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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어독문학(구 독일문학)검색

Koreanische Zeitschrift fur Germanistik


  • - 주제 : 어문학분야 > 독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8577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독일문학(~2017)-> 독어독문학(2018~)
논문제목
수록 범위 : 128권 0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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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ta Muller verlisst sieh nieht auf die Spraehe. Dennoeh k.mn sic aueh niehl auf die Sprnehe verziehlen. In Wahrhdt ist sic suehtig nach der Sprnche. Threr Ansicht nach bekundet die Sprache zwei Wirklichkeiten: I. In diversen Spmch- und Kultuniiumen zeigen sich diverse Bilder und Wahmchmungcn; 2. Die politisierte bzw. verordnete Spraehe vemlag nieht nur die Humanitat zu entwlirdigen, sondem auch die Menschlichkeit zu vcrderben. Nach tiefgriindiger Auscinandersetzung mil beiden Wirklichkciten, \velche zu weiteren Erkenntnissen gefuhrt hat, entwickelt Herta Muller eine ihr eigene Art und Weise, Wahmehmungen zu erlinden. Die Besonderheit des Mullerschen Sprachstils lindel sieh insbesondere in ihren aus Papierfctzcn crstandcnen Collagcngedichten, in dcncn Texle und Bilder auf cine kontrnStive Weise einander ergjinzen. Es enlstcht nicht nur ein Bild-Text-Dialog, sondem die Iyrisehen Worlleile beziehen sich gewisserweise nuch inlerlexlucll auf ihre Herkunftstexte. DarUber hinaus bestehen zwischen Herta MUliers Gediehten, Romanen und Essays in vieler Hinsicht auch intertextuelle Zusammenhange. DiesbezUglich spiden die sieh in den genannlen Genres Uberlagemden Motive eine wcsentliche Rolle. Die Umersuchung geht zuerst auf die Mullersche Sprachaulfasslmg ein. Als Sehwerpwlkte stehen dann die Sinnzusammcnhange zwischcn Bild und Text in der Lyrik Herta Muliers sowie die Imertextualitlit ihrer Iiterarisehen Motive zur Debatte. Daraus lassen sieh als Letztcs die bahnbrochenden Zuge cler Spmche Herta MUliers ersehlielB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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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래 독일의 학계와 여론에서는 지구화 문제가 최대의 이슈로 부상하였다. 지구화 문제의 대표적 연구자인 울리히 벡이 지적하였듯이, 그것은 무엇보다도 전지구적 네트워크에서 움직이는 자본과 경제주체들로 인해 서구사회의전통적인 근본구조, 즉 “시장경제, 사회국가, 민주주의 간의 역사적 동맹” (울리히 벡: 지구화란 무엇인가?)이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국민경제의 전통적 경계가 무너지고, 국민국가의 정치적, 사회적 합의가 더 이상 자명하지 않다는 사실 외에도, 이슬람 세계의 탈서구화와 토착화, 제 2의 세계 강국으로부상한 중국의 국제정치적 역할 등 서구의 경계 밖에서 밀어닥치는 심각한 도전들은 지구화 문제에 또 다른 정치적,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즉 서구로서는 근대 이후 처음으로 ‘도전자’의 권위로 다가오는 지구상의 타자와 타문명에대해 어떤 윤리적, 정치적 입장을 취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생겨난 것이다. 놀라운 것은, 사실 타자의 권위와 도전은 서구 밖 사회에서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존재하던 역사적 현실이었다는 사실이다. 단지, 19세기에 거의 전 지구를 자신의식민지로 만들었던 서구만이 압도적인 물질문명과 지식의 우월함을 근거로 자기중심적 인식론을 의문시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2001년 9.11 이후 프란츠 파농의『검은 피부, 하얀 가면』(1952)은 공유와 혼종을 중심 개념으로 하는 탈식민지 연구에 다시 새로운 이론적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주체와 타자의 배타적이면서 상호의존적인 관계, 타자의 부정적 주체성과 그 트라우마를 밝혀낸 파농의 타자이론은 독문학연구에도 중요한 자극을 주고있다. 본 논문은 파농의 타자이론을 토대로 독일 제2 제국의 아들이자 아시아 애호가이자 문명비판가였던 헤르만 헤세의『싯다르타』를 분석하고자 한다. ‘인도문학``이라는 부제가 달린 1922년의 이 작은 소설은 역사적 실존 인물이었던 석가모니의 일생을 문학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다른 한편, 신비주의적 종교적 환경에서 성장했으면서 동시에 개신교 교회의 현실과 교리에 큰 실망을 느끼고 등을돌렸던 헤세가 자신의 신비주의적 종교적 입장을 최초로 분명하게 대변한 텍스트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이 작은 소설은 작가가 일차세계대전의 패배 이후 혼란과절망에 가득 찼던 당시 독일 사회를 향해 던지는 새로운 정치적, 문화적 비전이기도 했다. 헤세는 제국말기의 독일을 이성과 기술의 지배, 물질주의와 권력투쟁의장으로 추락한 반문화적인 세계로 이해하였고, 자기절제와 겸손함, 타자에 대한용인과 사랑, 그리고 모순과 대립조차도 포용하는, 사회와 자연 전체에 대한 헌신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신비주의적 세계관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시대와 현실을지배하는 것은 과학적 사유와 합리주의, 물질문명과 제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헤세에게 아시아적 종교적 사유는 그의 이러한 신비주의적 세계관과 비전을투사하고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매체가 되었던 것이다. 타문명에 속한 한 낯선구도자의 일생을 서구적 성찰적 화자의 입을 통해 자아와 세계에 대한 물음과답변의 연속적 과정으로 재구성함으로서,『싯다르타』는 불교의 교리를 아시아의독자와 신앙인들에게도 특별한 교양의 프로그램으로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싯다르타』에 표현된 신비주의적이고 낭만주의적인 전체론적 세계관은서구의 근대이후 위기의 순간마다 등장했던 기나긴 비합리주의적 문명비판 담론의 일부이기도 하다. 쇼펜하우어와 니체, 철새운동과 청년운동, 삶개혁 운동, 슈펭글러의 서양의 몰락론 등, 독일의 전통적인 문명비판 담론은 유토피아에 대한 낭만적 약속을 통해 현대화의 상흔과 병리적 현상들을 보완하기도 했지만 동시에망각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왔다. 이런 의미에서 헤세의 ‘타자와의 협상’은 양가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독일문학사에서는 이러한 헤세의 문학 뿐 아니라 타자와의 협상의 흥미로운 판타지를 드러내는 또 다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이런 작품들은 지구화의 문제의식을 동반한 독문학 연구의 특별한 대상이 될 것이다.

괴테의 세계 -친화력 에 나타난 세계성과 세계문학

앤소니커티스아들러 ( Anthony Curtis Adl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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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세계- 『친화력』에 나타난 세계성과 세계문학앤소니 커티스 아들러 (연세대)현재 세계 문학 학계에서 큰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 괴테의 세계문학의 컨셉트는 내적보다는 외적으로 해석 되고 있다 - 이는 문학 산업의 글로벌화를 의미한다. 이 논문에서 나는 『친화력』을 읽고 괴테에게 있어 문학은 세계의 컨셉트 자체를 다시 생각하고 다시 바라보는 것이라고 주장하려 한다. 괴테에게 있어 소설은 단지 세상을 묘사하는 것이 아닌 객관적으로 존재하지만 일시적이고 공간적배경의 인간의 존재를 대체한다. 더 자세히 나는 『친화력』의 상반되는 등장인물들인 오틸리에과 루치아네를 통해 두 개의 다른 세계관을 보여준다: 한 면에서는세계가 쇠퇴하는 봉건적인 체제에 대응하는 외적인 존재와 인식이지만 한 면에서는 세계가 삶 자체의 경제적인 체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소설에서는 이 둘의절충을 찾으려 하지만 두 번째 파트의 비극적인 전개는 두 상반되는 세계관을섭렵하지 못한 절대적인 실패를 보여준다. 이 비극적인 전개는 결론적으로 모방의 문제로 연결 될 수 있는데, 이 작품은 에두아르트의 공간을 떠나는 루치아네를 포함하지 않으면서 “모방성”의 퇴출을 보여주고자 하지만 독창성으로 보여지는 오틸리에의 본성은 성모 마리아를 모방함으로써 더 위험하고 악마적인 모방을 보여준다. 그녀의 순교는 패러디의 방식을 띄고 있으며 에두아르트는 비극을뛰어넘는 고통의 운명을 겪어야 한다. 모방 할 수 없는 것을 모방하는 창피한실패를 하는 것이 그의 과제가 된다.

글로벌 도시, 지역적 삶 -카렌 두베의 『택시』에 관한 연구

안미현 ( Mi Hyun Ah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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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도시, 지역적 삶- 카렌 두베의 『택시』에 관한 연구안미현 (목포대)카렌 두베의 소설 『택시』 (2008)는 1980년대 말 함부르크를 배경으로 한다. 자유 도시이자 한자 도시인 함부르크는 이 시기에 이미 글로벌 도시의 면모를보여준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야간 작업을 주로 하는 여성 택시운전사이다. 따라서 이 도시의 도로망과 소설의 서사구조는 서로 밀접한 연관 관계를 가진다. 곧 택시는 글로벌 도시의 상징이며, 화자가 택시를 몰고 움직이는 도시의구역과 거리는 일종의 서사 구조로 작동하는 것이다. 화자는 이 도시의 상이한인간 유형, 그들의 삶의 방식이나 행동 방식에 대해, 글로벌 도시의 구조나 그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 에피소드 방식으로 기술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사실(주의)적인 도시사는 아니지만 글로벌 도시의 여러 면모를 보여준다. 글로벌 도시의 주민들은 지역적 차원의 삶을 살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누린다. 그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소비재와 문화적 혜택을 누리는데, 이때 그들의 동력은 자본이다. 다른 한편, 사람들의 삶이 세계화 흐름에도 불구하고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은 전통, 관습, 습관과 같은 삶의 기본적인 부분들이변하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화자를 포함한 등장인물들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서로 간에 동료애, 인간적인 가까움, 성적 파트너 관계 등을원하면서 지역적 삶의 방식을 이어간다. 이는 물질적, 경제적인 차원과 같은 외부 세계와 비교해 사생활, 인간의 내면세계 등은 세계화에 덜 노출된다는 것을의미한다. 글로벌 도시는 소득이나 주거 지역, 문화적 혜택 등, 많은 부분에서 분산되고양극화된 이질적 공간이다. 예컨대 작가는 노숙자, 알코올 중독자 등 글로벌 세계의 경쟁 관계에 적응하지 못했거나 적응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통해 도시의어두운 측면을 보여준다. 이처럼 이 소설의 글로벌 도시는 독자들에게 많은 행복이나 희망을 약속하지 않는다. 화려한 외양과는 달리 실제 사람들간의 관계는개선되지 않았고, 개인의 내적 분열이나 익명성은 극복되기보다는 오히려 심화된다. 외국인, 청소년, 젠더 문제를 포함한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 또한 이윤의재분배가 합리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오히려 커져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세계화와 지역화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단단히 연결되어있고, 소설의 공간은 세계화와 지역화가 서로 교차하고 얽히는 일종의 유희 공간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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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바로크 민족문학의 해체 및 재구성- 발터 벤야민의 『독일 비애극의 근원』을 중심으로장제형 (서울대)독일 민족문학의 효시는 17세기 독일 바로크 문학으로 소급해 올라간다. 암묵적이건 명시적이건 간에 독일 바로크 문학에 내재한 이데올로기적 함의는 독일민족주의 혹은 민족의식의 시원적 형태로 파악할 수 있으며, 이미 그 안에서 독일 “문화민족”의 맹아를 선취하고 있다는 점은 주요 바로크 연구에서 합의된 사항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민족주의의 긍정적 계기와 부정적 측면이 과연 명쾌히분리될 수 있으며, 이에 의거해 이른바 도덕적 시민 애국주의를 통해 국수주의적호전성을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별도의 논의를 요한다. 그러나 바로크 문학에서 발견되는 민족주의의 맹아적 요소는 특히 1871년 독일 통일 전후의 맥락에서 보수적이고 국가주의적으로 해석되면서 집합적 정체성의 정초와 고양을 위한 매우 적절한 토양을 제공하게 된다. 즉,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간에 독일 바로크 자체에 내재한 민족주의적 잠재성은 그로부터 약 2세기 뒤에 마주칠 독일 통일기의 격렬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재편 과정에 봉사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재전유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이러한 흐름은 1차 세계대전을 거쳐 국가사회주의에서 그 절정에 달하면서 전면적인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이러한 맥락을 배경으로 독일 민족주의의 가장 극단적이고도 파괴적인 형태인 국가사회주의의 직접적인 희생자였던 발터 벤야민의 저작 『독일 비애극의근원』을 당대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기류에 대항하는 고유한 바로크 해석의 한방법론적 시도의 차원으로 읽는 것은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 주리라 기대한다. 바로크에 대한 전복적 해석을 통해 벤야민은 한 편으로는 바로크에 대한 당대의지배적인 국가주의적 해석에 곧바로 대립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독일 바로크문학 자체에 내재한 형이상학적이고 표현적인 “이념의 서술”을 자신의 비애극론의 최종목표로 삼는다. 이러한 바로크에 대한 비판적 구제 시도는 독일 바로크에 대한 기존의 통상적인 제한적 관점을 넘어서서, 그것이 세계문학의 차원에까지도 모종의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는 여지까지 고려할 수 있게 만드는 급진적인문제제기를 가능케 한다. 자신의 고유한 문예비평의 방법론적 사고와 실천을 통해 적어도 독일 바로크에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전달 내용을 비판적으로 해체 및 재구성함으로써 바로크에 암묵적으로 내재하는 그 이념적 핵심을 바로 자신의 비애극 론의 서술을 통해 보여주려고 했다는 데에 벤야민의 작업의 그 핵심적이고도 발본적인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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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로봇의 미래적 혼종문화- 프리츠 랑과 린타로의 <메트로폴리스> 비교 연구천현순 (이화여대)‘로봇’이라는 용어는 원래 체코어로 노동을 뜻하는 ‘로보타 robota’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인간의 힘든 노동을 대신하는 기계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1921년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의 드라마 작품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바 있다. 차페크의 드라마 작품을 통해 로봇이라는 신조어가 널리 보편화되었으며, 이후 사이언스픽션 문학 및 영화에서 주로 등장하는 소재가 되었다. 본 논문은 독일의 영화감독 프리츠 랑과 일본의 영화감독 린타로의 <메트로폴리스>에 나타난 인간과 로봇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이와 연관해서 본 논문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두 영화의 특징을 비교분석하고 있다. 첫째, 로봇에대한 상상력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시대적으로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둘째, 이와연관해서 로봇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셋째, 프리츠 랑과 린타로의영화를 통해 어떠한 시대적인 변화상을 읽어낼 수 있는가?우선, 두 영화의 비교를 통해 로봇에 대한 상상력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전기에서 인공지능 컴퓨터기술로 진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에서 하이라이트가 되는 장면은 로봇의 인간화 과정이다. 영화에서로봇 마리아는 당시 새로운 과학기술로 통용되던 전류의 힘을 통해 인간적인생명력을 얻게 된다. 이와 달리 린타로의 영화에서 로봇소녀 티마는 오늘날 최첨단 컴퓨터기술을 통해 인간적인 생명력을 얻고 있다. 더 나아가 두 영화의 비교를 통해 로봇에 대한 인식도 변화되고 있음을 알수 있다. 프리츠 랑의 영화에서 로봇 마리아는 대도시 전체를 파멸로 이끄는 ‘창녀 바빌론’으로 상징화되고 있으며, 신에 의한 인간창조에 반하는 악의 화신으로제시되고 있다. 이에 반해 린타로의 영화에서 로봇소녀 티마는 천사와 같은 이미지로 제시되고 있으며, 인간다움과 기계다움을 동시에 소유한 인간과 기계의 혼종적 존재로 제시되고 있다. 지금까지 프리츠 랑과 린타로의 영화를 비교분석함으로써 드러나는 점은 휴머니즘에서 포스트휴머니즘으로 넘어가는 시대적인 변화상이라 할 수 있다.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의 핵심적인 주제는 지배자와 노동자 사이의 인간적인 화해와 사랑이며, 이는 결국 기독교에 근거한 휴머니즘의 전통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린타로의 <메트로폴리스>의 핵심적인 주제는 미래에가능한 인간과 로봇의 공존에 관한 문제이다. 린타로의 영화에서 로봇은 인간의인간다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로 제시되고 있다. 린타로의 영화는 인간다운 로봇을 통해 전통적인 휴머니즘에서 주창해온 인간의 우월성 및 종차별주의를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도록 하며, 이는결국 오늘날 포스트휴머니즘적인 시각과도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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