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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udes de Langue et Litterature Francaises


  • - 주제 : 어문학분야 > 불어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4350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77권 0호 (2009)

『젊은 빠르끄』에 나타나는 분열의 풍경

김시원 ( Si Won Kim )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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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풍경`이란 바로 "영혼의 상태"를 반영하며, "객관적인 만큼 주관적이고, 외적인 현실인 만큼 내적인 현실"로서의 작품 속 풍경이다. 작가에게서 집요하게 반복되어 나타나는 공간적 메타포어들은 그가 작품 속에 은밀히 숨겨놓은 가장 은밀한 감정, 혹은 세계와 존재에 대한 가장 내밀한 사고를 감추고 있기 때문에 풍경에 대한 연구는 한 작가의 작품세계 연구에 중요한 관점을 제공할 수 있다. 자신의 내면에서 《지성과 감수성의 대립이 극단적》이며 《사고는 아주 남성적이며, 감수성은 여성적인 것》이라고 느끼는 발레리의 시적 묘사에 있어서 대조적 이미지들은 그의 이러한 정신세계를 반영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다양한 이분대립 쌍들의 체계를 중심으로 그의 시 속 풍경을 분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한 미간행 시에서 《태양은 나의 아버지, 바다는 나의 어머니》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처럼 그의 시 속 공간은 하늘-태양과 대지-바다의 대립에 의해 수직으로 분할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성-지성. 정신과 여성-감수성·육체라는 성을 중심축으로 한 대립관계들에 의해서 역시 이분되고 있다. 발레리의 『주문 Charmes』시집의 시들은 한편으로는 수직 상승의 표지들인 태양, 창공과 긴밀히 연결된 공간, 비상의 꿈과 남성성에 결부된 앙젤리즘 angelisme의 풍경을, 다른 한편으로는 대지의 어두움이나 육체의 풍요로움, 수유의 풍경 등 `대지에서의 휴식에 대한 꿈`과 여성성에 대한 환타지를 암시하는 풍경을 표현하고 있다. 한편 「나르시스 단장들 Fragments du Narcisse」의 풍경은 이처럼 창공과 대지, 남성과 여성의 대립쌍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풍경의 메커니즘에 대해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처음 이 시는 남성적 순수정신과 여성적 육체, 비상의 야심과 대지의 꿈 사이의 투쟁으로 특징지어지지만 나르시스가 `보는 자아`와 `보이는 자아`, 그의 《순수한 육체》와 《달콤한 육체》의 결합을 위한, 연못에의 입맞춤을 시도하는 순간, 연못은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이승 하늘》이라는 유토피아적 공간이 된다. 본고가 또 다른 나르시스, 즉 이 사색적 인물의 여성적 표현형이라 할 수 있는 젊은 빠르크의 내적 여정이 그리는 풍경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단지 이원성으로 가득 찬 또 다른 균열의 공간을 찾아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로부터 오랫동안 유리되어 왔던 남성적 지성과 여성적 감성이 소통하는 화해의 공간에 이르기 위해서이다. 여주인공의 세 번의 잠과 깨어남으로 구성되어 있는 시 『젊은 빠르끄 La Jeune Parque』의 공간은 그녀의 되풀이되는 방황에 의해 복잡하게 얽히고, 상반적인 욕망들에 의해 양분되며, 그 풍경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낙원의 공간과 지옥의 공간, 정신성만이 지배하는 공간과 실존의 공간, 창공의 풍경과 대지의 풍경 등 상반적인 메타포어들이다. 에덴의 풍경은 자연과 인간의 태초의 합일상태를 표현하고 있지만 빠르끄는 그 눈부신 태양 아래에 감추어진 그림자를 발견하게 되며, 오로지 `육체인 상태`로 정의되던 존재의 순수성을 버리고 정신성의 운명을 찾아 에덴을 떠난 그녀가 정작 정신의 여정에서 보게 되는 것은 지옥의 풍경이다. 그것은 또한 뒤얽힌 수수께끼와 역설적 의미들로 어지러운 미궁의 풍경이기도 하다. 그녀의 계시자인 `뱀`의 역설적인 상징성이 암시하듯, 한편으로 정신의 초월성과 다른 한편으로 관능적 삶에 이끌리면서 빠르끄의 내적 모험은 때로는 천상을 향한 상승으로 때로는 대지로의 하강으로 묘사되고, 풍경은 차례로 빛과 어두움에 관련된다. 이 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 할 수 있는 봄의 풍경 속에서는 대지에서 누리는 행복에 대한 유쾌한 판타지가 펼쳐지지만 곧 지옥의 풍경에 의해 침범당하고 만다. 하지만 풍경 속에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 이러한 주저와 동요는 새로운 균형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이 시의 마지막 장면이 그리고 있는 바닷가의 풍경 속에서 우리는 지옥과 같은 내면의 미궁에서 마침내 벗어나 삶의 충만함에 취한 《피끓는 처녀》를 보게 되지만 그 삶은 정신에 의해 승화된 삶을 의미한다. 그동안 서로 배척해왔던 정신과 육체의 조화로운 합일은 대자연인, 바다와 태양이 결합하는 풍경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인식과 존재, 천상과 대지의 구분이 없어지는 궁극적 공간에 대한 비젼을 보여주며, `천상의 정신에 의해 승화된 대지`라는 `종합적인 synthetique` 유토피아의 개념을 암시한다. 그것은 발레리가 아직은 이르지 못했지만 훗날 그의 시극 『앙피옹 Amphion』에 의해 마침내 도달하게 되는 그의 유토피아의 궁극적 형태인 것이다.

앙리 미쇼의 등장인물 플륌 분석

김용현 ( Yong Hyun Kim )
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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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미쇼의 작품들은 전통적 장르의 틀을 벗어나는 다양한 형식들과 독특한 시적상상력이 특징이다. 미쇼는 현대의 많은 시인들과 달리 새로운 존재들과 대상, 상황들을 창조해낸다. 상상 나라의 부족들과 함께 기이한 이름을 가진 존재들이 작품 속에 많이 등장하는데 특히 그 가운데에서 플륌 Plume은 텍스트의 형식과 인물의 특성에서 매우 독특한 면을 보여준다. 플륌은 13개의 짧은 이야기로 이루어진 「플륌이라고 하는 사람」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서로 다른 주제로 독립되어 있으며, 콩트의 서술 형식을 빌리고 있다. 미쇼에 따르면, 플륌은 그의 수많은 여행속에서, 보다 넓게는 작가가 처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태어나며, 작가와 세계와의 갈등에서 `완충장치`의 역할을 한다. 에드가 엘런 포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플륌이라는 이름은 `새의 깃털`이라는 의미에서 존재의 가벼움을 의미하기도 하며, `깃으로 된 펜`이라는 의미에서 글쓰기 자체를 상징한다. 플륌은 한 때 미쇼의 필명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플륌은 단순하고, 유약하며, 무관심하고, 원초적이며 끊임없이 떠돌아다니는 인물이다. 플륌은 먼저, 작품에 언급된 모자와 지팡이라는 소지품, 행동과 성격에서 미쇼가 큰 관심을 가졌던 채플린의 샤를로를 연상시킨다. 또한 플륌은 기상천외한 여러 사건들 속에서 그가 지닌 순진무구함과 순박함을 통해 세상의 폭력과 억압을 대조적으로 드러낸다는 면에서 볼테르의 캉디드를 닮는다. 그리고 여행이 불연속적인 그들의 모험과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두 인물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마지막으로 플륌은 카뮈의 뫼르소와 비교될 수 있다. 부인의 죽음과 재판과정에서 보여주는 플륌의 무관심과 계속되는 잠은 뫼르소가 재판에서 보여주는 부조리의 철학을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플륌은 미쇼를 대변하는 독특한 등장인물이다. 절망과 허무에서 새로운 전망을 창조하는 캉디드와 뫼르소처럼 플륌은 나약함을 존재의 유연함으로 변모시키는 미쇼의 작품정신을 구현한다.

레리스의 "잘린 목" 환상 -"목 자르기"에서 "다시 붙이기"로

유호식 ( Ho Shik Yu )
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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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리스에게 있어 육체는 주체와 대상을 연결하는 매개물이며, 죽음과 글쓰기에 대한 사유가 전개되고 정체성의 위기가 경험되는 공간이다. 죽음의 드라마가 형상화되는 데에 있어, `잘린 목` 환상은 그의 글쓰기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나타나는 주제로서 이 주제를 중심으로 레리스는 삶의 신화적 차원, 언어적 차원, 행위의 차원을 검토하고 있다. 우리는 이 환상을 통해 글쓰기의 기원의 문제, 글쓰기를 정당화하는 방식을 고찰할 수 있다. 레리스의 첫 자서전 『성년』은 뤼크레스와 쥐디트, 그리고 홀로페른이라는 세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레리스는 뤼크레스와 쥐디트 두 인물을 그린 크라나크의 그림을 발견하면서 자기 삶의 구조를 이해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에, 자서전적인 성찰의 글쓰기의 기원에 이들이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그림을 발견하게 된 데에는 또 다른 계기가 있었다. 그는 목이 잘린 세례 요한의 사진을 찾으려다가 그 그림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례 요한의 `잘린 목`은 레리스가 청소년기에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마르그리트의 목에 있는 붉은 색 리본을 보고 싶었지만 연극에서는 한 번도 그 죽음의 흔적을 보지 못했다는 또 다른 기원과 연결된다. 붉은 색 리본은 마르그리트의 목이 잘렸다는 표지인데, 그 표지를 볼 수 없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죽음의 경험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잘린 목`의 환상을 통해 레리스는 크라나크의 그림(뤼크레스와 쥐디트)에서 출발하여 세례 요한의 잘린 목 사진으로, 그리고 『파우스트』의 부재하는 죽음의 장면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으로 미끄러지는 과정으로 기원의 탐색 과정을 형상화하고 있다. 레리스는 가장 구체적인 것에서 출발해서 부재하는 기원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와 같은 기원의 탐색 결과 우리는 그의 정체성의 탐색이 `잘린 목`이라고 하는 불가능한 죽음의 환상, 부재에 대한 의식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년』이 `잘린 목` 환상을 독서체험이나 연극체험과 같은 문화적 체험, 간단히 말해 신화적 차원에서 탐색하고 있다면, Biffures는 부재하는 죽음의 환상을 육체적인 차원이 아니라 언어의 차원에서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는 신화적 인물을 통한 우회적인 탐색 대신 언어를 시적으로 다루는, 글쓰기라고 하는 대체 행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이때 언어, 특히 단어의 시니피앙 차원이 중요하게 부각되며 단어를 연금술적으로 사용하는 시적 탐색이 정체성 탐색의 일환으로 간주되기에 이른다. 단어 자체가 내적인 탐색 공간이 되는 것이다. Biffures의 첫 장인 "...Reusement"은 목 자르기 체험이 어떻게 단어 차원의 체험으로 변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장난감이 떨어질 때, 레리스가 "...Reusement"이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어른이 "Heureusement"이라고 말해야한다고 지적한 이 에피소드는 성년의 세계로 진입하는 과정이 자기 상실의 체험임을 보여주고 있다. "...Reusement"은 단어의 형태에서 이미, 머리에 해당하는 `Heu`가 어른에 의해 거세된 상태를 의미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 단어의 앞에 있는 말줄임표가 잘린 목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Heu`를 대신하는 말줄임표는 결핍을 나타내는 동시에 레리스의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는 유연성을 지니고 있다. 레리스는 이 단어를 통해 어떻게 유년시절의 언어를 회복할 수 있는가, 더 나아가 어떻게 유년시절을 회복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언어차원에서 잘린 목의 환상을 다시 발견한 후, 레리스에게 남은 문제는 삶의 차원에서 `잘린 목`의 등가물을 다시 경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잘린 목`을 신화적 차원과 언어적 차원으로 형상화했다고 해서, 그것을 실제로 자신의 육체로 경험하고자 하는 욕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죽음 이후에 벌어지는 사건을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의 문제는 레리스로 하여금 더욱 죽음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자살 시도를 통해 다루고 있는 작품이 Fibrilles이다. 레리스는 자살을 시도한 후 목 절개수술을 받게 되는데, 그는 이 수술은 `잘린 목` 체험으로 이해한다. 수술 후 남게 된 흉터를 그는 "다리 여섯 달린 벌레"에 비유한다. 이 비유를 통해 죽음은 하나의 사건으로 형상화되기에 이른다. 그 벌레는 또한 "두 입술이 결합"한 이미지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레리스는 이를 통해 자서전을 끝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본다. 자신의 육체가 마침내 하나의 입으로 형상화됨으로써 그는 육체를 통해 죽음을 경험하고 그 경험을 입, 즉 글쓰기로 형상화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자살시도로 생긴 상처는 그에게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는 알리바이를 부과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글쓰기의 재료를 부여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자살 시도가 자살 체험을 서술할 수 있는가 하는 글쓰기의 가능성과 관련하여 제기됨으로써, 잘린 목을 어떻게 `다시 붙일 것인가` 하는 문제, 즉 글쓰기의 문제로 `잘린 목` 환상은 그 의미가 변화하게 된다. 이처럼 레리스의 `잘린 목` 체험은 육체와 죽음에 대한 사유에 한정되지 않고 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환상으로 확장된다. 문학은 실패한 자살 시도를 되풀이함으로써 죽음을 다시 경험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실패와 반복이 레리스 글쓰기의 주요 구성 요소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순간이다.

담화정보 주석기법에 의한 학술논문 자동요약

앙뚜완블레 ( Antoine Blais ) , 박시현 ( Shi Hyeon Pak ) , 서정연 ( Jung Yeon Suh ) , 서종석 ( Jong Seok Soh )
한국불어불문학회|불어불문학연구  77권 0호, 2009 pp. 79-120 ( 총 42 pages)
8,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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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요약 분야는 텍스트의 요약을 자동적으로 추출하여 제공해 준다는 의미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분야이다. 텍스트의 중요한 정보들을 요약의 형태로 제공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사용자들에게 시간을 절약하게 해주기에 자동요약은 정보 탐색분야에서 주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이미 많은 방법들이 효율적인 텍스트 요약을 목표로 선을 보였는데, 본 논문에서 우리는 자동담화주석에 입각하여 텍스트의 요약문을 추출하는 접근방법을 소개한다. 텍스트의 담화주석(annotation discursive)은 엑스콤(EXCOM)이라 불리는 플랫폼에서 자동적으로 실행된다. 엑스콤은 언어적 지식을 기반으로 실행되며 맥락탐색기법을 토대로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맥락탐색기법은 형태통사적인 분석이나 통사적인 분석 없이 텍스트의 표층에 나타난 언어 표지들을 식별하도록 고안된 방법이다. 본 연구는 맥락탐색기법을 토대로 특히 학술논문 분야의 텍스트 처리를 목표로 한다. 본고에서는 여러 담화 범주들이 의미카드라는 개념을 통해 제시되며 텍스트에서 이들을 식별할 수 있게 하는 여러 표지들과 주석 규칙들이 제안된다. 텍스트의 담화 주석은 텍스트가 담고 있는 정보 범주를 드러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요약문을 구성하는 방법은 주어진 텍스트에 하나의 요약 전략을 적용하는 데 있는데, 이 전략은 가장 관여적이라 판단되는 범주들에 속한 모든 텍스트 절분들을 추출하여 요약문을 구축하는 것이다. 본고에서 우리는 인간이나 다른 전산 시스템으로 구현된 결과를 엑스콤으로 얻은 결과와 비교 평가한다. 본 연구는 일차적으로 프랑스어 텍스트를 대상으로 삼았으나, 사용된 언어적 지식과 담화 범주들은 다른 언어들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본 연구의 향후 목표는 다국어 주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며 특히 그 우선 대상이 한글 문서의 정보추출 가능성을 살펴보는 것으로, 몇 가지 적용결과를 소개한다.

B언어와 B언어방향 번역의 수용성 연구

최미경 ( Mi Kyung Choi )
한국불어불문학회|불어불문학연구  77권 0호, 2009 pp. 121-154 ( 총 34 pages)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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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언어는 통역, 번역사가 모국어와 유사한 이해력과 표현력을 갖는 외국어로 정의된다. 일반적으로 번역과 통역은 모국어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예외적인 번역행위로 규정되는 B언어 번역은 실제로 세계적으로 활발히 수행되고 있다. 특히 한국시장에서는 한국어의 특수성으로 인해 한국인 통번역사에 의한 B언어 번역, 통역의 비율이 아주 높다. 이런 현실을 반영, B언어 정의 및 B언어 번역의 문제점을 고찰하고 B언어 번역의 수용 기준은 무엇이며, 어떤 조건에서 만족스런 B언어 번역이 이루어지는지, 또 그 한계는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본다.

명칭 denomination으로서의 속담에 대하여

이수미 ( Soo Mi Lee )
한국불어불문학회|불어불문학연구  77권 0호, 2009 pp. 155-179 ( 총 25 pages)
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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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Kleiber가 제시한 `명칭`개념이 속담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보는 데에 있다. 이는 명칭개념을 통해 속담의 의미가치나 지시기능들을 보다 잘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종래의 언어학자들은 속담의 의미를 1차 의미와 2차 의미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1차 의미는 속담을 구성하는 언어 단위들의 의미결합이고, 2차 의미는 1차 의미가 은유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의미이다. 예를 들어 속담 Pierre qui roule ne ramasse pas mousse에서 1차 의미는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이고 2차 의미는 `움직이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이다. 이 두 의미 중 속담의 실제 의미로 간주되어온 것은 2차 의미이다. 1차 의미가 속담이 지시하는 상황과 전혀 무관하고, 담화 상황에서 화자와 청자들이 속담을 통해 끌어내고자 하는 것이 2차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2차 의미를 속담의 의미로 받아들이는것 역시 많은 문제를 제기한다. 2차 의미는 속담의 의미라기보다는 속담의 해석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많은 학자들은 속담의 의미를 규정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Kleiber는 속담의 의미를 규명하기 위해 `명칭`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그는 보통명사가 여러 지시대상을 지닌 부류 classe의 이름이듯이, 속담은 하나의 속담으로 묶일 수 있는 유사한 상황들의 이름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같은 주장은 속담을 언어단위로 인정하고 그것의 고유한 언어학적 기능을 밝혀내려는 것으로서 매우 뜻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담을 상황의 명칭으로 간주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른다. 이는 첫째로 `상황`이 지시하는 의미 영역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둘째로 문장단위로 이루어진 속담의 의미를 한마디로 간단하게 정의 내릴 수 없으며, 셋째로 속담과 동일한 메시지를 전하는 우회표현들이 여럿 존재하고, 넷째로 심지어는 동일한 상황에서 상반되는 입장을 지닌 두 속담이 동시에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속담이 상황의 명칭이라는 주장에 많은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음을 인정한 Kleiber는 속담을 총칭적 상황을 상기시키는 함의 implication의 명칭이라고 수정하여 정의하였다. 하지만 속담의 경우 함의에 대한 해석이 열려있어서 하나의 함의가 전혀 다른 다양한 해석들을 도입할 수 있는 만큼 속담을 함의의 명칭으로 간주하는 것 또한 문제가 있다. 본 논문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속담의 의미 형성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 속담의 의미 토대는 속담의 함의가 지니는 논리관계에 의해 형성됨을 알 수 있었다. 논리학에서와는 달리 속담의 경우, 함의와 논리관계는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동일한 층위에서 다룰 수는 없다. 논리학에서 사용되는 함의는 필연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강함의 implication forte에 속하지만, 속담이 지닌 함의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으로서 약함의 implication faible로 간주된다. 이는 논리관계가 속담을 구성하는 의미단위들 사이의 관계에 관여하는 반면, 함의는 속담이 전하는 메시지와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속담의 경우 함의는 시간이 흘러 화자와 청자의 문화와 사고방식이 바뀌면 그 내용 또한 바뀔 수 있지만, 논리관계는 속담 속에 존재하는 두 상황(예를 들어 Pierre qui roule가 지시하는 상황과 Pierre ne ramasse pas mousse가 지시하는 상황)을 연결시키는 기능만을 하기 때문에 시·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언어단위가 지닌 의미 토대가 시·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어야 하는 만큼, 속담의 의미적 타당성은 논리관계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속담이 무언가의 명칭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논리관계일 것이다. 속담은 논리관계를 통해 하나의 원인과 그것에 의해 생겨날 수 있는 결과를 제시한다. 물론 그 결과가 항상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속담이 제시하는 결과는 가능한 여러 결과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제시된 원인에 의해 예측 가능한 결과이다. 속담이 총칭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바로 이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우연적이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리고 논리관계로 인해 강조된 총칭성과 설득력으로 인해, 속담은 화자가 자신의 입장을 보다 확실하게 피력하기 위해 선택하는 언어단위가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속담에 사용된 명칭 개념의 정당성에 대한 판단은 열려있다고 볼 수 있다. 명칭의 개념을 협의의 의미에서 접근하면, 그 정당성을 찾기 어렵지만, 광의의 의미에서 즉, 속담도 하나의 의미단위라는 사실과 속담이 지닌 독특한 특성들을 고려한다면, 명칭 개념의 사용은 정당화될 수 있다. 그렇지만 논리관계가 두 상황의 관계만을 지시하고 구체적인 의미 개념을 지니지 않는 만큼, 이러한 명칭의 개념 역시 매우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명칭으로서의 pomme라는 보통 명사가 지니는 개념과 명칭으로서의 Pierre qui roule ne ramasse pas mousse라는 속담이 지니는 개념은 전혀 다르다.

접두사 RE-가 표현하는 상이한 가치의 반복

임정혜 ( Jung Hae Lim )
한국불어불문학회|불어불문학연구  77권 0호, 2009 pp. 181-199 ( 총 19 pages)
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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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반복의 가치를 갖는다고 일컬어지는 프랑스어 접두사 RE-는 사전에서 크게 세 가지 의미로 나뉜다. 첫 번째 의미는 동사가 나타내는 사행의 단순한 반복 (valeur d`iteration), 두 번째 의미는 역행 움직임 (mouvement retrograde) 그리고 세 번째 의미는 이전 상태로의 복귀 (retour a un etat ancien)이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첫 번째 의미만이 반복의 개념과 일치하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의미도 문법학자들은 특수한 형태의 반복으로 간주한다. 본 논문에서는 이 세 가지 유형의 반복을 더 자세히 살펴보고, 각 반복 유형의 특성들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먼저, 접두사 RE-는 기저 어휘소 (lexeme-base)가 나타내는 행위의 단순한 반복을 의미한다. 이 때, 접두사 RE-는 구어나 인터넷 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 생산성 (productivite)이 아주 높아 사전에 그 어휘들을 다 표재어로 등재하지 못할 뿐 아니라 사전들 간에도 그 어휘 수의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단순한 반복의 의미를 갖는 경우에라도 접두사 RE-는 같은 행위가 두 번째 일어난 것일 수 있지만, 되풀이되는 행위가 다른 방식으로 행해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relaver `laver de nouveau` vs reexaminer `proceder a la reevaluation de`). 또한 이와는 달리, 반복의 대상이 반드시 기저 어휘소가 표현하는 행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의 주체나 대상에도 적용될 수 있어서 반복이 갖는 여러 의미 효과 (effets de sens)의 원인이 된다. 가령, Je l`ai raccompagne a la gare라는 문장은 `내가 어제 그 사람을 역에 데려다주고 오늘도 같은 사람을 역에 다시 데려다줬다`라는 상황에서만 쓰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제는 내가 그의 여동생을 역에 데려다주고 오늘은 그를 역에 데려다줬다`라는 상황에도 쓰일 수 있다. 다음은 접두사 RE-가 기저 어휘소가 나타내는 행위의 역행을 의미하는 경우이다. 이 반복 유형은 특히 위치 이동의 의미를 갖는 동사들에서 대개 나타나는데, 다른 두 유형의 반복과는 달리 사전의 정의에서 부사 `de nouveau`가 사용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특성은 영어의 등가어에서 부사 again이 아닌 back이 사용된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한편 국어에서는 이 동사들의 등가어는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난다. 부사 `다시`로 나타나는 경우뿐만 아니라 (redescendre 올라갔던 길을 다시 내려오다), 접사 `되`가 사용되는 경우 (relancer 되던지다) 그리고 한자어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reexpedier 반송하다). 한 가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눈여겨볼만 한 점은 부사 <다시> 항목에서 이 의미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는 점인데, 『프라임 불한사전』의 예문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가 걸어서 다시 내려왔다)이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부사 `다시`의 사용이 필수적인지와 관련해서 함께 생각해볼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접두사 RE-가 이전 상태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경우로, 접두사 RE-를 갖는 파생 동사는 반대의 상태 etat contraire를 전제한다. 동사 reboutonner는 `etre deboutonne 단추가 끌러져 있는` 상태를, regrossir는 `n`etre plus gros 더 이상 뚱뚱하지 않은` 상태를 각각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기저 어휘소가 형용사가 아닌 동사들의 경우에는 대다수가 기저 어휘소에 접두사 de-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파생동사들을 함축하고 있다. 하지만 기저 어휘소와는 형태적으로 전혀 무관한 동사들을 함축하고 있는 경우들도 상당수 찾아볼 수 있다(reconstruire, relever, rebatir, rechristianiser, regagner 등). 여기에 해당되는 동사들은 특히 영어에서는 부사 again보다는 접두사 re-로 이루어진 등가어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고 한국어에서는 부사 `다시`나 접두사 `재`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프랑스어 접두사 RE-는 단순한 반복의 표지를 넘어서 그 의미나 해석이 상당히 복잡하다. 본고에서는 프랑스어 학습자들에게 접두사 RE-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 의미 특성들을 살펴보았으며, 한국어 접두사 `재`와 부사 `다시`와의 체계적인 비교, 분석은 향후 과제로 남겨두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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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동시에 평론가였던 보들레르는, 당대의 예술적 핵심문제들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서 자신의 고유한 개념적 사고를 전개하였던 일종의 이론가이기도 하였다. 그의 `순수 예술`, `예술의 특수성`, `예술적 현대성` 등에 대한 사유는 오늘날 까지도 다양한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논의되고 있다. 보들레르가 발전시킨 다양한 시적·예술적 개념들 가운데 `만물 조응`이라는 개념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논의된 주제들 가운데 하나이다. 보들레르의 `만물 조응`이라는 예술적 주제는 특히 『악의 꽃』에 있는 동명의 시와, 자신의 리차드 바그너론에서 바그너의 종합예술론과 그의 만물 조응론을 비교하면서 동일한 시를 인용한 사실로도 유명하다. 바그너가 종합 예술론에서 시, 음악, 미술의 공감각적 종합을 시도한 것과 마찬가지로, 보들레르 또한 자신의 시를 통해서 공감각적이면서 보편적인 상호조화, 어떤 초월적인 절대적 일치의 경지를 꿈꾸었다. 즉, 보들레르의 만물 조응은 감각적 차원의 상호조응과 초월적인 보편적 가치로서의 상호조응이라는 양 측면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는 바그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현실적인 감각적 층위와 초월적인 이상적 층위의 상호공존은, 특히 바그너의 경우에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일종의 역설을 내포하고 있다. 그는 각각의 모든 예술분야가 어떤 낭만주의적 이상에 도달할 수 있는 힘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것이 그의 종합예술의 절대적 이상성과 보편성을 실현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라고 인정한다. 동시에 그는 종합예술작품, 즉 그의 새로운 오페라는 기존의 모든 개별 예술들의 한계를 뛰어넘는 보다 우월한 예술이라고 주장한다. 연극, 오페라, 오늘날의 영화 등 언어, 음악, 미술적 무대 배경 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예술분야에서 바그너의 종합예술론은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복수의 예술적 표현수단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예술이 개별 예술보다 더 우월한가라는 문제는 오늘날 이미 그리 유의미한 예술적 논의주제는 아니다. 이 논문이 검토하는 문제 또한 그러한 예술적 우월성의 문제는 아니다. 바그너는 그의 낭만주의적인 예술적 신념을 유지하고 실현하기 위하여, `방법론적`으로 동시대의 역사와 현실에 등을 돌리고 과거의 신화와 전설의 세계로 회귀하였다. 그런데 바그너는 그의 전략적인 과거로의 회귀를 시대착오적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의 동시대가 퇴행적이라고 판단하였다. 당대의 퇴행성을 미래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예술적 전략이 바그너에게서는 이상화된 과거로의 회귀였다. 보들레르는 이러한 바그너의 예술적 신념과 전략을 상당부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보들레르는 바그너와 달리 동시대의 일상과 역사로부터 등을 돌리기보다는, 현대적 삶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대면하는 쪽을 택하였다. 그의 예술적 모더니티에 대한 비평문 「현대적 삶의 화가」는 보들레르가 신학적인 절대적 이상과 가변적인 사회역사적 풍속 사이에서 매우 팽팽한 긴장과 균형을 유지 했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절대적인 종교적 예술관을 구체적인 일상적 현실을 경유해서 표현하는 전략을 선택하였으며, 따라서 그의 예술적 현대성은 바그너의 방법론적 낭만주의 보다 더 큰 긴장감과 현실인식을 요구하였다. 그의 `순수 예술론`은 예술의 비역사적 자족성에 대한 옹호가 아니라, 사회의 역사적 변화에 대응하는 예술자체의 고유한 응전방법론에 대한 옹호였다. 결론적으로 보들레르는 자신의 `만물 조응`이라는 이상주의적인 시적기원을, 즉 전적인 조화와 일치가 존재하던 `영원한 과거`라는 일견 비역사적인 신학적 가정을, 항상 사회성과 역사성의 관점에서 비평적으로 재현재화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보들레르의 만물조응이라는 시적개념을 단순히 초월적인 신학적 이상주의의 발현으로 이해하는 것은 사태의 한 측면만을 보는 것이며, 거기에는 영원성과 역사성 사이의 팽팽한 방법론적 긴장이 내재되어 있다.

프랑스어 교재에 수록된 만화의 기호학적-교수법적 분석

피에릭미코티스 ( Pierrick Micottis )
한국불어불문학회|불어불문학연구  77권 0호, 2009 pp. 227-251 ( 총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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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는 외국어로서의 프랑스어 교재로서 일반적으로 자주 사용되어지는 자료는 아니다. 그러나, 만화가 제공하는 텍스트나 이미지는 외국어 교수법 차원에서 볼 때 (특히, 대화부분에서) 분명히 교육적 관심을 불러 일으킬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이에, 본 논문은 프랑스어 교재가운데 하나인 Diabolo menthe 대화 부분에 삽입되어있는 만화를 자료군으로 선택하여, 한편으로는 주어진 만화의 기호학적 분석(approche semiotique)과 다른 한편으로는 교수법적 접근(approche didactique)을 함으로써, 만화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들을 통한 프랑스어교재 만화의 교육적 가치를 밝혀보고자 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를 위해 우선, 만화자체(BD)와 교재의 수업내용(lecon)과의 상관관계 차원을 설명하였다. 예를 들어, 만화에서 인물의 대사를 나타내는 테(bulles)의 텍스트요소와 수업내용의 텍스트(언어적)요소, 만화의 이미지 (영상적)요소와 수업내용에 등장하는 이미지요소와의 상관관계 등... 만화와 수업내용에 있어서, 전자가 질문을 하면 후자가 대답을 하는 형식을 갖추거나 역으로 후자가 질문을 하고 전자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등... 양자간에 상호적 관계가 설정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만화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를 근간으로 교수법적 차원에서 설명하였다. 즉, 만화 대화부분의 대화체형태(dialogue), 만화의 서술부분인 서술체형태(narration),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화의 記述부분인 묘사체형태(description)를 각각 교육적 차원에 입각하여 분석하였다. 그 결과, 주어진 프랑스어 교재의 만화는 만화 그 자체로도 기능을 하지만 수업 내용과도 함께 상호보완적 기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만화의 대화, 서술, 묘사의 각각은 외국어로서의 프랑스어의 교육과 습득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수업 내용과 상호보완적인 교재의 만화는 언어 습득에서 필수적인 읽기, 쓰기, 이해하기 그리고 말하기 등 언어적 능력을 실현하는데 일조를 한다고 할 수 있다.

속담적인 한국어 익은말과 "문화전이"면에서 살펴본 번역상의 문제점 고찰

스트클레세브린 ( Severine Stoeckle )
한국불어불문학회|불어불문학연구  77권 0호, 2009 pp. 253-282 ( 총 30 pages)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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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관용어법은 그 양이 풍부하여 최근 언어학자 및 속담연구자들의 집대성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미개척분야로 남아 있다. 이런 현상은 한국어 고유 관용구에 대한 연구 분야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최근까지도 국어학계가 `한문계` 관용구를 선호해 온 데서 찾아볼 수 있겠다. 특히 거의 모든 사전학 연구에서 배제되다시피 한 한국 구전문학에서 유래한 관용구(`우리말 고사성어`/김준영)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이런 관용구들 다수는 속담보다 그 의미가 불투명하고 때론 다의성을 지니고 있어 한국어가 아닌 타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번역가들에게 어려움을 준다. 이 소고에서는 그런 종류의 관용구 10개로 구성된 자료체를 기초로 언어학적 기능의 특성뿐만 아니라 `문화전이`면에서의 문맥 밖 관용구 번역 문제도 다루어 보았다. `문화전이` 면에서 `등가 관용구` 또는 `준 등가 관용구`, `직역 주해`와 `준 창작` 기법을 실험적으로 시도했는데 그 중 직역주해 방법에서 비교적 만족스러운 결과 (문화전이 충실도 면에서)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두 방법의 유효성을 부정하거나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다. 보다 폭 넓은 문맥 내 관용구로 구성된 자료체를 기초로 한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서만이 더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문맥을 통한 연구는 다음 과제의 목표로 삼고 이번 연구가 그 준비 작업의 초석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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