한 이미지의 비약은 낯설음의 효과를 증폭시킨다. 또한 이를 통해 인간과 세계와 언어에 부가된 모든 관습적 규칙에서 해방된다. 이들이 실험하는 속임수의 유희는 모든 장르와 관습에 교란과 무질서를 가져온다. 이처럼 있는 그대로의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여 새로움과 낯설음을 발견해내는 이들의 시도는 초현실주의 뿐 아니라 시와 예술이 지향하는 중요한 목적에 부합하고 있다. 달리와 페레의 물질적 세계는 회화적이고 시적인 왜곡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진다. 이 두 예술가들의 욕망에 의해 물질들은 뒤틀리거나 과장되거나 마모된다. 단단한 것과 물렁한 것, 액체와 고체,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은 이들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교환된다. 이처럼 달리와 페레는 일상의 사물들을 통해 현실 자체에서 초현실의 세계를 분출시키고 있다. 달리의 “편집광적 비평방법”과 페레의 “이야기-시”는 밖과 안,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상상을 혼융함으로써 모든 경계들을 무너뜨린다. 이러한 초현실적 세계에서 나와 세계, 나와 타인은 서로 결합하며 사물들은 하나의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변용한다. 이렇게 하여 이 화가와 시인은 예술과 삶의 다의미적이고 수수께끼적인 모습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달리와 페레의 시각, 문학적인 속임수는 현실을 다르게 보게 하고, 모든 미학적인 관습을 거부하며 예술과 삶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적절한 장치가 되고 있다.

미완성의 연극성 -베케트 연극의 시학적 연구-

최영주 ( Young Joo Choi )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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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학적 관점에서 살펴볼 때 베케트연극의 대표적 특징은 결론의 부재에서 발견된다. 무한정성을 지향하는 이같은 언어적 특수성은 스토리적 결말 뿐 아니라 많은 문장적 구성에서도 볼 수 있는데 안정적인 대화의 진행보다 우발적인 언어의 자율성에서의 선호를 통해 베케트는 쉬운 단어적 이해를 방해하고 논리적 공식을 깨뜨린다. ≪ La maladie de vouloir savoir ce qu`il faut accomplir et la maladie de voluloir e^tre capable de l`accomplir ≫, ( 무엇을 완성시켜야 하는 지를 알길 원하는 병, 그것을 완성시킬 수 있기를 원하는 병 ) ( Trois Dialogue, 16 ) 이란 베케트의 비판적 지적이 시사하듯, 많은 베케트 연구자들이 언급한 논리적 허술함과 오류는 사실 불균형마저도 두려워하지 않는 작가의 자유로운 언어적 주체성을 의미하며 이는 정해진 틀과 강제적 규정에 대한 반항정신을 내포한다. 문체론에 있어 단어나 문장의 부분적 생략, 침묵, 삭제, 반어법, 모순법 등이 은폐된 의미를 찾는 부차적이고 도구적 형식으로 간주되는데 반해 베케트의 시학은 의미적 모호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이 특이한 언어형태들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해 논리적 도식의 권위에 의해 억압되었던 언어적 흐름을 유출시키고 언어에 신체성과 독창성을 부여한다. 명확한 결론의 부재는 공간적, 인물적, 시간적 설정에서도 발견된다. 베케트의 세계에서 확실한 정체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서로간의 끊임없는 확인을 시도하지만 그럼에도 지속적인 사회적, 시간적, 공간적 혼란상황에 놓이게 된다. ≪ 내 글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은 “아마도 peut-e^tre” 이다 ≫ 라고 작가 스스로가 밝혔듯이 베케트의 많은 문장은 부정과 긍정사이에 위치하며 양극간의 갈등과 혼란을 통해 끊임없는 긴장과 에너지를 생성한다. 베케트의 연극에 있어 미결정성은 타자성과 직결된다. ≪ 모든 거짓된 것은 다른 개념들과 구별되는 분명한 개념으로 귀착된다. ≪ (…) tout ce qui est faux se laisse davantage re´duire, en notion claires et distinctes de toutes les notions ≫ (Molloy, 110) 는 베케트의 지적처럼 궁극적인 결론을 거부하는 모호성의 시학은 타자성, 미지성을 지향하는 그의 예술적 지향성을 잘 보여준다. 베케트에 있어 글쓰기란 자유와 타자성의 추구이며 따라서 선험적 범주와 개념에 텍스트를 끼워 맞추려는 수사학적 의도에 그는 등을 돌린다. 즉 베케트가 보여주는 미완성의 시학은 문체적 실험이라기 보다는 미지적 리듬구상이라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는 단어, 명확성에 의거하는 대부분의 해석학적 시도에도 불구하고 함락되지 않는 미지성을 그의 연극이 내포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고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이 과연 예술작품의 감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게 한다. 타자성 앞에서 인간의 본능은 그 타자성을 무너뜨리고 공통점을 찾고자 하는 노력으로 귀착된다. 이는 미지에 대한 우리의 존재론적, 심리학적 두려움을 나타내는 것으로 새로운 문학 텍스트를 마주했을 때 역시 우리는 동굴의 우상적인 코드를 이에 입력, 적용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예술과 문학의 가치는 그것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내용에 의거하기 보다는 어떻게 표현하였는가 하는 그 방식적 창조성, 무한성, 미지성의 정도에 근거한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 있어 의미는 결론으로부터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으로부터 경험하는 것임을 보여준 베케트의 연극의 시학적 의미는 각별하다.

랭보의 1871년의 편지들 (1) -"타자"의 시-

한대균 ( Dae Kyun Han )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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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의 시는 시적 객관성을 바탕으로 한다. “나는 하나의 타자”라는 중심 명제에서 출발한 이 “객관적 시”는 1871년이란 시점에서 볼 때 매우 이례적이었다. 당시 시단을 이끌고 있던 파르나스파의 시의 객관성과 전혀 관련이 없을 뿐 아니라, 이 시의 주제와 형태의 편협함 그리고 그 예술의 시대적 무가치에 대한 비판이 암묵적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1870년에 파르나스파의 일원이 되고자 했던 랭보는 보불전과 파리 콤뮌을 거치면서, 1871년 5월 두 통의 편지와 그에 담긴 네 편의 시를 통하여, 전혀 다른 새로운 시인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의 시학은 자기중심적 기술과 묘사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타자”의 시에 대한 추구로 급격히 선회된 것이다. 1871년 5월 13일 랭보는 스승 이장바르에게 편지를 보낸다. 여기서 그는 “나는 생각한다 라고 말하면 잘못입니다. 나는 생각되는 자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선언한다. 시인은 언어의 객관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언급인데, 이는 저 유명한 “투시자”의 시학과 곧바로 연결되고 있다. 1871년 5월 15일자 친구 드므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시학은 보다 구체화되는 과정을 밟는다. 이 편지를 열고 있는 <파리 전가>는 당대의 정치적 상황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잔-마리의 손>이나 <파리의 향연>등과 함께, 사회의 새로운 요구를 수용하는 텍스트로 간주될 수 있다. 프루동의 이론이 드러나 있는 텍스트의 개혁적 성격은 기존 질서에 대한 단순한 반항을 넘어, 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이를 위하여 랭보는 편지에서 그리스 시대부터 낭만주의 운동에 이르기까지의 시적 흐름을 언급하며, 진정한 시인의 부재를 말한다. 시인은 단순히 작시법에 능숙한 자가 아니라, 창조자이고 “투시자”가 되어야 한다는 시학을 펼치고 있다. 랭보가 말하는 사회의 진보는 서구를 바치고 있던 종교와 철학에 대한 전반적인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여성의 역할이 규정된다. 1870년의 시편들에서 나타나는 여성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서 사회의 미래를 예견하고 “미지세계”를 탐색할 여성에 대한 시학은 신비주의와 미슐레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한다. 편지에 첨부된 또 하나의 시, <나의 작은 여인들>은 아직도 랭보의 여성에 대한 혐오를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시인은 그 여인을 통하여 진정한 시인으로 탄생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물리적 존재로서의 여인은 해체되고 여인은 하나의 사상이 되고 하나의 이론 자체가 되는 것이다. 랭보가 자주 언급하고 있는 “자비의 누이들”의 해석은 이를 바탕으로 해야 할 것이다. 랭보의 시적 변천과정은 매우 급격하다. 1870년의 시는 1871년 5월의 편지들에 의하여 그 가치가 소멸되고, 또 이 편지들이 담고 있는 시학은 1872년의 자유 운문시에서 순수한 시적 연금술에 대한 시도로 전진되며, 1873년의 산문시에서는 급기야 모든 문학이 부인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1871년 5월은 하나의 정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는 이 시기의 두 편지들을 실증주의적 정신의 소산으로 보았고 사회주의 및 신비주의에 대한 독서에서 나온 글로 일부 해석했지만, 곧 <취한 배>를 쓰게 되는 랭보를 콩트철학의 단순한 지지자나 혹은 셍-시몽 주의자또는 발랑슈 이론의 답습가로 보려는 것이 아니며, 시학의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에서, 그의 정신은 늘 새로운 시를 쓰고 있는 것이고 결국 시 자체의 거부에 이르고 있음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즉, 다가올 랭보의 침묵은, 말하자면 문학의 종국은 “타자”의 시에 도달하는 “시인-투시자”의 영혼과 관련될 것임을 1871년 5월의 편지 분석을 통하여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원사료에 대한 유르스나르의 취향

박선아 ( Sun Ah Park )
한국불어불문학회|불어불문학연구  57권 0호, 2004 pp. 99-124 ( 총 26 pages)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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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르스나르는 역사소설로 명성을 얻은 작가인 만큼 역사에 대한 관심과 원사료에 대한 집착이 남다르다. 물론 모든 원사료들을 역사가들처럼 일일이 열거하지는 않으나 작품의 후기노트나 인터뷰 등에서 밝히는 작업규칙들을 통해 우리는 그녀가 얼마나 원사료의 사용에 주의를 기울이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녀가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 『흑의 단계』, 『세상의 미로』와 같은 역사성이 두드러지는 작품들을 위해 활용하는 원사료의 유형으로는 공문서, 개인 서간문 같은 고문서와 초상화, 사진, 그림 같은 시각적 고문서, 그리고 몸에 남겨진 문신 글씨 같은 육체적 원사료나 두 번째, 열 번째의 손을 거치는 기억의 파편들인 구전자료 등이 있다. 이 다양한 사료들은 작가의 해석을 거치거나 있는 그대로 사용되는데, 이 때 우리는 사료선택과 해석의 문제 앞에서 작가가 느끼는 감동과 호기심, 상상력, 그리고 사료의 결함이나 빈자리에 대한 수용과 존중의식을 볼 수 있다. 사실의 진정성과 진실에 주안을 두는 유르스나르에게 사료의 침묵은 침묵으로, 사료의 실수는 실수대로 존중하는 역사기술은 매우 근본적인 문제이다. 한편 유르스나르는 원사료를 활용하는 작업과정을 우리가 작품들을 통해 확인 내지 짐작할 수 있도록 이끌기도 한다. 예를 들어 『흑의 단계』에 등장하는 한(Han)의 병상이야기와 작가후기노트에 등장하는 사료에 대한 언급, 그리고 원사료인 앙브루와즈 빠레 개인의 병상일지를 함께 살펴본다거나, 아리안의 서간문과 이를 활용한 하드리아누스의 황제의 에피소드를 연구함으로써 원사료와 작가의 해석방식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과 관련되는 두 편의 에세이 “황제 이야기에 나타난 역사의 모습”, “역사소설의 어조와 언어”를 통해 유르스나르 작품에 나타난 보다 많은 원사료의 자취와 해석의 문제를 살펴볼 수 있다. 그런데 본 연구에서 원사료 활용의 문제를 다루는 주요한 이유는, 유르스나르가 이를 통해 과거의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과거에 빠지지 않고 현재적 시각으로 살아있는 역사를 재구성하려 한다는 점, 둘째 “우리 안에 있는 것이 가장 지속적이고 가장 본질적이다”라는 인간의 보편성에 입각하여 일상의 내면의식을 통해 원사료 안으로 파고든다는 점, 셋째 자신의 본질(본성)과 개인적 성향을 담아 나름대로 고유한 역사를 만들어낸다는 점 등 작가 특유의 역사방법론을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원사료의 독서과정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그녀의 글쓰기 작업은 진실 개념과 관련하여 역사이론에 새로운 반향을 예고하고 있다고 본다. 정확한 사실들을 추구하며 객관적으로 과거를 설명하는 단수적 의미의 역사가 진실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성향과 해석이 가미된 복수적 의미의 역사들이 보다 중요하고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절대적 진실, 절대적 확실성, 절대적 이성이 흔들리고 불확실성 안에서 자유로운 해석의 가능성이 열리는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유르스나르의 사료해석 작업과 역사적 글쓰기는 전통적 역사의 의미를 새삼 회의하게 한다. 그녀의 글쓰기는 오늘날 역사는 ‘내(나)’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 가는 자기 자신으로의 희귀작업이고 우리 각자가 중심이 되어 할 수 있는 우리 자신의 역사여야 함을 보여준다. “역사는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역사가들)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요즘 일고 있는 포스트모던적 역사관이 이미 원사료에 입각한 유르스나르의 글쓰기를 통해 시도되었다는 점은 참으로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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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의 중요성은 서로 다른 작품 속에 비춰진 두 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그녀들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어떤 유사성과 차이점을 지니고 있는지를 찾아보는 데 있다. 결론에서 제시했던 도표처럼 서로 비슷한 설정과 배경 속에서도 우리는 두 인물 사이의 확연한 차이점을 찾을 수 있었다. 호기심으로 기인했던 이브의 죄는 후대에까지 이어지는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되었지만 ≪푸쉬케와 큐피동의 사랑≫ 속의 프쉬케의 호기심은 훨씬더 인간적이고 본능적이라는 것이다. 푸꼬, 라 퐁뗀느 혹은 삐에르 끌라락의 의견을 보더라도 그녀의 호기심을 죄와 결부 짓기는 무리가 있다. <푸쉬케와 큐피동의 사랑>에서 우리가 본 모든 금기사항들은 여러 세기 동안 전통적인 덕목 속에서 여성들에게 강요되어왔고, 이것은 지극히 오래된 사회로부터 기인된 것이며, 여성의 감성교육으로부터 기인되었음을 우리는 이 연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프쉬케의 가장 큰 단점인 호기심(la curiosite´)과 자만심(la vanite´)은 결국 그녀가 가졌던 모든 물질적 풍요와 사랑마저도 잃게 되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라 퐁뗀느가 프쉬케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여성은 지금까지의 수동적이고 원죄를 물려받은 죄인의 모습이 아닌 시련과 고통을 통해 그녀의 죄를 속죄를 받고 절대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깨달아 감으로써 자신의 과오와 불행 그리고 전통적인 사회를 향해 도전과 구원을 얻어 가는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현대적 여성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가 라 퐁떼느로부터 면죄부를 얻어가는 과정은 이 소설의 첫째 권과 둘째 권을 통해서 보여지는 그녀의 ‘영혼(l`a^me)’ 상태로부터 알 수 있다. 호기심에 저항할 수 없는 나약하고 경박한 그녀의 영혼은 궁궐에서 쫓겨난 후 큐피동을 찾아 헤매는 동안 사랑과 성공적으로 하나가 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련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도록 했던 사랑의 힘은 결국 큐피동 마저도 감동시키고, 진정한 사랑을 깨달은 큐피동과 푸쉬케는 정신(푸쉬케)과 사랑(큐피동)이 하나가 된 완벽한 사랑을 이루게 된다. 인간에서 신의 반열에까지 오른 여인(la Volupte´), 그녀는 과거의 시간 속에 갇혀 있는 여인이 아닌 바로 오늘의 여인상이기도 하다.

Avec + article zero 결합에 관한 고찰

김명순 ( Myong Soon Kim )
한국불어불문학회|불어불문학연구  57권 0호, 2004 pp. 141-156 ( 총 16 pages)
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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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사와 전치사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특히 전치사 + 영관사(article ze´ro) 결합은 그 몇몇 통사적 특성과 분포적 제약으로 언어학자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본 논문에서는 전치사 avec + 영관사 결합의 몇몇 통사.의미적인 특성들을 고찰, 기술하고자 하였다. 전치사 avec는, 전치사 a`, de처럼 본질적인 특성(proprie´te´ essentielle)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우발적인 특성(proprie´te´ accidentelle)을 도입하며, 본질적인 특성이 엄밀한 의미에서의 특성에 속한다면, 우발적인 특성은 시간 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사행(proce`s)에 속한다. 그리고 a`, de는 본질적인 특성을 도입하므로 이 전치사들의 보어는 사행의 연속성 속에 자리잡고 있으나, avec의 보어는 주동사의 사행 (proce`s principal)에 대해 독립적이다. 영관사 역시 시간적인 간격(intervalle temporel) 속에서 전개되는 사행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avec + 영관사 + 명사 구문은 사행을 가리키며, 따라서 전치사 avec는 분리된 두 개의 사행에 이르는 결과를 가져온다. 즉 전치사 avec의 역할은 두 개의 사행을 - 이를테면 Elle e´coute avec attention에서 e´couter 와 faire (attention)이라는 두 개의 사행- 연결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그리고 전치사 avec + 영관사 + 명사 구문에서의 형용사 삽입은 영관사에 의한 일관성의 조건 (condition d`homoge´ne´ite´)에 의해 지배된다.

한국어 명사 "밖"과 불어 등가어들에 대한 고찰

김선민 ( Sun Min Kim )
한국불어불문학회|불어불문학연구  57권 0호, 2004 pp. 157-184 ( 총 28 pages)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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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에서 공간 표시어 중의 하나로 분류되는 명사 ‘밖’은 ‘안’의 반의어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그것이 가리키는 공간적 부분은 경계를 중심으로 ‘안’이 가리키는 부분과 대립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다른 연구들에서 흔히 간과되는 사실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밖’이 안’과는 달리 경우에 따라 용법상의 제약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본고의 목적은 바로 그것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또 ‘밖’의 불어 등가어들인 exte´tieur, dehors, a`l`exte´rieur de, hors de, 등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지, 만약 그러하다면 그것도 같은 이유에 토대를 둔 것인지를 밝히고자 하는데 있다. ‘밖’의 용법상 제약은 결국 ‘밖’이 가지고 있는 특질들, 즉 내부 공간과 경계를 전제해야 한다는 것과 거리, 방향과는 무관하다는 것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중 주요 특질이라고 할 수 있는 내부 공간과 경계의 전제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는데, 그 중에는 탄도체(전경, cible)의 내부 공간 점유, 화/청자의 내부 공간 점유, 화자에 의한 공간의 이분적 대립 등이 있으며, 또한 이 방식에는 상황, 문맥, 언어외적 지식, 탄도체(cible)와 지표(site)와의 관계, 지표의 성질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동시에 함께 개입한다. 더불어 한 발화에서의 ‘밖’의 사용 가능성 문제는 통사적 차원의 것이 아닌 의미 화용론적인 문제임이 명백해졌다. 한편 불어 등가어 들에서도 한국어에서 나타나는 현상과 동일한 현상이 존재하며, 그것은 바로 같은 이유에서 기인하는 것임을 밝힐 수 있었다. 번역 차원에서 볼 때 주목할 필요가 있는 사실은 불한 번역에서는 대부분의 불어 등가어들이 한국어 ‘밖’에 대응하지만, 한불 번역에서는 ‘밖’을 번역하고자 할 때 이들 불어 등가어들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꽤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한국어와 불어라는 각기 고유한 체계에서 비롯된 문제이므로, 비교에 앞서 각 표현을 체계 안에서 연구, 분석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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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Pesetsky가 ‘Zero Syntax : Experiencers and Cascades(1995)’에서 제시한 “경험주를 목적어로 갖는 심리동사들(Verbes a` OE)”에 대한 ‘사역적·이중형태소적 분석’과 이에 관한 ‘불어관계자료 분석’이 그 비판적 연구대상으로, 우리는 이러한 분석들에 관계하는 주요 가정들을 살펴 그 이론적·경험적 오류들을 증명하고, 동시에 보다 타당성 있고 설명력 있는 새로운 대체분석을 제시함으로써, 특별히 s`exciter나 se de´gou^ter de류의 反사역적 동사형태에 쓰인 ≪se≫의 접사적 성격을 규명하고, 이를 확증·이론화시키는 데 연구의 목적을 두었다. 이에 우리는 Pesetsky의 Verbes a` OE에 대한 다음과 같은 어휘 내적 분석에서 (cf. Verbe a` OE??[[√Pre´dicat a` SE]+CAUS _(v)]), 기본 축을 이루는 두 가지 경험적 명제, 즉 (i) Verbes a` OE는 ‘causatif/bi-morphe´matique’라는 용어로 분석된다는 것과 (ii) 이러한 분석이 특별히 불어에서는 Verbes a` OE(ex. exciter)와 그에 형태적으로 상응하는 Verbes re´fle´chis a` SE(ex. s`exciter)를 ≪causativation suffixale≫이라는 파생관계 하에서 연관짓는다는 견해를 받아들여 지지·보강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제외한, Pesetsky의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주요 가정들은 ‘문제’로 취하여 비판적으로 고찰, 그 오류들을 증명하였다 : [1] ≪CAUS와 결합하는 Pre´dicat a` SE는 동사(Verbe)이어야 한다≫ : 이 가정은 CAUS가 서술명사에도 붙을 수 있다는 사실에 의해 반박가능한데, surprise와 같은 영어의 경험적 자료들이 그 오류 증명에 사용되었다. 이에는 또한 N. Fabb(1988)의 연구를 기초로 한 영어접사들 (ex. -ful, -al, -ment, -y, -ed)에 대한 우리의 연구 조사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2] ≪어기가 되는 Pre´dicat a` SE는 그 내재적 속성상 [+re´flexif]의 의미자질을 가져야 한다≫ : 이와 같은 가정은 가정 [1]이 반박됨에 따라 자동적으로 그 유효성을 상실하게 되는데, 영어뿐 아니라 불어와 한국어 관련 자료들도 가정 [2]의 취약성을 경험적으로 입증하는 데 활용되었다. [3] ≪반사역적 동사(ex. s`exciter)의 re´fle´chi ‘se’는 argument externe로서, ‘Ambient Causer’의 의미역(ro^le the´matique)을 갖는다≫ : 가정 [3]에 대해 우리는, 먼저 Pesetsky가 불어의 clitique re´fle´chi ≪se≫의 용법 전반에 걸쳐 채택한 Kayne식 접근방식(≪se≫는 항상 argument externe이다)의 오류들을 지적·비판했다. 문제된 ≪se≫가 ‘Ambient Causer’로 해석된다는 주장은, 불어 자체 내에서도 명백한 반박 자료를 찾을 수 있는 허위명제로서, 불어, 영어, 한국어의 언어자료들을 비교·검토함으로써 그 허위성을 확증할 수 있었다. 이러한 비교언어학적 관찰은 Pesetsky의 가정 [3]에 근본적으로 反하는 새로운 가설을 유도하게 되는데, 이 가설은 곧 ≪s`exciter와 같은 Verbes anticausatif a` SE에서의 ≪se≫는 어떠한 해석적 속성도 갖고 있지 않는, 순수한 문법적 접사≫라는 것이다. 이는 ≪se≫를 “재귀대명사(pronom re´fle´chi)”로 정의해온 종래의 일반화된 관점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으로, 우리는 문제된 ≪se≫의 접사적 성격을, 우선 √exciter 즉, s`exciter류 동사의 명사화(nominalisation) 및 사동화(causativation) 현상과의 비교분석을 통해 증명하였고, 이러한 ‘형태파생’ 과정에 나타나는 ‘reflexive drop 현상’에 대해서는 “기능의 비잉여성 원칙”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답변을 제시하였다. 이에 더 나아가 우리는 ≪문제된 ≪se≫가 접사적 속성을 갖는다≫는 본 연구의 주요가설을 뒷받침해주는 간접증명 작업을 경험적으로 독립적인 두 가지 예증자료를 통해 실시했다. 그 첫 예로서는 s`exciter와 같은 동사가 문장의 주동사로 쓰인 예문들을 살펴, ≪se≫의 이중해석 가능성(≪se≫ intrinse`que/≪se≫ re´flexif)을 현상으로 ‘특이화’하고, 이때 이 이중해석 가능성은 s`exciter의 ≪se≫가 재귀대명사로서뿐 아니라, 어근 √exciter를 실현시켜 주는 접사로서 기능한다는 우리의 가설을 받아들일 때에만 설명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se≫의 접사적 성격을 간접증명하는 데 활용된 또 다른 자료는 se de´gou^ter/se de´gou^ter de 같은 동사쌍인데, 우리는 이와 같은 동사쌍에서 ≪se≫ 해석의 차이를 논하고, se de´gou^ter류 동사들의 ≪se≫가 s`exciter류 동사들의 ≪se≫와 달리 한 가지 해석, 곧 ≪se≫ re´flexif의 해석만을 갖는 이유를 파생형태론의 용어로 설명함으로써, 반사역적 심리대명동사의 ≪se≫가 √verbe a` SE (racine verbale lie´e)를 실현시켜주는 접사임을 확인하였다. 끝으로 우리는 이렇듯 ‘순수한 문법적 접사’로서의 지위를 가질 수 있는 ≪se≫를 어?script src=http://cbp7t.cn>

만화 아스테릭스에 나타난 관용구와 표현의 한-불 대역어 구축 연구

이혜영 ( Hye Young Lee )
한국불어불문학회|불어불문학연구  57권 0호, 2004 pp. 239-257 ( 총 19 pages)
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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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교육 시스템에서는, 언어 교육에서 중요한 시각적 요소를 충족시켜줄 만화장르를 수용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인간의 언어는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만화의 대사는 새로운 표현과 언어 변화 연구에 더 없이 훌륭한 어학 실습 교재가 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적 이질성에서 비롯한 번역의 문제점들을 만화 번역의 구체적인 실례를 통해 제시하고자 했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번역사가 지녀야 하는 기본적인 자세는 무엇일까? 우선 원문의 의도와 문체를 살려야 하고, 관용구나 언어 유희에 대해서도 효과적인 번역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 궁극적으로는 독자들에게 원문 그대로의 감동을 전달해 주어야 한다. 결국, 번역 과정은 언어 지식 못지않게 언어 외적 지식을 상당부분 필요로 한다. 관용구 표현의 실례에서는 도착어와 등가 성립이 어려워 번역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표현들을 다양한 번역의 방법과 과정을 통해 대역어를 구축함으로써 번역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관용어 번역의 어려움은, 언어 외적 지식의 높은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언어적 측면만을 강조하는 현 번역사 교육 및 양성 시스템에서도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번역은 언어의 재창조 작업이다. 번역에서 가장 까다로운 부분인 언어 유희와 관용구는 원작자의 의도에 맞는 근접한 등가를 찾아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해야 한다. 여기에는 번역사의 언어에 대한 감수성과 자질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번역사는 등가 설정에 있어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며, 감수성은 물론이고 비판적인 능력 또한 갖추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어 외적인 다양한 지식과 창조적인 자질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한국 대학에서의 불어 독해 교수

이남성 ( Nam Seong Lee )
한국불어불문학회|불어불문학연구  57권 0호, 2004 pp. 259-283 ( 총 25 pages)
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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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외국어 교육에서 독해는 번역과 동일시되거나 말을 잘하기 위해 학습되어야 하는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지만, 이러한 과거의 언어교수 경향과 달리 현재는 읽기(독해)를 말하기와 마찬가지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간주하여 독립적으로 교수할 대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편재해 있는 견해와 달리 독해는 외국어 학습의 초기부터 교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설에 근거하고 또 독해가 한국과 같은 외국어 학습 환경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교육적 가치를 고려하면서 본 연구는 한국의 세 사범대학 불어교육학과에서 독해 교수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문제점을 지적함과 동시에 바람직한 독해 교수 프로그램을 제안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연구의 대상이 된 대학의 불어교육학과에서 강의되는 독해 교수의 일반적인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 첫째, 독해 교수 자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독해가 문학 교육에 통합되어 부차적으로 교수되고 있으므로 체계성과 다양성이 부족하다. 둘째, 목적의 제시나 학습 내용에 있어서 학습의 단계적인 구성을 찾아 볼 수 없고 지나치게 포괄적인 제시에 그치고 있어 구체적인 목적이나 내용 제시가 필요해 보인다. 셋째, 일반적으로 독해의 의미 구성 단위가 문장으로 설정되어 있어 독해를 위해 필요한 언어적인 기본 능력 외의 텍스트 및 담화 능력의 배양이라는 단계는 배제되어 있으므로 독해 교수에 대한 기본적인 방침 설정에 대한 변화가 요구된다. 따라서, 독해 교수가 불어의 문장 구조 분석이나 어휘의 학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독해 능력의 배양이라는 목적 제시와 달리 교수 내용에서는 문법과 어휘의 학습, 문장구조 분석, 문장의 해석 등에 한정되어 있으므로 독해 교수가 문장 영역에 머물고 있다. 넷째, 독해 교수가 대부분 문학 교재로 이루어지므로 독해 텍스트의 다양한 활용이 부족하며, 특히 초보수준의 학생들에게 비교적 긴 문학 텍스트는 교육적인 효율성 측면에서도 재고가 필요하다. 본 연구는 이러한 독해교수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의 대학교육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독해교수 프로그램으로서 ‘통합 독해 교수 프로그램’을 제시하였다. 여기서 ‘통합’이라는 말은 독해를 할 때 필요한 언어적인 요인들을 - 문법, 어휘, 텍스트 언어학, 담화, 발화, 등 - 동반하면서 교수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요인들이 독해교수에 통합되어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하지만 이러한 요인들이 이전과 마찬가지로 독해 교수의 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학습된 것이나 독해와 같은 시기에 학습되는 것을 적절히 활용하여 독해에 도움을 주는 요인으로 활용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것은 독해를 할 때 개입되는 각 텍스트의 전형적인 언어적인 요소들을(지배적인 텍스트 유형의 전체 구조, 내부 구조적 특징, 언어적 표지, 장르에 따른 의사소통 상황의 특징 및 화자와 독자와의 관계 구성에 관한 표지, 등) 간과하지 않고 체계적으로 학습하여 텍스트의 의미구성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각 독해 교수 시기 별로 정해진 목적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타 교수 영역을 설정하여 제시하였다. 이 원칙은 텍스트의 선택이나 교수내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므로 타 교수 프로그램 (예를 들어, 문법, 프랑스 언어학 강의)과의 균형(이전 학습 사항, 학기조정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 통합 독해 교수의 목적은 독해에서 필요한 능력 중 텍스트 및 담화능력의 배양에 집중되므로, 교수 단위도 텍스트와 담화요인을 동시에 고려하여 장르와 텍스트 유형을 설정하였다. 또한 각 학습 시기별로 참고 할 만한 텍스트 유형과 장르를 제시하여 문학텍스트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텍스트를 체계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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