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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in International Context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5-1216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3권 0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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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한말의 문예이론가였던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 1841-1910)의 논시 작품에 대한 논의인데, 그 중에서 <희위이십사절구(戱爲二十四絶句)>라는 논시절구(論詩絶句)에 주목하였다. 지금까지 연구자들은 <희위이십사절구>를 간과하여 논시절구로 파악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 다뤄진 석정의 <희위이십사절구>는 한국 `이시논시(以詩論詩)`의 양식사에서 하나의 발굴적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 석정의 <희위이십사절구>를 살펴보기 이전에 먼저 역대 논시절구의 양식사적 흐름에 대해 살펴보았다. 논시절구는 당나라 두보의 <희위육절(戱爲六絶)> 이래로 금나라에 이르러 시인에 대한 비평을 앞세우는 원호문(元好問, 1190-1257)의 그것과 시 자체에 대한 관점이나 법식을 위주로 하는 대복고(戴復古, 1167-1250)의 그것으로 전개된다고 보았다. 한국에서의 논시절구는 19세기 전기에 신위의 <동인논시절구(東人論詩絶句)>에서 시작되는데, 그것은 자하 신위→추금 강위→매천 황현→석정 이정직으로 이어졌다. 석정의 <희위이십사절구>는 벗이었던 매천과의 교류에서 얻어진 문예적 성과물로서 1902년도에 지어졌다. 한편, 신위와 황현은 작품론으로, 이정직은 창작론으로 방향을 달리한다. 석정은 <희위이십사절구>와 같은 논시절구를 비롯하여 70여수의 논시시를 남겼다. 석정의 논시시들은 그 대부분이 작가나 작품보다는 성정이나 시정신과 같은 본질론, 학시와 작시상의 문제와 같은 창작론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특히 석정의 논시절구인 <희위이십사절구>는 전체적으로 시를 지어나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언어나 시어, 용사나 표현의 문제 등과 같은 창작론으로 이뤄져 있었다. 논시절구에 드러난 석정의 시론은 독창적이거나 개성적인 작품보다 평이하고 담박한 풍아의 유풍과 함께 심성에서 우러나온 진실한 시작품을 옹호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석정의 시론은 『시경』ㆍ 「풍아」로 대변되는 동양 고전의 예술 정신에 의미를 부여하여 이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려는 고전주의적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문학사적 측면에서 신위나 황현의 논시절구는 역대 작가에 대한 시평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비해, 석정의 그것은 작시나 학시 과정에서 유의해야할 창작상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과 『시경』

심경호 ( Sim Kyung-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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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필사본 『연석산방미정문고』를 중심으로, 석정 이정직의 시경론을 검토하여, 그가 고전을 근대 공간에서 어떻게 재해석하려고 시도하였고, 지식학의 새 방법론을 어떻게 모색하였는지 살펴보았다. 석정은 시편의 의미를 텍스트 내에서 한정하지 않고 개방적으로 이해하려고 하였다. 심지어 단장취의마저 용인하고, 시편의 창작 시기를 고증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일축하였다. 석정은 『시경』 해석에서 `고증`에 목적을 두지 않고 `의리의 발명`에 목적을 두어, 텍스트의 내적 구조에 대한 천착을 버리고, 텍스트가 지닌 의미의 중층성을 개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석정의 시경론은 조선경학이 근세에 와서 전절(轉折)을 겪게 되는 한 가지 유력한 방향을 제시하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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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직의 문론은 한마디로 법고(法古)라 할 수 있다. 이때 말하는 고(古)란 항상된 것이며, 변하려고 해도 변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법(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정직은 문장에 있어서의 법을 장인에게 있어서 규구(規矩)와 같다고 했다. 장인이 어떻게 활용하든지 규구는 있어야 하며, 규구는 정해진 것이다. 이로 볼 때 이정직이 말하는 배워야 할 법은 고법(古法)이며 정법(定法)이다. 다만 정법을 모두 체득한 이후에 자신의 글을 쓸 때는 변화하여야 하니, 이것이 법고이다. 다시 말해 작문에 임하여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법이라는 기존의 논의에서 더 나아가, 이정직은 작문에 임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법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법을 익혀 두어야 한다고 정법으로서의 고법을 주장한 것이다. 이에 이정직은 「백이전(伯夷傳)」을 분석하여 정법의 예를 보여주었고, 「한훤소품(寒暄小品)」과「척독이지(尺牘已知)」를 통해 정법으로서의 고법 마련을 위해 노력하였다.

<찬기파랑가>의 상징체계와 경덕왕대 정치사

신영명 ( Shin Young-myo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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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기파랑가>는 기파랑의 찬양을 통해 시대 구원의 문제를 노래한 향가다. 충담사는 기파랑이란 인물 형상을 통해 사회 통합을 추구한다. 이 주제의 구현을 위해 <찬기파랑가>는 월인천강의 형상을 차용한다. 곧 달은 임금, 조약돌은 백성이 된다. 그리고 이 둘을 매개하는 것은 백운으로서의 기파랑이며, 이를 방해하는 것이 먹구름이다. 이것이 <찬기파랑가> 상징체계의 핵심이다. 경덕왕대는 신라중대 전제왕권 대 귀족연합 간의 갈등이 내연하던 시기다. 기파랑은 김기와 일정 정도 동일한 성향을 가진 인물이다. 이 둘은 신라중대 사회의 모순 해소를 통해 국가 통합을 꿈꾼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찬기파랑가>는 화랑정신의 복고를 통해 시대 구원을 꿈꾼다는 점에서 당대 지성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경기 북부지역 마을신앙과 가을제의에 대한 일고찰

김종대 ( Kim Jong-dae ) , 차보영 ( Cha Bo-yo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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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북부 지방에서 전승되는 마을 신앙은 신앙적 속성과 제의시기가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이 지역에 영향을 끼쳐온 신앙적인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산신신앙의 흔적은 분명히 수렵문화적 속성을 반영한 결과이며, 가을 제의 역시 농경문화적인 특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 이들 지역의 신앙적인 근간은 농경문화에 있다. 풍요로운 수확과 마을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것이 마을 신앙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논농사권에서는 마을제의가 주로 정초에서 정월 보름에 집중되고 있는데, 경기 북부지역에서는 가을 제의로서 9월과 10월에 몰려 있다. 이러한 제의일시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풀고자 하는 것이 본 글의 목적이다. 삼국시대의 국가적인 제의 특징을 살펴보면 신라에서는 10월 제의가 없는 대신에 고구려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제의일시 만을 갖고 본다면 10월 제의는 고구려의 신앙적 전통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북방식 제의` 혹은 `고구려식 제의`라고 부를 만하다. 지금까지 마을신앙이 행해지는 제의일시에 대한 논의로서 중심은 정월 보름이었다. 이것은 쌀농사권으로서의 농경문화가 완전히 정착된 이후로 광범위하게 유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삼한 시대의 문헌 기록을 근거로 할 경우 정월 보름은 의미부여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쌀농사가 전국적으로 유포되면서, 특히 신라 문화권에서 활발한 전승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달리 가을에 행해졌던 민간 신앙은 안택과 고사 등의 개인신앙 중심으로서 수확의례적 속성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마을 신앙과 같은 집단 신앙이 행해졌을 경우에도 과연 수확의례로만 해석되는 것이 온당할 것인가 의문이다. 오히려 그런 특징보다는 수확의례적 속성을 띠고 있던 고구려 등 북부지역의 수렵의례로서 해석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것으로 보이는 이유도 이런 측면 때문이다. 또한 고구려와 고려의 신앙적 전통이 산신제 중심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가을 제의는 고구려 등 북부지역의 전통을 계승한 북부식 마을 신앙적 특징을, 정월 제의는 신라를 중심으로 한 남부지역에서 전승된 논농사 중심의 농경문화적 특징으로 담고 있다고 하겠다.

농민시에 나타난 여성상(女性像) 연구

서범석 ( Sur Bum-su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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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일제강점기 농민시에 나타나는 `여성상`에 초점을 맞추어 그 특징을 귀납하였다. `현실과의 대응관계`를 중심으로, 결핍된 현실에 의하여 억압적 수난을 당하는 `희생적 여성상`, 그 현실에 대한 극복의지를 지향하는 `의지적 여성상`, 그리고 현실과 무관하게 보편적이고 본원적인 여성의 특성을 보이는 `근원적 여성상` 등으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첫째, 여성농민은 농업노동, 가사노동, 부업노동, 그리고 단체노동(식민정책에 의한) 등 다중의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가정과 가족을 지키는 `희생적 여성상`으로 농민시에 두드러지게 그려져 있다. 피폐한 농촌을 떠나 도시로 나간 여성들은 열악한 조건의 공장노동자, 공사장 막일꾼, 식모, 술집 접대부 등으로 전락하였다. 나아가 지주나 일본인 등에 소위 `팔려가는` 여성이 되었다. 극한의 민족적 `수난의 현실`이 비판적 리얼리즘의 농민시 양식으로 형상화되면서 빚어진 `희생적 여성상`들이다. 둘째, 극한의 비극적 현실을 개선하고자 하는 이념적 극복의지를 형상화하고 있는 농민시에는 `계몽`과 `투쟁`이라는 이념구현과 관련된 의지적 여성상이 나타나 있다. 그러나 계몽문학적 농민시에서 여성은 한결같이 계몽의 주체가 아닌 계몽의 대상에 머물고 있어 `피계몽적 여성상`으로 그려져 있다. 프로문학으로서의 농민시 속에서는 현실극복을 위하여 능동적, 주체적, 적극적 투쟁 의식을 보이는 주체적 극복의지를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적 여성상`도 만나게 된다. 민족의식의 문학적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셋째, 농민시에 나타나는 여성을 가족관계로 귀납해 보면 `어머니`가 가장 많이 나타난다. `어머니`는 고향과 함께 돌아가야 할 그리움의 대상으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야말로 허다하게 부각되어 있다. 특히 `시적 청자`로 나타나 구원의 여성상으로 행간마다 살아 있다. 귀소본능을 자극하는 `근원적 여성상`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을 비유의 보조관념으로 사용한 작품들이 많이 눈에 띄는데, 그것은 `처녀(아가씨)`와 `어머니`로 대표된다. 처녀 이미지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이는 여성의 원형적 이미지로서 전래적인 `근원적 여성상`이다. `어머니`라는 보조관념은 대부분 그 원관념이 `흙(땅, 대지)`으로 나타나 있다. 이는 여성의 생산성과 신성성의 표현으로 `근원적 여성상`이다.

식민지 지식인의 제국 여행-임학수

김승구 ( Kim Seung-goo )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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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임학수 시의 내적 연속성을 제국 여행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임학수는 1930년대 내내 식민지 조선을 비롯하여 확장일로에 있던 제국의 판도 내를 둘러보는 여행에의 욕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의 계기로 삼았다. 『八道風物詩集』과 『候鳥』가 이미 제국의 판도에 안착된 조선 각지 여행의 산물이라면, 『戰線詩集』은 새로이 확장되고 있는 곳으로의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식민지 지식인 임학수가 성격이 상반된 영역으로의 여행에서 표출하는 의식과 심리의 차이를 살펴보고 그것이 식민지 지식인의 정신사에 어떻게 접맥되는지를 살펴보았다. 『八道風物詩集』이나 『候鳥』는 상실된 민족에 대한 애도를 표출하고 있음에 반해 『戰線詩集』은 민족의 상실을 대리보충할 수 있는 제국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표출하고 있다. 특히 『戰線詩集』은 제국의 지식인으로 호명당한 당대 지식인의 국책 협력 과정과 방식, 내면화된 이데올로기 양상 등 식민지 파시즘 시기 지식인의 정신적 동향을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한국 역사추리소설에 투사된 대중의 서사적 욕망

김영성 ( Kim Young-s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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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역사추리소설에 투사된 대중의 욕망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역사추리소설의 유행을 비판할 것인가 아니면 향유할 것인가를 논의하고자 한다. 역사추리소설의 유행은 포스트모던 역사학에 의해 시도된 역사적 상상력의 복원과 맞닿아 있다. 포스트모던 역사학에서는 실증적 과학으로서의 역사를 거부하고 허구로서의 역사를 강조함으로써 역사와 허구의 경계를 해체한다. 이러한 입장을 문학적으로 수용한 역사추리소설은 추론에 의지해 `가능성의 역사`를 재현하고자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추론이 역사소설과 추리소설의 장르적 혼합을 가능하게 한 핵심적인 연결고리라는 점이다. 고전적 추리소설은 `서술되지 않은 공백`을 탐정의 추론을 통해 해결하는 것으로 서사가 완결된다. 역사추리소설에 존재하는 역사와 추리, 사실과 허구라는 이질적 요소들은 바로 이 공백의 서사학을 통해 결합된다. 역사적 공백과 서술되지 않은 공백을 일치시킴으로써 독자인 대중이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역사추리소설에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지가 사건을 해결하는 중요한 해석적 코드로 작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역사추리소설이 쓰여질 경우, 필연적으로 하드보일드형 추리소설의 서사적 특성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서사적 특성으로 인해 탐정의 지위 또한 변하게 된다. 사건과 실존적으로 연루되어 있지 않은 고전적 추리소설의 탐정들과는 달리, 역사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탐정들은 사건에 직간접으로 연루되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탐정의 지위가 변화되면 그것을 읽는 대중들의 독서 체험 양상도 달라진다는 데 있다. 역사추리소설에서 탐정은 더 이상 대중들로 하여금 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알고 있다고 추정되는 주체`가 아니다. 대중들은 자신들과 유사한 탐정의 모험에 참여함으로써 감정적 동일시와 감동을 체험하게 되고, 이러한 체험을 통해 소설 속에서 재현된 가능성의 역사를 현재의 역사로 인식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현재를 투사하는 거울로서 역사가 기능하게 될 경우 역사추리소설은 개혁에 대한 편향적 시각과 민족주의 담론의 옹호로부터 벗어나야만 한다. 그 벗어남을 위해서 역사추리소설은 대중의 서사적 욕망을 적극적으로 수렴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역사추리소설에서 재현된 가능성의 역사는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향유의 대상으로 대중들에게 인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한국 역사추리소설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보수와 개혁에 대한 객관적 평가, 민족주의 담론에 대한 비판 등과 같은 현상들은 그러한 맥락에서 의미하는 바가 있다.

김수영 시에 나타난 사랑의 의미 연구

전병준 ( Jeon Byung-joon )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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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김수영 시의 주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인 사랑의 의미를 살피는 데 목적을 두었다. 전쟁의 경험과 포로수용소 체험을 통해 김수영은 자유를 지상최대의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지만 당대의 현실은 그로 하여금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허락하지 않았다. 자유를 추구하는 시인과 자유를 억압하는 당대의 현실 사이의 갈등 속에서 시인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설움과 비애의 형식이었다. 그러나 김수영은 현실을 견뎌나가면서 생활을 긍정하고 변화를 용인하는 지혜를 얻게 된다. 사랑의 확인을 통해 그 인식이 확대되고 역사인식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특히 그에게 사랑은 타인을 통해 배우게 되는 수동적인 과정으로 나타난다. 특히 「사랑」과 「현대식교량」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듯이 김수영에게 사랑이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과정은 `적극적 수동성`으로 특징지을 수 있었다. 즉, 인격적 주체로서 타인과 만나게 되는 사랑의 확인을 통해 타자와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성립하는 것이 `사랑의 시학`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이것은 `자유의 시학`과 통합되는 지점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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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초기 동아시아에서 모험과 탐험의 서사는 제국주의의 산물이면서도 그에 대응하는 사회적 매개로 인식되면서 그 자체 양가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본고는 로빈슨 크루소의 번역 텍스트를 비롯한 잡지 소년의 기사들을 대상으로 하여 이러한 양가성이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의 가능성으로 읽힐 수 있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근대 모험 서사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로빈슨 크루소` 원작의 불안정성은 제국주의적 자유주의의 자기 모순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최남선은 번역을 통해 식민주의의 허위성을 강조하는 한편 모방이 지닌 혼종성의 저항적 의미를 살리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저항은 식민화라는 현실적 상황에서 그 의미가 약화되기 마련이다. 더욱이 최남선의 인식이 근대적 학문 체계를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화된 제국에 대한 저항 가능성은 상대적인 열등이라는 한계에 처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지점에서 그는 근대적 교통수단을 통해 획득한 감각의 새로움과 역사 이전으로 확대된 시간축을 결합함으로써 근대성으로 포섭되지 않는 역사적 상상력을 생산해낼 수 있었으며 이는 식민화된 지식체계에 대한 새로운 저항이 생성될 수 있는 가능성의 영역을 제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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