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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in International Context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5-1216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7권 0호 (2009)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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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김수영의 시론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 펼쳐놓은 주요개념들인 `모호성`, `혼돈`, `자유` `참여시`를 키워드로 삼아, 김수영을 통해 사유할 수 있는 `시와 정치`의 논제들을 탐색해보았다. 김수영은 “모호성의 탐색이 급기야는 참여시의 효용성의 주장에까지 다다”랐다고 요약했는데, 그에게 모호성은 시작(詩作)을 위한 정신구조의 첨단에 놓이는 미지의 정신이었다. 이러한 모호성은 `내 안의 타자성`에 대한 감각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타자들의 세계인 무한대의 혼돈에의 시적 접촉과 작용이 발생한다. 혼돈에의 완전한 자유는 김수영에게 미적 조건이자 실천의 실체였다. 그런데 정치적 불일치의 논쟁점들을 자유롭게 횡단하는 혼돈의 미적 실천이 현실 정치적으로 억압되고 있다는 데서 참여시에 대한 요구가 가시화된다. 김수영에게 있어서 시의 정치성은 미학적 필연성에 매개되어 있다. 그러므로 김수영은 정치적인 전위의 미학성을 또한 늘 문제삼고 있었다. 김수영은 `미적인 것`이 어떻게 `정치적인 것`으로 존재하게 되는가를 탐색했다고 하겠다. 우리는 김수영을 통하여 `미적 전위`와 `정치적인 전위`의 간극을 매개하는 시적 논리와 실천의 한 사례를 들여다볼 수 있다. 김수영의 시론은 오늘날 `시와 정치`의 관계를 물을 때 다시 참조할 수 있는 흥미로운 현재형의 텍스트다.

『문우』에서 『백조』까지 -매체와 인적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정우택 ( Jeong Woo-taek )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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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백조』가 탄생하기까지의 정황을 매체와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살펴보았다. 정백, 홍사용, 박종화 등은 휘문고보 시절 회람잡지 『피는꽃』를 발간하고, 사회에 나와 `문우구락부`를 조직하고 문예잡지 『문우』(1920.5)를 발간했다. 지금까지 잡지 『문우』는 이름만 알려져 왔을 뿐이었는데, 이 논문에서 처음으로 그 실체를 소개하게 되었다. 『문우』에는 정백, 홍사용, 박종화, 이서구, 박헌영 등이 글을 발표했다. 박헌영을 제외한 이들은 『문우』 이전에 종합지 『서광』(1919.11 창간)의 편집자 혹은 필자로도 참여하였다. 또 다른 문학청년인 박영희와 나도향은 박종화를 견인하여 문예잡지 『신청년』 2기(4호, 1921.1)를 주도했다. 박영희, 박종화, 노자영 등은 시전문지 『장미촌』(1921.5)의 동인으로도 활동했다. 이 시기에 최승일은 박영희, 나도향, 박종화, 현진건 등을 초청하여 더 큰 규모를 갖춘 『백홍(白虹)』이란 잡지를 제안했으나, 실현되지는 못했다. 마침내 『백조』는 1922년 1월, 홍사용, 박종화, 박영희, 나도향, 현진건, 이상화, 노자영 등을 동인으로 창간되었다. 문예동인지 『백조』를 발행한 문화사는 사상잡지 『흑조』도 기획했는데, 이는 『피는꽃』과 『서광』, 『문우』의 주도자이자 사회운동가였던 정백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러나 정백은 한국 최초의 좌익잡지 『신생활』(1922.3)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는 이전에 `문화`라는 범주에 함께 묶였던 `문학`과 `사상`이 분화·전문화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백조』는 `감상적·퇴폐적 낭만주의`라는 문예사조 혹은 신경향파 문학의 타자로서만 의의를 갖는 것이 아니라, 3.1운동 이후의 다기(多岐)한 문학적·정치적 조류와 기획, 그리고 성취를 반영하고 있다.

1940년대 전반기 한국어 소설 연구 -『춘추』 소재 작품을 중심으로-

장성규 ( Jang Sung-kyu )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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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이후 『춘추』지에 발표된 소설들 중 상당수는 당시 국책문학으로 포획되지 않으면서 한국어로 창작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기존의 연구는 이 시기를 `암흑기`, 또는 `국민문학기`로 규정하면서 이와 같은 한국어 소설의 문학사적 의의를 간과해 온 것이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이태준의 「사냥」, 「무연」, 윤세중의 「투견기」, 박노갑의 「소창」, 이기영의 「공간」등의 작품은 사적 공간의 형상화를 통해 파시즘의 압력을 우회하려는 작가의 내면 의식을 보여준다. 그리고 유진오의 「정선달」, 황순원의 「그늘」등의 작품은 식민주의적 담론으로 귀결되지 않은 채, 전통 담론을 통해 식민지 근대성에 대한 성찰과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의식을 보여준다. 한 편 박계주의 「육표」, 송산실의 「한등」등의 작품은 만주 환타지로 환원되지 않는 실제 만주의 신산한 삶을 과거 시점의 서사 전략을 통해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김영석의 「상인」, 최인욱의 「멧돼지와 목탄」등의 작품은 국책문학으로서의 생산소설을 벗어나 당시 `신경제 윤리`에 대한 개체들의 `잡음`을 형상화하며 역으로 그 허구성을 지적하는 성과를 낳고 있다.

`아기`의 어원(語原)에 대한 재고찰(再考察)

조재형 ( Cho Chae-hyung )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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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아기(?兒, 幼兒)`의 어원으로 인식하고 있는 `아지`의 차자표기에 대해 고찰하고 그 문제점을 파악하는 데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영아, 유아`를 의미하는 `아기`의 어원은 `아지`로 파악했다. 이러한 논의의 근거는 `아지`의 차자표기에 사용된 `-知, -智, -只, -之` 등의 한자음이 [지]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아기`의 어원이 `아지`라는 것에 대해 그동안 이견이 제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기`의 어원이 `아지`라는 의견은 인지언어학적인 관점, 음운론적인 관점, 한자음 변화상에서 살펴 볼 때,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고려시대 문헌에서의 `아기, 아가`의 차자표기와의 관련성을 볼 때, 더욱 그러하다. 본고는 이 문제점에 주목하여 이 연구는 지금까지 `아기`의 어원이 `아지`라는 의견의 제문제점을 고찰하고 오히려 `아기`에서 `아지`가 분파되었을 가능성을 논하고 입증하고자 하였다. 우선 `-知, -智, -只, -之`의 고대국어 시기의 음가가 [지]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하여 중국 상고음에서 이들 漢字의 독음을 고찰하였다. 또한 고대국어 자료를 통해 이 漢字들의 독음이 [지]가 아닌 [기]에 가까운 것을 입증하였다. 또한 중세국어시기의 `아기`의 차자표기도 `아지`가 아닌 `아기`임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논의들은 `아기`의 어원이 `아지`가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다.

중국 출간 한국어교재의 화용론적 오류 분석

손세모돌 ( Son Se-mo-dol )
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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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중국에서 출간된 한국어 교재들의 화용론적 오류 중 함축과 관련된 오류를 분석하는 것이다. 어떤 언어표현들은 일정한 내용을 고정적으로 함축하기도 하고 대화에서 전달되는 부수적인 의미도 있는데 이런 함축을 고려하지 않으면 의사소통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학습자들은 한국어를 학습하면서 한국사회와 문화를 함께 받아들여 한국에 대한 이해의 바탕을 형성하게 되므로 화용론적, 사회문화적으로 정확한 한국어 사용이 제공되어야 한다. 국외의 학습자들에게 교재는 한국어 학습과 한국사회의 이해를 위한 중심 도구이므로 영향력이 더 크다. 중국에서 출간된 13종 교재의 회화 본문을 대상으로는 호칭과 지칭, 격식체와 비격식체 혼용을 대상으로 고정함축 관련 오류를 살펴보았다. 호칭과 지칭에서는 “아줌마”와 “아가씨”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아줌마”는 한국사회에서 비하의 함축을 가지며 “아가씨”도 상황에 따라 부정적인 함축을 가진다. 중국에서 출간된 4종의 한국어 교재에 “아줌마”가 사용되고, 2종에 “아가씨”가 호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중국 출간 교재들은 격식체의 합쇼체와 비격식체의 해요체를 혼용하는데, 회화 내용과 대화자들간의 거리가 일치하지 않거나 사회적 관계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있다. 격식체는 대화자 사이에 거리가 있음을 함축하고 비격식체는 친밀함을 함축하는데 이런 고정함축이 배려되지 않아서 생기는 오류들이다. 손님과 서비스직 직원 사이처럼 사회적 지위에 따라 격식체와 비격식체 사용이 제약되기도 하는데, 이런 점이 고려되지 않아 수용가능성이 낮은 대화들이 제시되기도 한다. 중국 출간 교재에서는 청유형에만 “-읍시다” 형태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는 윗사람에게 비격식체인 “-(으)시지요”나 “-(으)세요”를 사용하기 때문에 윗사람에게 “-읍시다”를 사용하면 적절하게 대우하지 않는다는 함축이 발생하여 무례해진다. 친밀한 사이에서 청유형에만 “-읍시다”를 사용하면 화.청자의 거리감과 내용이 어울리지 않아 어색한 표현이 된다. 대화함축은 정보량과 관련한 것만 대상으로 하였다. 분석한 교재에는 필요 이상의 정보를 제공하여 화자가 의도하지도 않은 대화함축이 발생할 만한 예들도 있다. 이해될 수 있는 상황에서 생략이 자연스러운 낱말을 생략하지 않거나 과도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예기치 않은 부정적 함축이 나타난다. 외국에서 출판된 한국어 교재의 화용론적 오류 분석은 학습자들이 정확한 한국어 사용을 알고, 한국사회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필요한 교재를 개발하는데 기본적인 현황 분석을 위한 것이다.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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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고려가요를 `고려가요`가 아닌 `고려 개경의 가요`로 전제하고, 「서경별곡」을 지역문학적 관점으로 살펴본 것이다. 지역성 혹은 지역적 정서란 본래부터 그 지역에 존재하는 신비적인 것이 아니라 형성되는 것이다. `형성`이란 말은 동일한 것이 반복 혹은 누적됨으로써 나타나는 것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고는 고려시대 개경의 지역성 인식의 실마리를 `거주지 공간 개념`으로 풀어보고자 시도하였다. 그것은 어떤 지역에 특수한 형태의 거주 형식이 누적됨으로써 형성되는 특수한 `심상지리`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서경별곡」에서 평양이 연애시의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은 고려시대 개경인의 심상지리에 기초하고 있다. 고려시대 개경의 귀족들은 서울과 그 인근의 근기 지역을 중심으로 생활하면서 그 범위 내의 지역과 그것을 벗어난 지역에 대해 매우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 평양은 서울이 주는 정치적 긴장으로부터 잠시나마 해방될 수 있는 공간으로 상상되었으며, 이러한 심상지리에 기반하여 평양은 낭만적인 연애의 공간으로 상징화될 수 있었다. 따라서 `평양-연애`로 이어지는 심상지리에 바탕한 사랑노래의 정서는 버림받은 여성 주인공의 비련 혹은 못다 이룬 사랑이 주조를 이룬다. 그리고 그 노래에서 상대방 남성은 자기중심으로 돌아가고, 여성 주인공은 애써 잊었던 이별을 당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것은 이곳이 고려시대 개경인들에게 일탈의 해방감 속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또는 의무나 책임의 무게를 느끼지 않는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곳으로 상상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비대칭적 사랑의 고뇌와 안타까움의 정서를 노래하고 있는 「서경별곡」과 달리, 반려자적 사랑을 주조로 하고 있는 백제지역 시가들은 고려시대 개경인들이 임진강과 한강으로 이어지는 강상수로 너머의 공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심상지리를 기초로 하여 형성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임진강과 한강 남쪽에 대한 자신들의 심상지리를 중국의 양자강 남쪽에 대한 이미지와 오버랩시키면서, 그 지역을 이처럼 비극적인 곳으로 재구성했던 것이다. 백제지역 가요는 이같은 심상지리를 기반으로 하여, 양자강 남쪽의 비극적 역사의 주인공이었던 아황과 여영, 굴원과 같은 인물들을 여성화자로 분식하여 만들어진 사랑노래하고 할 수 있다.

한글편지에 나타난 순원왕후의 수렴청정과 정치적 지향

이기대 ( Lee Gi-da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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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한글 편지를 중심으로 순원왕후의 정치적 지향에 대해 논의하였다. 순원왕후는 헌종과 철종 2대에 걸쳐 수렴청정을 하면서 19세기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를 열어간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글 편지에 나타난 순원왕후의 정치적 역할은 왕실의 유지와 위상의 강화에 중점이 놓여 있었다. 편지에는 순원왕후가 수렴청정 기간 동안 백성에게 관심을 가지고 연민으로 대하고 있으며 지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재를 등용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리고 홍삼 무역과 관련하여 개성의 인삼 재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潛商을 금하는 등의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철종이 왕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교육을 중시하면서, 철종이 영조의 혈맥을 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이전 왕들의 왕릉을 옮겨가면서까지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논의는 순원왕후 자신의 목소리를 근거로 한 것이기에, 자료 자체가 편향되어 있다. 하지만 바로 이 점 때문에, 기존의 역사적 자료와 다른 균열이 드러날 수 있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이후 순원왕후와 19세기를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기대할 수 있다.

<창조> 소재 김동인 소설의 근대적 글쓰기 연구

이희정 ( Lee Hee-jo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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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의의 출발은 김동인이 스스로 춘원 이광수와의 문학과 비교하며 자신에게 내리는 평가, 즉 이광수가 비록 <무정>에서 쓰고 있기는 하지만 불철저하였던 3인칭과 과거형 시제를 본인이 철저히 씀으로써 근대적 문체를 완성하여다는 평가에 의문을 품는 것에서 시작하였다. 이러한 작업은 김동인의 문학이나 비평, 그리고 그 문학사적 의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이뤄놓은 성취를 보다 정확하게 진단함으로써 우리 문학사에서 근대적 문체의 형성과정을 보다 정밀하게 고찰하는 것이다. 김동인은 <약한자의 슬픔>에서 과거형 종결어미를 철저히 확립하였다고 하지만, 실제 이 작품 뒤에 연이어 나온 <마음이 옅은자여>나 <전제자>, <배따라기> 등의 작품에서는 의외로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철저히 지키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김동인의 이중성은 과거형 종결어미의 지나친 사용으로 인해 유발되는 번역투의 문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일기체와 액자형식과 같은 다양한 소설의 양식적 실험과 현재형의 적절한 사용, 순한글의 사용은 작품 속에 실재감과 현장감을 불러 넣어 리얼리티를 구현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1920년대 초기 김동인 소설의 근대적 글쓰기에서 나타나는 이와 같은 모습은 조선의 근대적 문체가 일본의 근대적 문체에 대한 맹목적 수용으로 나타나는 번역적 문체가 아닌, 근대적 문체로서의 실험과 조선어의 특질을 적절히 살린 1920년대의 개성적 문체의 모습을 확립해가는 단초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김동인의 근대적 글쓰기의 특징은 현진건 등의 작품에서도 함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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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이효석의 일제말기 소설『벽공무한(碧空無限)』을 대상으로 하여 `하얼빈`이라는 지정학적 공간이 갖고 있는 의미를 밝혀내고자 한다. 일제말기 하얼빈은 러시아인과 중국인과 일본인과 조선인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국제적 도시였다. 이효석은 일제말기에 하얼빈을 여행하면서 하얼빈을 소재로 한 일군의 작품을 발표한다. 이 가운데 장편소설『벽공무한(碧空無限)』은 일제말기 이효석 문학의 의의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이효석이 만주 중에서도 신경이나 봉천이 아니라, `하얼빈`을 소설의 공간으로 활용한 것은 하얼빈이 갖고 있는 "동양의 파리"라는 구라파적인 분위기 때문이다. 즉 이효석에게 하얼빈은 일본 제국주의가 대동아를 부르짖으며 세운 만주국의 도시도 아니며, 일본 제국주의와 맞서기 위해 목숨을 건 항일투쟁을 감행하는 도시도 아니며, 일확천금을 얻기 위해 개척해야할 모험의 도시도 아니었다. 이효석에게 하얼빈은 국제적이고 서구적인 근대도시로서 평화롭고 교양 있는 서구적 개인주의를 영위할 수 있는 틈새공간으로 존재했다. 이효석은『벽공무한(碧空無限)』속에서 하얼빈으로의 여행담을 통해 평화로운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서구적 개인주의를 꿈꾸며, 음악을 통한 보편적 교양을 추구하였다. 또한 하얼빈에서의 조선인 남자와 러시아 여자의 연애담을 통해 피와 언어를 뛰어넘는 국제적 연애를 꿈꾸며 조선적 심미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만주의 하얼빈은 근대자본주의의 화려함과 식민지의 어두움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하얼빈은 일부 사람들에게는 입신출세나 일확천금의 기회를 부여잡을 수 있는 엘도라도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 이면에는 절대다수의 고단한 삶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는 근대적 도시공간이다. 지배민족인 일본인의 경우는 많은 부와 권력을 누렸겠지만, 그 치하에서 생활을 영위해야했던 백계러시아인과 조선인에는 하얼빈이 장밋빛으로만 그려질 수 없었다. 이런 점에서 하얼빈은 식민지 주체가 식민지적 무의식의 양가성(兩價性)을 발견하게 되는 도시이다. 이효석은 하얼빈으로의 두 번의 여행을 통해 한번은 지배자의 시선으로 또 한번은 피지배자의 시선으로 바라봄으로 인해, 반복 속의 차이와 균열이 지닌 혼종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이효석이 하얼빈이라는 제국주의적 식민화 공간에 매혹과 거부감을 동시에 드러냈음을 의미한다.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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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이주민 소설은 이주민의 민족적 저항을 보여주는 민족주의적 서사로 읽히거나 유사제국주의적 시선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받아왔다. 본고는 이러한 기존의 연구들이 작품의 주체가 되는 이주민의 정체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보고, 이민족과 타협하며 어떻게든 정착해 살아야 했던 이주민의 주권지향성을 중심으로 만주 이주민 소설의 문학사적 의미를 재평가하고자 하였다. 안수길의 「벼」와 『북향보』에 나타난 수전개간의 공로는 농경 기술의 선진성을 기반으로 타지에 정착할 수 있는 명분이 되어주었다. 이를 통해 조선인은 이민족의 승인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만주 정세의 변화에 따라 살던 곳을 떠나야 하는 유동적인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그들이 만주에 정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주권`이었다. 안수길의 『북향보』와 이기영의 『대지의 아들』은 만주 이주 조선인의 주권지향성을 이주민 공동체나 조선인 국가의 구상을 통해 재현하고 있다. 안수길 문학이 만주의 이주민에 대해 좀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북향보』를 통해 이민족과 화합하는 협화적 주체의 이주민 공동체를 구상할 수 있었던 반면, 이기영의 『대지의 아들』은 집단적 노동과 그로 인한 생산의 기쁨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민족을 배제한 조선인만의 국가를 구상하게 된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안수길의 『북향보』와 이기영의 『대지의 아들』은 일본 이외의 다른 어떠한 국가도 상상할 수 없었던 시기에 조선인의 공동체 혹은 국가를 구상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문학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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