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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in International Context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5-1216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2권 0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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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타 사행록들과 달리 최현의 『조천일록』은 사적인 기록과 공적인 기록을 함께 포괄하고 있다. 6권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권1에 서계(書啓)(附 聞見事件 逐日附日錄)가 덧붙어 있고, 권6에 각종 정문들과 장계가 실려 있다. 물상들에 대하여 열린 관점을 갖고 있던 그는 사일기(私日記)와 공적인 기록으로 나누어 기록 안에서 목소리를 약간씩 다르게 처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사`와 `공`을 나누었다 하여 글쓰기의 면에서 양자가 크게 변별되는 것은 아니다. 사적인 글쓰기가 주로 노정을 위주로 약간의 정서적 측면을 고려한 글쓰기였다면, 물상들의 제도적인 측면을 상세히 탐사하여 기록함으로써 나라의 이익에 기여하고자 한 것이 바로 `공적인` 글쓰기였다. 최현은 기록의 순간에 임할 때마다 사실 묘사나 기술에 충실해야 하고 고도로 상세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결과는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는 공인으로서의 자세로부터 나온 것일 수 있으나, 사실은 당대의 지식인 관료 최현 스스로 갖고 있던 현실인식이나 견문을 국가 정책에 반영하여 합리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의 소산이었을 것이다. 최현이 『조천일록』에서 보여준 글쓰기의 두드러진 장점은 시각적 이미지를 적절히 사용하여 견문에 대한 설명에서 구체성의 효과를 거둔 점, 상세한 탐문을 통해 스쳐 지나가는 `견문`으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정보를 상세하게 기록해 놓은 점 등이다. 양자 모두 사명을 수행하는 공인의 자세로부터 나온 결과였다. 단순히 정보의 기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나라가 바탕으로 삼고 있던 이념적 색채까지 노출함으로써 범상치 않은 글쓰기의 일면을 보여주었다. 학계의 주된 연구대상인 김창업·홍대용·서유문·박지원·김경선 등 17~19세기 사행록의 흐름에서 시기 상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는 동시에 독특한 글쓰기의 양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최현의 『조천일록』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19세기 초 항해(沆瀣) 홍길주(洪吉周)의 글쓰기 경향

이홍식 ( Lee Hong-shi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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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홍길주는 19세기 초에 활동했던 대표적인 문장가로, 고문의 토대 아래 소품의 장처를 수용하여 개성적인 문학을 완성했던 인물이다. 그는 농암 김창협의 학맥과 문맥을 이은 형 연천 홍석주의 영향으로 당송고문을 익혔고,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 등 전후 대문호들의 영향으로 고문의 경계를 일정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문장의 중원(中原)에서 이루어지는 고문과 소품의 자유로운 소통은 홍길주 문학의 개성적 향기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질료가 될 뿐만 아니라, 고문과 소품이 공존했던 19세기 초 조선의 글쓰기 경향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고문관이 확립되고 탈고문적 성향이 발휘되는 지점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 결과 “활물(活物)과 활독서(活讀書), 차이와 개별성, 소통과 문장중원”이라는 비교기준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고문과 탈고문의 경계를 보다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었다. 이것은 홍길주 문학의 한 특징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문과 소품의 교섭양상까지 살필 수 있는 중요한 단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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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의 국한문체 글쓰기에서 한문전통은 실용적 작문을 위한 근간이기도 했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의도에 따라 민족주의를 탈각시키는 역할도 하였다. 당시의 다양한 자료 중에서 작문교본들은 글쓰기관습과 문화 의식의 변천을 잘 나타내는 자료이다. 근대계몽기에 한문전통은 민족주의적인 자각을 바탕으로 시대적 현안과 조화되고 있었으며 그 대표적 성과로 최재학의 국한문체 작문교본인 『실지응용작문법(實地應用作文法)』을 들 수 있다. 그러나 1910년의 한일병합을 전환점으로 한문전통의 능동적 적용은 수구적이거나 친일적인 방향으로 퇴보하게 된다. 이각종의 『실용작문법(實用作文法)』과 이종린의 『문장체법(文章體法)』은 이 과정을 잘 보여주는 국한문체 작문교본들이다. 특별히 전자는 일본 혼용문의 한국 글쓰기에 대한 모범으로 삼았으며, 그 내용에서도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적극적 협조의 성격이 드러난다. 1910년대 문체 상황에서 가장 강력한 교본이었던 『시문독본』에서 한문전통이 약화되었던 것도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하겠다.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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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조선시대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환몽구조로 이루어진 소설에 기본 틀을 제공해주었다. 설화의 내용은 현실에서 맺어질 수 없는 대상을 갈망하여 극도로 고뇌하다가 꿈에서 욕망을 이루는 것으로 구성된다. 이 설화의 문면을 분석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주인공이 자신의 욕구와 상반되는 외계(外界)의 조건을 어떻게 극복하고 자기실현에 도달하는가의 도정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본고는 조신설화의 전기적, 역사적 측면이나 문학적 특성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문면에 드러난 내용과 그 속의 내재적 의미를 통해 조신의 자아실현과정을 추적하고자 함이다. 분석심리학의 관점을 적용하여 결혼을 갈구하는 조신의 욕구가 현실조건과 맞물리어 어떻게 자기원형과 대면하게 되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어떠한 상태로 실현해나가는가에 기준을 두고 논의를 전개한다. 조신은 평범한 승려의 신분이 아닌, 지장(知莊)이었다. 불가의 계율과 일과에 맞추어 생활해야 하는 본사에서 나와 지장의 임무를 맡은 것은 제2의 정신적 출가를 의미하는 사건이다. 이는 외계를 이루는 자아를 의식하는 계기가 되고 자신 속에 도사리고 있는 무의식과 그 그림자를 대면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다. 그가 장원에서 여성에게 매혹됨은 억압된 무의식으로서의 애욕이 제일 먼저 표출된 것이다. 무의식 중 가장 억눌리고 열등한 부분이 돌출되어 그녀와 함께하는 세속적 삶에 대한 바람을 갖게 된다. 조신이 `잠이 든` 것은 일종의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감을 상징한다. 그의 의식에 의해 가려졌던 무의식 속에는 그가 영위하고 싶었던 속세의 삶이 펼쳐진다. 조신의 현실적인 아니마는 김흔 공의 딸이지만 그녀의 모습 속에는 조신의 번뇌를 어루만져서 벗어나게 도와주는 구원의 여성으로서의 관음보살이 투사되어 있다. 그의 아내는 조신에게 진정한 자기원형의 모습을 깨닫게 해주려는 관음보살의 보조자이기도 하다. 그의 진정한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게 도와주는 이가 그가 반한 현실의 여자이면서 동시에 관음보살이다. `조신설화`는 세속의 부귀와 공명 또는 욕망을 이룸이 하룻밤의 꿈처럼 무상하다는 단순한 교훈이 들어있는 게 아니다. 인간들의 세상에서 자기의 전부라고 알고 살고 있는 가면으로서의 인격에 함몰됨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어 있다. 또한 이를 통해 진정한 자기의 원형을 깨닫고 그 모습을 찾아가야 한다는 당위적 내용이 관류하고 있다. 이 설화는 현실의 원칙에 충실하여 획득한 표지를 버리고 내재된 욕망을 위로 끌어올려 근원적 번뇌와 대면하게 한다. 조신은 외면과 내면의 이런 긴장을 통해 자기의 원형을 깨닫고 속세를 벗어나 해탈의 길에 입문한다.

18세기 양응수의 독서법에 나타난 독서 양상과 그 의미

박수밀 ( Park Su-mil )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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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8세기 학자 백수(白水) 양응수(楊應秀)의 독서법을 살펴 그 성격과 내용을 규명하고, 나아가 조선조 독서론과 대비하여 그 의미를 조명한 후 고전 독서론의 현재적 의의를 점검한 것이다. 백수의 독서법을 살핀 결과 그는 성리학 전통의 독서론을 계승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열린 독서 태도를 수용했다. 읽어서는 안 될 책이란 없다고 하였으며 경전의 풀이가 다르더라도 해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수용했다. 또 무조건 본문에 빠져들기보다는 종이밖에서 스스로 궁구하는 독서 태도를 강조하였다. 상황성과 때를 중시하는 권(權)과 중(中)을 이야기한 것도 고착화된 이전의 독서 습관과는 다른 유연한 태도였다. 18세기의 새로운 독서 환경은 성리학자들에게 열린 시각에서 독서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기존의 전통과 새로운 독서 환경이 충돌하자 백수는 적잖은 고민을 했을 것이며, 좀더 열린 입장을 보여주는 주자의 독서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따라서 성리학 계열의 책만을 강조하는 조선중기 도학자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제자백가서까지 범위를 확대하는 주자 독서론을 수용하였다. 기존의 성리학자들이 주자의 해석 자체를 절대시했다면 18세기 백수는 주자의 본질을 찾아 상대적으로 주체적인 독서 태도를 보여주었다. 백수의 독서법은 18세기 학자들이 기존의 독서전통을 잘 계승하면서도 열린 관점에서 독서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백수의 독서법을 비롯, 고전 독서론에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이론과 방법들이 많다. 고전 독서론을 체계화하여 현대의 독서론에 접맥시키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

추재(秋齋) 조수삼(趙秀三)의 「외이죽지사(外夷竹枝詞)」 연구

신은경 ( Shin Eun-ky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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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이죽지사」는 추재 조수삼의 문집 『秋齋集』 7권에 실려 있는 121수의 연작시로서 82개국의 나라 이름을 제목으로 삼아 그 나라의 풍속과 물산, 문화, 생활습속 등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외이죽지사」의 가장 큰 특징은 산문과 한 수 이상의 7언 절구가 결합하여 하나의 텍스트를 구성하는 혼합담론이라는 점이다. 각 텍스트 제목 뒤에 배치된 산문서술은 일견 注釋처럼 보이나 면밀히 검토해 보면 序의 범주에 속할 만한 것이기에 「외이죽지사」는 `서부가형` 혼합담론으로 분류될 수 있다. 「외이죽지사」의 또 다른 특징은 다른 담론과 대화적 관계에 놓이면서 다성성을 구현하는 담론이라는 점이다. 다성성을, 시간적 거리를 두고 선행담론을 재현하는 통시적 다성성과 동시간대에 존재하는 담론과의 대화양상을 전제로 한 공시적 다성성으로 구분할 때, 「외이죽지사」는 明代에 나온 地理書인『方輿勝略』을 담론 생산의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통시적 대화 양상을, 하나의 텍스트 안에 산문과 운문이라고 하는 異種의 서술방식이 혼재해 있다는 점에서 공시적 대화 양상을 구체화한다. 또한 장르적 측면에서 볼 때 「외이죽지사」는 교술문학에 속하는 것으로서 담론 자체만을 고려한다면 언어의 지시성이 강화된 對象詩인 동시에 리얼리즘 문학으로 규정될 수도 있지만, 기존의 담론을 모방적으로 재현했다고 하는 담론 외적 정보를 고려에 넣는다면 메타언어적 기능이 강조된 것으로 볼 수 있기에 대상시로 규정할 수도 없고, 나아가 리얼리즘과는 더더욱 거리가먼 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외이죽지사」의 또 다른 특성으로서 외국으로까지 시적 공간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자아인식의 확대와 맞물린 현상으로 단편적이나마 `근대성`의 단초를 시사하는 면이라 할 수 있다.
7,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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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겨레가 한반도에 문명을 이루며 살았던 선사시대로부터 디지털시대로 일컬어지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무속이 우리 겨레의 의식과 풍속과 윤리와 규범에 끼쳐 온 파급력에 비추면, 현대시의 공간 안에 드리운 무속적 모티프는 상대적으로 희미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우선 현대시가 재래의 문화를 버려야 할 유산으로 치부했던 사회사적 분위기 속에 탄생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다른 이유로 우주관이나, 사생관, 그리고 신지핌이나 혼교(魂交), 주술, 공수, 금기 따위의 무속적 요소에 드리운 초자연적 색채는 실증주의와 유클리드 기하학, 그리고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표상되는 서구의 근대적 인식체계 안에서 호소력을 발휘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 연구의 목적은 현대시사에서 일정한 좌표적 공간을 확보하는 시인의 시안에 내재한 무속성을 탐험함으로써, 겨레의 의식과 규범과 윤리와 행동을 오래 지배해 왔던 무속이 겨레정서가 가장 예리하게 집적된 물증이라 할 수 있는 현대시에 어떤 모습으로 간섭하고 있는가를 살피려는 데 있다. 소월 시에서는 「무덤」, 「묵념(默念)」, 「접동새」를 텍스트로 삼아 무속적 상상력을 탐색했다. 「무덤」은 한밤중 공동묘지를 헤매는 화자가 빙의 상태에서 가슴에 품은 한을 망자의 공창에 의탁해 표출하는 작품이다. 이 시의 에피소드는 신병들린 입무자의 심리와 행동을 환기한다. 「묵념(默念)」은, 한맺힌 망자는 저승으로 들지 못하고 지상을 떠돈다는 무속적 사생관을 배후로 사랑과 그리움, 또는 한이라는 소월 시의 주제적 국면을 표출한다. 사령을 화자로 삼아 형상화하는 형식을 지닌다. 「접동새」는 서북지방의 전래설화를 모델로 하여 한이라는 겨레정서의 원형질을 포착한다. 이 시들의 배후에는 사령과 소통하는 무속적 혼교 모티프가 놓인다. 화자 자신이 무속적 사유를 배경으로 사상(事象)에 접근하고 그것을 해석한다. 그 과정에서 깊은 그늘을 드리우는 한(恨)은 `무속의 씨`로 무적 제례의 동인을 형성한다. 이상 시 가운데에서는 「오감도(烏瞰圖)」의 「시제14호(詩第十四號)」와 「문벌(門閥)」에서 무속적 요소를 감지할 수 있다. 「오감도(烏瞰圖)」 연작 가운데 하나인 「시제14호(詩第十四號)」는 무속적 입사의례의 한 형식인 임사체험을 사실적으로 재현한다. 신체할단(dismemberment)을 통한 임사체험은 시대나장소와 관계없이 원시샤먼들이 인격에서 신격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겪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 시에 드러난 신체할단 장면의 전율과 고통은 원시샤먼들의 그것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이상 시에서도 우연적이고 예외적인 이러한 모습은 집단무의식의 현상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문벌(門閥)」은 가문의 굴레에 대한 화자의 갈등과 고민을 혼교라는 무속적 사유형식으로 전달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무속성은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꾸미기 위한 알레고리적 장치를 구성하는 데 복무한다. 백석의 시에서는 「가즈랑집할머니」, 「소금덩이라는곧」,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에서 무속의 기미를 발견하려 했다. 그의 시가 보여 주는 극사실주의적 토속 공간의 원형성은 이미 그 안에 짙든 흐리든 무속적 세계가 겹쳐 있을 소지를 마련한다. 「가즈랑집」은 무당인 “가즈랑집할머니”를 구심점으로 한, 무속적 사유와 질서 아래 사람과 동물과 신이 혼연하는 신화적 공간을 보여준다. 「오금덩이라는곧」은 무속적 색채가 축사의례의 풍속을 전경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여귀(?鬼)를 위로하거나 재액을 방비하는 풍속을 묘사하면서 그 이면에 가려진 무속적 사유의 일단을 보여 준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에서는 집과 마을 모두가 무속의 지배를 받는다. 집과 마을 곳곳이 무속의 신들이 살아 숨쉬는 신화적 공간이다. 성년기 백석의 기억 속에 깊게 음각된 유년기의 무속적 환경은 언제나 돌아가 정주하고 싶은, 그리움의 원형적 공간이다. 지금까지 한국 현대시 연구는 전통적인 것을 수단으로 한 접근은 도외시된채 서구식 사유와 도구로 재단되어 온 게 현실이다. 무속은 합리성 여부와 상관없이 오랜 기간 이미 존재해 왔다. 무속이 품는 신비성이나 초자연성의 합리성 여부와는 무관하게 우리 겨레는 그것이 형성하는 공간 안에서 수천 년동안 숨쉬며 살아 왔다. 무속은 서구적 저울과 잣대로 합리성 여부를 따질 만한 가치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시라는 장르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겨레 정서를 가장 민감하게 반향한다면, 겨레정서의 원형질을 이루는 무속을 광원(光源)으로 해서 우리 현대시를 조명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으로 여겨진다.

개화기 문예에 나타난 `근대적 내면성`의 성립 과정 연구

이봉일 ( Lee Bong-il )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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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7세기 김만중이 『서포만필』에서 민족어를 선언한 이후부터 1919년 김동인의 중편소설 「약한 자의 슬픔」에 이르기까지 한국근대문학사에서 `근대적 내면성`의 성립과정을 4단락으로 구분하여 역사의 흐름에 따라 개략적으로 살핀 글이다. 1. <근대의 초입과 민족어문학론의 전개>에서는 중세의 이원적 언어체계가 1910년대 막바지에 이르러 하나의 언어체계로 통합되는 흐름을 알아보았다. 이것은 17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4세기 동안 `김만중-이정섭-홍대용-유길준`을 거쳐 신채호에 의해 완성된 민족어문학론의 성립에 대한 확인이다. 2. <신문독자의 탄생과 역사주체의 교체>에서는 1894년 갑오경장 이후 중세의 이원적 언어체계가 `국문`과 `한문` 그리고 `국한문`으로 나누어진 까닭과 그것이 신문을 통해 어떻게 나타났는지, 그리고 신문에 쓰인 `국문`과 `국한문`체의 특성에 따라 탄생한 독자가 이제 막 생겨난 언문소설의 독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살펴보았다. 3. <애국계몽기와 개인주체의 출현>에서는 재일유학생 작가들의 단편소설에 나타난 근대적 내면성의 단초와 그들이 소설의 서사적 공간 속에 갇힌 배경과 그 결과를 이해하고, 이들과 반대로 대한제국의 사회정치적 현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지식인들의 시대적 담론의 변화에 대해 알아보았다. 4. <자아의 발견과 근대적 내면성의 성립>에서는 근대적 자아의 탄생을 예고하는 이광수의 `천재`론과 `자아`론이 등장한 이후, `-다`체의 성립과 3인칭단수 `그`의 출현이 철도의 주요 간선이 거의 완성되는 시기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것들은 1910년 중반부터 내면이 전면적으로 소설 속에 다시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하여 소설적 허구가 일상적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고, 타자의 내면에 대한 심리적 독해가 일상적 현실로 간주되는 근대소설의 내면적 공간이 성립된 것이다.

최남선의 `시국가요`와 식민지의 정치의 미학화

구인모 ( Ku In-m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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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6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최남선은 모두 다섯 편의 노랫말을 발표한다. 그 가운데 「내일」, 「동산」은 폴리돌 레코드사에서, 「총후의용」은 빅터레코드사에서 취입되어 발표되었다. 최남선의 노랫말은 단순한 유행가가 아니라, 조선문예회가 발표한 시국가요 작품들 가운데 일부였다. 이 조선문예회는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일본 정부와 조선총독부가 주도한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의 일환으로 시국가요의 제작, 취입, 보급을 담당한 관변단체였다. 최남선의 시국가요 창작은 이른바 `친일`로 일컬어지는 1937년 이후 사상적 전회를 반영한다. 또한 그 배경에는 심미적 체험을 이념에 종속시키는 미학이데올로기가 서정적 글쓰기의 핵심이라고 보는 최남선의 문학적 인식과 국민시가 개송·개창의 이상이 가로놓여 있었다. 이러한 최남선의 글쓰기에 대한 관점과 이상은 자연히 식민 권력의 정치의 미학화와 쉽게 결합할 수 있었다. 이는 1920년대 최남선의 국민문학 논의의 궁극적인 귀결점이면서도, 식민지에서 국민적 시가의 이상을 구상했던 지식인의 비극적 운명을 반영한다.

최인훈 『서유기』의 다성성(多聲性)과 아이러니 연구

함돈균 ( Hahm Don-kyoon )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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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최인훈 『서유기』의 실험적 형식을 작가의식과의 연관성 속에서 해명해 보고자 한 연구이다. 『서유기』의 모험소설 형식은 단지 고전소설의 패로디가 아니다. 정치가 종교를 대체하고, 정치와 문학이 긴밀한 관련을 맺는 근대에, 최인훈의 『서유기』는 역사적으로 현존했던 정치적 이념형들을 탐구하는 정치적 모험기다. 이 모험의 여정에서 각각의 이념형들은 백가쟁명식주장을 자신들 나름의 논리적 근거 위에서 펼쳐내고, 주인공은 표면상 이 주장들의 논리를 충분히 청취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바흐찐의 `다성적` 소설형식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바흐찐의 다성적 소설론이 궁극적으로 `대화`의 원리를 지향하는 데에 비해, 현존하는 정치 이념형들 간의 세력투쟁의 성격을 띠는 최인훈의 『서유기』에서, 이 이념형들 간의 투쟁은 `대화`의 원리로 포섭되기 힘든 모습을 보여준다. 이 때 이 이념형들에 대한 주인공의 태도는 모호하며, 어느 한 세력의 입장도 전적으로 긍정하거나 부정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호한 태도가 역설적으로 이 소설의 내러티브를 추동시킨다. 이 논문은 이러한 주체의 태도가 이 소설을 모험소설 형식으로 만들었다고 해석하며, 이를 `아이러니`라는 차원에서 이해하였다. 이 논문은 이러한 아이러니를 세계에 대해 주인공이 취하는 반성적 거리감각으로 해석했으며, 이를 통해 반성적 거리감각을 시인(문학)의 본질이라고 본 작가의식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이런 차원에서 『서유기』는, 문학적 세계관 자체를 소설의 방법론으로 양식화하려는 메타소설적 측면을 아울러 지닌 텍스트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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