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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어독문학(구 독일문학)검색

Koreanische Zeitschrift fur Germanistik


  • - 주제 : 어문학분야 > 독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8577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독일문학(~2017) → 독어독문학(2018~)
논문제목
수록 범위 : 110권 0호 (2009)

발터 벤야민과 로베르트 발저 작품의 살아있는 사물들

도로테킴미히 ( Dorothee Kimmich )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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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에서 사물, 대상, 물건과 논쟁하는 과정들이 있다. 그때 사물들은 더 이상 상징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오히려 다채롭고 상이한 경험의 동기로서 얘기된다. 사물들은 회상을 깨우고,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지각을 명료하게 하고, 형이상학적인 경험을 가능하게 하며, 주목을 받게 된다. 사물경험에 대한 현대적인 문학적 표현을 연구한다는 것은 현대 문학적 미학의 특징들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살아있는 사물들과의 만남은 특히 현대의 텍스트에서 중요하다. 한편에서는 낭만적 동화의 모티브의 인용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인간의 지배에서 벗어난 세계에 대한 진정한 현대적 경험으로 드러난다. 바로 프란츠 카프카, 발터 벤야민, 후고 폰 호프만스탈, 로베르트 무질, 페터 알텐베르크,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 라이너 마리아 릴케, 로베르트 발저와 같은 작가들이 그들의 작품에서 사물들에게 매우 중요한 위치를 인정해주면서 다양한 관점에서 그것들을 다루는 것이다. 사물들은 인간들에게 위협적일 수도 있으며 부분적으로 문화비판적인 논증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 사물들은 인간이 단지 미학적인 지각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한 아름다운, 잊혀진, 시간이 없는 세계의 재현일 수 있다. 따라서 사물들은 일상을 미학적인 현상으로서 지각하고 인지하게 하는 가능성을 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벤야민도, 발저도 자신들의 텍스트에서 일상적 대상들의 미학화를 계획하였다.

병적인 모더니즘 -벤야민과 게오르게 작품의 모티프에 대한 단초-

요시히코히라노 ( Yoshihiko Hirano )
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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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e 모더니즘"이라는 말은 부가어인 "모던 modern"에서 파생된 신조어다. 그래도 "모던"과 "모더니즘"은 주관적으로 사용될 경우에, 그 단어들 사이에는 몇 가지 일치하지 않는 지점이 있다. 예를 들면 하버마스는 아도르노가 "모더니티"와 "모더니즘" 사이의 차이를 거부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주관적인 경향에서" 객관적 모더니즘의 가능성을 인정하려는 태도를 보였다고 말한다. 그에 반해 발터 벤야민은 유겐트슈틸을 "생산적인 오해"로서 지적하였다. 즉 유겐트슈틸에서 "새로운 것"과 "모더니즘"이 혼동되었다는 것이다. 가끔 "미학적 모더니즘"의 선구자인 보들레르는 "유겐트슈틸의 선구자"로 얘기되어지는데, 바로 그와 같은 경우이다. 이런 역설적인 상황은 벤야민과 슈테판 게오르게와의 논쟁에서도 다시 유겐트슈틸이 언급되면서 증명될 수 있다. 벤야민은 게오르게가 "데카당스의 완성자로서" 결국 "보들레르에서 시작한 정신 운동의 종착지에" 있다고 평가한다. 그럼으로써 "모더니즘의 시작" 이 아닌 "그 끝이" 암시되고 있는 것이다. 벤야민은 처음으로 게오르게의 작품을 유겐트슈틸로 구분했을 뿐만 아니라 당대의 정신적 입장이 유겐트슈틸의 강한 영향 아래에 있다고 말한다. 본래 뮌헨의 잡지명인 "유겐트(청춘)"에 어원을 두고 있는 "유겐트슈틸"은 벤야민이 젊은 시절에 참여했던 유겐트운동의 서정시와 본성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벤야민 스스로도 단어 "유겐트"를 잘못 사용했다고 말년에 인정했던 점은 학교개혁에 대한 당시의 논문에서 쉽게 증명될 수 있다. 게오르게와 그 동료들이 "합법화"하고자 하면서 "논쟁하면서 사랑했던" 게오르게의 시들은 본래 내향적인 체념과 후기의식으로 채워졌다. 유겐트슈틸의 건축학적인 실내장식과 부합하는 내면성이 활기를 띠는 반면, 외적인 것은 "도시 베를린"을 사회적 모더니즘의 환유로서 묘사하였다. 벤야민에게 잠시나마 의미를 가졌던 그런 문제의식은 1930년대에 파리를 "21세기의 수도"로 이해하게 하였다. 벤야민은 "게오르게의 가장 순수하면서도 가장 완벽한 시들이 성(性)으로 망명한 것"은 "죽음으로 예정되었다"고 쓰고 있다. "유겐트"와 이른 죽음 사이의 관계는 벤야민에게 분리될 수 없는 콤플렉스를 형성한다. 벤야민은 게오르게의 작품에서 데카당스적인 죽음의 충동을 밝혀낸다. 이 "충동"은 데카당스 자체를 "억압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충동은 처음부터 데카당스에 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통해서 비로소 퇴행적인 내면성과 중요한 요구로 특징되는 게오르게의 양면성이 드러난다. 그 퇴행적인 내면성과 중요한 요구는 두 가지 현상으로 증명된다. 즉 세기말에 데카당스적 죽음의 충동은 프로이트와 관련하여 "공격-" 혹은 "파괴충동"으로서 처음에는 내부로, 그 뒤 외부로 향하면서 그 두 가지 현상을 증명한다. 이런 것은 명백히 "미학적 모더니즘"에서 발견되는 것과 일치한다.

비인 모더니즘의 미학적 지각

한루이시앙 ( Rui Xiang Han )
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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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비인 모더니즘은 베를린 자연주의와의 논쟁에서 생긴다. 비인 모더니즘은 외부에서 내부로, 객관성에서 주관성으로의 문학적인 묘사 변화를 수행한다. 그러면서 자아, 영혼, 꿈을 문제시 삼는 새로운 예술양식이 형성되며, `모던`이라는 개념은 당대의 화두가 된다. 헤르만 바의 논문 「모더니즘」(1890)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예고하면서 비인 모더니즘을 감수성 이론 내에서 규정짓는 데 일조한다. 이념사적으로 볼 때, 비인 모더니즘의 전통을 뛰어넘는 미학적 의식은 자아를 인식하기 위해 새로운 길을 열었던 마흐의 감수성 철학 및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마흐의 감수성 분석과 자아에 대한 그의 인식은 자연주의를 극복하는 비인 모더니즘을 이해하기 위한 필연적인 미적 토대이다. 프로이트는 언어로 변신한 꿈을 영혼을 규정하는 수단으로 해석한다. 그의 꿈의 언어도 비인 모더니즘의 본질적인 특징이다. 슈니츨러와 호프만스탈은 비인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들이다. 그들의 작품은 예를 들면 자아, 영혼, 꿈에 대한 비인식 관점을 묘사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만의 특수한 미적 의식을 보여준다. 이처럼 비인 모더니즘의 새로운 미학적 의식과 현대성이 더 이상 전수된 이념상에서가 아니라 참을 수 없는 감수성에서 보여진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런 의미에서 비인 모더니즘은 당대의 경험이자 동시에 당대에 대한 반응이다. 그 위기의 상황에서 비인 모더니즘은 자연주의에 길항하면서 문학적 묘사의 관점 변화를 수행한다. 그때 더 이상 외부의 현실이 아니라 자아, 영혼, 꿈이 미학적 관찰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비인 모더니즘은 위기에 처한 현실을 필연적으로 경험한 것이며, 동시에 그 위에 바탕을 둔 필연적인 반응이다. 자아, 영혼, 꿈은 당대와 그 시절의 인간들을 인식하기 위한 대상이자 수단이며, 그럼으로써 비인 모더니즘의 미학적인 현대성을 특징짓는다.

망명기의 글쓰기: 20세기 중국에서 유대인 독일어로 쓰인 문학

장슈후에이 ( Shoou Huey Chang )
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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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뒤 동아시아에서의 망명생활을 담은 몇 편의 자서전, 회고록, 일기가 남았다. 그리고 예를 들면 최근 몇 년 동안 당시의 생활을 보여주려는 기록영화와 화보들이 출간되었다. 그것들은 주로 독일 및 오스트리아에서 온 망명객들의 회상으로 제한되어 있다. 그들은 영어나 유럽언어로 글을 썼다. 당시에 독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이외에도 유대인 독일어(이디시어)를 구사하는 유대인들이 살았다. 이 영역은 아직까지 덜 알려진 연구 분야이다. 본 논문은 그 영역 중에서 특히 중국에서의 유대인 독일어 망명문학을 다룬다. 본 논문의 도입 부분에 먼저 독일과 유대인 관계사가 세 가지 관점에서 요약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대인 독일어로 작성된 로제 쇼샤나의 일기가 본 연구의 기초가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관점이 제시될 것이다. 중국인과 유대인의 관계가 자서전을 근거로 다양하게 조명될 것이다. 그리고 논문의 말미에 본 주제에 대한 현재의 연구 상황을 임시로 보여줄 것이다. 그럼으로써 유대문화에 대한 연구를 더욱 풍부하게 하고, 중국 문화와 유대 문화의 교류에 이바지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구체화된다. 1) 역사적인 배경: 20세기 유대인 독일어 문화의 중심, 2) 1938년에서 1947년까지 상하이의 유대인 문화 혹은 유대인 독일어 문화, 3) 로제 쇼샤나가 유대인 독일어로 작성한 일기 『축제와 불꽃 In fajer un flamen』, 4) 임시 결론.

소설 『야콥 폰 군텐』에서 나타난 봉사, 문자, 움직임. 로베르트 발저의 안무된 메타정치

안토니커티스아들러 ( Anthony Curtis Adler )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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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작가 로베르트 발저(1878-1956)의 작품들은 지난 수 십년 동안 점차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는 문학적 모더니즘의 위대한 선구자 중 한 명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현실에 어둡고 생활에 무능력하다는 명성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글은 아직도 자주 순수 미학적인 관점에서 관찰되고 있다. 이에 반해서 본 논문은 발저가 시종일관 "정치적 사유"를 견지했음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의 "정치적 사유"는 당시의 정치적 의문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보여주지 않고 보다 정확히 말하면 "메타정치적"으로 지칭될 수 있다. 특히 최근에 푸코의 생명철학의 변신과 논쟁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겠다. 그리고 고전적인 의미에서 정치가 실종될 위험이 가장 강한 곳에서 정치의 가능성을 구출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된다. 메타정치적인 경향은 소설 『야콥 폰 군텐』에서 나타난다. 이 작품은 이미 루소, 쉴러, 그리고 특히 클라이스트의 작품에서 전개된 자유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자유의 가능성이 사유나 반성이라는 근대적 문화에 의해서 위협을 받는 경우에, 소설 『야콥 폰 군텐』은 한 천재적인 해법을 발전시킨다. 자유의 감정은 과격한 규율을 통해서 다시 영원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봉사를 배워야 한다. 이 독특한 교육과정은 몸의 움직임을 아주 정확하게 한 안무 규정에 따른다. 이 규정은 이성적인 분석에서 벗어남으로써 상상할 수도 없는 신비가 된다. 실천을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실천에서 유래하는 진리의 경험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세기전환기 포스터매체에 나타난 문자와 이미지의 상관관계

천현순 ( Hyun Soon Cheon )
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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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서 20세기로 전환되는 모더니즘 시기에 나타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이미지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시기보다 증폭되었다는 점이다. 이미지 보급의 확대경향은 이 시기에 새롭게 등장한 석판기술의 발달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새로운 기술의 발달은 한편으론 이미지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론 텍스트와의 결합을 용이하게 하였다. 새로운 기술에 힘입어 간단해진 텍스트와 이미지의 융합현상은 신문, 잡지, 책 등과 같은 거의 모든 인쇄매체에서 관찰되고 있으며, 특히 이 시기에 주목을 끌던 포스터매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848년까지 독일에서 포스터의 개념은 정부의 문서화된 법령을 의미하였으며, 혁명이 지난 이후에는 공식적인 안내문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1855년에 이르러 독일의 인쇄업자 에른스트 리트파스에 의해 공공장소에 광고탑이 설치되었으며, 이로써 포스터의 개념은 출판물이나 행사 등을 알리는 광고수단으로서 그 의미가 확대되었다. 1860년대까지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서유럽에서는 문자포스터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었고, 이후 채색을 첨가할 수 있는 석판기술의 발달로 인해 포스터에도 채색이미지가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 독일에서는 1880년대 말까지 문자포스터가 일반적으로 사용되다가, 189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포스터에 이미지가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세기전환기에는 기존의 화가나 예술가들도 포스터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이들에 의해 포스터의 예술적인 측면이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등장한 포스터는 이로써 한편으론 예술품으로서 또 다른 한편으론 광고수단으로서 인식되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전환되는 시기는 포스터의 발달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문자중심의 포스터에서 이미지중심의 포스터로 변환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석판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세기전환기에 포스터가 널리 보급될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19세기말부터 일기 시작한 경제성장을 들 수 있다. 경제성장으로 인해 상품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으며, 이렇게 생산된 상품들은 판매를 촉진시키기 위해 그에 적합한 광고수단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제품광고수단으로서 이 시기에 널리 사용되었던 매체가 바로 포스터라 할 수 있다. 세기전환기에 포스터가 널리 보급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로는 대도시의 팽창을 들 수 있다. 19세기부터 일기 시작한 산업화는 대도시의 성장을 촉진시켰으며, 이로 인해 다수의 사람들이 대도시로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포스터는 대도시에 몰려든 다수의 사람들에게 특정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을 안내해주는 홍보역할을 담당하였다. 세기전환기에 일반화된 포스터의 가장 특징적인 형태는 그것의 단순성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포스터는 대도시의 거리를 활보하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특정제품을 광고하는 수단으로서 사용되었는데, 이들의 눈길을 끌기위해서는 복잡한 구조보다는 간략하고 선명한 구조가 선호되었다. 이 시기의 포스터는 따라서 단순하고 명확한 문자와 이미지의 구성을 보여준다는 것이 특징이다. 본고는 회사광고포스터와 제품광고포스터를 구체적인 실례로 들어 포스터에 나타난 문자와 이미지의 상관관계에 대해 분석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실례분석을 통해 포스터에 나타난 문자와 이미지의 상관관계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두 가지 서로 다른 포스터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문자에 비해 이미지의 역할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이미지는 광고하는 상품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호기심을 자극시키기 위해 창조적인 방법으로 구성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문자는 간단한 회사명이나 혹은 상품명을 제시해주며, 이미지의 다양한 의미를 `제품광고`라는 하나의 의미로 정박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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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영화사에서 바이마르시대는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 주된 이유로 우선은 이 시기에 이르러서야 영화가 비로소 예술로서 인식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다음으로 이 시기가 차세대 영화감독들에 의해 독일 영화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교두보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바이마르시대의 영화는 세 시기로 나누어진다. 표현주의가 생성되었던 시기인 1919년부터 1924년까지, 신즉물주의의 영향 하에 실내극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던 시기인 1924년에서 1929년까지, 그리고 유성영화의 도입과 더불어 영화가 정치적 도구로 사용될 전조를 보이기 시작한 1929년에서 1933년까지의 시기가 그것이다. 당시 예술계와 영화계에서는 표현주의 영화를 극단적으로 상이한 관점과 비평들을 지니고 바라보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표현주의 영화의 시조라고 일컬어지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라고 할 수 있다. 아른하임은 이 영화를 표현주의의 본질적 정신은 전혀 살리지 못한 채 세트의 장식과 문양에만 치중해 덕지덕지 발라놓은 도배스타일을 만들어냈다고 혹평을 퍼부은 반면, 주류 상업영화계에서는 영화가 대중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예술성만을 추구한다면 잘못된 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하나의 예술 사조를 형성하게 될지도 모를 이 명작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러한 당시대의 극단적인 비평과는 달리 영화사의 중요한 계기로 받아들여진 입장들은 영화 미학적이고 영화언어적인 측면을 부각시켜, 표현주의 영화들에 대해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관점들이다. 그 첫 번째로 영화의 시각적인 특성들을 영화의 본질적인 요소들로 바라보기 시작한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표현주의 영화는 매 순간의 분위기를 구상적으로 표현해냄으로써 영화 고유의 특성을 살려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의 관점은 표현주의 영화를 경험의 주체화 과정을 표현하는 하나의 영역으로 보는 시각이다. 즉 표현주의 영화에서 스크린에 제시되는 영화 내적 공간은 세트나 장식, 조명 등을 통해 현재 진행되는 스토리와 캐릭터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것을 관객들이 느낄 수 있도록 제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표현주의 영화의 중요한 특징은 사선이나 혹은 3차원적으로 만들어진 세트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변화과정을 외부로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이 관점은 보고 있다. 이 때 실험되었던 자유로운 카메라의 움직임은 또 다른 영화내적 공간을 만들어내게 되는데, 이것은 인물의 감정적인 변화와 움직임을 시각화 시켜내려는 시도였으며, 영화언어가 한 걸음 더 진보하게 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영화미학적인 관점에서 표현주의 영화들을 바라보게 되면 표현주의 영화로 분류되는 영화의 범위가 더 확장된다. 곧, "표현주의적인 영화"라는 범주 안에 위에서 언급한 미학적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영화들을 -초창기 표현주의 영화부터 실내극 영화들까지- 아우르게 된다. 대체적으로 초창기 표현주의 영화들은 무시무시한 캐릭터를 등장시키거나 혹은 상상적이고 신화적인 이야기들을 인용하였고, 반대로 실내극 영화 계열의 표현주의적 영화들은 소재와 스토리들을 현실적인 것에서 취했는데, 이러한 소재들의 차이와는 별개로 이 영화들은 이러한 소재들이 시각적으로 구체화되도록 세트, 조명, 카메라 등 영화적 기술을 최대한 동원하려 애를 썼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영화들은 이러한 것들을 통해 불안한 심리나 공포, 욕망과 기원 등과 같은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표현주의(적인) 영화의 두드러진 미학적 특징은 자유로워진 카메라와 세트와 조명을 이용한 미장센에 있다. 초창기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서만 해도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어, 프레임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마치 연극무대의 공연을 녹화한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점차 카메라는 인물들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혹은 스크린을 보고 있는 관객들이 특정한 감정을 느끼도록, 다양한 변화를 가지게 되는데, 카메라 앵글의 변화, 트랙킹, 패닝과 같은 카메라의 이동, 그리고 더 이상 삼각대에 고정시켜 놓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카메라와 같은 다양한 카메라워크는 후세 영화언어의 발전에 크나큰 공헌을 하게 된다. 또한 키라이트와 그림자의 효과적인 사용은 공포의 대상이나, 두려움이나 절망과 같은 심리들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으며, 이러한 조명의 사용은 미장센과 어우러져 각각의 프레임이 하나의 의미구조를 형성하도록 이끌어 주었다. 이러한 미학적 특징들이 필름 느와르나 판타지 영화들의 표본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음은 주목할 만하다. 물론 아른하임이 지적한 것처럼 표현주의 영화들이 표현주의 사조가 추구했었던 고통 받는 인류와 사회를 구제하는 예술이라는 목적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짧았던 표현주의 영화의 역사에 비해 이들이 영화사와 영화미학에 미친(미치고 있는) 영향이 여전히 큰 것은 위에서 언급했던 인간의 내면을 외부로 투사해, 시각화시켜 내려 했던 시도와 이를 통한 영화언어의 혁명적인 실험이 주된 이유가 되는 것이다.
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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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1926)를 현대도시의 오디세이아로 해석하고자 한다. 슈니츨러의 주인공 프리돌린은 한편으로는 호머의 오디세이의 후예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적 이성을 갖춘 주인공으로서, 세기말의 비인이라는 현대 도시의 밤거리를 방랑하게 된다. 그의 방랑기는 세기전환기의 공간과 시간에 대한 변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대적 징후로, 문화사적 기억으로 읽어낼 수 있다. 즉 세기전환기의 현대소설들은 성격화나 주제뿐 아니라 공간과 장소라는 측면에서도 근대시민사회의 특징인 양가성(지마)을 보여준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인의 링거리 재정비에서 보듯 비인은 한편으로 근대적 이성의 공간으로 읽혀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적 욕망의 공간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호머의 오디세이가 바다에서의 모험과 유혹을 물리치고 정숙한 페네로페의 공간으로 회귀한다면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는 처음에는 성공한 중산시민층 가족의 안정한 공간을 보여주지만 주인공들의 내적 욕망에 의하여 분열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프리돌린은 아내의 고백에 격분하여 집을 나가게 되고 현대도시의 위험한 밤거리를 방랑하게 된다. 이제까지 그가 직업상 공적으로 생각한 도시와 공간들은 현대의 오디세이에게 욕망과 유혹의 공간으로 재편된다. 마리안네의 유혹이 있는 고문관의 집, 창녀 미치의 집, 가면대여소의 소녀를 거쳐 갈리친 산의 비밀무도회에게 이르기까지 비인의 거리는 유혹과 욕정으로 가득 차 있다. 프리돌린은 결국 모험 끝에 자신의 이성과 확신의 흔들림을 체험하고 욕망과 위험을 자인하고 알버르티네에게 프로이트식 고백을 하게 된다. 도시의 공간이 감각과 인지의 주체에게 나타나는 현상을 반영하는 `인지 지도`라는 개념은 현대소설의 내적 구조 분석에 많은 도움을 준다. 인물들이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무의식과 내적 심리적 상황은 그가 그리는 도시 내에서의 동선과 지도에 분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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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시선과 응시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꿈의 노벨레』에서 여성이 어떻게 보고, 보이는지를 라캉의 시각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하고, 분석한 결과와 관련된 소설의 내용을 클림트의 그림들과 연관지어 빈 현대 여성의 변화하는 위치에 대한 예술적 표현을 문화사적 배경을 살펴보면서 고찰한다. 라캉의 이론에서 응시는 주체에게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주체의 결손을 인지하게 하면서 온전하다고 믿었던 자신에 대한 인식을 위협함으로써 새로운 인식의 출발점이 된다. 알베르티네는 여름휴가에서 만난 장교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면서 자신의 욕망에 눈뜨게 되고, 지금까지의 삶을 기꺼이 포기하고 싶을 만큼 흔들린다. 그녀는 그러한 욕망을 꿈속에서 충족시키면서 자신의 욕망에 대해 자각하게 되고 새로운 자신감을 얻게 된다. 꿈에서 느끼는 알베르티네의 자족감은 클림트의 "다나에"와,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인정하지 않는 남편을 향한 공격성은 클림트의 "유디트"와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아내의 고백을 듣고 아내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분노하면서 심한 혼란 속에서 프리돌린은 방황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방황 끝에 그는 결국 여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고 아내와 화해하기를 바란다는 자신의 억압된 소망을 인정하게 된다. 응시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인식한 알베르티네는 응시의 객체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응시의 주체가 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새로이 정립하고자 하는 남편을 인도하면서 이제 자신의 욕망을 사회 안에서 충족시키기 위해 새로운 상징계적 질서를 구축하는 데 참여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다. 이렇게 변화한 여성의 위치는 클림트의 "아담과 이브"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슈니츨러와 클림트는 남자와 여자간의 새로운 화합의 길을 암시하면서 여성의 욕망과 세기말의 변화된 여성의 위치, 그리고 동시에 이러한 변화에 대한 남성의 두려움과 혼란을 당시의 심미적 취향을 고려하여 표현하였다.

변형된 비유 -세기 전환기의 서정시에서 니체가 고대한 매개과정의 전환기-

슈테판파카트 ( Stephan Packar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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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의 출발`은 전환기를 구성하는 당대 담론의 기술로서 이해된다. 이런 전환기에 등장하는 타자성, 혁신 혹은 혁명은 전환기를 중단하기 보다는 준비된 논의를 계속 진행시킨다. 전환기를 준비한다는 것은 기대, 도발, 요구, 전환기에 대한 공포 혹은 전환기 이후에 대한 희망으로서 얘기될 수 있다. 이에 따라 모더니즘의 문학적 출발을 전환기로 이해하는 것은 규정된 담론 안에서 가능한 어떤 시학적 전환기의 관찰을 준비하는 것이다. 전환기를 준비하는 것은 전환기 자체의 미학을 기술하는 것으로 기능해야만 했다. 2001년 9월 11일 이후 전환기 개념에 대한 고찰은 프리드리히 니체가 새로운 비유성을 요구한 것과 비교된다. 니체는 1900년 전후에 예술의 매개과정 변화, 비유적 표현에 대한 관조와 행위 사이의 전통적인 수사학적 차이, 매개과정적 교차의 전환기 담론을 기술한다. 노력하는 행위에서 나온 어떤 비유 개념과 그에 따른 필연적인 냉정함으로 이루어진 세 가지 형태, 그리고 눈과 손 혹은 비유성과 행위성 사이의 보완적인 상호관계가 긴밀한 관계에서 드러날 것이다. 니체가 전환기를 고대한 것은 모든 전환기 논의에 대한 어떤 전환기의 두 가지 측면이 아니라 세 가지 단계를 구분한 것이다. 비유성은 행위로부터 생성되며, 이것은 모던한 것으로 유효하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성은 전환기의 결과가 아니라 전환기를 통한 통로로서 구상되었다. 그래서 현대성의 행위적인 비유성은 다시 극복되거나 계속되는 과정성과 개혁된 냉혹함에서 지양되어야 된다. 비유 및 언어에 대한 회의는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된다. 이렇게 개략될 수 있는 것은 현대 독일어권 서정시의 두 가지 예에 대한 독서방식으로 등장할 것이다. 후고 폰 호프만스탈의 유명한 『외적 삶에 대한 발라드』가 지각된 현대성의 특수함을 부정적, 긍정적으로 기술한 반면, 게오르게가 단테의 『신곡』을 번역한 것은 14세기 텍스트를 옮긴것이자 단테의 수사학적 전통을 극복하면서 자신의 미학을 혁신으로 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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