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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in International Context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5-1216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36권 0호 (2006)

옥소 문집의 서지적 고찰

최호석 ( Choi Ho-suk )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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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옥소 권섭(1671~1759)의 필사본(筆寫本) 문집 2종과 석인본(石印本) 문집 1종의 현황을 소개하는 한편 각 문집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옥소의 필사본 문집인 『옥소고(玉所稿)』는 제천과 문경에 사는 후손가에 각각 전해져 온 것이며, 석인본 문집인 『옥소집(玉所集)』은 옥소의 10세손인권희만이 1938년에 13권 7책의 체재로 제천에서 간행한 것이다. 본고에서는 필사본 2종을 각각 `제천본(堤川本)`, `문경본(聞慶本)`이라고 구분하였다. 현재 필사본으로는 제천본 45책과 문경본 17책이 전하는데, 남아있는 책의 규모나 다양성 면에서 볼 때 제천본이 문경본보다 완질에 가깝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제천본에는 중복 수록된 작품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제천본은 문집을 간행하기 위하여 일단 수집 가능한 모든 작품을 수록한 초고본으로 보인다. 이와는 달리 문경본은 중복 수록된 작품도 없으며 부분적으로 제천본과 다른 편제를 갖는, 약간은 완정된 형태의 문집이라고 하겠다. 한편 석인본은 제천본을 바탕으로 하였는데, 거기에는 국문시가가 모두 빠져 있으며 한시도 필사본의 5% 정도만 실리는 등 필사본에 있는 작품 중에서 극히 소수의 작품만이 수록되어 연구의 텍스트로 삼기에는 부적당하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제천본과 문경본의 성립연대는 언제인지, 그리고 글씨는 누가 얼마나 썼는지, 문집 안에 있는 그림은 누가 또 그렸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는 형편이다. 다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제천본과 문경본을 모두 수합한 『옥소고(玉所稿)』 영인본이 나온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는다. 영인본이 나온 뒤 옥소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옥소 권섭의 음악경험과 18세기 음악환경

신경숙 ( Shin Kyung-sook )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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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8세기 노론계 인물인 권섭의 음악경험을 발견하고, 그의 음악경험이 18세기 음악사에서 갖는 의미를 밝히기 위해 작성되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권섭의 음악경험은 한 장르에 편중되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음악에 폭넓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모든 음악 종류들에 대해 좋고 나쁨의 평가를 하지 않고, 각 장르의 가치를 인정하는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또한 권섭은 최고 수준의 음악을 가늠할 만한 안목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즐겼던 음악인들은 모두 당대 최정상급이었다. 동시에 그들은 대부분 관청 소속 음악인들이었다. 이런 음악인의 연주를 즐기는 것은 서울 중심의 거대가문에서는 매우 일반적인 모습이다. 권섭 집안 역시 서울과 제천을 기반으로 한 거대 가문이었다. 18세기에는 선구적 음악가로 김천택, 김성기 등이 활동하고 있었다. 권섭은 최고 수준의 음악을 즐겼지만, 이 두 사람과 교유한 적이 없었으니, 이는 권섭의 음악취향이 이들과 달랐음을 의미한다. 권섭의 음악경험을 통해, 18세기 음악사회 내부에는 다양한 층위가 존재했음이 드러났다. 즉 한편에서는 시대보다 앞선 선구적인 음악이 실험되고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대다수의 애호를 받는 전형적인 시대취향을 보여주는 음악들이 연주되고 있었다. 권섭의 경험은 후자를 보여준다.

권섭의 산수(山水) 유기(遊記) 연구(硏究)

홍성욱 ( Hong Seong-uk )
1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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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품체의 하나인 산수 유기는 산수 유람의 흥취와 견문을 주로 하는 것이다. 당나라 유종원에 의해 처음 지어진 이 글은 조선 전기 김종직과 그의 문인들에 의해 ○○록이란 표제 하에 산수 유람의 흥취와 사대부 의식의 고취를 주 내용으로 활발히 지어졌다. 그러나 조선 후기 들어 금강산과 지리산 유람이 활발해지면서 다수의 산수유기가 지어진다. 권섭은 기사환국(己巳換局)을 경험하면서 정치 현실에 대한 환멸을 느껴 출사에 대한 생각을 접고 평생토록 전국의 산수를 두루 유람하면서 보낸다. 그에게 산수는 세상과 분리된 자유공간이며 탐미대상일 뿐 이전의 산수 유람자들이 의식한 것과 같은 사대부 의리를 실현하고 도체(道體)를 발견하는 공간은 아니었다. 그는 정신의 자유와 산수의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노구를 이끌고 전국 각지를 유람하였다. 스스로 산수벽이 있다고 할 정도로 탐승(探勝)에 몰두하였으며 이를 다양한 형식의 산수유기로 남겼다. 그가 남긴 산수유기는 조선 전기나 동 시대 문인의 그것과는 내용과 형식면에서 매우 차별적 양상을 보인다. 평생의 유람 기록을 빠짐없이 남기고자 환갑을 넘은 노년에도 기억을 더듬어 지난날의 유람을 다시 기록하기도 하고, 타인의 유람 기록을 그대로 옮겨 놓기도 하였다. 일반 유기의 형식을 준용하여 일기체로 서술하되 날씨, 이동거리, 그날의 주요 유람지 등만 서술하고 자신의 감상은 거의 배제시키기도 하였고, 자신만의 독창적 체재로 유람 전 과정을 자세히 서술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전범으로 여긴 문장의 문체를 모방하여 서술하기도 하였다. 그의 유람은 어느 시기에 집중된 것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꾸준히 지속되었다. 그리고 그의 산수유기는 유람의 흥취를 서술한 것이 주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유람의 전 과정이 두루 망라되어 있다. 특히 권섭은 유람을 하면서 여정과 그날그날의 일정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자세히 기록하였다. 또 자신의 유람에 도움을 준 사람들의 구체적 내역을 일일이 적어 놓았다. 그에게 있어 탐승의 욕구는 식욕과 색욕을 억제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까닭에 老年에도 산수 유람을 멈추지 않았고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결행하였던 것이다. 그는 탐승에 몰입하면서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정감을 산수에 투사시킨다. 또 이를 통해 정신적인 자유와 해방을 만끽하고 그것은 그의 정신과 육체를 산수 유람 이전보다 한층 강건하게 만든다. 그것이 그를 평생 동안 산수의 기승(奇勝)을 추구하도록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강고한 산수벽을 지녔으면서도 그는 산수유기에서 산수 유람의 흥취와 견문만 적지 않았다. 산수 유람의 전 과정이 모두 소중하였기에 어디를 어떻게 다녔는지 그리고 누구와 어떻게 어울렸는지는 빠짐없이 적었던 것이다. 이유는 이 모든 것이 산수 유람을 통해 자신의 정신적 자유를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치음 /ㅅ/, /ㅈ/의 조음위치 이동 원인과 변화 과정

신승용 ( Shin Seung-yong )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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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에서 치음(/ㅅ, ㅈ/)은 순음(양순)의 뒤쪽, 설음(치조)의 앞쪽에서 조음된 소리였다. 그러다가 16세기에 들어 음절말 /ㅅ/이 /ㄷ/으로 합류하면서 치조 위치로 이동하는 변화를 겪는다. 이러한 치음의 1차 이동의 결과 /ㅅ/, /ㅈ/의 구개변이음화(/s/ → [∫] / ___{i, y}, /ts/ → [t∫] / ___{i, y}) 규칙이 생성되었다. 그 결과 표기상에서 `ㅅyV~ㅅV`, `ㅈyV~ㅈV`가 혼기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1차 이동 후 /ㅈ/은 다시 경구개 위치로 2차 이동을 하였다. 이는 체계 내적으로 파찰음 /ㅈ/이 조음되기에 가장 무표적인 위치인 경구개 위치가 비어 있었고, 1차 이동 후 발생한 구개변이음화가 /ㅈ/의 경구개 위치로의 이동을 활성화시켰기 때문이다. 나아가 /ㄷ/ → /ㅈ/ 교체가 /ㅈ/의 경구개 위치로의 이동을 확고하게 하는 기제로 작동하였다.

연어의 개념과 범주 한정의 제 문제

임유종 ( Im Yoo-jong )
7,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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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의 목적은 연어의 개념과 범주 한정의 문제를 다루는 데에 있다. 연어는 어휘 차원의 제한된 결합을 중시하는 언어학적 개념 정의와 빈도나 공기 확률을 중시한 통계 기반의 개념 정의 2가지로 크게 나뉜다. 이 논의에서는 어휘 차원의 제한된 결합으로 연어를 정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보였고, 이러한 관점에서 어휘적인 결합 제약, 의미 투명성 등의 연어의 판별기준에 관하여 논의하였다. 나아가 연어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한정하여 다국어 연어 DB 구축 등과 같은 실질적인 작업에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의 텍스트 문제

김기종 ( Kim Ki-jong )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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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지곡은 세종 당대에 간행된 단행본과, 월인석보에 수록된 노래 모두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월인천강지곡의 텍스트에는 단행본과 월인석보 수록 노래 모두가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기존의 문학적 연구 중, 몇몇 논의에서는 내용의 연속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월인석보 소재 월인천강지곡을 텍스트에서 제외하고 있다. 또한 월인석보의 마지막 권차인 권25가 1998년 학계에 소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권25의 마지막 노래인 其583에 대한 언급은 기존 연구에서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나 월인천강지곡의 문학적 연구를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를 도외시할 수 없다. 텍스트의 범위에 따라 월인천강지곡의 성격은 달리 파악될 것이고, 작품의 구조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결사의 확정 문제가 무엇보다 해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월인천강지곡의 본격적인 연구를 위한 논의의 일환으로, 텍스트의 범위와 결사의 확정 문제에 대해 살펴보았다. 먼저, 단행본과 월인석보 수록 노래들의 비교를 통해, 노랫말에 차이를 보이고 있는 두 곡의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저경과 내용이 대응되는 석보상절과 월인석보의 비교를 통해서는 곡차의 차이 및 그 이유를 밝힐 수 있었다. 그리하여 곡차의 차이는 단행본 중권 또는 하권에 있던 노래가 곡차만 바뀌어 권5나 권6에 옮겨진 결과로 보았다. 또한 월인석보의 변개는 월인천강지곡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더 나아가 월인천강지곡으로 인해 월인석보의 내용이 새로 첨가된 경우도 있음을 확인하였다. 다음으로, 결사의 문제에 있어서는 이에 대한 기존의 논의를 살펴본 뒤, 其583의 내용과 주석 등을 구체적으로 검토하여 이 노래가 其582와 함께 其3~581의 내용을 마무리하는 월인천강지곡의 결사임을 확정하였다. 끝으로, 결사의 확정에 대한 이러한 논의와, 단행본과 월인석보에 수록된 노래들을 같은 맥락에서 다룰 수 있다는 앞의 논의를 통해 월인천강지곡의 텍스트를 확정하였다. 월인천강지곡의 텍스트 문제에 대한 본고의 논의는, 월인천강지곡의 서사구조를 파악하고 분석하기 위한 선행 작업으로서의 의의뿐만 아니라, 월인천강지곡·월인석보·석보상절의 비교 고찰을 통해 연구의 영역을 넓혔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한용운, 휘트먼, 타골의 시와 식물의 혁명적 심상

김영호 ( Kim Young-ho )
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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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월트 휘트먼(Walt Whitman:1819-1879), 인도의 타골(R. Tagore:1861-1941), 그리고 한국의 만해(萬海) 한용운(1879-1944)은 각자 시대와 장소가 상거한 상황에서 그들 시 작품 속에 공통된 자연 물상 특히 풀잎, 꽃, 그리고 나무의 시적 기재를 정치적 이미저리로 심상화하는 유사한 시적 예술성을 보였다. 이들 세 시인은 각자의 종교인 기독교, 힌두교, 그리고 불교에서 체득한 공통된 초절주의 문학사상을 식물의 이미지를 통해 표출시켰다. 그리고 곧 이들은 다 같이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세계를 정치세계 특히 민족주의적 세계로 상승시키고 이를 공통된 자연물상에 투입시켜 혁명적 사상(寫象)으로 형상화하였다. 다시 말해 세 시인 공히 풀잎, 꽃, 그리고 나무 등을 객관적 상관물로 사용하여 그들의 혁명적 이데아를 시적으로 의장화하여 각자 자국의 정치적 국민문학의 지평을 열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이 같은 세 시인의 작품 속에 나타난 정치적 이념을 함의하는 공통된 식물의 이미지들을 탐색하고 그 유사점을 비교하고자 한다. 이 같은 삼자의 예술성의 유사성을 추적하고 대비하여 비교의 미학성을 획득함으로써 비교문학의 학구적 의의를 구축하고자 한다. 나아가 그들 간의 문학적 영향관계, 즉 휘트먼의 문학이 타골의 문학을 통하여 한용운의 문학에 전수된 영향의 흐름을 확인하여 두 외국문학과 한국문학의 비교연구의 한 모델을 건축하고 궁극적으로 한용운 문학의 독창성과 영향성을 대비하여 그의 예술적 위의가 세계적 위상의 근거를 확보하고 있음을 추출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표다.

이상 시의 비유적 특성과 탈식민적 저항의 가능성

엄성원 ( Um Sung-won )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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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이상 시의 비유적 특성에 관한 구조적 분석을 통해 전통이 붕괴되고 근대화로 위장된 식민 정책이 강화되는 현실에서 시적 주체가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미적으로 대응하고 있는지 주체 구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이상의 문학은 전통 담론과 식민 담론의 유기론적 사고 방식이나 제유적 세계관을 모두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문학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상은 전통으로 복귀하는 것에 대해서도 강력한 거부감을 나타냈지만, 타율에 의한 왜곡된 근대화가 강제로 진행됨에 따라 주체와 타자 사이의 현격한 분리 현상이 발생하였고 나아가 주체 내부의 분열상까지도 나타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유기론 사상이나 제유적 시학의 허구성을 폭로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비유적 전략은 `차이성이 강조된 은유`나 `물질성이 강조된 환유`를 텍스트 내에 대거 생경하게 배치하여 미적으로 저항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이상은 차이성을 배제한 채강력한 구심력을 바탕으로 전체와 부분을 전체적이고 통합적으로 장악하려는 제국주의 담론이나 민족주의 담론 모두의 해체를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탈식민주의적 저항의 가능성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황석영 소설에 나타난 `성욕 주체`의 양상 연구

오태호 ( Oh Tae-ho )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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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소설에 나타난 근대적 주체들의 `성적 욕망`의 모습은 술집 작부나 군인 등이 근대적 도시 공간의 중심부에서 밀려나 거주하게 되는 주변부 공간에서 그 양태를 확인할 수 있다. 1950년대 이래로 한국 사회에서 `술집 작부`는 매매춘 여성과 동일한 개념으로 인식되면서 성 착취의 대표적인 표상으로 존재해왔다. 따라서 그들은 자본주의의 매매 논리가 근대적 주체의 몸을 어떻게 구성하고 배치하는가를 명증하게 보여주는 욕망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또한 `군인`은 적아 간의 이분법적 대립 속에 감정을 배제한 채, 살해 욕망이 충만한 살인기계로서 훈련되어야 하는 존재이다. 프로이트의 견해에 따라 타나토스적 충동이 에로스적 충동의 다른 얼굴임을 감안한다면, 군인 역시 `성적 욕망`의 기계로 구성되는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다. 「삼포 가는 길」의 술집 작부 백화, 「이웃 사람」의 매매춘 여성과 살인범, 「돼지꿈」에서의 여성노동자와 포장마차 주인, 「섬섬옥수」의 여대생 박미리, 「장사의 꿈」의 매매춘 남성 일봉, 「낙타누깔」의 군인 `나` 등이 보여주는 욕망의 모습은 `성적 욕망`이 자본이나 권력에 의해 매개된 욕망임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자본의 회로 속에서 시대를 살아내기 위한 몸짓을 보인다는 점에서 `성욕 주체`는 자본주의 안에서 대상화된 존재로 기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섬섬옥수」의 수리공 상수, 「장사의 꿈」의 일봉과 애자, 「몰개월의 새」의 미자와 군인 `나`, 『오래된 정원』의 한윤희, 『심청』의 청이 등은 그러한 `성욕 주체`의 모습 속에서도 자본의 논리가 강요하는 물신화된 성적 욕망을 거부하면서, 자유의지를 지닌 채 자본이 매개되지 않는 본능의 순수성 또는 살해된 모성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황석영 소설의 인물들은 `성욕 주체`의 모습을 드러내면서도 끊임없이 자본주의의 물신화된 논리에 균열을 내기 위해 `탈성욕 주체`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듯 근대적 주체들의 성적 욕망은 자본주의적 질서에 의해 이중의 흔적으로 몸에 새겨진다. 그리하여 `성욕 주체`는 자본의 도구적 성격을 내재화하여 자본으로 매매되는 불구적 몸으로 존재하거나, 자본을 매개로 하지 않은 채 `탈성화된 몸`을 욕망하는 주체를 꿈꾸기 마련이다. 황석영 소설에서 자본과 권력, 욕망의 문제는 서로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근대적 주체에 대해 작동하는 억압적 연쇄 고리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속에서 근대적 주체들이 자본주의적 담론에 의해 구성된 `성욕 주체`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려는 몸짓을 내포하고 있는 `탈성욕 주체`임이 드러난다.

문학사학(文學史學)을 위한 시론

이영미 ( Lee Young-mi )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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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한국 문학연구의 미래에 관한 하나의 기획안이다. 따라서 귀납적인 고증 방식이 아니라 선언적 주장을 앞세우는 연역적 방식의 제안이 될 것이다. 선행 연구에 문학과 그 연구의 미래에 관한 논의는 `한국문학`의 세계화 논의와, 한국 내에서 `문학`의 생존과 관련된 문화 지평으로의 확대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즉, 문학의 수출과 내수의 활성화 전략 문제일 것이다. 본고는 이제 국문학계 전체의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임을 상기시키면서 해결방안으로 학계 비평의 새로운 명칭이라 할 수 있는 `문학사학`을 제안하였다. 한국 문단에서 작가와 창작물은 그동안 `체제의 재구축이라는 운동성(해방)`과 관련되어 권력화 되고 정전화 되어왔다. 문학평론 역시 이에 기생하여 `주례사 비평`으로 낙인찍혔다. 이 유착관계를 과감히 끊는 학계 비평의 재정비가 긴급하다. 그래서 기존의 작가 중심 연구가 아닌, 다양한 해석을 과감하게 적용한 `수용자` 중심의 문학연구를 `문학사학`이라 범주화해 보았다. 통사적 형태를 기본으로 하는 (주제적) 문학사학의 세부 도안은, 기존의 한국문학(통)사, 시문학사, 소설문학사, 문예사조사 외에, 예를 들면, 작가사상사, 한국독자의 역사, 정치문학사, 전복적 정치(패러디)의 문학사, 섹슈얼리티(남성 혹은 여성)의 문학사, 노동자에 관련된 문학사, 노동의 형태에 관련된 문학사(경제문학사), 문장이론의 문학사, 수사학의 역사, 농민에 관련된 문학사, 기생(혹은 매춘부)에 관련된 문학사, 아동에 관련된 문학사, 종교에 관련된 문학사, 문학의 장르 변천사, 문학 장르의 권력사, 풍속문학사, 풍자문학사, 아나키즘문학사, 지방에 관련된 문학사, 가문에 관련된 문학사, 교육에 관련된 문학사, 이민(디아스포라)에 관련된 문학사 등이 될 수 있겠다. 이는 하나의 한국문학사를 지양하고 다중의 문학사를 통해 대중의 문화 소비 욕구를 해소하자는 것이다. 역으로 이를 통해 문학`연구`는 대중을 인격화시키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 문학의 아우라가 거세된 `경제(소비, 수용자)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수용자의 권력화를 받아들이려는 능동적이고 역동적인 변화의지이다. 창작품을 먼저 번역하여 세계화시키려는 더디고 비능률적인 행보보다는 오히려 문학의 비평적 기능을 강화하여 진정한 문학연구 나아가 문화연구를 활성화하고 수용자인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내수와 수출전략을 짜야할 것으로 본다. 그리하여 문학(창작 혹은 작가)에 종속된 20세기 `문학`연구가 아니라 21세기 디지털 시대 `융합`의 문학`연구`로서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 이 `문학사학`을 통해 보다 압축적으로 인문학의 부흥을 꾀하고 한국 문학 나아가 문화의 위상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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